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 -
☆ 2013년 1월2일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선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청주] 주제를 아는 사람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독서 : 1요한 2, 22 - 28
† 복음 : 요한 1, 19 - 28
바실리오 성인은 330년 무렵 소아시아의 카파도키아(오늘날의
터키 카파도캬) 체사레아의 성가정에서 태어났다. 성인의 부모와
조부모, 누이 마크리나, 동생 니사의 그레고리오 주교와
세바스테아의 베드로 주교가 모두 성인이다. 은수 생활을 하기도
한 바실리오 성인은 학문과 덕행에서 특출하였다. 370년 무렵
체사레아의 주교가 된 그는 특히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싸웠다.
바실리오 주교는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특히 그의 수도 규칙은
오늘날까지도 동방 교회의 많은 수도자가 따르고 있다. 성인은
379년 무렵 선종하였다.
그레고리오 성인 역시 330년 무렵 바실리오 성인과 같은 지역의
나지안조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는 동료 바실리오를 따라 은수
생활을 하다가 381년 무렵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가 되었다.
그레고리오 주교도 바실리오 주교처럼 학문과 웅변이 뛰어났으며,
이단을 물리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성인은 390년 무렵
선종하였다.
★ 소아시아 공동체에 이단자들이 등장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심을 부인하였다. 요한은 이단자들 때문에 신앙의 혼란에
빠진 신자들에게 처음부터 간직해 온 진리의 말씀에 항구하기를
촉구한다(제1독서).
★ 사람들은 요한 세례자야말로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요한은, 단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일 뿐이요, 메시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고백한다(복음).
◈ 오늘의 묵상
요한 세례자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구세주로 추앙받는 것을
거부하였습니다. 자신은 주님의 길을 곧게 내도록 백성에게
촉구하는 ‘광야의 소리’라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구세주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하였습니다. 누구나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다 보면 스스로에 대해서 착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요한 세례자는 진지한 자기 성찰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스갯소리 중에 ‘백마병’이라는 게 있습니다. 사람들이
백마를 탄 왕자를 보면서 너무 좋아 환호하고, 사랑의 눈길도
보냅니다. 그런데 왕자를 모신 하얀 말 녀석이 착각을 합니다.
이 모든 환호와 사랑의 눈길을 자기에게 던지는 것으로 말이지요.
이런 백마와 같은 착각에 빠지는 사람이 바로 ‘백마병 환자’
입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백마병’에 걸리기가 쉽습니다.
주위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 경험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증언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예수님의 위치에 올라가
버릴 때가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요한
세례자의 자기 성찰은 우리에게 일러 주는 바가 큽니다. 우리
또한 자신을 잘 성찰하여 언제나 겸손함을 잃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매일 미사 -
◈ [청주] 주제를 아는 사람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2013년 다해 1월2일 성 대 바실리오와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
+ 요한 1,19-28
주제를 아는 사람
요즘 대통령당선인에 의한 인수위원들이 임명되고 그에 따른
이런 저런 소리가 나옵니다. 깜짝 인사니 그 사람은 아니라는
등등. 흠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덕이 있는 지도자가
그리운 세상입니다. 인기는 없지만 묵묵히 자기 위치를 지키며
해야 할 일을 하는 성실한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인기
높은 대통령이 아니라도 고집 부리고 ‘말귀 안 통해 어렵다’
고 투덜대는 지도자는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말귀가 안 통하면
통하는 방법을 찾으면 되는 것이지 그 탓을 남에게 돌리고
상대를 무시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의사소통은 더욱 어렵게 될
것입니다. 가장이 자식의 부족한 탓만 나무라고 그들의 부족함을
채워줄 생각을 소홀히 한다면 그는 이미 가장으로서의 덕이
없는 것입니다. 최고 지도자부터 그 아래 지도자들까지 자기
위치에서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하고 분별력 있는 처신을 할
사람들이 그립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당시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대사제들과 레위 사람들이
그의 신분을 알고자 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였던 같습니다. 그만큼
대중에게 끼친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사람들이 “당신은 누구요?”하고 물었을 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하고 분명하게 말하였습니다. 요한은 이미 사람들이 자기를
그리스도로 잘못인식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에 초점을 둡니다. 요한은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인기가 높아지면 자기를 뽐내고 싶은 마음이 더해질 텐데 요한은
오히려 자기를 낮추고 겸손한 모습으로 자기 뒤에 오실 메시아를
드러내고자 하였습니다. 세상이 그에게 온갖 존경과 관심을 표명할
때, 그는 그런 세상을 향해 과감하게“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1,27)고 고백하였습니다.
자기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야말로 자기 주제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분별력 있는 지도자
입니다. ‘나’로 가득한 세상을 하느님의 세상으로 바꾸어 가는
사람, 세상 안에 하느님의 뜻이 가득 차게 하는 사람의 몫을
해냈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 몫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 맛들인 사람은 자신의 인기를 과장하고 자기가 최고라고
합니다. 자기가 아니면 되는 일이 없는 것처럼 떠벌립니다. 잠시
잠깐 백성의 심부름꾼이 된 사람들이 오히려 모든 것을 차지한
양 권력을 남용하여 백성을 힘들게 합니다. 이런 일은 더 이상
없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분수를 압니다. 마더 데레사는 자신을“하느님의
손에 쥐인 작은 몽당연필” 이라고 했습니다. 진실한 사람은 언제나
진실한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자기 보다는 남을 배려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랑하려거든 우리 자신에 대해 자랑하지 말고 주님을
자랑하고 하느님 앞에 자기 분수를 알고, 주제를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 바실리오는 말합니다.“여러분에게 자랑할 것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자랑과 희망을 하느님께 두십시오.”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기타] 지금 회개하십시오
2013년 다해 1월2일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
요한 1, 19 - 28
지금 기도하십시오.(요한 1, 19-28)
언제나 세상과 함께 하시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관심과
사랑으로 대하시고, 인류가 가야할 길을 예언자들을 통하여 가르쳐
주시는 임마누엘 하느님께서는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외칠 때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묻습니다. 요한은 서슴지 않고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합니다.
재차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라는 질문에 요한은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하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에게 가서 물로 회개의 세례를 받았고, 요한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고
말합니다,
요한은 세례를 주었고, 사람들에게 준비를 시켜주었습니다. 합당하게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회개하고 주님을 맞이하도록 말입니다.
그러나 회개를 하지 않은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사람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주님을 심판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시는 일들에 대하여 용의주도하게 준비를
하시는 분이십니다. 당신께서 하시는 일들에 대하여 미리미리
준비시키고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도록 하십니다.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큰
계획을 갖고 계시고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미리 준비하기를
권하십니다.
이는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서 여러 차례 반복하여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파티마에서, 파우스티나 성녀나 비오성인을 통해서,
또 [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 라는
책을 곱비 사제를 도구삼아 전 세계 사제들에게 말씀해주셨고,
특히 제2의 성령강림을 준비해야한다고 30여년 가까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가톨릭출판사] 라는 책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지금 이 시대가 어느 시대인지를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는 메주고리예에 30년이 넘도록 매일같이
성모님을 보내시어 사람들을 회개하고 기도하고 단식하여
다가올 일들에 대하여 준비를 시키십니다.
이토록 오랜 기간 매일같이 성모님께서
발현하시는 일은 극히 이례적인 일들입니다.
물론 이런 메시지들에 대하여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세상에는 이미 많은 유혹자들이 자신이 그리스도라 말하며
나타났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준비를 시키는 이유는 묵시록에서
말하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적그리스도나 혹은 강력한 유혹자가
나타났을 때 이를 지혜롭게 잘 분별하여 영혼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니네베 사람들에게 요나를 보내시어 회개하고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하셨던 것처럼, 깨어 기도하며 기름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처녀처럼
하느님께서는 지금 인류에게도 회개하여 기름을 준비하도록 요청하고
계십니다. 회개는 지금 현재 해야 하는 것이지 미래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를 준비하도록 지금 회개에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이
기도하지 않고 절제하지 않고 희생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면 지금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자신의 기도가 기쁨이 될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성모님께서 주시는 그 말씀의 뜻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 희망 신부님의 묵상 글 -
◈ [인천] 왜 그러했을까요?
얼마 전에 전철을 타고 어디를 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귀를 자극시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심한
욕설이었지요. 그 욕설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의 입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연구 결과에서 ‘청소년의 73.4퍼센트가 매일 욕설을 사용’
하고 ‘욕설을 쓰는 청소년 중 58.2퍼센트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처음 시작’했다는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입을
모아 천박하고 폭력적인 언어 환경으로부터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언어 순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성토합니다.
그런데 저 역시 청소년 때에는 착한 아이가 아니었는지 많은 욕을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요즘 아이들처럼 거침없이 나오는 욕은
아니었지만, 심심치 않게 욕을 사용하면서 대화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그 당시에 제가 욕을 했던 이유는 남들에게 강하게
보이고 싶어서였습니다. 욕을 하지 않으면 숙맥처럼 보이고,
친구들에게 약해보여서 무시당할 것 같다는 생각에 간간이 욕을
섞으면서 말을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 욕이 습관처럼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얼마 못가서
깨닫게 되었지요. 저도 모르게 무심결에 나오는 욕설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남들에게 강하게 보이려고 사용했던 욕이었는데,
오히려 내 자신이 이 욕 자체에 매어있음을 깨달으면서 더 이상
욕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겉으로 강하게 보이려고 사용했던 욕. 어쩌면 지금의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겉으로만 드러내려는 욕심과 이기심의 또 다른 형태가
아닐까 싶습니다. 겉으로만 그럴싸하게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세상에
비춰지는 모습이 아니라 하느님께 비춰지는 내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세례자 요한이 등장합니다. 그는 광야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었지요. 남들과 다른 삶을 살면서
회개하고 하느님을 믿으라고 소리치고 있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에
사람들은 기대했을 것입니다. 즉, ‘그가 바로 그리스도가 아닐까?’
라는 기대였습니다. 이 사실을 세례자 요한도 잘 알고 있었기에,
“당신은 누구요?”라는 질문에 곧바로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분명 “그리스도이다.”라는 답을 원했겠지요. 실제로
그렇게 답했다면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지지를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습니다. 그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라고 또한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면서 겸손한 모습을 취합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는 순간을 걷어차고 있는 세례자
요한입니다. 왜 그러했을까요?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이 더욱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세상에 드러나는 나의 모습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 비춰질 내 모습을 걱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세례자
요한처럼 말입니다.
사랑의 첫 번째 의무는 상대방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폴 틸리히).
1989년 신학교 입학 피정 때 찍은 사진. 이중에서 10명이
신부가 되었네요.
목욕탕에서...
새해를 맞이해서 목욕탕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목욕탕을 가면 목욕만 하지 않지요. 사우나도 하면서 목욕탕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누리고 나옵니다. 저는 특히 이
사우나를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고온 사우나’를 무척
좋아하지요. 뜨거운 곳에서 땀을 흠뻑 쏟은 다음에 냉탕에
들어가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어제도 ‘고온 사우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사우나 안에 있는 모래시계를 뒤집어서 모래가
떨어지게 했습니다. 보통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지는 것을
두 번 반복한 뒤에 나오거든요. 그런데 어제는 평상시와 다르게
‘고온 사우나’ 안이 너무나 뜨거운 것입니다. 그래서 모래가
딱 한 번만 다 흘러내리면 나가자는 생각으로 모래시계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왜 이렇게 더디게 흘러내리는지요?
한 번만 흘러내리는 시간이 5분밖에 되지 않는데, 마치 몇 십
분이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과 시련도 이렇지 않을까요? 그 순간은 정말로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처럼 생각되지요. 그러나 내가 길다고
생각하는 그 시간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주 짧은 시간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짧은 시간도 참지 못하는 나의 부족한
인내심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일까요? 많은 신학자들은 ‘고통과 시련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견디어 내야만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요. 주님과
함께 견디어 낼 때, ‘별 것 아니었구나.’ 하면서 웃을 수
있는 기쁨을 간직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인천 교구 성소국장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정제천 신부와 함께하는 수요묵상
그가 회개의 설교를 하면서 세례를 베풀자 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간다. 수도 예루살렘에까지 소문이 퍼져서 종교지도자들의
관심과 우려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은 사람을
보내어 상황을 파악하게 했고 여차하면 그를 고발할 태세다.
“당신이 그리스도요?” “엘리야요?” “그러면 그 예언자
(‘모세와 같은’: 신명 18,18 참조)요?” 모두 아니라고 하자,
그렇다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하고 따진다. 세례자
요한은 이런 고발을 감당할 수 있는 재목이었다. 그리스도를
증언하려는 우리도 광야의 소리를 낼 수 있을 만큼 주변사정으로부터
독립되고 고발을 감당할 만큼 내공을 쌓아야겠다.
문명 밖의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알려준다.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올해 내 삶 속에 다가오시는 그분을
알아볼 수 있기를 빈다. 길들여진 법과 전통이 아닌 자연과 양심의
길로 알려주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한 해가 되기를 빈다.
- 정제천 신부(예수회) -
◈ [서울] 아뉴스 데이
예전과 달리 현대 교회에서는 청소년 사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하겠다. 오늘의 청소년들은 학교교육과 입시경쟁, 사회생활과 취업난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교회 안에서
신앙을 키우고 친교(Koinonia)를 체험하는 기회가 더욱더 적다.
그러나 청소년들과 직접 만나보면 이들 안에 하느님을 알고 체험하고자
하는 열망이 크고, 또 이를 그 바쁜 생활 가운데 실현하려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톨릭 대학교 성심교정 교목실의 증언에 따르면 매일 천여 명 이상
되는 학생들이 고된 수업 사이의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학교 성당에
와서 기도하고, 정원에서 친구들과 담소를 나눈다고 한다. 내가
동반하는 가톨릭 노동청년회(TOC) 한 팀에서 팀 이름을 정할 때 한
여학생이 ‘아뉴스 데이(Agnus Dei)’로 하자고 하여 받아들여졌다.
그 뜻은 ‘하느님의 어린양’이다. 나는 25년간 이 모임을 동반하지만
이런 종교적 표현을 팀 이름으로 정하는 경우는 처음이어서 몹시
놀랐다. 그런데 다른 팀 이름을 보니 ‘예사모’(예수님을 사랑하는
모임)·‘마닮모’(성모 마리아를 닮아가는 모임)·‘포도나무’·
‘사람 낚는 어부’ 등이었다.
현재 동반하고 있는 ‘포도나무’팀은 간호 대학생들의 모임이다.
한 번은 이들에게 ‘어째서 백의의 천사들은 이렇게 아름다운가?’를
넌지시 물었더니, 그들은 정색을 하며 “아마도 우리가 고통 받는
환자들에 대한 동정심, 연민의 정이 없으면 이 직업을 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답한다. 그렇다! 본래 인간은 다른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특별히 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살게 되어 있다. 이 ‘자기 증여’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이 하느님을 닮아가는 존재가 되기 위한 관건인 것이다. 여기에
반대되는 것이 자기만의 이익을 찾고자 하는 이기심인 죄인 것이다.
예수님은 이런 인간의 죄를 치유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 서울대교구 구요비 신부 -
◈ [청주] 너를 비워서 그분이 너를 차지하게 하라
세례자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사람들의 오해를 이용하여 이득을 취할 수 있었지만
요한은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요한 1,23).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 1,27)라고 말했던 그는 자신이 한 말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리스도의 자리를 넘보거나 그 자리를
차지하지 않았다는 데서 세례자 요한의 인품이 드러납니다.
덜 중요한 역할, 그늘에 가린 자리를 사랑하는 태도를 우리는
요한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스스로 잘나고 똑똑한 척하는 사람이
많은 본당에는 세례자 요한 같은 사람이 많이 있어야 본당 꼴이
제대로 잡힐 것입니다. 소리는 피리가 아니라 피리를 부는 이가
냅니다. 글씨는 붓이 아니라 붓을 쥔 이가 씁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그와 같다고 했습니다.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는 법입니다. 꽃이 영원히 꽃으로 남기를 고집하면
열매는 영영 열리지 않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가르친 진리는
‘너를 비워서 그분이 너를 차지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 청주교구 이중섭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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