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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다해 7월3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청주] 하느님으로 충분하다. -
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제1독서 : 탈출 34, 29 - 35
† 복음 : 마태 13, 44 - 46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은 1491년 스페인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군인이 된 그는 전쟁에서 입은 부상을 치료받다가 현세의
허무함을 깨닫고 깊은 신앙 체험을 하였다. 늦은 나이에 신학 공부를
시작한 이냐시오는 마흔여섯 살에 사제가 되었고, 이후 동료들과
함께 예수회를 설립하여 오랫동안 총장을 맡았다. 그는 『영신 수련』
등 많은 저술과 교육으로 사도직을 수행하였으며, 교회 개혁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다. 1556년 로마에서 선종하였고, 1622년에
시성되었다.
★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내려와 십계명이 새겨진 증언판을 들고
백성에게 계약의 말씀을 전한다. 모세는 주님과 함께 있었기에 그의
얼굴이 빛났다(제1독서).
★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밭에 숨겨진 보물이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고 하신다. 곧 하늘 나라는 저 멀리 있지 않고 우리
가운데 있으며, 이를 깨달은 사람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복음).
◈ 오늘의 묵상
조선 후기의 대학자 다산 정약용 요한이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남겼다는 ‘하피첩’이라는 편지는, 후대에 남겨진 기록에 이름으로만
전해 내려올 뿐 실존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귀한
보물이 200년 만에 발견되었습니다. 공영 방송의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어느 건설 현장의 소장이 들고 온 헌 책자를 전문가들이
감정하였는데, 그게 다름 아닌 ‘하피첩’이었습니다. 현장 소장이
‘하피첩’을 발견한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던 어느 날, 할머니 한 분이 수레를 끌고
와서 폐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장 소장은 할머니의 수레에서
심상치 않게 보이는 헌 책자를 발견하였고 할머니에게서 그것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감정을 의뢰하였더니, 역사적 가치가
대단한 ‘하피첩’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입니다. 밭을 갈다가 보물을
발견한 농부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주목할 부분은 그 농부가 보물을 제대로
볼 줄 알았다는 점입니다. 그것을 보고 보물인 줄 알았기 때문에 보물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마치 현장 소장이 ‘하피첩’을 발견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이들이 보물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채 폐지로
취급했던 것과는 달리, 현장 소장은 그것을 보고 무언가 다르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마터면 쓰레기로 폐기될 뻔한 소중한 보물을
건질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삶 속에 있는 보물들을 우리 스스로가 쓰레기로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배우자, 가족, 직무, 신앙 등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는지요?
- 매일 미사 -
◈ [청주] 하느님으로 충분하다 |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3년 다해 7월31일 연중17주간 수요일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마태13,44-46)
진정한 보물,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
아무리 값진 보물이라고 해도 어떤 사람의 눈에는 보이고 어떤
이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값진 진주를 찾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찾아 다녀야 얻을 수 있습니다. 애쓰지 않는 사람이 보물을 발견 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주어진 보물이고 따라서 보물을 얻기 위한 희생과 헌신이
요구됩니다(마태13,46).
그리고 값진 보물을 발견했으면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하여 그보다 못한
것들을 처분하게 됩니다. 새 옷을 장만하면 전에 입던 옷을 정리하게
됩니다. 더 좋은 것을 얻으면 하나는 자연스럽게 정리됩니다. 하느님을
차지하면 다른 모든 것은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신자들에게 말합니다.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3,7-9)
오늘 기억하는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는 1491년 스페인의 명문가문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 방탕하고 무절제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명예를
얻으려는 열망에 사로잡혀 머리와 옷 등 외모에 관심을 두었고 허영과
사치를 일삼았습니다. 기사에 대한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1521년 군에
입대하여 프랑스군과의 교전 중에 다리를 다쳤는데 이때 성을 점령한
프랑스군은 그의 용감함에 탄복하여 그를 치료하여 주었고, 로욜라의
가족들에게 후송해 주었습니다. 이때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치료를 받으면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책읽기를 청하였는데
성안에는 평소 즐기던 기사이야기를 담은 책은 없었고, 가족들이 전해준
예수그리스도와 성인들의 삶에 대한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자기가 추구하는 삶은 자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성인들의 모범을 따르는
삶 속에는 기쁨과 평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즈음에 아기 예수님을 안고 계신 성모마리아의 환시체험을 하였습니다.
이 환시 체험에서 크나큰 위안을 받았고 지난날의 생활 전체, 특히 육을
따랐던 행실에 대해 심한 혐오감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회심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회심 후 로욜라는 떠나게 되는데 가난한 사람에게 가서
자신의 옷을 모두 벗어 주고, 기사의 상징인 장검과 단도는 순례성모성당의
성모제단에 봉헌을 하였으며 전적으로 하느님께 봉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이냐시오 마음의 중심이었으며 그의 특별한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차지하여 일상의 사소한 일까지도 하느님을 위한 봉사로
바치고자 했습니다. 예수회를 창립하고 초대 총장으로 선출되기도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9장 이하의 부자청년이야기를 보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온 젊은이에게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하셨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그는 주님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기의 재산을 포기하지 못하였습니다.
주님 앞에서는 양다리 걸치기나 어중간은 없는 법입니다. 젊은이는 결국
주님을 차지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참으로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식별할 수 있는 지혜가 요구됩니다. “하느님을 잃어버리기 보다는 차라리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무엇으로도 마음을
흩으러뜨리지 말며 무엇 때문에도 놀라지 말라! 모든 것은 지나가나
하느님은 변하지 않는다. 하느님을 차지한 자에게는 부족할 것이 없으니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결국 하느님을 얻으면 모두를 얻은 것이요,
모든 것을 얻어도 하느님을 차지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느님의 나라를 성인들이나 가는 곳으로 어렵게만 생각한다면
아무 발전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마태6,33)을 구하고 그리하여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러 오지
않으시고 오히려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황
안에서도 실망과 좌절보다는 하느님의 자비를 갈망해야 합니다. 성녀
엘리사벳씨튼은 고백합니다. “하느님만이 나에게 남은 피난처이십니다.
저는 다른 모든 피난처들을 잃어버리고 주님에게만 의존하게 되는 데서
오히려 영적인 기쁨을 느낍니다.”
보물은 사람의 마음이 머무는 곳에 있고 세상의 어떤 것도 다 보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지 말고’(루가9,62)
내 삶의 자리에서 참 보물을 찾아야 합니다.“주님, 정녕 당신은 저의
등불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저의 어둠을 밝혀 주십니다.”(2사무22,29).
이제 당신이 밝혀 주시는 보물을 차지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하느님 나라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어제 서른여덟이라는 짧은 삶을 뒤로 하고 주님 곁으로 가버린 한 자매의
장례미사에 다녀왔습니다. 이 자매는 저와 함께 몇 해 전에 청년성서모임
봉사를 했었지요. 정말로 열심히 봉사를 했고, 그 후에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병으로 인해 허망하게 남편과 자식을
이 세상에 두고 혼자서만 주님의 곁으로 가고 만 것입니다.
아무리 죽는 데에는 순서가 없다고 하지만, 서럽게 울고 있는 남편과 그
가족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것도 모르는지 이상하다는 듯이 주변만
둘러보는 어린 딸아이를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더군요. 이렇게 아쉬움과
슬픔을 느끼면서 장례미사를 봉헌하는데 문득 이 죽음이란 것이 분명히
내 차례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즉, 그 전까지는 죽음이 단지
하나의 이론처럼만 생각되었는데 피부로 와 닿는 실제의 일이며, 또한
남 일이 아닌 앞으로 반드시 닥칠 나의 일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다가올 이 죽음을 위해 늘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에 모든 것을 걸면서 힘들게
살아갑니다. 지금의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과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때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생각해보십시오. 만약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별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지금 헛고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이라면 나의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겠지요. 오늘 복음의 밭에 숨겨진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밭을 사는 사람처럼, 또 좋은 진주를 발견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처분해서 사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보물이 아닌
쓰레기라면 그리고 좋은 진주가 아니라 가짜 진주라면 어떨까요? 쓰레기와
가짜 진주인데도 자신의 모든 것을 처분해서 구입하려 한다면 크게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이지요.
명품이라는 물건들에는 비슷한 짝퉁 물건들이 꼭 있습니다. 정말로
비슷합니다. 아니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아주 똑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그 값어치는 어떻습니까? 아주 똑같아 보여도 그 가치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명품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망신을 당하기도 하지요.
가장 중요한 가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목숨 전체를 내어 놓아서
완성시키셨던 사랑, 이 사랑을 위해 우리 역시 나의 모든 것을 내어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만이 명품인 진짜 보물이며 가장 좋은 진주인데,
우리들은 겉으로만 화려한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짝퉁만을 쫓습니다.
먼 훗날 하느님 나라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들에게 정말로 중요하고 필요한 것들을 쫓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위해 처음이 존제한다.(로버트 브라우닝)
오늘 축일인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
감시자의 역할은 내려놓으세요.
몇 년 전, 제가 갑곶성지에서 생활할 때의 일입니다. 그때는 성지를 막
시작할 때였기 때문에, 바깥일들이 정말로 많았지요. 그날도 성지 주변을
꾸미고 있었는데 아주 우연히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는 할미꽃을 보게
되었습니다. 신기하기도 했지만 정말로 예쁘더군요. 그리고 이때 야생화가
화려함은 없지만 은은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야생화의 은은한 아름다움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고, 야생화 보는 재미를
흠뻑 느낄 수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순례객들이 오셔서 야생화가 예쁘다면서 뽑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할미꽃이 신경통에 좋다면서 뽑아 가시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에
저의 감시자의 역할이 시작되었습니다. 함께 그 아름다움을 즐기면 좋을
것 같은데, 자기만을 위해서 뽑아가는 그 모습을 가만히 놔둘 수 없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때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전에는 야생화를 보면서 기뻐하면서
즐겼던 것 같은데, 이때부터는 누가 뽑아가지 않나 하면서 감시만 하는
것입니다. 꽃 그 자체를 보지 못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감시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꺾어가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저의 일만을 묵묵히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비로소 다시 아름다운 꽃이 보이더군요.
이는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사람 역시 소유하려 하고
감시하려 할 때 그 본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상태에서는 끊임없이 의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그 본연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볼 수 있습니다.
- 인천 교구 성소 국장 조명연 마테오 신부 -
◈ [기타] 보물은 땅에 묻어두는 것이 아닙니다.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2013년 다해 7월31일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마태오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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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흔히 쓰는 말 중에 올인(All In)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 이 말은 카지노 용어로 포커(Poker)라는 카드 게임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칩이나 코인(돈을 대신하는 조각)을 모두 거는
것을 말한다. 기억으로는 10년 전 모 방송사에서 ‘올인’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드라마의 영향으로 이제는 ‘모든 것을 건다’라는 의미로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걸어 ‘하느님 나라’라는 보물이 묻힌 밭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메시지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모든 것을 건다’는 말의 의미이다.
모든 것을 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것을
무시하며 오로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달라고 기도만 하라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가지고 있는 재산을 다 교회에 바치라는 말인가?
가족보다 삶의 터전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이 교회 활동이라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런 예수님은 미련 없이 버리는 것이 옳다.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건다는 것은 삶의 기준이 한결같이 복음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세상을 복음적으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소위 말하는 손익분기점을 세상의 잣대로 재는 것이 아니라, 복음적
정신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판단하고 실행에 옮기는 구체적인 삶을
말한다.
그러면 왜 뜬금없이 올인이라는 말을 꺼냈을까?
올인은 결국 도박을 말한다.
내가 따면 상대는 잃고, 내가 잃으면 상대는 딴다.
지극히 살벌한 승자와 패자를 만드는 논리이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는 말씀은 올인이라는 욕망의 행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가끔 잘못된 신앙을 만난다.
세상의 논리로 신앙적 판단을 하려는 이들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모든 것을 팔아 하느님의 나라라는 보물을 산다는 말은 다른 누구를
죽이는 일이 아니다. 손에 넘어온 보물을 누가 훔쳐가지 않게 또 다시
땅속에 묻어두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보물에 대한 확신을 온 몸으로
사는 것이 보물에 모든 것을 건 자가 보여야 할 모습이다.
복음적 기준이란 닫힌 개념을 뜻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상황에 따라
다른 답을 만들 여지를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답을 구하는 기준이
복음적인가를 따지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내놓고 살고 있는가?
영원한 생명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걸고 있는가?
아니, 무엇을 내놓아야 하고 무엇을 걸어야 하는가?
그에 대한 정답은 예수님의 마음에서 찾아야 한다.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수도회] 영신수련의 아련한 추억들
2013년 다해 7월31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마태 13,44-46
영신수련의 아련한 추억들
언젠가 짧게나마 맛봤던 영신수련의 추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오늘 축일은 맞으시는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께서 우리 신앙의
후배들을 위해 소중한 선물로 남겨주신 유산이기도 하지요.
한적한 곳에서 대 침묵 가운데 사려 깊은 예수회 신부님의 도움을
받으며 자비하신 하느님의 품 안에 푹 잠겨 지나온 제 삶을 돌아보던
그 순간들이 그립습니다.
의식성찰 작업을 통해 나 자신의 솔직한 현재 위치와 상태를 파악하고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하고 실망도 컸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양심성찰 작업 중에 내게 꼭 약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강점도 있구나.
추함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아름다움도 남아있구나. 결핍만 있는 것이
아니고 넘치는 부분도 있구나, 하면서 조금은 위로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내가 무질서한 영적 혼동 상태에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고 정화되고 쇄신되어야 할 측면이 어떤 것들인지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큰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지속적으로 챙겨주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나를 사랑해주시는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영신수련 기간 동안 복음서, 특히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하는 작업은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는데, 무엇이 악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선에서
오는 것인지 식별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하느님의 뜻을 가장 잘 식별하고 그 뜻에 따라 살아낸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므로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분의 모습을
관상하는 작업은 너무나 소중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기도체험 가운데 영신수련은
차지하는 위치가 각별합니다. 영신수련은 달콤한 영적 체험을 넘어
깊은 깨달음을 통해 존재의 변화를 추구하는 수행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의 생애는 풍파 많고 우여곡절 투성이인 우리네 삶에
큰 위안과 위로를 건네주고 계십니다. 하느님을 향한 그의 여정은
참으로 파란만장했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기사로서의 성공을
꿈꾸었습니다. 특히 그는 성공을 향한 성취 욕구와 추진력이
대단했습니다.
그는 군인으로서 성공하기 위해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군인정신이 투철했던 것이지요. 왕에 대한
철저한 충성과 복종 그리고 헌신이 성공의 지름길이었기에 왕을 위해
목숨까지 걸고 싸웠습니다.
그 와중에 대패해서 궁지에 몰렸지만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마지막
항전을 불사하다가 결국 큰 부상을 입게 됩니다. 다행히 가까스로
목숨만은 건진 이냐시오는 회복 과정에서 몇 권의 신앙서적을 읽게
됩니다. 그리고 조금씩 세상의 덧없음과 허무함을 알아가게 되며
더 가치 있는 일, 보다 의미 있는 일, 보다 영양가 있는 인생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우여곡절과 오류투성이의 젊은 시절을 보냈던 이냐시오였기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신수련’이라는 식별의 도구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선물을 안겨준 것입니다.
나의 이 생각, 나의 이 결정이 악의 세력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하느님의 영으로부터 오는 것인지를 식별하는 작업은 우리 인생의
방향을 잡아나가는데 너무나 소중한 작업인데, 영신수련은 바로 그
작업을 도와주는 도구인 것입니다.
이냐시오는 군인으로서 성공하기 위해 아낌없이 쏟아 부었던 에너지,
왕을 위한 절대적인 충성심과 복종을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왕의 군사였던 이냐시오는 이제 하느님의 군사가 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오늘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내가 오늘 맞이한 이 하루
동안 가장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할 것을 무엇인지 식별해보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런데 ‘식별의 영원한 기준’은 바로 복음이며 예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이요 우리에게 남겨주신 일거수일투족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 관구 부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신부 -
◈ [기타] 이냐시오 료욜라 성인 기념일
2013년 다해 7월31일
오늘은 이냐시오 성인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예수회’를
창설하셨습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 출신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가톨릭교회에 커다란 선물을 남겨 주셨습니다. 그것은 ‘영신수련’
이라는 독특한 기도방법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을 통해서
하느님께로 나가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영신수련을 통해서 ‘건강, 부귀,
장수’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세상의 권력과 명예로는
얻을 수 없는 참된 평화와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 길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길입니다. 모든 성인과 성녀들께서 따라가신 길입니다.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해서 사는 길입니다.
저는 25년 전인 88년도에 처음 영신수련을 하였습니다. 군대를 제대 한
다음, 신학교에 복학하기 전에 했습니다. 그 뒤로 90년도에 부제서품을
받기 전에 30일 피정을 영신수련의 기도방법으로 하였습니다. 적성 성당의
본당 신부로 있을 때는 매주 금요일 서울 신학교로 기도모임을 다녔고, 그
뒤로는 매년 1월이면 신학생들과 함께 30일 피정을 영신수련의 방법으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2001년부터이지 벌써 12년째 함께 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에 2년간 연수를 갔을 때는 40일 피정을 영신수련의 방법으로
하였습니다. 제게 영신수련은 밭에 묻혀 있는 말씀의 보물을 찾는
지도입니다. 영신수련이란 영적 식별을 할 수 있는 기준입니다. 많은
수도회와 교구에서는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의 기도 방법을 통해서 피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영신수련의 기도방법은 ‘식별’을 하는데 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영신수련의 핵심 주제는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우리의 존재 모두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때 가치가 드러난다고 말을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두 개의 깃발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깃발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영광과 욕심을 드러내는
사탄의 깃발입니다. 이 2개의 깃발 앞에서 신앙인들은 3가지 유형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깃발아래 서겠다고 말을 하면서 아무런 행동이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버스를 잘못 탔으면 내려야 하는데 내리지 않고
발만 동동 구르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깃발로 다가서지만 세상의 것에 마음이 끌려 곧 세상의
깃발, 사탄의 깃발로 넘어가는 사람입니다. ‘작심3일’인 사람들입니다. 운동을
하겠다고 운동기구, 신발을 사놓고도 며칠 못 가서 운동을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충실하게 서는 사람입니다. 어떤 유혹이 와도
고난과 박해가 와도 그리스도의 깃발을 굳게 잡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유형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이란
자신을 비우고 낮추는 것입니다. 이런 겸손에는 3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깃발아래 있기 위해서 ‘대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주일미사를 결코 궐하지 않습니다. 모든 삶의 원칙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둘째는 ‘대죄’는 물론 ‘소죄’까지도 범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주일미사는 당연하고 평일미사와
해야 할 기도를 빠지지 않고 하는 분들입니다.
셋째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해서 그리스도처럼 고난과 고통을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병들고, 가난해지고,
단명 한다고 해도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영신수련의 목표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서는 것이며, 3번째 유형의 사람이 되어서 굳은 용기와 결심으로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겸손의 3번째 단계가 되어서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희생한다고 해도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영신수련의 기도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준비기도, 구할 은총, 성서말씀 읽기(2∼3번), 성서말씀 묵상(40분), 담화
(성부, 성자, 성령 혹은 성모님), 마침기도, 묵상내용 기록(10분)입니다.
피정 중에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서 영적지도자와 함께 하면 됩니다. 일상생활
중에서는 하루에 1시간 정도 하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보물을 발견한 농부는 모든 것을 팔아서 그 밭을
살 것이다.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이란 보물을 발견했고, 모든 것을 바쳐서
영신수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예수회’란 수도 공동체를 통해서 모든
이들에게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나라’라는 보물을 얻으셨고, 그것을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보물은 혼자 간직하면 돌덩어리에 불과합니다. 보물은
그것을 나눌 때 비로소 빛을 내는 것입니다.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봉헌과 은총의 관계
2013년 다해 7월31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
복음 : 마태오 13,44-46
< 봉헌과 은총의 관계 >
어부가 두 아들을 데리고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은 이들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만선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려고
할 때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날이 어두워졌고
불행하게도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마저 잃고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배가 파선되어 삼부자는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되었습니다. 뱃머리를 어디로 돌려야 할지 전혀 판단이
서지 않았을 때 갑자기 작은 불빛 하나가 보이더니 점점 커져서 불기둥처럼
솟아올랐습니다. 그들은 불기둥이 보이는 곳이 바로 육지라는 판단 아래
사력을 다해 노를 저어 가까스로 살아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그의 부인이 울먹이며 집이 몽땅 불타버렸다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이들 삼부자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우리 집에 불이 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육지를
찾지 못해 영영 집에 돌아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세상엔 공짜가 없습니다. 복권을 사지도 않고 복권 당첨되기만 바라며
기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얻으려면
그것에 합당한 가치를 지불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법칙이고 자연의
법칙입니다.
어떤 아버지가 두 아들을 데리고 살았는데 두 아들 모두 공짜만 바라고
일을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였습니다. 아버지는 죽으면서 “황금을 주위
땅에 묻어 놓았으니 땅을 파서 캐내라”고 유언했습니다. 아버지가 죽은
후 두 아들은 전에 없이 성실하고 진지하게 땅을 파며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황금은 없었습니다. 두 아들은 넓게 파 놓은 땅이
아까워 거기에 곡식을 많이 심었습니다. 추수기가 되었을 때 곡식이
누렇게 익어 황금물결을 이루었습니다. 두 아들은 그제야 성실히 땀
흘려 얻은 열매가 바로 황금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농사를 지어서
크게 수확해서 두 형제가 잘 살았다는 것입니다. 심어야 거두는 것입니다.
땅은 정의롭습니다. 뿌린 대로만 거둘 뿐입니다.
디팩 초프라, ‘성공을 부르는 마음의 법칙 일곱 가지’란 책에서 원하는
것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일까요? 새 아파트를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일까요? 가족에게 도와주기를 청하는 것일까요? 복권이 당첨되기를
기다리는 것일까요? 원하는 것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얻고 싶은
것에 ‘합당한 값’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원하면서도 값을 지불할
생각이 없다면 그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우리가 성체를 영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축복을 온전히 받지 못하는
이유가 성체를 통해 오는 은총에 대한 합당한 값을 지불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체는 온 우주보다도 귀한 그리스도의 몸이고
영원한 생명입니다. 내가 그것을 보물로 여기지 않고 그만한 지불을
하기를 원치도 않기 때문에 그것이 나에겐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주 영해도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받아 모시는 사람이 지불하는 정도에 따라서 성체의
효과도 다르게 나타난다고 확신합니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처음
성체를 모실 때 예수님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봉헌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영성체를 한 뒤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예수님께서 함께 기도해 달라는데도 졸음에 떨어지고, 결국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지불할 준비가
되었느냐에 따라 예수님은 우리 안에 ‘딱 그만큼만’ 주시는 것입니다.
더 주실 수도 없는 것이 내가 자신을 비울 수 있는 그만큼밖에는 채워줄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한 임금이 귀한 진주 두 개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크기가
감자크기만 하였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 가치를
아는 백성에게 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하에게 그것을 주면서
세상에 돌아다니며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그것을 주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하인은 과일 가게에 갔습니다. 그 과일 가게 주인은 사과 두
개를 줄 테니 그것과 바꾸자고 하였습니다.
다음은 야채 가게에 갔습니다. 그 주인은 감자 두 개를 줄 테니 바꾸자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은 보석상에 갔습니다. 보석상 주인은 너무 놀라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줄 테니 그것을 줄 수 없겠느냐고 했습니다. 그 신하는
그것을 보석상에게 거저 주었습니다.
밭에 묻힌 가장 귀한 보물, 혹은 가장 귀한 진주의 주인은 누가
되었을까요? 자기의 전 재산을 팔아 그 땅과 진주를 살 만큼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이 성체라면 우리가 그것을 얻기 위해서 무엇인들 버릴 수
없겠습니까?
예수님은 당신을 가장 가치 있게 여길 줄 아는 사람에게 가장 가치
있는 보물이 되어 주십니다. 그래서 자신의 외아들을 바치려는
아브라함에게 그 믿음을 보고서야 복을 주셨듯이, 우리의 봉헌과
그를 통해 받는 은총은 비례하는 것입니다.
- 수원교구 오산 성당 전 삼용 요셉 신부 -
◈ [서울] 아무도 가 본 적 없는 하늘나라
2013년 다해 7월31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기념일
제가 아는 젊은이는 회사를 벌써 3번이나 바꿨습니다.
이력서 쓰고 면접시험보기를 이젠 이력이 생겼다고 그럽니다.
현재가 답답하고 아니다 싶으면 좋은 곳을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3번째에는 모든 것이 맘에 들어 긍지와 보람을 갖고 다닙니다.
아마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하늘나라가 바로 그 이상인 모양입니다.
아무도 가 본 적 없는 하늘나라를 예수님은 확실하게 알려주셨습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오 13,44)”
- 이기정 사도 요한 신부 -
◈ [수도회] 정제천 신부와 함께하는 수요묵상
2013년 다해 7월31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배에 올라 군중을 향해 하시던 설교를 마치고 예수님은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이제는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시는데, 보충 설명을 곁들여 가면서 한결
자세하게 설명하신다. 예수님은 제자 교육에 특별히 공을 들이셨다. 여기서
‘하늘나라는 무엇 무엇과 같다.’고 하시는 표현은 하늘나라의 신비를 세상
이치에 따라 설명하시는 공식이다. 예수님의 시선으로 보자면 이 세상의
일들은 하늘나라의 신비를 비춰주는 거울이고 우리와 하늘나라를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다.
성령께서는 이 세상의 일을 통해 천상의 은총을 깨닫게 해주신다. 세상의
일들은 그저 속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흔적이요 얼굴이 된다. 성 이냐시오는
양심성찰로 이런 성사적 의식과 영적인 감수성을 나날이 우리 안에 자라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성령의 도우심으로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알아보는 Finding God in all things’ 경지에 이르는 것이 영성 생활의 중요한
목표라고 가르쳤다.
밭에 숨겨진 보물을 찾은 사람과 값진 진주를 발견한 상인의 비유는 우리 영성
생활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하는 초대다. ‘남이 못 본 것’을 본 사람의 기쁨과
확신이 없다면 내 신앙의 순도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 ‘가진 것을 다 팔아도’
하나도 아깝지 않아야 진짜다. 진짜 사랑은 아까운 것이 없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다 내어주고 싶은 사랑이 있다면 그는 행복하다. 그는 이미 하늘나라를
얻었기 때문이다. 하늘나라는 의무와 윤리의 나라가 아니라 내부에서 샘솟는
확신과 긍정, 기쁨이 있는 나라다.
성 이냐시오는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며 ‘저에게는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주소서.
이것으로 저는 족하옵니다.’라고 기도한다. 가진 것을 다 팔아서 산 것이 나에게
있는가? 있다면, 감사할 일이다. 그것이 나의 하늘나라다. 없다면,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처럼 구하고 찾아야 한다. 한 번 주어진 이 인생을 어정쩡하게 살고
말 수 없다. 값진 진주를 꼭 찾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살아가자.
- 정제천 신부(예수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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