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독일군에게 있어서 구식인 1호 전차와 2호 전차는 물론이고, 사실 3호 전차와 4호 전차도 일종의 중간형 전차에 가까웠다. 앞의 두 전차는 아예 전차가 없는 상태에서 기초적인 기갑부대 훈련 및 최소한의 전력 구축을 위해 개발된 실험적인 전차였고, 후자도 독일군이 생각하는 현대적인 기갑부대의 구축을 위한 첫 삽질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개전부터 사용되어온 4호전차는 우수한 성능의 전차이긴 했지만 본격적인 주력전차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 때문에 3호 전차와 4호 전차의 첫 양산 및 실전배치가 시작되던 1938년부터 독일군은 이들의 대체를 위한 새로운 전차 개발 계획에 착수했다. 당초의 목표는 주력전차와 지원전차로 이중화된 전력체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으로, 이에 따라 20톤급 주력전차 계획 VK20.01이 제시되었다. 초기의 계획안은 사실상 기존의 3/4호와 별 차이가 없는 섀시의 전차에 조금 더 강력한 엔진과 조금 더 두꺼운 장갑을 적용하는 것이 목표였다.
[울론 4호전차는 개전부터 종전시까지 꾸준한 개량이 가하졌지만 태생이 태생인지라.. 대전중반 연합군에 새로운 전차들이 등장하게 되자 그 성능적 한계를 보여주었다]
그런 개발 목표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한 것이 바로 독소전쟁이었다. 흔히 'T-34 쇼크'로 불리는 독소전 초기의 기갑 조우전은 말 그대로 독일군에게 엄청난 충격을 남겼다. 이제껏 본 적 없는 경사장갑을 대폭 채용한 형태에 우수한 기동력, 거기에 등장 당시로서는 강력한 화력은 그때까지 독일군 기갑부대의 주력이던 3호 전차, 4호 전차 초기형을 발라버리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1941년부터 등장한 소련의 새로중 중전차 T-34는 우수한 방어력과 강력한 주포 그리고 뛰어난 기동성으로 독일군으로 하여금 T-34쇼크에 빠지게 할정도로 우수한 전차였다. 이에 독일군은 새로운 전차 개발을 서두르게 된다]
비록 독소전 초에는 스탈린과 소련군의 삽질로 T-34가 실제 독일군에 준 피해는 당시까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3, 4호 전차의 명백한 한계를 느낀 독일군은 VK20.01을 폐기하고 당시 티거 개발 시안인 VK30.01[3]을 발전시켜 차세대 주력전차로써의 개발을 결정, 벤츠의 VK30.01(D)와 MAN의 VK30.02(M)이 차세대 전차 자리를 놓고 대결을 벌이게 된다.
그래서 유명한 벤츠 사와 MAN 사[4] 가 주축이 된 경쟁입찰이 시작, 1942년에 결국 MAN 사의 안이 채택되었다.
[MAN 사의 MAN의 VK 20.02개발안으로 전형적인 전차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이 안이 벤츠사의 안과의 경쟁결과 승리하여 기본안이 된다]
이때 벤츠 사의 안이 탈락한 것은 전차 자체가 생김새는 물론 특성까지 지나치게 'T-34 짝퉁'에 가까워서 군 수뇌의 심기를 거슬린 것이 원인이라고도 알려져 있으나 사실과는 다르다. 일단 전차에 탑재될만한 크기의 디젤 엔진을 개발하는데 시간이 지나치게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고(선박용 디젤 엔진은 있었고, 이 전차에 사용할 MB507 디젤엔진도 해군의 소형 모터보트에 탑재할 예정이던 엔진을 전용한 것이었다.), 개발해도 성능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힘들었다.
[벤츠개발안 딱 봐도 T-34의 카피라는 느낌을 지울수 없는데 소문으로는 이런점이 탈락의 주요인이라고도 하지만 그보다는 벤츠안은 아직 기술적으로 어려운 문제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암튼 이게 선정되었더라면 전장에서 소련군의 T-34와 몹시 헷갈렸을듯..]
이 때문에 벤츠 사 계획도 엔진 수급 가능성이 불투명해지자 HL210을 탑재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바꾸었고, 이게 오히려 마이너스가 됐다. 벤츠 계획은 디젤인 MB507 탑재가 전제였고 차체도 작았기 때문에 연료적재량 자체가 적어, HL210을 탑재할 경우 항속거리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자면 안 그래도 좁은 차체에 더 많은 연료탱크를 탑재할 수밖에 없었으며, 당연히 승무원의 행동편의나 탄약탑재량 둘 중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의 걸작전차용 엔진 HL210 의 모습 이 엔진은 판터뿐 아니라 6호전차 티이거에도 장착되는 매우 우수한 전차용 엔진이였다. 벤츠안은 이 엔진의 장착이 어려웠다 벤츠사 독자개발 엔진을 장착한다고 했으나 개발이 언제될지는 ..]
또한, 벤츠 사의 안은 포탑링이 너무 작은 관계로, 개발 도중 T-34만이 아니라 KV-1 중전차와도 표준교전거리(800m)에서의 교전능력 확보를 요구받으면서 탑재가 확정된 75mm Kwk42/L70 전차포를 탑재하기 힘들다는 문제도 크게 작용했다.
이에 비해, MAN의 VK 20.02는 그때까지의 독일전차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경사장갑의 대폭 채용을 제외하면 T-34를 그다지 참고하지 않은 전형적인 독일 전차의 구조를 답습하였다.
[5호전차 판터는 전형적인 독일전차의 디자인을 따르고 있으며 이는 훗날 현대주력전차 (MBT)의 디자인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설계사상이 매우 앞서있다는것을 잘 보여주는 디자인이다.]
또한 처음부터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크기의 섀시를 확보했다. 이에는 리프스프링 현수장치를 채택한 벤츠 형과 달리 토션바 현수장치를 채택한 덕이 컸다. 토션바 현수장치는 리프스프링에 비해 같은 폭의 차체라면 더 넓은 차내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 그만큼 포탑링의 폭을 넓게 잡을 수 있었다. 대신 차체 높이가 2~30cm쯤 높아진다는 문제가 있는데, 이는 노출면적을 넓히는 악영향도 있지만 대신 그만큼 더 좋은 전장 시계를 확보해준다는 장점도 있었으므로 단점이라고만 볼 수는 없었다.
Panther에 채용된 더블 토션바의
배치도
Panther에 처음 채용된 엔진 자동 소화장치
&
소화 노즐의 정비장치
결정적으로 개발 당초부터 티거용 엔진과 사실상 동형인 HL210 엔진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기 때문에 당장 동력계통의 수급에 문제가 없고 출력 역시 충분하며 현수장치의 지형대응능력 역시 벤츠 사 계획보다 훨씬 높다는 평가를 군부로부터 받았다. 당시 독일군이나 대전 이후의 독일군이나 전차의 기동력을 특히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으므로, 결국 독일군은 MAN의 계획을 판터로서 제식화하기로 결정했다.
Panther G형 후기형에 채용된 전투실내 난방 장치
&HL210 P30 엔진
[판터전차에는 마이바하 HL 210 P45 650마력 엔진을 장착했다. 이 엔진은 배기량 21,000cc의 V형 12기통 가솔린엔진으로 당시 전차용 엔진으로는 강력한 엔진이였다 이 엔진은 무게 57톤의 티이거에도 장착되었으나 티이거가 워낙 무거운 전차라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티이거보다 가벼운 판터를 움직이는데는 딱 좋은 성능을 보여주었다]
[판터전차는 급히 개발되어 첫 실전 데뷔인 동부전선 '치타델레 전투'에 두입되었으나 기계적 결함으로 큰 활약을 못하고 대부분 손실되었다]
수뇌부가 큰 기대를 걸고 투입한 첫 실전 데뷔인 동부전선 '치타델레 전투'에서는 독일제 병기답지 않은 자잘한 기계적 결함으로 소수의 초도생산분인 D형의 거의 대부분이 손실되었다(…).
[이어 1943년 소련과의 대규모 전차전인 쿠르스크 전투에 투입되었으나 이 역시 기계적인 결함으로 많은 손실을 입게되었다]
치타델레 작전 개시 2일 만에 184대중 40대만 기동 가능할 수준이었다. 원래는 200대가 작전에 투입되었으나, 일단 20대 정도가 이동 과정에서 엔진 화재로 손실되었다. 일부는 철도 적재를 위한 단거리 이동에서조차 사고가 발생. 그나마 더 많은 숫자가 고장이 났던 것을 상당수 수리해서 184대를 가동 상태로 전투에 투입했던 것이다.
[판터가 본격적으로 활약을 한것은 개량형 모델인 A형이 등장했을때부터로 A형부터는 초기 양산형인 D형의 문제점을 대부분 개량한 전차였다]
이렇게 된 이유는 초기 판터의 엔진과 트랜스미션이 격렬한 전쟁터에 맞지 않게 설계되었던 탓과, 덤으로 설계 미스 및 소재 선택 실수로 엔진 연료도관에서 연료가 새고 이게 뜨거운 엔진에 접촉하여 불이 나는(!!!) 문제가 제일 큰 원인이 됐다. 엔진 문제는 이내 개선됐지만 트랜스미션 문제는 근본적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나중에 생산된 A, G형부터 문제 자체는 줄어들었지만, 이는 RPM을 2500까지만 올릴 수 있게 억제하는 등 엔진 출력의 제한조치 덕분이었다.
[판터는 3~4호전차를 대신하는 독일군의 중(中)전차였으나 통상적인 대전차임무외에 연합군의 중(重)전차를 상대로도 대등하게 싸울수 있는 우수한 성능을 가진 전차였다]
더구나 그 기계적 결함만으로도 모자라 스펙상 티거와 대등하다고 여겨지는 바람에 당시 판터를 배속받아 운용한 각급 지휘관들이 그나마 간신히 굴러가는 판터들을 밀집화망 속에 밀어넣어 아예 괴멸당하게 만드는 병크도 포함됐다. 이는 사실 현장지휘관보다는 전차의 집중운용이라는 당연한 원리를 극단까지 밀어붙여 압도적인 기갑전력으로 적의 보병방어진을 완전히 격멸해 버리기를 기대했던 당시 48기갑군단(군단장 오토 폰 크노벨스도르프 대장) 및 그 상급지휘부인 제4기갑군(군사령관 헤르만 호트 상급대장) 차원의 문제였다는 견해가 더 설득력이 있긴 하다. 원래 중전차는 그런 상황에서 싸우는 것을 상정한 것이므로 티거라면 그런 임무에서도 그럭저럭 활약할 수 있는데, 판터는 절대 그럴 수 없다. 4호전차보다야 조금 낫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기술적으로도 충분히 완성되어 있지 않았다면... ▷◁지못미
[판터전차는 초기양산형 D형이 기계적인 문제점으로 꽤 많은문제가 있었으나 이후 이를 개량형 A형이 등장하면서 독일군의 실질적인 주력전차로 활약하였으며 이후 후기형에 해당하는 G형이 등장하면서 성능상으로는 어느 연합군의 전차를 압도할 성능을 가진 전차였다]
덕분에 판터D형은 제대로 된 활약도, 실전 데이터도 얻지 못한 채 일단 개량부터 들어가야만 했다. 이후 본격양산형인 A형이 등장한 이후에는 연합군의 어지간한 경/중(中)전차는 압도했으며, 중(重)전차 상대로도 호각에 가깝게 싸우는 등의 활약을 했다.
[대부분의 독일전차들이 그러했듯 판터 역시 충분한 수량을 공급받지 못했다 그래서 대부분 전차부대는 5~6호전차의 혼성부대인경우가 많았다]
[판터가 뛰어난 성능을 가진 전차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6호전차 티이거처럼 두터운 장갑을 한 重전차가 아닌 어디까지나 中전차였으며 정면을 제외한 측면의 장갑은 어느 전차와 비슷했다. 이를 이용 연합군은 매복작전을 통해 측면을 공격하는 전술로 판터를 격파해갔다]
1944년 중반 이후엔 아예 4호전차보다도 많은 수가 배치되어 독일군의 주력 전차로서 자리를 잡았다.
판터는 당시 독일이 적당하게 쓸만하면서도 질적인 우위를 가지기 좋은 정도의 기술을 꽉꽉 채워 넣은 물건이라 할 수 있다.
[판터 초기형 모델인 D형의 모습 비록 초기모델은 기계적인 많은 문제점이 있었지만 독일군과 연합군을 통털어 가장 공수의 밸런스가 잘 맞은 현대의 MBT의 원형을 보여주는 멋진 설계를 가진 전차였다]
일단 전체적인 중장갑을 채용하지 않으면서도 충분 이상의 전면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포탑 전면은 티거와 대등한 100mm지만 포방패는 피탄경시도 좋은 편이다. 차체 전면은 당시 4호전차에도 채택돼 있던 80mm 장갑을 매우 예리한 경사장갑으로 채택했다. 80mm대와 100mm대의 장갑판은 사실 제작 난이도가 의외로 다르다.
[판터전차의 디자인이나 설계는 현대전차의 원형을 확립했다. 사실상 판터는 종전후 연합군의 전차설계사상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판터 전차의 장갑은 정면을 빼고는 그리 두텁지 않았는데 이 전차를 6호전차 티이거와는 달리 공수의 밸런스를 중요시한 中전차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면의 장갑은 티이거에 견줄정도로 두터웠으며 여기에 경사장갑을 도입 200밀리급 장갑방호력을 가질수 있었다. 하지만 측면의 경우 경사장갑이 도입되긴 했으나 차체의 한계로 인해 그리 두꺼운 장갑을 두를수 없었다]
카탈로그 스펙으로는 잘 납득이 안가긴 하지만 독일 병기국의 보고서에 의하면 17파운드 APCBC가 판터의 차체 전면을 관통하려면 하단부를 노려야만 400야드, IS-2의 122mm 철갑탄의 경우엔 차체 전면 하단을 노려 100야드(!)에서나 가능하다고 한다. 뻥카라고 보기도 좀 애매한것이, 같은 보고서에서 판터가 T34의 차체 전면을 뚫으려면 300야드에서나 가능하다고 기록되어 있고, 셔먼도 포방패는 1000야드에서 관통 가능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수치상 분석이 아니라 다양한 변수가 있는 실전 통계를 기반으로 한 것 같다. 포탑은 그만큼의 방어력이 안 나오긴 하지만 미군 3인치나 소련군 85mm까지는 거의 완벽하게 막을수 있다.
전투중량이 45톤이니 연합군 기준으론 너끈히 重전차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중전차의 중요한 조건인 전방위 방어력 측면에서 판터는 마이너스 점수가 크다. 같은 중량인 M26 퍼싱에 비해 측면방어력은 6~7할 수준이고, 역시 같은 중량인 IS-2 전차에 비해서는 절반 수준밖에 안된다. 이 문제는 각국의 주력 대전차 화기의 위력까지 감안해야 하는데, 퍼싱이 등장할 무렵 독일군의 주력 대전차포는 이미 Pak 40이고, 수직 75mm 수준인 퍼싱정도의 측면 장갑이면 통상적인 교전 거리에서 적 대전차포 사격에 순삭당한다. 괜히 적진 돌파에 중점을 둔 소련군의 IS-2가 측면에도 100mm급 장갑을 친게 아니다. 반면 서방 연합군의 주력 대전차포는 대전 막바지까지도 영국의 57mm 6파운더 계열이었고, 소련군은 76mm ZiS-3 경야포를 기반으로 했기에 쾨니히스티거조차 약간의 경사각을 준 80mm 측면장갑에서 만족했다. 물론 이렇게 이유를 붙여도 측면이 약한 것은 어쩔수 없는 사실이다. 대 신 동급의 연합군 전차보다 넓은 공간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넓은 공간은 판터가 연합군 전차들보다 더 많이 쏘고 더 장기간 싸울 수 있게 해주었다.
[판터 전차의 구동계.. 티이거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가벼운 차체에 600마력급의 마이바흐 HL-210엔진을 장착 평균시속 40킬로라는 준수한 속도를 보여주었다. 특히 부드럽게 작동하는 변속기와 조향장치는 이를 입수한 소련군에게 상당한 호평을 받았으며 이를 몰아본 소련군은 독일전차는 장인의 예술품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참고로 소련군 전차의 지독한 변속기 고장은 큰 문제였으며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변속을 위해 별도의 망치를 가지고 이를 이용 두들겨 변속을 해야할 지경이였다. 심지어 변속기의 문제로 잘 달리다 갑다기 서서 위에 타고 있던 보병들이 아래로 굴러 떨어져 전차에 깔리기도 했으며 멈추어야할 부문에 멈출수 없어 아군의 보병을 그대로 밀고 가는 사고도 잦았다)]
화력도 우수했다. 판터의 주포는 판터에서 처음 실전 도입된 물건이었지만, 75mm 계열 중에서 못해도 3위 안에 들어가는 우수한 포다. 물론 숫자놀음상의 위력으로 치면 최강은 영국의 17파운더 같지만 종합적으로 따진다면 판터의 75/70구경장의 압승이다. 전자는 APDS을 쏴야 앞서나가는 관통력을 낼 수 있지만 시험사격(완벽하게 이상적인 조건)시 400야드 에서도 56.6%, 800야드쯤 가면 21.9%... 이건 뭐 답이 없다. 더군다나 이 시험시 사용한 표적은 폭 2.5m, 높이 2m이다! 같은 조건에서 판터쪽은 2000미터에서도 90% 수준이다. 따라서 당시에 구할 수 있는 75mm 포 중에서는 최상급이므로 당시의 모든 중형전차는 손쉽게 격파할 수 있었으며 관통력 면에 있어서는 지근거리에 한해서는 티거의 88mm를 능가했다. 근거리에서 판터의 70구경장 75mm 포가 더 강력한 이유는 탄속이 더 빠르고 탄 구경이 작은 만큼 좁은 면에 그 에너지가 집중되기 때문이었다. 단 고폭탄 성능은 구경의 한계로 인해서 88/56구경장이 압도적으로 강력했고, 표준 전투거리 및 그 이상의 거리에선 무거운 88mm 쪽이 더 오랫동안 자기 운동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어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88mm가 더 우수한 위력을 보인다.
[판터의 주포는 판터에서 처음 실전 도입된 물건이었지만, 75mm 계열 중에서 못해도 3위 안에 들어가는 우수한 포다. 물론 숫자놀음상의 위력으로 치면 최강은 영국의 17파운더 같지만 종합적으로 따진다면 판터의 75/70구경장의 압승이다. 전자는 APDS을 쏴야 앞서나가는 관통력을 낼 수 있지만 시험사격(완벽하게 이상적인 조건)시 400야드 에서도 56.6%, 800야드쯤 가면 21.9%... 이건 뭐 답이 없다. 더군다나 이 시험시 사용한 표적은 폭 2.5m, 높이 2m이다! 같은 조건에서 판터쪽은 2000미터에서도 90% 수준이다. 따라서 당시에 구할 수 있는 75mm 포 중에서는 최상급이므로 당시의 모든 중형전차는 손쉽게 격파할 수 있었으며 관통력 면에 있어서는 지근거리에 한해서는 티거의 88mm를 능가했다. 근거리에서 판터의 70구경장 75mm 포가 더 강력한 이유는 탄속이 더 빠르고 탄 구경이 작은 만큼 좁은 면에 그 에너지가 집중되기 때문이었다. ]
이러한 방어력과 화력을 통해 적절한 중량을 얻었고, 여기에 티거에서 썼던 당대 최고 력의 마이바흐 엔진을 실어 상당히 우수한 기동성을 가졌다.
단 초기 생산분은 트랜스미션에 문제가 있었고 엔진도 티거보다 좁은 공간에 엔진을 집어넣으면서 티거 때에는 없던 트러블이 생겨나는 둥 문제가 있었다. 결국 트랜스미션은 개량하고 엔진은 종전 때까지 출력제한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출력 제한을 해도 판터의 기동력은 여전히 독일군 전차 중 최고였다.
Panther에 채용된 더블 토션바의
배치도
고무 타이어식 보기륜(왼쪽)와 스틸 보기륜(오른쪽) 단면도
사실 700마력급 전차 엔진을 만들고 이것을 안정적으로 작동시킨 사례는 판터와 티거 계열의 HL210/230 엔진을 제외하면 1950년대까지 양산 단계에 이른 물건이 거의 없다. 미국의 AV-1790이 사실상 유일하며, 그나마도 연비가 똥망이었다. 게다가 이 물건은 2차대전중 독일이 시제품만 만들고 만 HL245를 기초로 만들었다는 의혹이 딸려있다.
[판터전차의 심장이라 할수 있는 HL210/230 엔진(좌) 와 변속기(우)의 모습, 판터는 방어력과 화력을 통해 적절한 중량을 얻었고, 여기에 티거에서 썼던 당대 최고 력의 마이바흐 엔진을 실어 상당히 우수한 기동성을 가졌다.단 초기 생산분은 트랜스미션에 문제가 있었고 엔진도 티거보다 좁은 공간에 엔진을 집어넣으면서 티거 때에는 없던 트러블이 생겨나는 둥 문제가 있었다. 결국 트랜스미션은 개량하고 엔진은 종전 때까지 출력제한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출력 제한을 해도 판터의 기동력은 여전히 독일군 전차 중 최고였다. ]
하지만 적당하게 만든 것과는 거리가 멀게 강력한 성능을 자랑했다. 라이벌로 알려진 T-34와는 급수 자체가 다를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며 퍼싱이나 스탈린과도 엇비슷한 전투가 가능했다. 대부분의 미군 전차들은 론슨 라이터처럼 한방에 불을 붙여 버릴 정도로 티거만큼이나 명성을 떨쳤다.
[판터전차는 적당하게 만든 것과는 거리가 멀게 강력한 성능을 자랑했다. 라이벌로 알려진 T-34와는 급수 자체가 다를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며 퍼싱이나 스탈린과도 엇비슷한 전투가 가능했다. 대부분의 미군 전차들은 론슨 라이터처럼 한방에 불을 붙여 버릴 정도로 티거만큼이나 명성을 떨쳤다]
거기다 여러 가지 잔손 거리를 줄이면서 합리적인 설계를 한 덕에 생산성까지 좋았다. 완전무장한 판터의 단가는 15만 라이히스마르크 정도로, 4호전차의 12만 라이히스마르크 정도와 비교해 보면, 가격 대 성능비가 훨씬 좋을 정도. 판터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총 5,000대 가량이 양산되었고, 이는 생산기간 대비 생산량에서 3호 전차보다도 4호 전차보다도 앞서는 2차대전 시기 독일 전차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독일과 소련은 전차부족을 메꾸기 위해 적의 전차를 노획하면 현지에서 수리해서 바로 전투에 투입 했는데 판터는 그중에서도 특별히 취급되었다. 전공을 세우는 우수한 전차병들에 대한 포상으로 지급한 것이다. 정비를 위해 독일 포로중에 기계공을 징발하였다. 1944년에는 판터의 매뉴얼을 러시아어로 번역해 승무원들에게 배포하였다. [5]
영국군 제6근위기갑사단은 독일군 107 기갑사단과의 전투 후 온전한 상태의 판터를 노획하여 약간의 수리후 CUCKOO 라고 이름 짓고 실전에 투입했다. 직접 사용해보고 판터의 훌륭한 주행력과 주포의 성능을 극찬하면서 여러 전투에서 유용하게 써먹다가 연료펌프가 고장나자 부품을 구할수 없어서 어쩔수 없이 버렸다고 한다.
폴란드 시민군이 바르샤바 봉기 때 2대를 노획하여 사용하였다.
프랑스 레지스탕스가 노획하여 루앙 전투에 참가하였는데 그 중 두 대가 독일군의 티거에게 파괴되었다.
[판터전차는 전후 연합군 특히 미국의 전차개발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의 경우 종전후 판터전차를 압수 자국의 전차로 사용햇을 정도며 특히 판터전차에 사용된 75밀리 포를 그대로 베껴 수출까지 했다]
흔히들 프랑스가 판터를 주력으로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총 3개 대대를 사용했으며, 이중 2개 대대는 1950년이 되기 전에 자국산 전차로 장비를 대체했다. 대체한 국산 전차가 전부 독일제 엔진을 쓰는 독일 중전차 짝퉁, 그나마 문제덩어리라서 문제지. 결국 프랑스군은 1950년대 초반에 이르러 판터는 모두 퇴역시켰으나, 예외적으로 소대급으로 보유하고 있었던 야크트 판터는 1968년까지 현역에 유지하거나 사실상 현역에 준하는 예비역 장비로 운용했다.
[판터전차의 파생형모델인 야크르판처 구축전차 타입으로 이는 프랑스군에 의해 1968년까지 현역에 유지하거나 사실상 현역에 준하는 예비역 장비로 운용했다. ]
또한 소련군 역시 압수한 판터 상당수를 비축하면서 1950년대 중반까지 동독 소재의 구 판터 부품공장들에 정비부품을 생산케 했다는 구소련 문서도 있다(…).
[독일군의 새로운 重전차로 티이거전차의 후속모델이라 할수 있는 쾨니히스 티거가 배치되었지만 이 역시 60여톤이 넘는 너무 무겁고 비싼 전차였다 판터는 이와는 달리 가격도 저렴했으며 (물론 소련제 전차나 미국의 중전차 셔만보다는 비쌌지만..) 공수의 밸런스가 모두 잘 맞는 현대전차의 주력전차 개념을 도입한 전차라 할수 있다]
경사장갑을 채택한 특유의 외형은 이후 쾨니히스 티거가 충실히 물려받았고, 후대 독일의 걸작 레오파르트1 전차에까지 그 영향이 남아 있다.
[훗날 서독군이 개발하게 되는 레오파트 전차는 판터전차의 이런 설계를 고스란히 물러맏은 현대화 버젼이라 할수 있다]
티거만큼의 전설이나 활약은 없지만[6] 양산형 군용 병기로서는 더 성공적이며, 균형잡힌 우수한 성능과 준수한 외모로 독빠들에게 꽤 사랑받고 있다. 또한 전차 역사에서 최초로 현대적인 MBT의 개념을 제시한 전차 중 하나로도 유명하다.
[E-50 은 본격적인 중전차 개발 프로젝트중 하나로 판터나 티이거2 를 대체하는 새로운 중전차 개발을 목표로 한 프로젝트였다]
튼튼하면서 크기는 줄어든 슈말트룸 포탑으로 교체, 쾨니히스 티거와 같은 88mm/71 구경장 주포로 업그레이드, HL-234(800~900마력, 최대 1000마력까지의 출력 요구도 있었다)으로 엔진 교체. 그대로 업그레이드 되었다면 지역에 따라서는 지금 당장 현역으로 충분히 굴려먹을 수 있었을 거다...(탄약의 업그레이드만 이루어진다면 거의 M48A2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전투력을 갖는다.) 흠좀무.
<E-75 88mm kwk L/100의 일러스트 E-75 역시 88밀리 포의 업그래이드 형인 100구경 짜리 포를 장착한 타입을 고려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도 52구경장에 머물고 있는 장포신의 장착이 과연 가능했을지는..>
[만약 전쟁이 몇년더 지속되었더라면 판터F형이 등장했을지 모를일이였다. F형은 판터전차의 복잡한 생산과정을 간략화하여 생산성을 높임과 동시에 당시로는 획기적인 스테리오 합치식 조준경을 도입할 예정으로 이 조준기는 첫발 명중률을 상당히 끌어올리는 상당히 진보된 조준장치중 하나였다. 하지만 시제품만 만든상태에서 독일이 항복했으며 미군이 이를 가져가 완성시켜 훗날 M47 패튼전차에 세계최초로 도입하게 된다]
파생형은 독일의 중형 전차로서는 비교적 적은 편으로, 실제 양산된 파생형은 구난전차인 베르게 판터, 구축전차인 야크트 판터, 그리고 포병관측차량(관측차량의 특성상 무전장치가 설치되고 주포 대신 속임수용 가짜 나무 포신이 설치된다)이 사실상 전부. 나머지는 그릴레 시리즈로 이어지는 대전차 자주포에 판터 차체를 유용한 계획이 유일하다.
[판터전차의 구난전차 타입인 베르게 판터 의 모습]
아르덴 대공세 때 오토 스코르체니 부대(당시 미군복장을 하고 후방교란을 맡기로 되어 있었다)에서는 판터에 철판을 용접시켜 미군 M10 울버린과 비슷하게 만든 판터를 운용했다. 하지만 열악한 도로사정과 잡다한 작전상 제반 사정으로 인해 후방 침투가 불가능해졌고 결국 일반 전차로서 전투에 운용, 소모되었다.
[아르덴 대공세 때 오토 스코르체니 부대(당시 미군복장을 하고 후방교란을 맡기로 되어 있었다)에서는 판터에 철판을 용접시켜 미군 M10 울버린과 비슷하게 만든 판터를 운용했다. 하지만 열악한 도로사정과 잡다한 작전상 제반 사정으로 인해 후방 침투가 불가능해졌고 결국 일반 전차로서 전투에 운용, 소모되었다. 아래는 미군에게 노획된 미군전차로 위장한 판터전차]
[1] 판터의 조종계통과 조향계통은 비정상마모가 발생하기 쉬웠고, 이 때문에 D형 시기에 심각한 비전투손실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A형부터는 엔진과 변속기에 리미터를 장착, 2500rpm으로 600마력 이상을 내지 못하도록 제한을 걸었다. 물론 리미터 해제는 가능했고, 실제로 많은 부대가 리미터를 해제했다. [2] 큐폴라에 장착하는 대공기관총은 고정 배치되는 기관총이 아니며, 보통 차체 전면의 통신병용 기관총을 탈거 장착했다. 단 종종 대대가 운용하는 일반차량 및 그 승무원들 앞으로 지급된 MG42 기관총을 빌려 장착하는 경우도 있었다. [3] VK30.01은 티거 개발용으로는 중장갑 및 대구경 주포 탑재가 불가능하여 폐기된 시안이었다. [4] 2차 대전 때는 U보트의 엔진을 만든 적도 있었으며 현재는 트럭 생산으로 잘 나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MAN 상표가 붙은 덤프나 트레일러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더불어 디젤 엔진 관련 각종 원천기술을 보유한 업체로, 세계시장을 휩쓰는 우리나라의 디젤 엔진 메이커들로부터도 막대한 로열티를 받아먹고 있다. 과연 더러운 덕국... [5] 물론 티거가 더 우수한 전차였지만 노획한 티거는 소련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각종 화포로 난타하는 동영상을 제작하는데 소모 되었다. [6] 판터 7대가 t-34 70대와 마주쳐서 아무 손실 없이 t-34 28대를 격파한다든지, 대대병력으로 (한대의 4호전차와 4대의 판터를 손실하며) 107대의 소련전차를 격파한다든지 하는 전과는 있었지만 티거의 전설적인 전과에 비하자면 평범한 수준이라서 비교하기 민망 한 정도.
[약 41X27X7 센티 가량의 제법 큰 박스 입니다. 박스아트는 한정판 제품답게 이미지만 따서 올려두고 있습니다.]
[박스 측면에는 참고할만한 일러스가 잘 인쇄되어 있고요..]
[반대측에는 여러메이커의 도료 색상표가 상세하게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2. 내용 및 특징
[박스를 열면 원팩 팩킹된 부품이 있습니다. 자랑스럽게 메디인 러시아 란 로고가 선명합니다.]
웬 판터? 항상 여름이면 있어왔던 즈베즈다사의 재포장 제품 입니다. 판터 D형은 즈베즈다 제품중 꽤 뛰어난 품질을 보여주고 있는데 가격도 저렴하게 나왔네요.. 같은 레벨제품이 5만원이 넘는데...
"Operation Citadel" 치달레 작전은 2치대전중 세계 최대의 전차전이 있었던 쿠르스크 전투(러시아어: Курская битва, 영어: Battle of Kursk) 을 말합니다. 독일군은 이 작전을 "Operation Citadel" 치달레 작전 이라 불렀습니다.
쿠르스크 전투(러시아어: Курская битва, 영어: Battle of Kursk)
사상 최대의 기갑전.
이제 우리 독일군과 소련군은 완전히 동격이다. 우리만 할 수 있고, 그들이 할 수 없는 일은 한가지도 없다. -독일 제6보병사단장 호르스트 그로스만
첫댓글 오타가 있네요.
Citadel .. 치타델 작적이 모두 치달레로 잘못 표기된듯... 멋진리뷰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