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에 내려오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다시 집에 올라가려니 시간이 촉박하고...
어쩌나 망설이고 있는데
재원이 녀석이 "우산~!" 하면서 냅다 계단으로 뜁니다
눔이 붙들어 엘리베이터 잡아타고 올라가 우산을 챙겨 옵니다
두 덩치가 쓰려니 골프우산으로 챙겨 옆 사람들에게 민폐끼치며 걸어갑니다^^
누나 학교 옆을 지나갑니다
하얗고 여린 보라빛의 라일락꽃잎이 비바람에 떨어져 있습니다
눔이가 하나 집어들어 "꽃~" 하며 코에 대어 줍니다
꽃을보면 가까이가서 향기를 맡고 예쁘다고 말해주고...
그리고 손끝으로 살짝 건드려 보는것까진 괜찮아, 하고 아기때부터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지고 싶다면 땅에 떨어진 꽃잎은 줏어서 들고다녀도 괜찮아
그치만 먹으면 안돼~^^
눔이는 "먹으면 안돼~먹으면 안돼~" 하면서 꽃잎을 들고
고개를 양쪽으로 신나게 까딱거리며 학교엘 갑니다
전철안에서는 조용해야 한다고 전철 탈때마다 소근거렸더니
대체로 조용히 하는 편이지만
가끔 복습하느라, 또는 자기가 잊지 않았다고 얘기해주려는듯
" 떠들면 안돼~ 쉿! 조용~~" 하며 큰 소리로 말을 합니다
그 말에 대답을 안해주면 계속 확인하려드니
얼른 "그래~ 잘했어~" 합니다
그 소리에 졸다가 깬 몇몇이가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눈 마주치면 "히..." 미안한 웃음을 흘립니다
전 좀 헤픈 여자가 되었습니다
원래 헤펐나...?^^
이제 두달도 안 입은 교복이 벌써 보풀이 일고 10년 입은듯한 옷이 되었습니다 ㅠㅠ
학교에선 복도 벽을 어깨로 등으로 팔로 쓸고 다니고
전철에선 에스컬레이터타고 바지로 스스스...문지르며 지나가는걸 즐기니
하루나 늦어도 이틀이면 교복을 빨아야해서
한학기에 두벌씩 사서 번갈아 입혀도 금새 옷이 낡아 버립니다
등하교길에 길에서 다른 학교 또래 눔이들을 만나면 교복의 낡음에서 풍기는 만만찮은 포스에
형님의 기운이 느껴지는지 지레 눈을 내리깔고 슬슬~~ 피해가기도 합니다
그럼 같은 학교 아이들은 어떠냐구요?
재원이를 보면 남학생 여학생 가릴것없이 쫓아와서
얼굴을 막막 쓰다듬으며 귀엽다고 합니다 헐...^^
그러면 저는 새삼 눔이를 꼼꼼 쳐다보며 어디가 구여운지 살펴 봅니다
저야 엄마니 고슴도치 모양이래도 구엽지만
친구들 눈에 귀엽다니, 그건 눔들이 맴에 원래 살고 있는 사랑스러움 일거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아이들은 옆에 껌처럼 붙어다니는 저에게도 아랑곳하지않고
애기 다루듯하며 보살핍니다
입학해서 벌써 대여섯가지 빵을 맹글었는데
누나가 학교에 가지고가서 어찌나 뻥을 쳐댔는지(안봐도 비됴^^)
그 빵 안맛있다고 했다가는 후환이 두려워서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하여간에
재원이 별명이 김탁구로 등극이 되었고
김탁구빵을 기다리는 매니아들도 생겼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오전 내내 빵을 굽는 요일에는 집에도 가져가게 빵을 싸 주시는데
반은 누나가 학교에 가져가고 반은 아빠가 회사에 가져가고~
워낙 인기가 좋아서 재고가 없습니다
월요일엔 직업교육의 일환으로 홀트학교에 가서 빵을 굽는데
옆에서 거드느라 서당개 삼년의 경지에 이르러
저도 이제 다섯가지 정도는 만들줄 압니다 ㅎㅎ
레몬 마들렌, 단팥빵, 콘 크림 브래드,쵸코칩 쿠키,파운드 케잌 등등~
자기가 만든 빵을 들고 기분이 좋아져서
홀트학교의 아름다운 동산을 일부러 멀리멀리 돌아돌아 걸어나오는길은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운지...색색가지 고운 빛깔의 꽃들이 피어있고
새들이 노래하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그곳을 걷다보면
걸음을 한발짝 옮겨놓기위해선 온몸의 근육을 다 긴장시키고 보조기구에 의존해야하는
장애학생들을 종종 마주치게 됩니다
만나면 그저 웃는 낯으로 인사만 건넬뿐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한발 한발 힘겹게 그러나 천천히 평화롭게 나무그늘아래로 걸어가는 그 아이들뒤로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며 따르는 분들이 또 계십니다
선생님인지 봉사자인지 가족인지 모르지만
기다려주고 보살펴주는 그 눈길에 제 마음에도 감사가 차 오릅니다
저 혼자 끄떡거리며 걸어왔다고 생각한 지난 길들 뒤에
누군가가 서서 지켜봐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듭니다...
즐거운 편지 /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류신부님께서 언젠가 이 시를 들려주셨는데,
시인이 사랑을 사소하다고 노래한 이유는 아마도
아무것도 바라지않는 사랑이면서 동시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절대 멈추지도 않을 사랑이라는 말이 아닐까...생각을 해봅니다
지난번 올려주신 신부님의 글을 읽으며
이 시가 생각이 났더랬습니다^^
하느님께 향하는 절절한 사랑을 노래하고 계신 글을 보며
같은 피조물^^로서 살짝 질투도 났었지요~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런 사랑은 못해볼거야 하는 맘이 들었거든요 ㅎㅎ
하긴 신부님과 제가 같은 등급이겠어요~? ㅎㅎ
비바람이 불어와 창틀을 흔들고
얼마남지않은 봄꽃들을 흔들어 댑니다
내리는 비로 새로생긴 작은 물길에 꽃잎이 하얗게 떠서 흘러 갑니다
물길이 떠내려온 꽃잎들이 켜켜이 쌓아 하얀 꽃무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지나 갑니다
언제 떨어져 어디로 흘러내리다 어디에 쌓일지 모르는 연약한 꽃잎이
우리의 인생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아름답게 창조되어 햇살과 바람에 나부끼다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니
그만하면 됐지요...?^^
손가락으로 꽃물을 가만히 저어 봅니다
재원이눔이 봤으면 "지지~~" 라고 했겠지요^^
눔이 안볼때 실컷 저지리를 하고 일어납니다
벌써 점심시간이 되어 가네요
맛있는 점심들 드시고 변덕많은 날씨에 감기 조심하세요
(우리의 왕온니는 감기가 하두 심하게 걸려서 거의 그로기 상태랍니다 )
그럼 저도 바람에 날아가지않게
점심 든든히 마이~먹겠습니다^^
별 걱정을 다 한다구요?
그러실줄 알았어요~ 메롱^^
첫댓글 아 빵 먹고자푸다 재원엄마야한번 상록수에서 빵한번 맹글어봐라..아참 오븐이 없어 안되나거운 편지..제목과 리 고즈녁하네..기다림의 미학이랄까, 내면으로 감추는 사랑의 소중함을 표현한건가 조흔글 자알 읽고 가네 고마워
봄비라는 제목이 넘 상큼하고나..오늘 문열어놓고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나무막대기 다듬었당..몬지가 하도 나서리
황순원님의 아드님 황동규님의
막대기 다듬는 일이 너무 가루먼지가 많이 나와서 코가 간질거리더라구요 비오는데 고생 많으셨어요 이런 날은 치지직 전 부쳐먹으며 놀멘놀멘 일해야 맛인데 참 마음이 가는 시지요
비오는 날....봄비 내리던 날 참 좋더마....오늘은 비온뒤 하늘이 어찌나 맑은지 맑은 하늘아래 투명한 초록의 나뭇잎이 어찌나 이쁜지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차한잔 하면서 내려다보는 바깥풍경이 눈이 부신 봄날아침....오늘도 행복한 하루
댓글이 늦어서 미안해요언니^^ 만날 시간에 쫓기며 사는 느낌인데 하루에 잠깐씩이라도 시간이 멈춘듯한 순간이 오죠...그런 느낌이라도 없으면 참 삭막할것 같아요... 비가 내리면 마음까지 촉촉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주변이 온통 소프트해지고 아름다워 보이고...
저는 봄비를 참 좋아했어여. 차한잔들고 창가에서 비오는것 보고있노라면 내마음속 어둠과 먼지가 비따라 씻겨져나가는것같더라구요. 한국의 봄비가 그립습니다. 비온뒤의 맑은 새소리 , 꺠끗한 하늘 , 더 푸러진 나무들, 생기를 되찾은 꽃들.. 여기 그리스는 봄에 비가 거의 오지않네요. 대신 송진가루와 꽃가루가 비처럼 내려옵니다 .아니 막 날라다녀요. 사람들은 재치기를 많이하고 피부가 간지러워 긁어댑니다. 재원이 어무이 '봄비'가 내마음속 아련한 그리움으로 촉촉히 젖어드네요...
아유...그는 비가 잘 안오나봐요알레르기 있는 분들은 고생 많이 하겠어요^^ 가족분들은 모두 잘 지내시죠 잘 지내실거라 생각해도 멀리 떨어져있으니 맴이 짠하네요... 낼모레 성당에서 성지순례를 가는데 영훈이 생각이 나네요...그 녀석 점잖고 선비같은 모습이... 낯선곳에서 아이들 돌보고 적응하게 돕는일이 힘들텐데 좋아하는 봄비라도 볼수있으면 위로가 될텐데...에효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인생의 소중한 밑거름이 될 시간들이니 영훈엄마 힘내세요 으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