로마 가톨릭교회에서 5세기에 이르기까지는 세례받은 교인들이 매
주마다 집례 되어지는 성만찬에 참여할 수 있었으나, 9세기에 이르러
서는 평균 1년에 한번정도밖에는 성만찬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 이
유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희생(sacrifice)을 지
나치게 강조하였기 때문이었다.
45) 박근원, 공중예배에 있어서 성찬식의 위치 , 기독교신학총
론 Ⅰ (서울:대한기독교서회, 1985), p.713.
예수께서 친히 제정하시고 초대 사도시대로부터 시작된 성만찬의
본질이 로마 가톨릭교회로 가면서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초대교회 성
만찬은 말씀의 예배와 성찬의 예배가 공존하였지만
46) 박은규, 성찬의 재발견 , 기독교세계 , 제 681호 (서울:기독교세계사, 1984.9), p.33.
가톨릭교회의 성만찬은 말씀의 예배가 퇴보하고 지나친 의식만이 강조된
성찬 예배만이 집례되어 말씀의 예배와 성만찬 예배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말았다. 가톨릭은 수백년동안 말씀보다 성찬의 전통을 지켜왔다. 그러나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에 깊게 자리잡은 것은 사제가 집례하는 성만찬의 떡
과 포도주는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의 교리이다.
성찬의 화체설(Transubstantiation)은 9세기 초에 정식으로 제안
되고, 12세기에 정의를 받아 화체의 교리로 지명되고, 13세기의 제 4
차 라테란 회의(Laterian Council)에서 정식으로 채용되었으며, 16세
기 트랜트 회의에서 최종범식(最終範式)의 작성을 보았던 것이다.
47) 박형용, 조직신학 Ⅵ (서울:한국기독교교육위원회, 1977),p.331.
성찬에 대한 가톨릭의 견해는 중세기 로마교회의 성례전을 완성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장에 잘 나타난다. 로마교회의 7가지 성례전 중
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세례와 성찬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물질 속
에 그리스도께서 현재 임하신다는 화체설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성찬
이 반복될 때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은 매번 반복되는 것이다.
성찬을 성례전적 의(義)의 개념보다는 희생의 반복의 개념과 사상으로
보았다. 48) Bernard Leeming, Principles of Sacramental Theology
(London, 1956), p.88.
화체설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독창적 교리가 아니라, 9세기 수도사
라베르투스의 주의 몸과 피에 관하여 란 논문에 제시되었다. 그 논
문에서 그는 하시고자 하시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사제의 축사를 통하여 기적을 일어나게 하신다. 성별된 성찬의 물질
이 진정으로 역사적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하는 것이다. 성찬의 물질
의 색과 모양과 맛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그대로 있지만,
기적적으로 그리스도의 참된 몸과 피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화체의
기적은 외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내면적으로 화체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성물의 색과 모양, 맛은 그대로 있지만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하는 것은 내면적 신비가 된다. 육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성찬의 성물은
영적으로 받지않으면 안된다. 사람들이 성찬의 성물을 받을 때 그리
스도를 영적으로 파악하고 인식하는 자만이 그리스도의 실재의 몸과
피를 받을 수 있다 49) J.L.Neve, 기독교 교회사 , 서남동 역
(서울:대한기독교서회, 1975), p.285.
고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찬의 물질적 요소인 떡과 포도주는 제정어의
암송에 의하여 물질 그대로 있지만 성찬의 물질의 실체는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떡과 포도주 안에 임재하신다고 가르쳤다. 이로써
성물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는 것이다. 사제가 이것은 내 몸이
니... ,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니... 라는 제정어를 외
울 때 성물은 내적으로 변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며, 이 변화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객관적으로 나타내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같은 이론은 초대교회에 없었던 것으로써 중세기 스콜라 철학의
이론에 그 사상적 근거를 둔다. 즉 사물의 외부적 우유성(偶有性,
accidents)과 내적 본질(substance)을 구별하는 사상을 빌린 것이
다. 50) 이장식, op. cit., p.60.
성찬에 관한 이와같은 가톨릭의 견해는 중세기의 예배를 신비종교
와 이방종교의 어떤 풍습을 첨가하여 구약의 제사제도로 되돌려 놓았
다. 또 감각에 호소하므로 많은 미신이 생기게 되었고,
51) F.M.Segler, op. cit., p.52.
그리하여 성만찬은 미신적인 관념의 성례전으로 퇴색하고 그 본래적인 의미를
상실케 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예배는 성례전 중심이었고 성직자 중심이었
다. 52) Ibid.
예배에서 사제는 성물에 대하여 이것은 내 몸이라, 이것은 내
피라 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하고 그 성물을 높이 들어 회중에게 보였
다. 이 때가 예배의 절정이었고 종을 울려서 회중이 그것을 바라보게
했다. 만약 예배에서 그것을 보지 못하였으면 예배를 못드린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회중은 잘 보이지 않으면 그것을 더 높이 들라고 소
리쳤다. 그래서 높이 들렸던 성물을 쳐다보았던 신자는 안심하고 집
으로 돌아갔으며, 그 성물을 보지 못하였던 신자는 다음 예배에 다시
참석해야만 했다. 53) 이장식, op. cit., p.59.
이처럼 회중들은 성만찬을 집례하는 사제를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
야 했고, 그들의 참여는 부활절 예배에서만 허락되었다.
그것도 포도주는 허락이 안 되었고 떡만 허락이 되었던 것이다.
54) F.M.Segler, op. cit., p.55.
사실상 중세교회 예배에서 회중은 참여자가 아닌 방관자였다.
55) Ibid., p.52.
예배는 신부와 소수의 성가대에 의하여 라틴어로 거행되었기 때문에
회중은 그것을 알 수 없었고, 이와같은 라틴어 사용은 회중들 사이에
미신을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56) 김득용, 현대교회 예배학 신강
(서울:총신대학 출판부,1985), p.75.
회중은 다만 예배의 클라이막스에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성물을 봄
으로써 예배를 드린 것으로 생각하였다. 집례자는 작은 소리로 회중
이 모르는 말을 중얼거리듯 말하였고 회중들은 자신들이 함께 예배에
참여한다는 생각이 없이 사제의 행동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57) 이장식, op. cit., p.62.
또한 성서는 라틴어로 쓰여져 있어서 회중들이 이해할 수가 없었으며,
그나마 라틴어로 쓰여졌던 성서도 개방되지 않고 사제들만 볼 수 있었
기 때문에 교회의 예배는 회중들과의 삶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
58) 김득용, op. cit., p.75.
또한 중세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교리화했고, 그와같은 희생을
성만찬을 통해 지나치게 강조했기 때문에 성만찬이 희생제사가 되어
버렸다. 이와같은 희생제사도 성직자가 신자 전체를 대신해서 드리게
됨으로써, 성직자가 진정한 대사제이셨던 그리스도를 대신하게 되어
그리스도는 예배로 부터 아주 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59) 박근원, op.cit., p.712.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세 가톨릭교회의 성만찬은 화체설과
더불어 예배에 있어 극적인 신비의 현상으로 집례되었기 때문에 많은
폐단을 가져왔다. 그리고 매주일 예배에서 빠짐없이 집례되어 졌으나
불행하게도 사제의 행위에 머물렀고, 그리스도의 희생을 지나치게 강
조하게 되어 상대적으로 설교가 경시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