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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창문을 열였다. 아직도 찬 기운이 감돈다.
10년이 지났음 에도 아버님 어머님의 유골을 뿌렸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가볍게 미소로 답을 하고 보니, 이른 시각 때문인가 해는 아직 드리우질 않았지만 동녘이 훤하다.
정월이라 바쁘게 지나다 보니 이제야 짬을 내서 글을 올립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업을 짓고 살아갑니다.
선업과 악업 그리고 무기업을 짓고 살아가는데, 예전의 오대산 노스님의 시대와는 달리 간단한 인연 맺음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다단하게 그것도 지속적인 인연을 맺기에 딱 한가지의 업연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점점 드문 세상이 되어갑니다.
하나 하나가 모이고 쌓이며, 그것이 인식을 넘어서면 무의식이 되어 생각없이 습관이 되어 행해집니다.
우리가 의식으로 하는 것보다 무의식으로 행해지는 것이 대략 90%정도됩니다.
이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폭되어 나중에는 고치기 어려운 습관으로 굳어집니다.
그러므로 이런 업연을 풀어가는 것도 또한 한번의 기도로 일생의 소원을 다 이루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인연의 줄기를 풀어나가기에, 합리적인 지식과 보편적인 생각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울때가 너무 많음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이 병이 생겨야 병원을 찾듯이, 불자들 또한 업을 풀지 못할 정도의 인연이 되어서야 절의 문을 두드리거나 상담을 하기 위해 찾는 경우가 허다 하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움에 왜 건강하고 좋을때, 힘이 있고 능력이 될때는 뭐하고 있다가 다 죽게 되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에 찾아와서 뒤 늦은 참회와 마음을 내겠다고 하며, 정진을 하겠다는 것인지에 마음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세상은 각자 먹고 살기 바빠서, 자기의 업을 닦고 기도를 하려 해도 쉽게 하기가 예전처럼 녹녹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핵가족의 시대다 보니 형제나 가족이라도 자기 삶이 바쁘다 보니 가족의 기도조차도 쉽게 해 주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미 병이 깊어져서 병원을 찾아온 것처럼, 쉽게 치료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비용과 시간 또한 만만치 않은 것처럼 생각해야 함인데도 불자들은 기도를 너무 단순하고 쉽게만 바라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저 산의 낙락장송이 하루 아침에 크게 자라지 않듯이 기도도 성심의 마음과 정성, 시간 그리고 노력이 결합 될 때, 그 결과가 드러나서 소원성취라는 결실을 이루게 됩니다.
어제 11시쯤 한 불자님에게 전화가 걸려 왔는데, 지금 병원인데, 전문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울고, 또 머리도 아프고 몸도 지치고 답답해 하던 차에, 간호사의 말이 해당 박사님과 만나려면 무려 6개월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다가, 다른 교수님의 주선으로 스님을 찾아 뵙고 싶다는 말이었습니다.
주소를 알려주자 단걸음에 찾아온 그 분은 00대학 교수님 이었는데, 남편과 함께 6살 딸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한 눈에 봐도 정상 아이가 아닌 지적장애아 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하소연에 가까운 말을 합니다..
딸아이를 낳고 부터 6년을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고, 그동안 굿도 여러번하고, 낳게 해 준다면 다 찾아 다녔는데, 병원, 민간요법, 등 아이를 위한 일이라면 체면이고 뭐고 다 버리고 다녀보았지만 전혀 호전의 기미가 없었다 면서 계속 흐느낍니다.
어렸을 때 어머님의 절에 다니던 모습, 그리고 힘들게 형제 자매와 버티며 여기까지 살아왔었는데, 또 아이의 불완전한 모습으로 인해서 삶의 행복은 기대할 수 조차도 없고, 도저히 나아질 기미나 방법이 없으니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설상 가상으로 남편이 작년에 직장을 나왔고, 아이는 장애아라 돈도 돈이지만 마음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틀전 우연히 오대산 노스님의 책을 읽고는 업의 인연에 대해서 조금 이해를 했고, 스님의 글 중에 모든 삶은 다 쓸때가 있어서 태어난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을 내어 찾게 되었다고 하면서, 어머님이 돌아가실때 그렇게 절에 마음을 내서 열심히 다니셨어도, 돌아가실 때 말 한마디 못하시고 돌아가시고, 절에서 사십구제를 지내고 닦았지만 너무 돈이 많이들고 힘들었다고, 왜 이런 삶을 계속해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노라고, 고생을 안하며 살려고 열심히 노력해서 이자리에 오르고, 학생들에게도 열성을 다해 강의하고 정직하게 살고 있건만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대충 살아가면서 업을 짓고 살아가도 그들은 잘 살고, 저에게만 이런 고난의 끝이 보이지 않는지가 의문이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절에는 지금 다니고 계십니까?
"아니요, 이제는 안 다닙니다."
왜 안다나시나요?
엄마가 그렇게 열심히 믿고 다니셨어도 일생동안 고생을 못 면했고, 저 또한 그렇게 악하게 안 살아왔는데 장애아를 낳아 고생이 극심합니다.
절에 나간다고 뭐가 변할 리가 없을 것 같아 이제는 안 믿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누구하나 뭐하라고는 해 놓고는 정말 낳아 질까요? 하면 무조건 해보라는 말만 하더라는 것이다. 조급하고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기기를 기대하며, 그렇게 좋다는 것을 수년간 아이때문에 다 해보았지만 전혀 눈끔만큼의 변화도 없었다는 것이다. 도인. 무당. 병원. 약. 한방. 민간요법 다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아마도 부처님은 안계신가보다. 신이란 정말 없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보살님은 회는 안드십니까?
저는 안먹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고기 반찬이 아니면 밥을 아예 안먹습니다. "그래요."
한번 잘 들어 보세요.
대저 온 우주는 생명을 살리려 함이지 죽이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부처님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사람이 명이 짧아지는 것은 대게가 살생의 원인이 가장 크며, 불안, 공포, 근심과 스트레스와 잘못된 식습관과 악연이 주된 업입니다.
그것은 그 악연이 때와 인연을 따라 드러나게 되는데, 그 만남의 조건에 따라 다르게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개미를 백마리 죽인다거나, 강아지를 때린다고 해서 그 들이 금방 나에게 값지는 못합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힘이 작고 나의 힘은 커서 아직 나에게 영향주기에는 힘이 부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보다 힘이 센 호랑이나 사자를 건드리면 나를 물러 달려들을것이요,
나보다 강한 사람에게 욕을 하면 욕 대신에 주먹이 날아 오는 것 처럼 처음 행함의 인연처럼 돌려 받기도 하지만 다르게 작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이 시간이 흐를 수록 그 업은 증폭이 되어 다가서기에 우리가 그것을 알아차리거나 감지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 저런 인연이 세월이 지나서 만나고, 또 생을 달리해서 다음생에서 만나게 될 경우 나에게 미칠 영향은 장기간 내지는 평생의 원한이 되어 만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부딪치고 만나는 모든 인연들이 다 내가 만든 업연들의 만남입니다.
좋을 경우에는 가족이 되어서도 사랑받고 행복하며 즐거운 인생이겠으나, 악연일 경우에는 서로 죽이려하고 상처를 주며, 앙갚음을 하기에 마음고생 몸고생은 이루다 말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세상은 더욱 복잡해져서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인연을 만들면서 살기에 앞으로의 업연은 더욱 강한 것이 드러날 것임에 분명합니다.
사람이 못 먹어서 병원에 사람들이 넘치는 것이 아니요, 지식이 모자라서 남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수없는 악연으로 많은 목숨을 내가 죽이고 남을 시켜 죽이고, 고통받는 중생의 모습을 동정없이 맛있다고 먹고, 잡으며 짓는 살생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며 즐거워 하는 모습들이, 나중에 내가 그 인연을 갚으려고 만날때에는 반드시 괴로워하며 신음하고 죽지 못해 살고 고통받게 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비심의 보살이, 같은 부처를 죽일 수는 없으며, 더욱 맛있다고 자랑하며 좋아 하며 즐기지는 절대 안는다는 것입니다.
작은 생명이라도 같이 더불어 살아서 공존 번영의 길을 찾는 것이 보살의 길이요 우주의 진리입니다.
이것을 어렵다고 생각하신 부처님께서, 속인들은 성불의 인연길에 어려움을 능히 아시고 성불 보다는 보살의 길을 제시한 것입니다.
내가 성불하려하면 분명 악업이 드러나서 장애를 주게 되는데, 복연이 아니니 반드시 악연으로 만남을 통해 그 결과가 맑지 않습니다.
그러니 복을 지어 천상에 나길 발원하며, 복을 지어 세속에서의 행복을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보살님! 전생을 믿습니까?
"아니요" 그럼 어제일은 아십니까?
네. 어제의 일은 알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아시나요? 제가 살았고, 기억을 하고 있으니까요?
맞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다시 존재하지 않습니다.
본래 마음에는 틀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 공간을 초월합니다.
기억속에 저장된 것을 생각하여 있었다라고 말하는 것 뿐이듯이,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터 장애가 있었다고 하였는데, 아이가 그것을 원했을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 데요."
그럼 보살님이 그런 아이를 원했나요?
"아닙니다."
그럼 둘다 원하지 않았는데도 저런 장애를 가지고 왜 나왔을 까요?
"글세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바로 업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살님이 화가 잔뜩 나서 길을 가시게 된다면 과연 가시면서 무엇을 만나리라 생각하십니까?
"글세요. 아무래도 좋은 인연 보다는 좋지 않은 인연을 만나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럼 만약에 지금 굉장히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가게 된다면 어떤 인연을 만나실 것 같습니까?
"그야 반갑고 즐거운 인연을 만나러 가거나 좋은 인연을 만나겠지요?
"예. 맞습니다." 악한 마음을 품고 나가면 작은 일도 나쁘게 받아들이게 되고, 그것이 시비가 되며, 좋은 관념이 없으니 용서가 안돼서 악연을 더 깊게 맺어서 나쁜 결과를 이루게 되며,
선하고 즐겁고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다니면, 안 좋은 것도 너그러히 대하여 웃어 넘기며 시비를 만들지 않고 , 작은 일도 고맙고 즐겁게 생각하여 그것을 키워 더욱 기쁘고 행복하게 나를 이끌게 됩니다.
따라서 내가 오늘 하루 종일 즐겁고 행복했으면 잠자리에 들어도 꿈도 행복할 것이고, 내일 역시 그것이 이어지며 행복한 인연을 만들게 됩니다.
보살님께서 어려서부터 어렵게 자녀들을 키우시며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며 살아오신 어머님의 한스러운 모습과 본인이 장애아를 낳아 키우면서 우울하고 슬프고 답답하고, 고뇌에찬 한스러운 본인의 아픔의 마음이 가슴속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생활을 하다보면 즐겁고 행복한 마음이 아니다 보니, 좋은 것도 그렇게 좋게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와 남을 비교하며, 항상 불만과 불평 슬픔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품고 살게 됩니다.
과연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데 건강과 행복이 깃들겠습니까?
"아마도 힘들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눈이나 비가 하늘에서 한두 방울 내 몸에 떨어진다해서 해가 되지는 안습니다. 그러나 그 눈과 비가 지속적으로 내리는 데도 계속해서 맞고만 있다면 아마 당장에는 감기와 폐렴이 걸리겠지만 좀더 지나면 목숨을 장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은 모이면 그 힘이 커져서 나 하나 뿐이 아닌 수없는 사람들의 기쁨과 행복, 또는 질병과 죽음을 불러 오게 됩니다.
기도나 불공 또한 시작은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쌓이고 축척되면 엄청난 힘이 되어 소원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니 다 인연의 법칙입니다.
한반도 상공 3.000미터 위에 영하 30도의 찬기운이 강하게 자리를 잡으면 그 밑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영하 10도 이상의 추위를 느끼며 그 영향하에 있게 됩니다.
그런데 나는 괜챦아 하고 옷을 얇게 입고 다닌다면 당연히 감기가 걸리게 됩니다. 그것을 미련하게 계속 고집을 부리며 입고 다니면 점차 악화되어 폐렴이 되고 더 나아가면 죽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기도해서 그 기도의 맑고 강한 기운이 커지면 내가 건강해지고 행복해지며, 이어서 가정에 밝은 기운의 영향으로 식구들이 건강해지며 집안의 작은 동물들이나 식물들이 건강하고 잘 자라게 됩니다.
이와는 반대로 매일 화를 내거나 다투고, 미워하고 슬픔을 않고 산다면 그 집안에 있는 가족과 가축 내지 식물들이 다 고사하거나 병들게 됩니다.
이런 인연으로 모든 것이 변화하는 것입니다.
중략........................................................................................
마치 욕을 하루 하는 것과 매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루는 그나마 덜하지만 매일 한다면 그 독한 말이 밝고 행복함을 가로 막고 악하고 나쁜 인연을 불러와서 성공을 기약할 수 없게 만듭니다.
하늘은 결코 악업을 맺는 이를 용서하지 않으며, 세상의 다른 이들 또한 좋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매일 감사의 말을 하며 남을 도우며 선행을 하면, 하늘과 사람들은 반드시 성공하도록 그를 받들고 이끌어 줍니다.
모든 것은 다 작은 인연에서 부터 비롯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어느날 탁발을 가시다가 가난한 집에서 드릴 것이 없어서 쌀뜨물을 드리게 되었는데, 부처님은 이 뜨물을 드시고는 축원을 하십니다.
어느 여타한 불자의 공양에 못지 않는 공덕을 지었으니, 이제 큰 복덕이 맺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있던 옆집의 사람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의문이 들어서 여쭙니다.
아니 어떻게 뜨물같이 제대로 된 공양도 아닌 것을 드시고는 큰 복을 지었다고 말씀을 하시니 이해가 잘 안갑니다.
부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기 저 큰 고목이 보이십니까?
"네. 잘 보입니다."
저 큰 고목의 나무 씨앗이 얼마나 클까요?
아주 작아서 팥알보다도 훨씬 작습니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큰 고목이의 씨가 그렇게 작을 수가 있습니까?
"사실입니다. 그 씨앗은 너무나 작습니다."
그렇다면 그 작은 씨앗이 자라서 저렇게 큰 고목이 된 것처럼, 이 사람이 지금 베푼 것은 비록 작은 공양이지만 이 보시의 인연이 자라서 저 낙락장송처럼 커진다는 것은 왜 모르십니까?
부처님의 크신 뜻을 생각이 짧아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저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싶습니다.
"그러시지요."
기도든 불공이든 다 기도하는 분의 마음이 맑고 행복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선행 되어야 합니다.
맑지 않은 마음으로 기도를 하거나 공을 드리면 그 기도나 공덕은 기대만큼 이뤄지기 힘들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이 자기는 바빠서 시간도 없고 힘들다고 하면 안됩니다.
부처님은 더욱 존귀하고 바쁘신 분입니다.
대통령이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한 나라의 모든 중생들의 삶을 관장하고 잘 살피려면 아마도 촌음도 아까울 만큼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 한나라, 이 지구 뿐만이 아니라 온 우주의 삼계 28천과 6도 세계를 대상으로 중생들을 건지시려 온 힘을 다하시는 분입니다.
그런 존귀한 분을 상대로 나의 작은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발원합니다.
그것도 자기의 욕심으로 바라보며 말입니다.
항상 생각을 하십시요.
부처님은 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3계 28천의 6도 일체 중생을 위해 자비구현을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그리고 이런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마음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계시다는 것을 꼭 상기하세요.
제가 지장기도를 권하면서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지장보살님은 항상 매일 아침 선정에 들어서 중생들을 관찰하여 보시고, 언제쯤 저 중생들을
건져야 할 지를 한 순간에 보십니다.
그러니 항상 순간에 마음을 다해서 그 눈에 들어야 한다고, 아님 부지런히 매달리라고, 업은 내가 짓고, 푸는 것은 지장보살님이 하시니,
마치 어린 아이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마구 어질러 놓은 것을 어머니가 보고는 깨끗하게 청소하고 제자리에 돌려 놓아 다시 안락한 보금자리가 되게 해 주는 것과 같으니, 항상 나를 낯추고 정성을 다한 마음으로 최대한 노력하라고 당부를 드립니다.
예전에, 어느 큰 마을에 가뭄에 극심하여 사람들이 기우제를 드리고 내려들 오는데, 어느 한 사람이 잔뜩 재물을 이고는 산을 올라가서 재를 드리다가 그만 벼락을 맞아 죽었습니다.
이유인 즉 남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신령님께 빌기를,
신령님, 좀더 가물게 해 주세요. 그래야 제가 부자가 됩니다.
그사람은 바로 쌀가계를 하는 곡물상이었습니다.
더 가물어야 쌀값이 올라서 자기가 부자가 되겠기에 이런 기도를 드리려다 그만 벼락을 맞고 죽은 것입니다.
불만과 의심, 그리고 남을 원망하고 해를 주려는 기도나 정성이라면 부처님이나 화엄성중님들이 달게 받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화엄성중님들의 호통을 받아서 고통을 받습니다. 그럼 바로 알아차리고 잘못을 뉘우치고 바로 나아가야 함에도, 워낙 잘못 된 망상이 많아서 부처님께 공드려도 들어주시지 않는다 하며 부처님이 있네 없네 하며 구업을 짓고는 더욱 악연의 구렁텅이로 빠져듭니다.
듣고 있던 교수가 눈이 밝아지며, 스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부족하지만 스님께서 잘 지도해 주시면 따라 가겠습니다.
미흡한 중생을 가엽게 여기시고 바르게 이끌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그래서 기도법을 일러주고 백일 기도를 절에 다니면서 할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스님의 가르침대로 최선을 다해서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와서 하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쉽게 말을 합니다.
아! 남들은 별 노력을 안해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여러분의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진실은 아닙니다.
그저 그렇게 보일뿐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어느 누가 와서는 당신 남편이 너무 자상하고 매력있고, 성실해서 부인에게 잘 해 줄것 같다고 말을 하자,
그 보살이 듣고 있다가 말하기를, 그럼 당신이 데리고 살아보세요..
남 속 터지는 줄도 모르고는 아이구...?
여러분 아시겠어요.....?
무슨 뜻인지를.....
인생이란 다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내가 행복할 때는 남의 잘난 모습은 하나도 안보입니다.
다 내가 남보다 못할 때만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그러니 너무 자기를 자책하거나 억울해 하지 마세요.
나름 고생없이 근심없이 사는 인생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에 극락을 만든 것입니다..
이생에서는 도저히 그런 세상을 만날 수 없기에 말입니다...
꽃밭에 아름답게 핀 꽃들이나 산 한 모퉁이에 작게 피어난 꽃이나 다 소중하기는 마찬가지이고, 또 필요한 곳에 다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라면서 두서없는 글을 법구경의 시를 뒤로하며 마칩니다.
"지붕을 허술하게 이어 놓으면 비가 올 때 빗물이 새는 것 처럼,
마음을 단속하지 않으면 탐욕이 틈을 타서 뚫고 들어온다.
많은 경전을 외울지라도 그 뜻을 바로 알고 실천하지 않으면,
남의 소를 세고 있는 목동처럼 실속없는 수행으로 그치게 된다.
여러분 모두의 행복을 기원드립니다.
행복하세요..
지장사 주지 승현(합장)
정말 훌륭한 원력을 발하셨습니다. 모든 불자들이 제각기 자기의 작은 소망의 울타리만 바라보는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부족한 것 보다는 큰 원력을 가지고 계신 것만으로도 모든 중생의 스승이 될 자격이 충분하며, 여타 불자들과와의 발원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합니다.. 너무 고마운 서원의 큰 마음을 내 주신 불자님의 존함이라도 알고 싶습니다.. 카페의 쪽지로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삶이 다 고만고만 합니다. 그러나 보살의 원은 그 어떤 것보다 크며, 그 마음을 내는 순간 마왕의 궁전이 흔들리며, 제불보살과 제석,범천이 친히 내려와서 공경하고 합장하며 따릅니다.. 하물며, 작은 세상의 작은 소귀들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제가 수없이 하늘을 올라다니며 듣고 만나고 보았던 인연들이 승려되기 전부터 있었는데, 이 작은 세상이 눈에 들어 오겠습니까? 마음 자리를 잘 다지시기 바라며, 인연이 되시면 한번 찾아 오셔서 차담이라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진정 만나고 싶은 사람은 불자님 같은 마음이 크고 원력이 광대한 분을 찾고 있습니다.. 항상하지 않은 이 작은 세상에 너무 속지 않도록 마음을 두시고 원력이 크면 마장도 그만큼 커집니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잘 점검 받으며 키워 가시도록 하세요.. 늘 건강하시고 그 원력에 두손모아 공손하게 합장드립니다..감사합니다..^^
스님 법문 감사합니다 ()()()
법문이 그리움인지 청법가를 부르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백일기도 회향하는 보름날에 ,읽은경전 염불기도 등 모든 선망조상님들께 진심맘으로 참회로 회향했습니다
오늘부터 이어 기도정진합니다
스님의 가르침 늘 새기며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 ()()()
고맙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쌓은 공덕을 조상님들게 회향을 하셨으니 선조님들이 대견하게 여기며 고맙게 합장하며 그 공덕의 인연을 통해 정토의 문에 들어가셨습니다.
항상 나만 바라보지 말고 다른 이들을 위한 마음을 내는 공부와 기도를 병행한다면 남은 인생의 아름다운 만남과 행복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앞에서 나의 소망을 비는 것과 다른 이들의 소망을 빌어 주는 사람이 잇다면 그 둘중 어느 누가 부처님의 눈에 들어올까요? 그리고 누가 더 빨리 그 소원을 이룰까요?
부디 이런 마음으로 기도를 하고 발원을 해야 세상을 보는 눈과 기도의 공덕의 크기가 크게 갈린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라보시는 분은
분은 그 상대가 부처님이라는 것을 꼭 잊지 마세요.. 불자님의 좀더 큰 마음으로 부처님게 다가서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라며, 항상 행복하세요.^^
스님 너무 감사드립니다..^^
가슴에 와닿는 법문이에요 ㅠㅠ
정말 열심히 살겟습니다 ^^
스님 건강하시고 편안한밤 되세요^^
고맙니다.. 불자님의 신행생활에 언제나 부처님의 가피가 가득하시길 기원드립니다..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늘 넉넉한 마음을 가지시고, 초심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불자님의 소원성취를 염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세상에서 젤 불행한 사람이다'라고 살았던 한사람입니다. 아직 초심자이지만 불법을 배우며 항상 감사한 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님 글을 읽으며 앞으로 어떤 맘으로 살아야할지 다시금 맘에 새겨봅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위로보면 다 네위지만 아래로 보면 내 밑에 수없이 많은 중생들의 고통과 눈물이 수없이 많습니다. 지금 이시간에도 촌음없이 흐르는 눈물을 지장보살님은 항상 안타까워 그들의 눈과 귀, 그리고 손발이 되어 진리의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없어서 받는 것도 고통이지만 많이 있어서 혼탁함에 괴로워하는 중생또한 수없이 많습니다. 좀더 자신과 부처님을 향한 마음을 내시기 바랍니다.. 항상 부처님의 자비로운 손길이 영원하시길 기원드립니다..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