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 인하여
적적히 비어 있는 이 인생을
가득히 채워가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가까이, 멀리, 때로는 아주 멀리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라도
끊임없이 생각나고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지금, 내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명확한 확인인가
아, 그러한 네가 있다는 건
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녁 노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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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크리스마스였으면 좋겠다고
딸내미가 아쉬운 표정으로 학교엘 갔습니다
저는 또 서둘러 재원이를 완전무장시키느라
눈만 빼끔^^ 내놓고 칭칭감아 앞세우고 학교엘 갔지요^^
내일모레가 방학이고 졸업까지 앞두고 있는 교실이라
아이들은 삼삼오오 얘기나누기 바쁘고
그중 좀 노시는 형님들은 멋진 체 하기 바쁘시고^^
재원이눔은 칠판에 날짜 바꿔쓰고 친구들 흐트러진 옷매무새 바로 잡아주느라 바쁘시고
(열린 지퍼 닫아주기, 단추 잠궈주기, 목도리 끝 집어넣어주기 등등~)
저는 어떡하면 오늘 상록수로 도망을 가볼까 머리를 굴리고 있었습니다 ㅎㅎ
오늘부터 35분 단축수업에 어려운 수업도 없어서 저는 이때다 하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줄행랑을 쳤지요 음하하~~^^
눔이는 이럴때 엄마가 젤루 약해지는 걸 알기때문에
교실 문밖으로 고개를 길게 빼고 엄마가 안보일때까지 내다보며
간식거리를 마구마구 예약합니다
"포카칩~ 만두~ 약속~!"
일산이 더 북쪽이라 그런지 서울보다 추운것 같습니다
전철역에서 상록수까지 오는데 얼어죽을뻔 했습니다 ㅎㅎ
눈알까지 시려서 눈물이 찍...나더라니까요~
상록수엔 아기예수님이 구유에 곤히 잠들어 계시고
성탄트리도 반짝반짝~~
뜨거운 커피 한잔 만들어서 들고
성탄미사 풍경을 가만히 떠 올려 보았습니다
좁고 누추한 공간에 너무도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탁자에 앉으신 분들은 기도드리러 일어나면 다리를 다 못펴고
기마자세로 "엽~!" 하고 서있으셔야 했고^^
뒤에 앉으신 분들은 탁자도 없이 불편한 의자에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고 앉아
차가운 벽의 냉기를 견디고 계셨지요
유난히 추운 날씨에 멀리서 오신분이 많아서
들어서시는 분마다 얼굴이 빨갛게 얼어서 어찌나 민망하던지요...
우재명 도미니꼬 신부님도 전철을 몇번이나 갈아타고 오시느라 큰 고생을 하셨지요
우리 아이들을 기억하시고는 어른이 다 된것에 놀라워하시고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을 따듯한 미소로 반겨주셔서
언 몸과 마음이 다 녹아내렸습니다^^
성탄미사후 다과시간에는 행복한 웃음소리와 왁자지껄한 얘기소리에다
손님들이 바리바리 싸오신 선물들도 나누고
모두들 맛있게 먹고 마시며
아기예수님이 오신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미사에 오시려다가 독감이 심하게 걸려서 못오신 주바라기님이랑
주니맘님을 위해 미사중에 기도드리고
멀리서 마음을 보내주신 분들을 위해서도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 곡스어매가 혹시나 복지관 출근시작전에 한번 올 수 있으려나 기다리느라
열릴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다가
'아이구 이 추위에 곡스 데리고 안 오길 잘했지...' 하고는 포기했습니다 ㅎㅎ
가시는 길이 모두들 편안하셨기를 바랍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엔
마음이 가지 않는곳은 갈 수 가 없지요^^
그 귀한 시간 내서 와주신 분들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조병화 시인의 시를 빌어
감사한 마음을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며칠전에 제 생일이 지났습니다
올해는 운좋게도 해를 안 넘기고 생일상을 받았는데요^^
꽉 찬 50 이 된 기분이 어떠냐고 딸내미가 물어서
25세때보다 두배로 기분 나쁘지~라고 대답하려다가 (음하하하~~~^^)
"행복해~ 25세 때는 너희들 둘이 없었는데 지금은 있어서~!" 했습니다
다예는 갑자기 왠 25세?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제가 좋아하는 해물찜 한다고 낙지랑 사투를 벌이던 중이라
대충 넘어가 주었습니다^^
좀 덜 걸쭉하고^^(해물찜과 탕의 중간 상태 ㅠㅠ)
너무 오래 조리해서 해물들이 늘어진 거대한 해물찜 접시를 마주하니
고마운 마음은 가득하였으나 다 먹어치우진 못하고 (으으...)
게다가 홍시 4개를 갈아넣고 젤라틴 넣어 만든 홍시무스는
이미 한번의 소화과정을 거친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어서 ㅠㅠ
배가 터질것같아 못 먹겠다고 즘잖게 사양을 했지요 ㅎㅎ
주방은 냄비가 있는대로 다 나와있고
칼도 4개나 동원되고 해물이며 야채다듬은 찌꺼기에
설거지는 산더미~ 완전 초토화 되어 있었습니다 ㅠㅠ
그보다 앞서 마포수산시장에 가서 해물들을 사오느라
친구까지 동원해서 쇼핑을 했다는데
초인종이 다급하게 울려 현관문을 여니
물이 질질 흐르는 쇼핑백을 들고 가방을 메고 신발주머니를 들고
나머지 한손에는 촛불을 밝힌 케잌을 들고
금새 자빠질듯한 자세로 "짜잔~~" 하고 서있었죠^^
요즘엔 그렇게 문밖에서 촛불을 밝혀서 들고들어오는게 대세인 모양인데
힘들어서 찔찔 매는걸 보니 안쓰럽고 고마운 마음과는 달리
" 아이구~그걸 왜 밖에서 켜서 들고 난리야~힘들게~"
하고 잔소리가 먼저 나갔지요
보라가 선물해준 따끈따끈한 책(11월 말에 나왔으니 아직 안 식었죠?^^)
<그녀들은 자유로운 영혼을 사랑했다>를 받아들고
연휴때 읽을거리가 생겨서 기분이 좋아졌지요~
보라가 쓴 '한국 여성의 길이 되다' 의 나혜석 이야기를 젤루 먼저 보고
12인의 여성작가들의 이야기를 내키는 대로 보고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질투가 나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삶을 산 그들,
여성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의 생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았던 그들을 보며
저와는 너무도 멀리 있고 닮은 구석 없는 이야기에 조금 절망도 했습니다
'50살 까지는 아무 생각없이 맹하게 살다가 51살부터 정신차리고
멋지게 산 여성의 이야기는 없을까...?' 하며 슬그머니 웃음이 나기도 했지요^^
저에게는 그런 위인전기가 필요해요! ㅎㅎ
어쨌거나 보라가 이 책을 선물한 이유가 있을것이다...생각하며
새해부터는 결코 젊다고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으니
생각이란걸 좀 하면서 멋진 아줌마가 되도록 정신차려야 겠다 다짐했지요^^
이젠 사실 여성이라기보다는 중성에 가까운 나이잖아요 ㅎㅎ
재원이눔 하루 공부시키고
안 다치고 안 놓치고 무사히 집에 돌아와
밥먹이고 씻겨서 재우기까지 하면
더 바랄것 없이 감사한 나날들을 지내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이는 50을 넘었고
고3, 고1이 된 두 눔이의 키가 저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고
겨울산처럼 훤히 머리능선이 들여다보이는 줄어든 머리숱과
주름이 자글거리는 얼굴,
약간 불쌍해보이는 냄펴니의 뒷모습이 보이네요^^
어쩌면 나이 든다는것은 얼굴뿐 아니라 마음에도 주름이 자글자글 잡혀서
늘어난 표면적으로 무엇이든 포근하고 여유있게 싸안아야 하는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운 구석보다 불쌍해보이는 구석이 많아지고
도저히, 절대, 이런 단어들이 찔리고 무서워서 못쓰게 되는것...^^
재원이눔은 오늘 반 여자친구에게 선물을 받았습니다
예쁜 젤리펜 4개,조각 퍼즐로 만든 곰돌이 푸 열쇠고리,
몇개인지 헤아려보지못한 조그만 종이 별들,
색색가지 종이학, 그리고 빨간 봉투에 든 편지까지.
...곰돌이같이 귀엽게 생긴 재원아~ 너는 하는짓도 귀여워서
고등학교가서도 잘 할거야, 보고싶을거야~! 도희가...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무심한 눔이는 젤리펜으로 낙서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저는 나머지 선물들을 성모님앞에 올려놓고 말씀을 드리는중에
저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렀습니다...
덩치가 산더미에 여드름 투성이인 재원이를 귀엽다고 챙겨주고 보살펴준 아이들...
그 고운 마음이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운지요...
졸업식날 이 아이들과 어떻게 헤어질지 엄두가 안나서 벌써부터 겁이 납니다
그리고 요즘 아이들이 무섭니 어쩌니 해도
제가 가까이서 본 아이들은 모두가
누군가의 자식이고 희망이 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요즘 젊은 아이들>은 버릇없고 무서운 존재이지만
그 젊은 무모함과 선입견없는 순수함이
세상을 바꾸는 희망이 되기도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하도 추우니 지나는 사람도 별로 없고
입만 열면 춥다는 소리가 절로 나와서
기왕 벌어진 입으로 눔이랑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며 왔습니다^^
예스터데이이이~~~로 시작해서 캐롤까지 불러제끼며 돌아온 집은
세상에서 제일 편안하고 따뜻한 곳이었습니다
50이 넘도록 이루어놓은것도 없는데
가족이 돌아 올 따뜻한 둥지 하나 마련해놓고
찌개 보글거리며 기다릴 수 있는것만도 감사한 생각이 드니
이렇게 꿈이 작아서야 어디 저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같이
살아보겠나 싶어 한숨이 푹...납니다^^
분주하고 아쉬운 성탄 연휴가 지나고
곧 밝을 새해에는 모두들 마음에 간직한 꿈 하나씩 이루어지시길 바랍니다
제일 소중한 꿈 하나씩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드릴께요~
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
(먼곳에 계신 류신부님도 건강 조심하세요^^)
평화롭고 따뜻한 저녁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첫댓글 와~~~ 언니! 이 긴 글을 이렇게 세세하고 달콤하게^^ 글이 더 감동! 다예가 매일 크리스마였으면 좋겠다고 했다니 기분 좋네요. ... 언니, 그리고 그 책은 엄마들이 싫어하는 책이래..ㅋㅋ 팔자 센(?) 여자들의 책이라고^^ ㅋㅋ 나도 나혜석에 대해서 사실 하고 싶은 한 마디를 다 못했어요. 불쌍하죠....이것저것 불쌍한 마음이 들어요. 조금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았다면 더 멋진 작품들도 남기고 그녀의 인생도 엄마들이 싫어하는 인생으로 끝나지 않았을텐데..하는 아쉬움 비슷한 거^^ 어쨌든 언니도 메리크리스마스! 저는 지금도 채점 중..채점하다 들어와서 봤어요.. 모든 보고서가 이런 글이었으면 참 읽기도 좋으련만^^
교수님 이거줄까 저거줄까 고민하지 마시고 올 A 주시라니깐요넹넹^^ 아 상대평가라서 안되는구나 나혜석이 한편으론 불쌍하기도 하지 부럽기도 하고^^ 근데 엄마들이 싫어하는 책이라구 난 엄마 아닌가부다
문패꽃 언니는 깨어있는 엄마지요! 울트라 엄마! 엄마 중의 엄마! ㅎㅎ
햐딸이 있으니 그런 이벤트도 있네그려^^ 조병화님의 시가 참 가슴에 와닿네.
그러니깐 딸 하나 더 낳으시라니깐요 홍홍 넘의 따님을 모셔오는게 빠르려나
나도 축하축하~ 그런데 오랜만에 하다보니 예쁜 거 어떻게 하는지 잊어버렸쪄요. ㅠㅠ
아이고슨새임 저는 차칸것과는 거리가 멀어욤 말만 떠벌떠벌하는거예요 희망사항이기도 하구요^^ 해주셔서 고마워요꾸벅
에궁...보라슨새임...예쁜걸 까먹으셨네욤 뭐 일 아니예요 사노라면 언젠가는 생각나는날이 있겠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