元年 白馬 五月五日 帝與神后幷騎白神馬 入壤井 行吉于奈解神前 卽祚於明宮 追贈父于老太子爲元上帝 尊母命元宮主爲太后 繼夫碧解爲國公 碧弘大母爲國大夫人 白海公主爲一品權妻 封弟妹十七人有差
원년(A.D.370) 백마(白馬=庚午) 5월5일 왕과 신후(神后)가 백신마(白神馬)를 함께 타고 양정(壤井)에 들어왔다. 내해(奈解)신전(神前)에서 결혼하고, 명궁(明宮)에서 즉위하였다. 아버지 우로(于老)태자를 원상제(元上帝)로 추증(追贈)하고, 어머니 명원(命元)궁주를 높이어 태후로 하였다. 어머니의 남편 벽해(碧解)를 국공(國公)으로, 벽홍(碧弘)대모를 국대부인(國大夫人)으로 삼았다. 백해(白海)공주를 1품권처로, 제매(弟妹, 아우와 누이동생) 17인을 봉(封)함에 차등이 있었다.
六月 碧弘大母薨 年八十五 大母病思 見良質 謂命元太后 曰 “吾以微品 賴太后德 位高一國 死何恨乎 但良質得罪在外 更不得見 一歎耳” 太后乃使 召良質 還相見 大母喜甚 謂良質 曰 “汝與主上 皆爲吾孫 而主上孝于我 汝何不孝于我乎 汝之孝道 惟可忠於主上而已” 良質泣 曰 “我以大母之孫 豈可不忠乎 玉謙陷我 而主上神后 未達此心 奈何 大母爲我奏 此免痛則大恩 難報矣” 碧弘曰 “汝乃吾之愛孫也 死且可爲 况一言哉” 及帝問疾 而欲許臨死之願 碧弘曰 “妾以碧解之母 故偏被恩寵 復何願乎 但劣孫 良質得罪于上 故欲面諭而死 太后憐妾 而召還 聞其心 未嘗背吾君 但爲仇人 推陷云 故敢陳其情而已” 太后亦謂帝 曰 “吾之愛汝 如母之愛良質 汝其爲母放之” 帝至孝 故不能違太后言 而唯唯 太后乃使良質 肉袒席藁于庭 帝曰 “汝罪死且有餘 而大母在焉 故赦之 可守大母墓門 不可復仕 于朝也” 良質乃頓首謝退 改名碧質 取其祖姓 而欲報恩德也
6월 벽홍(碧弘)대모가 춘추 85세로 죽었다. 대모가 병으로 사무쳐 양질(良質)을 보고 싶어 하였다. 명원(命元)태후에게 일러 말하기를 “나는 골품이 미미하지만 태후의 덕에 의지하여 일국(一國, 온 나라, 한 나라)에서 지위가 높아졌으니 죽는다 한들 어찌 여한이 있겠습니까? 다만 양질이 죄를 짓고 재외(在外, 외국, 여기서는 귀양을 감)에 있어 다시 볼 수 없으니 약간의 한숨이 나올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태후가 이에 양질을 부르도록 시키어, 돌아와 서로 만나보게 되었는데 대모가 심히 기뻐하였다. 양질에게 일러 말하기를 “너와 주상(主上, 신하가 임금을 높여 부르는 말)은 모두 나의 손자다(벽홍이 명원의 시어머니가 됨). 주상은 나를 효도 하는데 너는 어찌 나에게 불효를 하느냐! 너의 효도는 오로지 주상에게 충성하는 길 뿐이다.”라고 하였다. 양질이 울면서 말하기를 “저는 대모의 손자인데 충성하지 않음이 어찌 가당하겠습니까? 옥겸(玉謙)이 나를 함정에 빠뜨려, 주상과 신후에게 나의 마음이 전달되지 않으니 어찌하오리까? 대모가 나를 위하여 여쭈어 이와 같이 사무침을 면한 즉 대은(大恩, 넓고 큰 은혜)을 받았으나 (주상께) 보답함이 어렵습니다.”라고 하였다. 벽홍이 말하기를 “너는 내가 사랑하는 손자이니, 죽더라도 또 가히 하여야 할 일이나 하물며 말 한마디야 못하겠느냐?”라고 하였다. (태후가) 왕과 함께 병세를 묻고 죽기 전의 소망을 허락하고자 하자, 벽홍이 말하기를 “첩은 벽해(碧解)의 어미로 편중되게 은총(恩寵)을 입었는데 어찌 다시 원하는 바가 있겠습니까? 다만 못난 손자 양질이 주상에게 죄를 지어, 그런 연유로 대면하여 타이르고 죽고자 하였습니다. 태후께서 첩을 불쌍히 여기시어 (양질을) 소환(召還, 일이 끝나기 전에 부름)하여 주시니, 그 속마음을 들어본 즉 일찍이 오군(吾君, 흘해)을 배신함이 없으나 구인(仇人, 원수진 사람)이 된 것은 함정으로 밀려난 것이라고 하니, 그런 연유로 감히 그 정(情, 사정, 본성, 사실)을 말씀드릴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태후 또한 왕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과 (대)모가 양질을 사랑하는 것이 같으니, 너는 이에 (대)모를 위하여 풀어 주거라.”라고 하였다. 왕은 효성이 지극하여 태후의 말을 어길 수 없었던 연유로 네, 네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태후가 이에 양질로 하여금 조정에서 육단(肉袒, 웃통을 벗어 상체를 드러내는 일, 복종․항복․사죄를 나타냄)석고(席藁, 거적을 깔고 엎드려 벌주기를 기다린다는 뜻, 죄과에 대한 처분을 기다림)하게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너의 죄는 죽이고도 남음이 있다. 대모가 있어 너의 죄를 사면하니, 대모의 묘문(墓門, 무덤 앞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나 지킴이 옳으며, 조정에서 다시 벼슬함은 불가하다.”라고 하였다. 양질이 이에 머리를 조아리며 물러났다. 이름을 바꾸어 벽질(碧質)이라 하고 그 조상의 성씨(姓)를 취하여 이로써 은덕에 보답하고자 하였다.
七月 板虹伊伐飡 心己稟主 心己者宣秋女也 美而好淫 與其母宣秋爭奪板虹 宣秋怒絶之 至是得帝寵 入正堂 宣秋力言 心己多詐 不可執政 帝問於山公 山公亦與心己密痛 故不從宣秋言 而可之
7월 판홍(板虹)을 이벌찬, 심기(心己)를 품주로 삼았다. 심기는 선추(宣秋)의 딸이고, 아름답고 음란함을 좋아하였다. 그녀의 어머니 선추와 판홍을 두고 쟁탈(爭奪, 어떤 사물이나 권리를 빼앗는 싸움)하였다. 선추가 노하여 모녀관계를 끊었다. 이 때에 이르러 왕의 총애를 얻어 정당(正堂)에 들어가게 되었다. 선추가 애써 말하기를 심기가 속임수가 많다며 집정(執政, 나라의 정무를 맡아봄)함은 불가하다 하였다. 왕이 산공(山公)에게 물으니 산공 또한 심기와 은밀히 통한바가 있어 그런 연유로 선추의 말을 따르지 않고 가당하다 하였다.
九月 命碧解國公與太后 行大場 于達句火 發衛卒七百人 安車駟馬十五雙
9월 명으로 벽해국공(碧解國公)과 태후가 달구화(達句火)에서 대장(大場)을 행하였다. 지키는 병사 700명과 안거(安車, 노약자가 앉아 탈수 있게 만든 덮게 있는 수레)사마(駟馬, 네 마리 말 이끄는 수레) 15쌍(雙)을 보냈다.
十月 門月生帝女唐月 帝幸玄相宅 洗之 賜紫衣神米 玄相母玄雲白神馬
10월 문월(門月)이 왕의 딸 당월(唐月)을 낳았다. 왕이 현상(玄相)댁에 가서 아기를 씻겼다. 자의(紫衣)와 신미(神米)를 내리고, 현상의 어머니 현운(玄雲)에게는 백신마(白神馬)를 내렸다.
築國中堤堰十五所 命城師白康主之 碧解自大場還奏 堤堰之利故也
나라 안의 제언(堤堰, 물을 막기 위해 돌이나 모래 콘크리트로 쌓은 둑, 댐) 15개소를 쌓았다. 명으로 성사(城師) 백강(白康)을 주(主, 우두머리)로 하였다. 벽해(碧解)가 대장(大場)에서 돌아와 제언의 이익을 여쭈었기 때문이다.
十一月 帝與后入桃山 齋七日 將以十二月 上丑 行王牛祭故也 中外牛徒千八百人 會于桃山院 命宣秋玄宝禮生等 分掌饋之
11월 왕과 후가 도산(桃山)에 들어와 7일 동안 재계하였다. 장차 12월 상축(上丑)일에 왕우제(王牛祭)를 행하려는 까닭이다. 나라 안팎의 우도(牛徒) 1,800인이 도산원(桃山院)에서 모였다. 명으로 선추(宣秋), 현보(玄宝), 예생(禮生)등에게 분장(分掌, 사무의 한 부분을 나누어 맡아 처리함)하여 먹이게 하였다.
十二月 行王牛祭 稟主心己 以其母宣秋不用 其命請罷之 帝命宣秋謝於心己 宣秋曰 “主上孝于太后 而使吾女不順於妾可乎” 帝曰 “心己雖汝女 以朕命號令於汝 汝安得不從乎” 宣秋泣 曰 “妾以公主色衰 反屈於所出 雖死不可從也” 帝笑而不問 心己不悅 曰 “吾固知汝 猶愛老皮耳 何不以他爲稟主 而欲濡我乎” 帝亦笑 而不問 宣秋心己 終夜相爭 仙徒多失次序 人皆誹 帝無威
12월 왕우제(王牛祭)를 행하였다. 품주 심기(心己)가 그녀의 어머니 선추(宣秋)를 쓰지 않으려고 그 명을 파해주기를 청하였다. 왕이 명으로 심기에게 사과하도록 하였다. 선추가 말하기를 “주상은 태후에게 효도하면서 나의 딸로 하여금 첩에게 불순(不順, 고분고분 하지 아니함)하게 함은 올바른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심기가 비록 너의 딸이나 짐이 명으로 너에게 호령(號令, 지휘하여 명령함, 큰 소리로 꾸짖음)하는데 너는 어찌 따르지 않는 것이냐?”라고 하였다. 선추가 울면서 말하기를 “첩은 공주(公主)로써 색이 쇠하니, 도리어 낳은 자식에게도 굽히라고 하니 비록 죽는다하더라도 따를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웃으며 불문에 붙였다. 심기가 기뻐하지 아니하여 말하기를 “내가 진실로 너를 아는데, 다만 늙은이의 거죽을 좋아할 뿐이다. 어찌 다른 사람을 품주로 삼지 않고 나에게 총애를 내린 것이냐?”라고 하였다. 왕이 또 웃으며 불문에 붙었다. 선추와 심기가 종야(終夜, 하룻밤 사이를 걸침, 또는 하룻밤 사이)를 싸워, 선도(仙徒)가 차서(次序, 차례의 순서)를 빠뜨린 부분이 많았다. 사람들은 모두 왕이 위엄이 없음을 헐뜯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