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빌라로 가는 길...
십자가의 성 요한 성당이 있던 세고비아를 떠나 대 데레사성녀의 고향인 아빌라로 갑니다.
먼지가 휘날리는 황량한 들판 풍경이지만 성인들의 본향이어선지 정겹기만 합니다.
올리브나무들이 무성했고 순례자의 목을 적셔주는 우물도 간혹 보였습니다.
버스 안에서 지나가며 찍은 사진이라 엉망입니다^^
아름답고 견고하고 웅장한 아빌라 성벽입니다.
사진을 미처 못 찍어 류 신부님 작품에서 모셔 왔습니다.
아빌라의 성벽은 길이가 2.5킬로에 달하고 높이가 12미터,두께가 3미터라고 합니다.
성벽은 태양빛이 이동함에 따라 시시각각 색깔이 변한다지요.
작은 도시 아빌라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느낌이었습니다.
이곳도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다가 12세기경 그리스도의 땅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빌라의 성녀 대 데레사의 성상이 있는 갈멜수도원 앞입니다.
아빌라 성벽의 북쪽 300미터에 있는 성 밖의 수도원이지요.
맨발의 갈멜회 창시자이며 개혁된 칼멜의 주도자이신 데레사 성녀는
27년간 이곳에 머무르시며 17개의 수도원을 세우셨답니다.
그후 이곳을 떠나 성 요셉수도원을 운영하시다 돌아와 14년간 머무르셨다네요.
예수의 데레사라고도 불리우는 성녀는 피흘리시는 예수의 상본을 보고 깨달음이 왔다고 합니다.
환시를 보고 영적체험을 하며 많은 편지와 저서를 내신 지적이고 완벽한 여인이었다고요.
봉쇄수도원인 갈멜수도원은 강생수도원이라고도 말합니다.
수도원 박물관 옆의 중정에 있는 십자가 석상입니다.
돌 십자가 아래 바닥에는 로마숫자 5,6,7이 보입니다.
대 데레사 성녀는 "완덕의 길'이라는 저서에서 인간의 영혼을 1~7궁방으로 나누어
하느님과의 일치가 되는 마지막 7궁방까지의 기도 변화과정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자세한 기도내용은 신부님의 설명으로 들어야겠습니다^^
박물관의 계단참에 모셔진 성녀의 유품들입니다.
함께 가신 형제님을 되도록 피해 찍으려 했는데.. 표정이 고요하니 그윽하십니다.
놀랍게도 수도원 수녀님들이 사용하셨을 이름모를 악기들이 보입니다.
늘 하느님께 기도하고 묵상하는 수녀님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당시에도 이런 멋진 악기를 켜셨을 모습을 상상하니
수도원의 생활에 새로운 동경심을 갖게 됩니다.
아빌라의 데레사성녀가 탄생하신 생가터 성당입니다.
1636년에 세워진 바로크식 성당으로 박물관도 함께 있었습니다.
성녀는 1515년 유대계의 가정에서 출생하셨고
아버지의 권유로 18세에 갈멜수도원에 입회하셨답니다.
일찌기 7살때부터 오빠와 순교하러 간다고 가출도 하셨다네요.
생가 성당 옆에 나란히 자리한 박물관 건물입니다.
내부에는 성녀의 친필로 쓴 책과 유품들,묵주..도토리묵주도 있었습니다.
족히 몇 백년은 되었을 고목은 프라타나스나무로 가지치기를 한 듯 합니다.
성녀님 생가 맞은편..아빌라성벽 아래 그늘에서 신부님이 쉬고 계시네요.
사진을 찍으면 피(?)하시는 분인데 워낙 지치셨는지 찍히셨어요^^
죄송하고 감사해요 신부님...
생가성당 안 중앙제대입니다.
바로 옆 방은 성녀가 태어나신 방이었는데
순례자들은 조용히 머리숙여 한참을 묵상하고 기도했습니다.
성당안을 여기저기 살피며 관람하다가
커다란 마포천에 그려진 과달루페 성모님이 계셔서 반가웠습니다.
성모님 옆에 모셔진 "프라하의 아기예수"상입니다.
성녀 데레사께서는 아기 예수님께 대한 신심이 깊어
성상 없이는 절대로 여행을 떠나지 않으셨다고 들은 기억이 납니다.
이러한 신심은 갈멜수도원의 특징이라고 하고요.
스페인 코르도바의 한 수도원 수사님에 의해 만들어진 아기예수님의 성상은
보헤미아(지금의 오스트리아)지역으로 모셔졌지만 결국 발원지는 스페인이란 생각을 해 봅니다.
제대 앞에서 기도드리는 데레사 성녀의 삶의 모습들을 색유리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성당 벽위로 스테인드 글라스 그림들이 환상처럼 이어져 있었지요.
성녀께서 선종하신 알바 데 또르메스(성모 마리아 수도원) 입니다.
데레사 성녀의 생가를 떠나 또르메스강을 건너 알바 데 또르메스 마을로 왔습니다.
좁은 골목을 지나 찾아 온 수도원의 작은 박물관에서 성녀의 심장과 오른팔을 보았습니다.
약품처리를 했겠지만 400년이나 지났는데도 선명하게 보입니다.
67세로 임종하실때 "주님 저는 거룩한 교회의 딸입니다" 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분의 고통의 삶으로 하여 후세의 많은 사람들의 신심이 커지고 깊어짐에 감사기도 드렸습니다.
수도원 박물관 옆..성 요한성당 건물입니다.
그날이 데레사성녀 축일이어선지 성장하신 남녀노인 신자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찍기 싫다는 클라우디아 자매님의 모습을 찍었습니다..예쁘지요?
살라망카 대성당의 외관 모습입니다.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던 늦은 오후,살라망카에 도착했습니다.
일찌기 로마 군사도시였던 살라망카역시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다가
그리스도교가 지배하는 도시가 되었답니다.
비좁은 곳에 순례자들이 넘쳤고 작은 디카로는 성당 전체를 담을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석재로 어찌저리 정교하게 조각했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대성당을 돌아나왔는데 다시 거대한 성당이 보입니다.
대성당 뒷쪽과 맞대어 건축한 고딕양식의 새로운 대성당이랍니다.
성인들의 모습과 그리스도의 탄생을 조각했다고 합니다.
붉은 문은 '용서의 문"이라는데 저 문을 들어가면 과연 모든 죄가 용서될는지요...
문의 이름만으로도 위안을 얻는 느낌입니다.
대성당 옆..살라망카 대학의 상부 모습입니다.
이곳 역시 촬영이 만만치 않네요.
위를 바라보니 목이 아플 지경입니다.
전체를 찍으려면 멀리 떨어져 찍어야 하는데 인파로 불가능했어요.
스페인 최고의 대학으로 유럽 4대 대학의 하나랍니다.
예수회의 창설자이신 이냐시오성인께서 공부하신 대학이지요.
이 사진부터는 폰으로 촬영한 사진이라 상태가 더욱 나쁘네요.
대성당과 대학을 보고 살라망카 거리를 걷노라니 특이한 모양의 집이 보입니다.
이름하여'가리비의 집"이라고 합니다.
산티아고로 순례하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기사단의 집이었는데
가리비(조개)는 순례자를 상징하며 순례방향을 표시하기도 한답니다.
지나는 길목의 작은 광장입니다.
저녁시간에 약속을 한 사람을 기다리는 모습들입니다.
사람사는 모습은 어딜가나 마찬가지란 느낌으로 바라보는데
한 아주머니가 우리를 보고 미소를 보냅니다.
감사함에 "챠오"하고 작은 소리로 인사를 합니다.
지나는 복잡한 거리의 상점에서 개구리 도자기상품을 발견하고 바로 찍습니다.
스페인은 도자기가 괜찮다던데 갈 길이 바쁘니 사는 건 언감생심입니다.
개구리는 살라망카 대학의 상징이고 살라망카 로고라고 합니다.
개구리는 뒷 걸음질을 못하고 앞으로만 튀기 때문에
학문과 자신에게 도전하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한참을 걸어 해질 무렵에 살라망카 마요르광장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아 까딱하면 일행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사진을 찍으며 잠시 쉬어 간다고 합니다.
보이는 건물은 필립5세의 흉상이 있는 왕궁자리랍니다.
중요(?)한 인물들의 조각품이 기둥마다 걸려 있네요.
그들에게 광장은 만남과 대화,문화의 공간이라고 합니다.
사방으로 노천 카페가 즐비했고 레스토랑마다 식사하는 사람들이 그득합니다.
시간이 허락하면 광장 카페에서 커피 한잔 했으면 좋겠는데
바로 출발한다고 안된다네요.
광장 바닥에 주저앉아 담소를 나누는 우리 순례자들 모습입니다.
춘천에서 오신 분들과 신부님,그리고 루까형제님이
유쾌한 대화와 함께하는 웃음소리가 요란합니다.
잠시후 아치형의 문을 나와 버스에 올라
내일을 위하여 숙소로 향해 떠납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께 감사드리며....
첫댓글 아빌라의 성벽...대데레사 성녀의 발자취...너른 광장과 노천카페....함께 따라다니는 기분입니다.. 햐둏다
고마우이..신부님의 훌륭한 사진과 설명을 읽다보니 봐도봐도 조잡하네~^^
신부님께서 선생님 카메라 피해 숨으시다 딱 걸리신것 같아요 심술쟁이 슨새임 조잡하긴요 우리야 신부님의 시선과 차원이 다를수밖에 없지요 (슨새임과 저는 또 급이 다르지만요^^) 그렇지만 또 다른 알콩콩한 재미와 아마의 신선함이 있어요 힘내세요
와~ 신선함~ 이런 기막힌 찬사를 주다니..그대는 정녕 표현의 마술사..암만 그래도 끙~ 신부님이 양떼 아줌씨들이 많은데다 더위에 지치시어 축 늘어지셨더라구..안되셨지만 우짜겠노~걍 때는 기회다하고..ㅎㅎ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