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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남은 순례기 올립니다
행복했던 성지순례도 이제 마지막을 향한 여정입니다
어둠이 내린 이른 새벽, 루르드 성모성지를 떠나
떼제베를 타고 파리에 도착합니다
여섯 시간후,도착의 기쁨보다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버스도, 승용차도 아닌 기차인데도 내내 울렁이고 구토하고..
좌석을 달리는 반대 방향으로 앉아서였는지 어쩐지,암튼 고생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기차내 찻집에서 커피 마시고 환담을 나누셨다는데,
저는 떼제베의 추억이 무섭습니다^^
무엇보다 고흐의 그림을 옮겨다 놓은 듯한
프랑스의 전원 풍경을 감상도, 촬영도 못한것이 아쉽네요
<파리외방전교회>
파리 외방전교회 본부 건물
파리 뤼드박거리에 자리한 외방전교회는
아시아지역에 선교사를 파견하고자 1658년에 창설됩니다
反 그리스도 국가의 사제양성과 더불어 그곳의 관습과 전통문화를 인정하며
찾아간 선교의 땅에 유럽화된 교회 건설이 아닌
오로지 가톨릭 신앙만을 전할 것에 목적을 두고 활동하게 됩니다
1831년 조선교구가 설립되고 브뤼기에르 주교가
초대 조선 교구장에 임명되면서 우리나라와 처음 인연을 맺었지요
파리 외방전교회와 한국교회는 순교자들이 흘린 거룩한 피로 신앙의 형제가 되었고
어언 외방전교회 창설, 350돌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슬비가 조용히 내리던 오후..
건물 지하에 있는 순교자 기념관 소성당에서
순례자들은 미사를 드렸습니다
젊은 순교자들이 공부를 마치고 선교할 지역으로 파견되는 곳,
그 어느 곳보다 숙연한 느낌입니다
미사중 한 자매님이 부르는 성가가 유난히 애잔하게 들립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받아 주소서..."
주님을 전하고 평화의 사도가 되어 이국땅을 찾아간 순교자들..
거룩하고 의연했던 그들의 절규가 들리는 듯 합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친필로 쓰신 우리말 성서내용
파리 외방전교회는 한국인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님을 시작으로
1831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에 173명의 선교사를 파견했고
그 중 14분이 현재 국내에서 활동중이시라고요
파리 외방전교회에서 한국으로 파견되어
선교중 순교하시고 성인에 오르신 10분 사제의 명단입니다
익히 들어 본 엥베르, 샤스탕, 모방, 베르뇌, 도리, 다블뤼, 오메트르 신부님...
우리말로<안돈이>라 불리운 마리 니콜라스 다블뤼 안토니오 신부님은
"예수님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이다" 라는 말씀이 좌우명이셨다지요
충남 보령 갈매못 성지에서 참수 당하신 5분 중 한 분이시고요
파리 외방전교회는 설립후,170분의 순교자를 배출했고
이중 12분이 한국에서 순교하셨고 10분이 시성되었답니다
파리 외방전교회 대성당 내부
정결하고 소박한 느낌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외방전교회에 유학 온 젊은 사제들,
땅에 떨어져 죽은 하나의 밀알이 되어
보다 많은 열매를 맺어지길 서원드리며 기도하던 곳...
그분들의 영령이 살아 숨쉬는듯 평화의 기운이 감도네요
파리 외방 전교회 성당 벽, 그림
<샤를 쿠베르탕>의 작품인 이 그림은
선교사 네 분이 동양으로 떠나기 전, 가족들과 이별을 나누는 모습입니다
사제의 발에 입맞춤하고 포옹한 후 떠나고 보내는 순간이 얼마나 가슴아팠을지..
풍요로운 환경에서 공부했고 사랑받으며 살다가
주님사업에 앞장서 신앙의 황무지로 떠나가는 사제들에게서
영원한 기쁨을 추구하는 거룩한 성인의 모습을 봅니다
왼쪽 아래 어린아이는 누이와 함께 아버지 <샤를 쿠베르탕>을 따라온,
후에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삐에르 쿠베르탕> 남작의 5살 어린 모습이랍니다
세계평화를 기원하며 시작된 올림픽의 아버지 쿠베르땅의 염원은
하느님나라를 구축하려는 그의 선조에게서 보고 배운 가르침이었다 싶고요
파리 외방전교회의 후원에 있는 신학교와 생활관
파리 외방전교회는 지금 지원자의 부족으로 선교의 의무보다는
세계각국에서 유학 온 사제들을 가르치는 신학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네요
100 여명의 유학 사제 가운데 한국인 사제 9명이 여기에 계시답니다
한국 순교 성인 현양비
파리 외방 전교회의 정원에 세워진 이 비석은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적으로 사목하다 순교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와 순교 성인들을 기억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명동본당 신자들이 기증했다고 합니다
비석 뒷면에는 '한국의 순교자들"이란 제목아래
10 명의 외방전교회 소속 순교 성인과 한국 순교 성인의 두 대표자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정하상 바오로 외, 91명의 순교자라는 글이 새겨져있지요
순교자 현양비 바로 옆,
가을 낙엽이 흩어지는 팔각정 앞에 선 순례자들..
"떠나라 복음의 군대여! 그대들의 소망을 이룰 날이 왔다
선교사들이여! 그대들의 발자취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친구들이여! 이 생에선 안녕을, 언젠가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이오"
젊은 사제들이 아시아로 파견될 때 이 팔각정에 모여 파견가를 부르고
뒷문으로 나가 보르도항구에서 배를 타고 선교지로 떠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 개월 지나지않아 사제들의 순교소식이 어김없이 들려왔다고요
" 나는 하느님 당신을 찬미합니다. 나는 주님 당신을 신뢰합니다 "
선배 선교사들의 순교소식을 듣고 외방전교회 신학생들은
팔각정에 모여 위의 감사가<Te Deum 데 떼움>를 불렀답니다
살아서는 돌아오지 않겠다며 순교를 각오하고 떠난 사제들..
배를 타고 3년이나 걸리는 조선에 서로 가겠다고 했던 사제들의 순교소식이 올 때
감사하여 부른 감사가에 스민 순명의 의미가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주님을 향한 죽음만이 진정한 영광임을 아신 분들이지요
초기 한국 카톨릭교회는 그 분들이 흘린 피로 그렇게 세워졌음을...
<기적의 메달성당>
기적의 메달 성당
순례자들은 외방 전교회를 떠나 파리 뤼드박 거리를 5분 정도 걸어
중심가 도로변에 자리한 "기적의 메달" 성당에 도착합니다
다닥다닥 붙은 건물속에 묻힌 성당은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여늬 성지처럼 넓게 자리잡지도 않았고 너른 광장도, 치장도 없어 그런지
성모 발현 성지란 느낌이 크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성당 뜰은 길고 좁은 편으로 입구로 들어와 뒤돌아보니 위의 조각상이 보입니다
성모 마리아와 가타리나 라브레수녀의 조각상, 위 양 옆으로
기적의 메달 앞 뒷면 모양이 정교하고 아름답습니다
1806년, 성녀 가타리나 라브레는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8살때 어머니를 잃었고,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학교에 가지 못합니다
아버지의 반대로 14살부터 수도자가 되고자했던 희망이 24살이 되어서야 이루어져
애덕수녀회에 가입하고 가타리나라는 수도명을 얻게 되지요
기적의 메달 성당 內 제대
돌아가신 그리운 어머니를 만난 듯..
성모님과 어린 가타리나 수녀의 첫 번째 만남 장면이 보이고
제대 뒤에는 메달과 같은 모양의 성모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오른쪽에 모셔진 성모님은 지구본을 들고 두 번째 발현하신 모습이며
그 아래에는 가타리나 라브레 수녀의 시신이 모셔져 있고요
1830 년 7월 18일 파리에 있는 성 빈첸시오 소속,
애덕자매회의 가타리나 라브레는 한 소년의 부름을 듣습니다
"빨리 성당으로 오세요 동정 마리아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라는..
망서리던 가타리나가 성당으로 갔을 때 제대 위에는 초가 모두 켜져 있었고
잠시후 아름다운 부인,성모님께서 나타나 사제의 의자에 앉으십니다
그리고 성모님은 가타리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라고 하시며
"필요할 때나 고통스러울 때에 이리로 오너라
저 곳(감실)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단다"
비록 고통을 당하겠지만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게 될 거라고 하시며
머지않아 프랑스에 위기가 닥치고 왕권은 무너질 것이라고 하셨답니다
"그때 너는 이 제대로 오너라, 거리는 온통 피바다가 될 것이고
사람들이 고통속에 잠기게 될 것이다"..
성모님의 예언대로 파리는 7월 혁명으로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게 되지요
프랑스는 이미 1789년 7월 프랑스 대혁명으로 전제군주 왕정이 무너졌고
나폴레옹은 쿠데타로 자칭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얼마후, 다시 왕정은 복고됩니다
그러나 1830년 7월,1848년 2월의 혁명은 수많은 시민이 희생되고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교회에도 어려운 시기가 닥친 시기였지요.
이러한 때, 성모님의 발현은 필요불가결한 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후로 세계 전역에서 속속 발현하신 성모님의 멧세지는
지구의 평화를 위해 기도할 것을 부탁하셨다지요
사람을 사랑하고 살게하시는 주님과 성모님이셨으니까요...
성모님과 가타리나 라브레수녀의 상
1830년 11월 27일, 기도하던 가타리나 라브레는
성당 제대옆 오른편 자리에서 두번째로 성모님을 뵙게 됩니다
흰옷에 지구의를 들고 뱀에 감긴 지구를 밟고 계신 성모님은
찬란한 빛 속에 거룩하게 서 계셨다고요
"이 빛에는 나에게 간구하는 이들에게 내려 줄 은총의 상징이 있다"
가타리나는 성모님을 둘러싼 타원형의 빛 가운데에
"오!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는 글자를 봅니다
성모님은 가타리나 수녀에게 빛나는 타원형의 메달을 직접 건네셨답니다
기적의 메달이라고 무작정 지니기만 하던 성물..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왔음을..잠시 묵상합니다
가타리나 라브레 성녀
사망 후 57년이 지나 시복을 위한 시신 발굴 당시(1933년)에도
전혀 부패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된 가타리나 라브레 수녀..
여러번 성모님의 환시를 보았다는 가타리나를 계속 의심하던
지도신부 알라델신부는 수도회 총장신부에게 보고했고
주교회의 관찰과 허락으로 드디어 은총의 메달 주조에 착수하게 됩니다
1832년 6월,주조된 최초의 메달은 이단에 빠진 어느 주교를
임종의 자리에서 회개시키는 기적을 시작으로 갖가지 치유가 일어났답니다
기적의 메달은 놀라운 속도로 퍼져 나갔고 수녀로서 일생을 마친 가타리나는
1947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시복되고 비오 12세때,시성되셨다고요
발현 목격이후, 46년을 노인보호시설에서 봉사의 삶을 살았던 가타리나는
"침묵의 성녀" 라고 불리운다고 합니다
기적의 메달은 성모님께서 라브레 수녀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구원의 상징이며 메시지라고 믿습니다
단순한 부적이 아닌,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서 은총을 주시는
성모님 사랑의 정표가 아닌지요.
<예수 성심 성당>
예수성심 성당 (사크레쾨르 성당) 전경
도보로 파리시내를 지나 몽마르뜨를 향합니다
복잡한 상가골목을 걷는데 우리의 남대문시장을 보는 듯
사람과 차와 물건들이 넘쳐나 걷기도 어렵습니다
멀리서 희게 빛나던 대성당은 광장에 들어서자 거대한 규모로 다가옵니다
몽 마르뜨는 "순교자의 언덕" 이란 뜻이며
산이 없는 파리의 유일한 산으로 해발 300미터 높이랍니다
1876년, 독일과의 보불전쟁 등 계속된 전쟁의 패배로 침체된 국민들의 사기를 높이고자
가톨릭의 거룩한 신앙심에 호소하려는 목적으로 착공, 1914년에 완공되었지요
40만,프랑스국민의 헌금으로 건축되었답니다
예수성심 성당에 오르는 신부님과 순례자들
경이로움이 가득한 심정으로 몽마르뜨에 오른 순례자들은
지하의 소성당에서 순례의 마지막 미사를 드립니다
예수님 상과 함께 왼쪽의 기마상은 루이9세, 오른쪽은 잔다르크의 상입니다
왼손에 예수님의 가시관을 들고있는 루이왕은 겸손하고 백성을 사랑한 분으로
십자군 전쟁때 북 아프리카에 원정가서 전쟁의 습득물로
예수님의 가시관과 못 3개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두번째 출정한 십자군 전쟁때 사망한 왕은 프랑스왕조의 수호성인이지요
80미터 높이에 지하 40미터인 대성당은
로마네스크와 비잔틴(세개의 하얀 돔)양식의 혼합된 건축물로
성당 위에서 보면 파리시내가 한눈에 보입니다
우리처럼 고층빌딩이나 고층아파트가 없어 보기에 평화롭더군요
성당 내부에 모셔진 성모자상
아기같은 성모님의 곱고 착한 표정이 참 인상적이었지요
성모님도 아기예수님도 즐겁고 행복해 보이네요
예수성심 성당 제대위, 예수성심상은 촬영이 不可해 못 찍었지요
다른 성당보다 유독 사진촬영이 어려웠습니다
위 사진은 얼마전 폴란드 쳉스토호바의 야스나고라 수도원에서 찍은 예수님상입니다
붉은 옷을 입으시고 가슴에 불꽃이 그려진 예수상도 예수성심상 아닌가요?
궁금한데..아시는 분은 가르쳐 주시길 바랍니다^^
예수성심 성당을 왼쪽으로 돌아나오며 만난
철제문의 조각.. 성서의 내용을 조각한 것이지요?
<노틀담 성당>
파리 노틀담성당 전면모습
노틀담<Notre Dame>은 "우리의 귀부인" 뜻이니 성모님이시네요
가랑비가 추적이는 오후에 찾아간 노틀담성당,
상상보다는 작았지만 성스러운 아름다움에 가슴이 설레입니다
왼편의 마리아의 문,중앙의 최후의 심판문,그리고 오른편은 안나의 문입니다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의 창도
외관으로는 장미모양의 단순한 창으로 존재할 뿐입니다
그 창에 빛이 투영되어 내면을 찬란하게 물들이면
빛으로 오신 주님의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중앙부분의 성모자상과 천사들의 조각도 아름답습니다
하단은 역대 제왕의 상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조각되었네요
위에서 계속 이어진 조각으로
성당 3개의 문중 중앙문으로 "최후의 심판" 문입니다
이 문은 지금껏 열리는 일이 없었고
순례자들은 안나의 문으로 들어가 마리아의 문으로 나온다지요
정말 최후의 날에나 열리려나요?
수천의 인물조각들이 같은 모양은 없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노틀담 성당의 아름다움과 정교함에 놀란 히틀러가
차마 파괴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무리는 아니지 싶고요
"심판하지 않으면 심판받지 않는다고 하셨던가요
그리고 용서하면 용서 받는다고 하셨으니.."
최후의 심판 날에 어떤 모습으로 주님앞에 서게 될런지..
순교자 쌩 드니 성인의 상
성모 마리아의 문 왼편에 자신의 잘린 목을 든 쌩 드니(디오니)를
양 옆의 천사들이 지켜보는 특이한 조각상입니다
프랑스의 수호성인, 쌩 드니는 파리 최초의 주교로 활약하던 중
258년, 로마황제의 박해로 파리 근교(몽 마르뜨)에서 참수되었다고 합니다
쌩드니 성인은 자신의 잘린 목을 들고 2킬로를 걸어갔다고 하며
쎄느강에 던져진 머리를 찾아 무덤을 만든 그 위에
쌩드니 성당(베네딕또 수도원)이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현대의학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않는 이야기도
드니 성인의 굳건한 믿음앞에 보여주신 기적을 믿고 싶습니다
주님을 믿으면 멸망케 않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말씀과 함께요.
노틀담의 전면아닌 측면을 보니 어찌나 거대한 성당이던지요
파리시 중심에 흐르는 쎄느강을 건너면 시떼섬(여의도보다 작지만..)이 있고
그 섬 초입에 자리한 거대한 노틀담성당의 옆모습 입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노틀담의 곱추..
대성당 어디쯤에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의 영혼이 숨쉬고 있을지,
거대한 종은 어디 있는지 궁금하지만 머무는 시간이 짧으니 마음을 접습니다
성당내 납골당에 혹, 등이 굽은 뼈로 여인의 뼈를 안고있는 유해는 없었을까..
두려움없는 사랑으로 용기있는 죽음을 찾아간
소설속의 두사람을 상상하면서 순례자들 뒤를 따라갑니다
순례자를 태운 버스가
쎄느강을 건너자 바로 노틀담성당의 측면과 후면까지 보입니다
사진 기술도 없고 중요한 부분도 포착하지 못하는 저는
대성당의 아름답고 크고 정교함에 그저 감탄할 뿐,
다시 올 기회가 된다면 노틀담성당을 집중적으로 돌아보고 싶네요
대성당 입구의 기둥위, 성모자상도 아름다웠고
넓고 높고 화려한 대리석 바닥과 기둥들이 순례자들을 압도합니다
내부가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였지만
파이프 오르간으로 들려주는 성가의 울림은 그래선지 더욱 환상입니다
노틀담성당의 중앙제대도
말할 수 없이 화려 장중하고 성스럽습니다
십자고상 아래에는 성모님께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안고계신
피에타상이 성스러이 모셔져 있었지요
사진촬영을 금해 제대 가까이는 찍지 못했네요
성녀 잔다르크 상
프랑스와 영국간의 백년전쟁(1337~1453)이 계속되던 때,
농촌의 소작농의 딸로 태어났지만 독실한 신심을 지닌 잔다르크는
어느날 천사와 성인들의 음성을 듣고 16세 소녀의 몸으로 전쟁에 출정합니다
조국을 위기에서 구하고 죽어간 그녀는 프랑스의 성녀이자 영웅이지요
하느님이 자신안에 내재함을 주장하며 예언자적인 모습이 드러나
한때 마녀로 내몰리기도 했으나 1456년 샤를7세에 의해 명예회복이 됩니다
장미의 창과 또 다른 색유리창..
중앙제대 주위에는 크고작은 소성당과 기도소,
많은 그림과 조각,성물들에 성물판매대까지 성당안에 있더군요
가격도 여느 성지보다 만만치 않았고요^^
'The crown of the Light" 이란 이름의 샹들리에..
정말 엔틱이란 느낌이었지요
한 귀퉁이에 먼지를 쓰고 앉은, 오래전에 사용한듯한 이 등은
순례자들에게 예루살렘의 상징처럼 여겨졌다고 합니다...
첫댓글 파리외방전교회 대성당에서 미사드리는 류신부님을 뵈니 가슴이 뭉클하네요...
죽음을 두려워하지않고 주님의 영광으로 나아간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아프고도 아름답습니다...지금도 그때같은 순교는 아니라해도 이태석신부님처럼 사제의 소임을 다하다가 일찍 하느님께로 가신 분들을 뵈면 가슴이 먹먹해옵니다. 참 아름다운 성당들이 많은 곳이네요, 평생 보아도 다 못보는 곳이 있을것같은
기적의 메
얘기를 들으니 순례 다녀와 주신 그 메
이구나 싶어요
맞지요
^^ 많은 이야기를 다 기억은 못해도 감동과 아름다움은 오래 남을것 같아요...
맞아 그메달..그저 지니기만해도 좋았는데 유래를 알고보니 너무나 의미있고 소중함을 알게되었네.
평생 보아도 다 못보는 곳이야 많겠지만 기회가 되면 가는거니까..욕심이 결코 신심은 아닐테니까^^
그나저나 이달에는 오시겠지?한참 못 뵈어 뵙고싶네 신부님...
루르드 성모성지,,,기적의 메달의 의미를 묵상해봅니다...마더 데레사께서도 그 기적의 메달을 늘 가지고 다니시다가 이루고저 하시는 곳에서 묻어두고 기도하셨다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 기도의 응답은 늘 이루어져서 마더데레사가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셨음을.....힘들게 전해져온 신앙의 뿌리를 찾아가신 순례길이 감동입니다...
아 그러셨구나~ 마더 데레사수녀님을 닮는 마음으로 기도해야겠지? 신심깊은 캐더린이니 성지를 찾아가지 않아도 주님께서 어여삐 보시리라 믿네..언젠간 순례의 은총도 듬뿍 내려주실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