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8일날 안전운행을 기원하는 노제를 모시고
동참 불자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드릴 금강저입니다.
모양은 9고금강저 모양으로 만들어져서
보기에도 화려해 보이고 보기 좋습니다.
매년 기원노제를 지내고는 한점씩
차 백미러에 걸고 다니든지
아니면 지갑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소품을 하나씩 전해드렸는데
올해는 금강저로 하였습니다.
대략 30여년전 공주 지역을 통행하는
차량들의 안전운행을 기원하는 노제를
공산성 입구 광장에서 시행을 하였던 것이
이제는 원효사 법당에 모여 불공 올리고
무사고 안전운행을 축원하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다량으로 구입한 금강저는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양이 세련되고 정교하면서 아름다워서
파사현정하는 제석전왕의 법구로써나
불전 공양을 올릴 때 많이 사용되는 도구입니다.
백과사전에 나오는 금강저 설명을 인용합니다.
1.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불교 용구의 하나. 저(杵)는 인도 고대의 무기 가운데 하나이다. 제석천이 아수라와 싸울 때 코끼리를 타고 금강저를 무기로 삼아 아수라의 무리를 쳐부순다고 한 신화에서 그 신비한 힘이 유래되었다. 그리고 인도의 여러 신과 역사(力士)들이 이 무기로써 적을 항복시킨다고 한다. 뒤에 밀교에서 적을 쳐부수는 의미로 이 무기를 불구(佛具)로 채용하여 여러 존상의 지물(持物)로서, 또는 수행의 도구로 사용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의 밀교계 종파에서도 진언(眞言)을 외면서 수행하는 자는 항상 금강저를 휴대하게 되었는데, 그 근본 뜻은 여래의 금강과 같은 지혜로써 능히 마음 속에 깃든 어리석은 망상의 악마를 파멸시켜 자기 심성의 청정한 지혜 광명을 발현시키려는 데 있다. 밀교의 만다라(曼茶羅)에는 금강부(金剛部)의 여러 존상이 모두 금강저를 지닌 것으로 되어 있다.
≪열반경≫에는 밀적금강역사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금강저로써 모든 악마를 티끌과 같이 부수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에 근거하여 우리 나라의 신중탱화(神衆幀畫)에서는 중심이 되는 동진보살(童眞菩薩)이 반드시 금강저를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 불구의 형태는 손잡이 양쪽이 뾰족한 독고(獨鈷)만 있는 것과, 양끝이 2·3·4·5·9갈래로 갈라진 2고저(鈷杵)·3고저·4고저·5고저·9고저 등이 있다. 최초에는 그 형태가 일종의 무기형으로 뾰족하고 예리하였으나 불구로 사용되면서 끝의 여러 가닥이 모아지는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불경에는 금강저 외에도 여래최상금강저(如來最上金剛杵)·분노금강저(忿怒金剛杵)·미묘심금강저(微妙心金剛杵) 등의 이름이 보이고 있으나 이들은 실제로 만들어지거나 사용되지는 않았다.
이들 중 독고가 가장 오래된 형식이라 하며, 손잡이 좌우에 불꽃문양 형태를 조각한 경우 이를 보저(寶杵)라고 하고, 탑을 조각한 것은 탑저(塔杵)라고도 한다. 이들은 2고·3고의 금강저와 함께 밀교의 단(壇)에 배치된다. 독고와 2고·3고 및 보저와 탑저를 가리켜 5종저라고 하는데, 단을 설치할 때는 탑저를 중앙에, 그리고 나머지는 사방에 배치한다.
현존하는 고려시대 금강저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길이 22㎝의 청동오고금강저가 있으며, 일반 사찰에서는 조선시대의 금강저를 볼 수 있다. 또, 고려시대의 사경(寫經)·변상도(變相圖: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그림)에는 가장자리를 금강저문(金剛杵紋)으로 장엄한 예가 자주 나타나고 있으며, 현존하는 신중탱화에서는 대부분 이 불구를 찾아볼 수 있다.
2.
원래는 제석(帝釋)의 전광(電光:번개)에 붙였던 이름이었으나 점차 여러 신들이나 역사(力士)가 지니는 무기를 가리키게 되었다. 불교로 수용되면서 금강저는 그 단단함 때문에 모든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되었고, 불교의식에서는 마음의 번뇌를 없애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뒤에 밀교에서는 금강령 (金剛鈴)과 한 짝이 되어 의식법구로서 사용되기도 했다. 형태는 손잡이의 양쪽 끝에 뾰족한 창[杵]과 같은 것을 붙였으며 창의 수에 따라 독고저(獨杵)·3고저(三杵)·5고저(五杵)·9고저(九杵)로 나누어진다. 또한 형태가 특이한 것으로 탑저(塔杵)·보주저(寶珠杵)·구두용저(九頭龍杵)도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금강저는 3고저와 5고저가 가장 많으며 대부분 국립중앙박물관과 각 지방의 사원에 전해지고 있다. 경주 석굴암 원형실(圓形室)의 제석천이 들고 있는 5고저는 현존하는 8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의 중요한 금강저의 예이다. 그밖에 악마를 항복시켜 사악한 것을 몰아낸다는 벽사(邪)의 의미에서 만다라(曼茶羅)나 사경화(寫經畵) 등 불화의 테두리에 금강저 무늬가 장식되어 있고, 길상 문양으로서 일반 금속이나 목공예품에도 널리 사용되었다.
3.금강저는 주로 밀교의식에 쓰이는 작법용 불구로 번뇌를 없애는 보리심을 상징한다. 제불존상이 가진 법구 또는 승려들의 수행도구로 사용된다. 원래는 고대 인도의 무기였다. 밀교에서 불구로 채용한 것은 제석천이 금강저를 무기로 삼아 아수라를 쳐부순다는 신화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의 밀교계 종파 에서는 진언을 외면서 수행할 때 항상 금강저를 휴대하게 되어 있다. 그 근본 뜻은 여래의 금강과 같은 지혜로써 능히 마음속에 깃든 어리석은 망상의 악마를 파멸 시키려는 데 있다. 밀교의 만다라에는 금강부의 여러 존상이 모두 금강저를 가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에는 금강역사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금강저로 모든 악마를 티끌같이 쳐부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에 근거하여 우리나라의 신중(神衆)탱화에서는 동진(童眞)보살이 반드시 금강저를 들고 있다. 금강저는 금. 은. 동. 철 등으로 만들어지며 불교의금속공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형태는 손잡이 양쪽이 뾰족한 끝을 가졌다. 모양에 따라 뾰족한 끝이 하나인 것은 독고(獨)), 2. 3. 4. 5. 9 갈래로 갈라진 것은 3고저. 4고저. 5고저. 9고저라 한다. 최초에는 그 형태가 무기형으로 뾰족하고 예리했으나 불구로 사용되면서 끝의 가락이 모아지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들중 독고가 가장 오래된 형태이다. 손잡이 좌우에 불꽃 모양을 조각한 것은 보저(寶杵)라 하고, 탑을 조각한 것은 탑저(塔杵)라고 한다. 독고와 2고. 3고.그리고 보저와 탑저를 5종저라 한다. 이들은 밀교의 단(壇)에 봉안되는데 탑저는 중앙에, 나머지는 사방에 배치한다. 현존하는 금강저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길이 22㎝의 고려시대 청동5고금강저가 소장돼 있으며 일반 사찰에서는 조선시대의 금강저를 볼 수 있다. 고려시대의 사경. 변상도에는 가장자리를 금강저문(金剛杵紋)으로 장엄한 예가 자주 나타나며, 현존 신중탱화에서는 대부분 금강저를 볼 수 있다.
동참한 불자님들께 바라는 것은
부디 금강저를 차에 걸고 다니면서
안전운행 하도록 더욱 힘써 주셔서
모두의 행복을 지켜주실 것을 당부합니다.
공주 상왕산 원효사 심우실에서
나무석가모니불
첫댓글 안전운행 기원 노제 고맙습니다
스님도 안전운행 무사고 기원합니다 _()_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금강저
스님과 불자님들 모두 안전운행하시기를 기원합니다_()_
고맙습니다
모든분들 안전운행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