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르고스를 떠나
로욜라를 향해 떠나갑니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붉은 여명 위로 아침해가 떠오릅니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누군가 말한 것처럼
무한한 기대가 어제보다 풍성할 것 같은 오늘...
"낮을 밝히라고 해를 주시고
밤을 밝히라고 달과 별들에 질서를 정하신분...
이름은 만군의 주님이시다" <예레미야 31,35>


스페인 북부에 위치한 로욜라로 가는길..
험준하고 남성적인 위용의 독특한 산악 지형이 나타나고
고원도 평야도 아닌 첩첩산중의 깊은 산길입니다.
삭막하고 조금 음산한 느낌의 땅에 머무셨을 이냐시오성인의 고향...
어떤 곳일지..설레는 마음은 막을 수 없었지요.

로욜라 산골의 작은 집들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니
예상치 못한 거대한 바로크식 건물의 대성당이 나타납니다.
너른 광장을 지나 대성당으로 모두 입장합니다.
입구에는 이냐시오성인의 동상과 가문의 문장도 있었고요.
1534년, 예수회를 창설한 이냐시오성인은 바스크지방 로욜라 古城에서
부유한 귀족가문의 11남매중 막내아들(1491~1556)로 출생하셨다고 합니다.
이냐시오 성인께서는
10대에 이미 카스틸리야왕국 재무관의 시종을 지내셨고
20대에는 공작의 기사가 되어 군사 외교의 임무를 맡았다고 해요.

30세 때 프랑스의 침입으로 적과 싸우던 중,
포탄에 맞아 다리가 골절되는 상처를 입고
고향인 로욜라성으로 귀향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성인의 생애 1기가 끝나고
이 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젊은시절의 그는 매우 거만했으며 작은 키에 빨간머리를 가졌고
음악, 특히 성가를 좋아했었다고요.


대성당 입구의 이냐시오 성인의 조각상입니다.
이냐시오를 이그나티우스로 발음했던 옛날이 생각나네요.
예수회는 제수잇 교단이라 했었고요.
말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카톨릭에서 신교가 분리되었다면
이냐시오성인은 로마카톨릭 자체의 개혁을 선도한 분이 아닐런지요.
참으로 훌륭하고 대단하신 분..이냐시오....

로욜라성에서 다친 다리를 치료하고 회복하는 동안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생애에 관한 책을 읽으며
영적인 각성을 얻게되는 생애 두번째 시기를 맞게 되지요.
돌아온 방탕한 아들을 맞아 준 육신의 아버지처럼
그분의 지친 영혼을 달래주신 자비의 하느님을 저희도 사랑합니다...
"참으로 내가 너에게 건강을 돌려주고
너의 상처를 고쳐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예례미아 30,17~>

대성당 중앙제대입니다.
자서전에서 "명성을 얻으려는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군사훈련을 큰 기쁨으로 생각했으며
세상의 허영에 빠진 사람" 이었다고 성인은 고백합니다.
세속적으로 오만하게 살았던 그분이
육신의 상처로 인해 영혼의 치유를 받은 셈이지요.
우리의 상처받은 영혼도 주님께 다가가면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겠지요.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대성당과 연결된 로욜라성 생가에는
이냐시오성인의 박물관과 소성당이 있었지요.
위의 사진에 1층 경당 돌벽의 십자고상과
적과 대항하기 위해 포를 장치했던 당시의 공간이 보입니다.
생가 건물로 들어서면서
예수회 신부님들이 녹음해 놓으신 한국어 해설을 들을 수 있었지요.
3층까지 이르는 동안 보고 듣고 찍으며, 피정에 온 듯 편안합니다.

생가 2층에 있던 유물 전시실의 유품들...
이냐시오 성인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하여 자신의 죄를 씻고
성인들의 금욕생활을 본받기로 결심 하셨다고 합니다.
만레사의 수도원에서 혹독한 참회와 극기의 시간을 보내면서
영적인 삶을 살도록 변화 되어지시고요.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속을 걷지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것이다"<요한 8,12>

1522년, 성인은 로욜라성의 가족을 떠나
스페인 북동쪽에 있는 순례지 몬트세라트로 갑니다.
참회하는 의미의 베옷을 걸치고 야망을 포기한다는 표시로
성모상 옆에서 사흘간 죄를 고백하며 밤을 지새워 기도했다고 해요.
그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1년간 탁발하며 小食하고
머리와 손톱도 깎지않는 등, 자신을 매우 고통스럽게 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통회하며 기도하신 성인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가진 것은 없어도 마음의 평화가 넘치셨을 그분이야말로
순명,정결,청빈을 몸으로 실천하신 분이십니다.


젊은 군인이었던 성인이 프랑스군과 싸우던 곳,
스페인 북부의 팜플로나 요새 모형도 사진입니다.
요새 안의 집들이 참 정답고 이뻤어요.
이곳을 지키려다 다리부상을 입어 로욜라로 귀향하게 된 것이지요.
성인의 삶의 여정을 묵상하면서
주님이 예비하신 계획을 사람인 우리가
어찌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성인께서 태어나신 방입니다.
어머니 도나 마리아는 출산후 바로 돌아가시어 유모밑에서 크셨다네요.
부유한 가문의 11남매중 막내여서 귀여움은 받으셨겠지만
채우지 못한 모정이 늘상 그리우셨을 성인..
부친은 사제가 되길 원했지만 그의 성품이 적합치 않음을 깨달았다고요.
세례명인 '이니고 1491년"이라 명명된 나무상이 보이네요.
정확한 이름은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라고 한답니다.


유물 전시실의 서가에 꽂힌 오래된 책들과 생활집기들..
다친 다리를 회복하는 동안 예수님과 성인에 관한 책을 읽었지만
자주 전쟁이야기를 하고 아름다운 옛 애인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몸이 회복되던 어느날, 성모님의 환시를 체험하고
성지순례를 떠나게 되었다고 해요.
자비로움과 가난의 삶을 서원하면서...


3층에 있던 "회심의 방" 경당인 이곳에서
류 신부님의 집전으로 순례자들은 감격적인 미사를 드렸지요.
"회심 순간의 이냐시오" 성인의 황금동상이 신부님 오른쪽에 아주 작게..
죄를 씻고 금욕의 생활을 결심하고 회심의 길로 들어선 성인은
매일 미사에 참석하고 하루 7시간씩 기도했다고 합니다.
만레사 외곽의 동굴에 들어가 기도하며 영적 기쁨과 내적인 빛을 얻었다고요.
"깨달음의 눈이 뜨여 영혼과 신앙에 대해 많이 깨닫고 이해하였다" 라고
자서전에 쓰셨다고 합니다.

예수회 사부님이신
이냐시오 성인을 묵상하며 경내를 돌아보시는 류신부님..

박물관 벽의 여러곳에 장식된
성인의 일생을 표현해 놓은 부조물입니다.
로욜라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오랜 고통과 시련끝에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이냐시오성인의 일대기가 그려져 있었지요.
만레사에서 그 유명한 "영신수련" 소책자 초안을 작성했는데
후에 추종자들의 영성수련을 위한 귀중한 지침서가 되었다고 합니다.
"타는 불" 이란 의미의 이냐시오 성인은
자신을 태워 주님께 헌신하고 참된 신앙을 위해 몸 바치신 분...

생애초기, 공작의 기사였던 성인의 모습이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더욱 화려합니다.
기사교육을 받은 멋지고 친절했던 그분은
싸움이나 노름, 연애에도 일가견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 때,세상적으로 살지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성인처럼 위대한 회심이나 극기는 언감생심이지만
견딜만큼의 시련과 함께 희망도 주신다는 것을 늘 감지합니다.

사제가 되기전
예루살렘을 비롯,각지를 돌며 순례하던 성인은
추종자들의 독특한 옷차림과 생활방식으로 이단으로 몰리게 되지요.
구속이 되어 감옥에 갇히고 재판을 받는 등
험난한 길을 걷다가 결국 스페인을 떠나게 됩니다.
파리에서 7년간 공부하며 프랑스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동료를 모았는데 그들이 훗날,예수회의 공동 설립자였다고 합니다.
이들 중에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도 계셨다지요.
존경도, 지지자도 많았지만 반대도, 적대자도 많았던 성인은
死後 50년이 지난 1609년, 복자로 추대되지요.
1622년, 모든 은둔자들의 수호성인에 오르게 되고
성인으로 추대한 그레고리오 교황은
"그는 우주를 끌어 안을 수 있는 크고 충분한 가슴을 가졌다"
라고 말씀하셨답니다.

팜플로나에서 프랑스군과 싸우던 중
다리에 부상을 입고 로욜라성으로 돌아온 성인의 상입니다.
들것에 실려 온 고통스러운 성인 곁에
충직한 한마리 개의 조각상이 인상깊게 느껴졌었지요.
33세 늦깎이로 시작한 신학, 철학자로의 길을 걷던 성인은
46세에 이르러서야 사제서품을 받아 가톨릭 교회의 지도자가 됩니다.
이냐시오성인을 만학도, 군인의 주보성인으로 모시는 이유를 알겠네요.
성인의 기도문 한 꼭지 올립니다.
주님 받아 주소서
제가 가진 모든것
제 모든 자유와 기억과 이해와 의지를 거두어 주소서
모두 다 당신이 주신 것입니다
오 주님 당신께 돌려드립니다
모든것이 다 당신의 것입니다
온전히 당신 뜻대로 처리하소서
제게는 당신 은총을 주소서
이것이면 제게는 넉넉합니다
주님 감사드립니다
웃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으로 그들의 입을 열어주소서
모든것이 당신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해 주소서..
오늘 하루도 당신의 전능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진실된 하루가 되게 하소서...

로욜라 순례를 마치고 버스로 달려왔습니다.
시가지옆의 강물이 푸르다는 생각이 들어 어디일까 했는데
알고보니 스페인 최북단의 '산 세바스찬'이란 도시였어요.
대서양의 바닷물이 강물과 합류하고 있었지요.
예정에 없던 도시를 만나 시원한 대서양을 바라보는 횡재를 만끽합니다.

산 세바스찬은
피레네산맥을 경계로 스페인과 프랑스 접경지역의 해변도시로
매년 국제영화제가 열린다고 하며 스페인 제1의 피서지랍니다.
이 곳 산골 어딘가에 아홉그루의 소나무가 있는 곳에서
성모님의 발현이 계셨다고 합니다.
추웠지만 멋진 바닷바람을 쏘인 순례자들은
기쁘게 순례의 길로 다시 나섭니다.
이제는 피레네산맥을 넘어 프랑스의 루르드 성모성지로....
첫댓글 엉망인 사진보고 모두 놀라겠네
ㅠ.ㅠ 캐더린 문패
보라
님덜 답글지워 미안

사진 찾느라 머리 뽀개지는줄 알았으이

미안은 무슨^^ 괜찮아요
선생님, 이번엔 잘 보입니다.

멋지십니다




사랑 
머리 안
아나게 꽁꽁 묶고 주무세요

슨새임 대단하세요
저는 예전에 몇번 고치다가 포기해버렸는데 
댓글은 날아갔지만 그 덕에 다시 한번 꼼꼼하게 이냐시오 성인의 생애를 묵상했어요 감사해요
편히 주무세요

재원아 고마워
지워 없애려다 용기내어 두 컴터 왔다리갔다리해설랑 겨우 회생시켰당
잘 자아








역시 시청각교육의 효과는 큽니다..글로만 읽으며 상상한 것과 보고 들으며 읽으니 느낌이 다릅니다. 이냐시오 성인의 발길을 따라 함께 묵상해봅니다. 이제 루르드로 따라갑니다...
사진이라고 원..시컴시컴하고 작고..그래도 느낌이 다르다니 안올린거 보담..

오늘은 날도 푹하니..맴도 여유가 생기누먼..좋은 하루



선생님, 글을 차분히 다시 보니 참 좋네요
사진도 참 아름답고^^ 로욜라 성인이 46세에 사제가 되셨다는 게 새
스러워요. 그분의 참회와 하느님과 함께 그분안에서의 새출발. 그런 새해를 꿈꿔봅니다. ^^ 우리 상록수 가족들, 책 한권 내도 되겟어요. 성지순례 특집으로 해도 될 거 같고^^ 




하트 

혹시 대머리


제가 너무했나용 

십자가의 성 요한의 글은 저도 참 많이 보았지요. 좋아했어요^^ 캬캬 



와..상 진짜 좋네용..맛있게 먹었슴당...얼마만에 받는 상이뇨..
샘도 내일부터 추워진다니 건강조심하세요



텍스트콘 진짜 많네용...



어제 재식군의 따뜻한 문자를 보고 아침에 생각이 나서 들렀어요.. 요즘 생각이 많아 생각을 헝클어 놓고 있었는데..
선생님의 이 글을 읽으니,, 나 뭐하고 있었지? 이런 생각이 드네요..^^ 마흔하고 세살..나 뭐 하면 안될까? 에서 출발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ㅎㅎㅎ 언니들 말이 원래 그 나이에 그 바람이 한때 지나가야 하느니라 하던데요,, 정말 그래요??ㅎㅎ 좋은 음악과 글 잘 읽고 갑니다..
아니
인석이 재정엄마한테꺼정 문자를

재정엄마 안 들어와 홈이 쓸쓸한걸 알았남


마흔셋이라..뭔지 모르지만 하고픈게 있음 해야할 나이라고 난 생각하는데..좀 있음 늦거들랑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쁘고 상냥한 모습 보게돼 고마워 재정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