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가 더럽게’ 없었던 화가 이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고흐처럼 시대가 뒤늦게 화가의 진가를 발견한 경우도
아니고 로트렉처럼 잘못 된 몸이 삶의 짐이 되었던 경우도 아닙니다. 생전에 화실에 두 번이나 불이 나는 바람에
수 백 점의 작품이 잿더미가 되어 버린 화가입니다.
미국 출신의 조셉 로드퍼 드깡 (Joseph Rodefer deCamp / 1858~1923)이 그 주인공입니다.
유월 햇빛 June Sunlight / 76.2cm x 63.5cm / 1902
호수를 건너 온 시원한 바람이 가볍게 나뭇잎을 흔들고 있고 유월의 햇빛은 엄마와 아이의 머리와 어깨 위에
부드럽게 내려 앉았습니다. 무릎에 책을 펴고 부드럽게 딸을 안은 엄마의 자세에는 여유와 사랑이 함께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이도 책에 골똘한 표정입니다. 모든 것이 사랑스러운 유월의 어느 날 모습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의 다리 묘사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혹시 작품을 그리다가 급한 일이 있으셨던가요?
아니면 저만 이상하게 느끼는 것인가요?
드깡은 오하이오주 신시네티에서 태어났습니다. 웹에서는 그의 어린 시절의 자료를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다만 또 다른 드깡이 있는데 같은 해 뉴욕에서 태어난 서부 풍경 화가가 되는 랄프 드깡 (Ralph decamp)입니다.
이름만 놓고 본다면 제가 상상하는 범위 내에서는 혹시 프랑스에서 이민 온 가정의 후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음울한 날 The Murky Day
사전적인 의미만 놓고 보면 이 작품의 적절한 제목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어둡다거나 안개가 끼었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화면은 아주 선명합니다. 앞 쪽에 구름의 그림자 때문에 바위가 있는 곳보다는 어둡지만 그 것만으로도
이해되지는 않습니다. 사전에는 ‘확실하지 않은’ 이라는 말도 있군요. 언덕 너머로 바다가 살짝 보입니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선에는 바위가 있고 그 위로는 하늘이 열려 있습니다. 바다가 더 많이 보였으면 시원하고
열린 느낌이 많았을 것 같은데 ----, 답답한 뭔가가 있었던 걸까요?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던 드깡은 보스턴에서 프랭크 두베넥을 스승으로 하여 그림을 배웁니다.
열 일곱이 된 던 1878년, (기록들 중에는 1875년이라는 기록도 있는데 1878년으로 표기된 기록이 많아 대세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본격적인 미술가가 되기 위해 독일 뮌헨의 로얄 아카데미에 입학합니다. 이 때 스승이던
두베넥도 동행하는데 나중에 두베넥은 뮌헨 근처 바바리아 지역에 미국인 화가들을 위한 ‘소굴’을 만들게 되죠.
깊은 생각 Reflection / 99.06cm x 63.5cm / 1901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을 그린 화가들의 수만큼이나 표현 방법도 다양합니다. 거울을 옆에 둔 여인의 묘사가
갈색을 중심으로 편안합니다. 여인의 머리 위로 들어 온 빛이 대기 속에서 녹아 여인의 형태를 흐릿하게
만들었습니다. 무엇 하나 여인을 방해하는 것 없는 고요한 분위기입니다. 여인을 보는 저도 잠시 소란스러움을
멈춰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생각에서 먼저 벗어나는 것은 앞에 앉은 여인일까요, 거울 속의 여인일까요?
1883년 미국으로 귀국하기 전까지 네덜란드를 방문, 대가들의 작품을 공부합니다. 특히 얀 베르메르의 작품이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창문 근처에 서 있는 여인의 모습과 밖에서 들어오는 빛의 묘사에 열광했는데,
훗날 드깡의 많은 초상화에 반영되었습니다. 또한 피렌체에서도 잠시 동안 거주합니다.
해먹 The Hammock / 111.76cm x 127cm / 1895
나무 사이 그늘 좋은 곳에 해먹을 걸고 아이 둘을 뉘었습니다. 작은 아이는 잠이 들었는데 좀 큰 녀석은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잠이 들락말락 할 때 표정 아닌가요? 예전 아이를 키울 때 잠들기 전에 투정을 부리던 생각이
납니다. 아니면 밑에 내려가서 놀고 싶은데 엄마가 강제로 낮잠을 재우려고 해서 짜증이 난 건가요?
아주머니, 더 흔들면 곧 잠이 들 것 같은데요. 그런데 엄마 배 위에 올려 놓은 아이의 다리가 어찌나 귀여운지요.
1893년, 귀국 한 다음 해 드깡은 보스턴으로 이사합니다. 보스턴에서 미술학교 교사로서 초상화가로서 일을
시작합니다. 미국의 화가들 중에는 허드슨 강을 따라 펼쳐진 풍경에 포커스를 둔 허드슨 강파 (Hudson River School)가
있는데 보스턴파 (Boston School)도 있습니다. 아름답고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인물들을 사실적으로
그린 화가들을 말하는데 드깡은 보스턴파의 멤버 중에서도 뛰어난 자리를 차지하고 있죠.
음악 수업 The Music Lesson / 53.34cm x 40.64cm / 1904
음, 거기 다시 한 번 쳐봐. 또 ---? 아직 멀었어.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의 모습은 따뜻하고 경쾌한데 드깡의 작품 속 소녀와 선생님은 묵직합니다.
혹시 연주하는 곡이 달라서인가요? 창 문 옆에 선 여인에게 쏟아지는 햇빛을 좋아했던 드깡의 취향이 그대로
들어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빛은 실내 공기 중에 작은 알갱이로 부서져 내리는 느낌입니다.
인상파 기법이 강해지면서 드깡의 이름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실제의 모습보다는 보여지는 모습을
전달하는데 관심을 가졌고 색조주의 양식을 적용하면서 빛과 공기의 흐름에 중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사실
드깡의 초기 작품은 풍경화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남아 있는 그의 작품은 초상화가 대부분입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 시절의 시어도어 드깡 Theodore Lambert deCamp as an Infant / 1904
드깡의 결혼과 아내, 자녀에 대한 자료를 구할 수 는 없었지만 작품에는 그의 아내와 아이의 초상화가 남아
있어서 독신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언젠가도 말씀을 드렸지만 결혼은 무덤이기도 하지만 끝없이
에너지를 주는 충전소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무엇으로 만들 것인가는 철저하게 개인 의지에 좌우되는 것이죠.
너 지금 엄마 젖 먹고 있는 거지? 참 맑은 눈이 저를 쳐다 보고 있습니다.
화가의 아내 에디티 초상화 Portrait of the Artist's Wife Edity /60.96cm x 53.54cm
드깡의 아내 에디티입니다. 미인이군요. 처음에는 병원에 있는 모습이라고 봤는데 분홍색 가운이 맘에 걸립니다.
환자복 치고는 너무 화사해 보이거든요. 앞의 해먹이라는 작품 속 여인과 같은 얼굴입니다. 그렇다면 작품 속
엄마 배에 배를 걸치고 자는 꼬마가 아마 젖을 먹고 있는 녀석이겠군요.
1904년, 드깡은 일생 최대의 비극적인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보스턴에 있는 그의 화실에 불이 났습니다.
이 화재로 초기에 제작되었던 풍경화 수 백 점이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시기적으로 어느 것이 앞 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같은 해 마인에 있는 화실에도 불이 났습니다. 이 사건은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습니다. 누구라도 그랬겠지요.
파란 컵 The Blue Cup / 1909
빛이 들어 오는 방향을 향해 컵을 들었습니다. 무엇이 보이고 무엇을 보는 걸까요? 컵에 그려진 무늬가 그녀를
흡족하게 했는지 눈이 커질 대로 커졌습니다. 그게 아니고 흠을 찾는 중이라고요? 정말 그렇다고 하더라도
파란 도자기가 주는 산뜻함은 기억하셔야 합니다. 수 백도가 넘는 불 속에서 안으로 스며드는 불을 온 몸에 담고
있다가 이 세상에 맑고 차가운 모습으로 온 녀석이거든요.
화재 사고 이후 드깡은 초상화에 전념합니다. 친구의 부탁으로 당시 시어도어 대통령의 공식 초상화를 그렸다고
하니까 드깡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겠지요. 또 드깡은 앉아 있는 모델보다는 분위기 특히 옆에서 들어 오는
드라마틱한 빛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앞 서 말한 베르메르의 영향이었습니다.
여자 재봉사 The Seamstress / 92.70cm x 71.12cm / 1916
바느질 하는 여인의 모습은 미국도 우리와 비슷한가 봅니다. 우리나라는 호롱불인 반면, 그림 속 무대는 햇빛이
잘 드는 창가라는 점만 가리고 보면 바느질하는 정중동의 모습은 같습니다. 여인의 머리를 중심으로 한 창문틀이
없었으면 화면이 더 좋았을 것을 하다가 십자가 형태를 한 틀 때문에 작품이 더 고요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곧잘 바늘을 들고 간단한 것은 직접 꿰맸던 것 같은데, 이제는 잊어 버린
기능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에휴 --.
푸른 중국풍 코트 The Blue Mandarin Coat / 109.21cm x 94.62cm / 1922
푸른색 코트를 두고 중국풍이다, 일본풍이다 하는 자료가 있는데 복식에 문외한 저는 그냥 제목대로 부르고
싶습니다. 물론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수 많은 일본 제품을 당시 미국인들이
중국 것으로 알고 있었지요. 작품 속 여인은 아주 당당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얼굴에 너무 힘을 주셨군요.
레디라는 이름을 가진 작품 속 여인은 드깡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모델입니다.
파랑새 The Blue Bird / 81.27cm x 81.27cm / c.1919
파랑새를 새장 안에서 꺼내 손에 올려 놓았습니다. 파랑새가 희망을 상징한다고 한다면 여인은 손에 희망을 올려
놓은 셈이군요. 역시 희망은 갇혀 있기보다는 열린 곳에 있을 때 어울립니다. 그러다가 희망이 날아 갈 수
있다구요? 늘 돌보면 내 주위에 머물러 있지 않을까요? 생각날 때만 돌아보면 희망도 어쩌다 나를 돌아보겠지요.
잠시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19세기 말 미국 화단에는 기존의 회화와 전시 기법에 반기를 든 10명의
화가들이 등장했습니다. 소위 Ten American Painters (그냥 Ten으로도 부릅니다)의 창립이었습니다. 드깡은
그 멤버 중의 한 명이었고 Ten의 멤버가 되면서 그의 작풍은 인상파로 더욱 기울어집니다.
머리 말리는 여인 Woman Drying Her Hair / 91.76cm x 91.76cm / 1899
드깡은 생애 전체를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기술을 표현하고자 하는 끝없이 노력하면서 새로운 방법을
배우고 습득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모두를 반영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죠.
드깡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찾기 어려워 아쉬웠지만 미묘한 빛이 출렁거리는 화면 속, 빛나는 여인을 볼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