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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사순 제5주간 금요일
요한 10장 31-42절
“그때에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배은망덕 앞에서도
극도의 배신감에 밤잠을 설쳐본 적이 있으십니까?
의외로 부모 자식 간이나 친구 동료 등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자주 느끼게 되는 감정입니다.
이쪽에서는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헌신했는데,
그토록 오랜 세월 한결 같이 뒤를 보살펴주고 자상하게 챙겨줬는데,
내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돌봐주었는데,
결국 돌아오는 것은 비난의 화살이요, ‘○○가 되가지고 나한테 해준 게 뭐냐고’고 대듭니다.
그런 순간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을 잊게 됩니다.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 정신이 멍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동족들로부터 느끼셨던 심정이 그랬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셔서 우리 사이에 머무르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하신 일들 하나 하나는 모두 우리를 위해 좋은 것이었습니다.
오랜 병고로 신음하는 환자들에게 치유의 은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생명수 같은, 순금 같은, 보배 같은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온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친구가 되셔서 우리와 동고동락하셨습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새로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결국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육화강생은 너무나도 과분한 은총입니다.
수백 번 수천 번 감사를 표해도 모자랄 사건입니다.
너무나도 감지덕지한 황송스런 사랑입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의 하는 짓을 보십시오.
감사를 표하기는커녕 손에 손에 하나씩 돌을 들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향해 돌을 들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의도적이며 적극적인 ‘살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죽이기로 마음먹고 달려든다는 것입니다.
이런 동족들 앞에 예수님께서 느끼셨던 배신감, 비애감은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진노하시지도 않으십니다.
징벌을 내리지도 않으십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불쌍하고 가련한 마음에 또 다시 설득하십니다.
끝까지 대화의 창구를 열어놓으십니다.
그리고 간곡히 당부하십니다.
“그게 아니란다. 정말 그러면 안 되는 것이란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분위기 파악하고 마음 바꿔먹어라. 내게로 돌아와라.”며 신신당부하십니다.
우리 인간들의 배은망덕함, 돌까지 드는 노골적인 적대감 앞에서도 끝까지 인내하시는 예수님,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항상 우리들의 영혼, 우리들의 구원을
먼저 생각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지는 아침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가톨릭 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