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볼산 -
☆ 2013년 다해 8월8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청주] 주님의 일을 하라.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제1독서 : 민수 20, 1 - 13
† 복음 : 마태 16, 13 - 23
도미니코 성인은 1170년 스페인 북부 지방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성덕을 쌓는 데 몰두하던 그는 사제가
되어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적인 설교로 사람들을 회개의
길로 이끌었다. 도미니코 사제는 1206년 설교와 종교 교육을 주로
담당하는 도미니코 수도회를 세우고 청빈한 삶과 설교로 복음의
진리에 대한 철저한 탐구를 강조하였다. 1221년에 선종한 그를
1234년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생활하면서 마실 물이 없게 되자
모세에게 불평을 터뜨린다. 그동안 주님께서 그들을 지켜 주신
것을 잊은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부족한 믿음에도 주님께서는
모세의 지팡이를 통하여 그들에게 마실 물을 마련해 주신다
(제1독서).
★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에 대해 군중과 달리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시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사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영광과 권능의
구세주로만 받아들이려는 베드로 사도를 책망하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두 가지 돌에
비유하십니다. 첫 번째는 ‘반석’이요, 두 번째는 ‘걸림돌’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반석’이라고 부르신 것은 그의 신앙 고백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여느 사람들과 달리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시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나 반석인
베드로가 이내 ‘걸림돌’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기는
하였지만, 그분의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이 말씀에서 ‘물러가라’는 표현의 뜻을 잘 되새길 때,
우리가 예수님께 ‘걸림돌’이 아닌 ‘반석’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을 물리치실 때에도 “사탄아, 물러가라.”(마태 4,10)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의 원어는 ‘휘파게 사타나’
(hypage satana)로, 단순하게 ‘물러가라’고 추방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에게 하신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는 조금 다릅니다. 원어로 ‘휘파게 오피소 무 사타나’
(hypage opiso mou satana)로, 말 그대로 번역하자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앞’이 아니라
‘뒤’로 가라고 하심으로써, ‘다시 나의 추종자가 되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탄이 예수님께 ‘추방’을 명령받은 것과 달리 베드로는
‘추종’을 명령받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걸림돌’이 아니라 ‘반석’이 되려면 예수님의 뒤에
있어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예수님의 ‘뒤’가 아니라 그분의
‘앞’에 서려고 합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그분께 걸림돌이 되고 맙니다.
- 매일 미사 -
◈ [청주] 주님의 일을 하라.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2013년 다해 8월8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마태오 16,13-23
주님의 일을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신 후 다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고 물었습니다.
이 말씀은 남들이 이러저러하게 생각하는 것을 말하지 말고, 네가
생각하는 것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정체를 말하기보다
‘너희에게 내가 어떤 존재이냐?’를 묻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16,16)
하고 고백하였습니다. 마더 데레사수녀님은 자신을 ‘주님 손에 쥐인
몽당연필’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누구이십니다.’라는 고백은
‘저는 당신의 무엇입니다.’라는 고백과 같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주님의 무엇입니까?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자기를 ‘예수님의
데레사’라고 고백했고, 예수님께서도 ‘데레사의 예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로 고백한 베드로가 꾸중을
듣습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16,23).
주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 부활에 관해 가르쳐 주셨지만 그것에
때한 깨우침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꾸중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엇이라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으로 말하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운명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었고 또 그 신비를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베드로가 생각하고 고백한 그리스도상과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는 예수님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꾸지람을 들을 만합니다. 베드로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여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인간의 원의를 내새우려 했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면서도 사실은 ‘그분이
원하는 나’를 추구하기 보다는 ‘내가 원하는 주님’을 만들어 가려고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그에 걸맞는 모습, 제자다운 모습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으로 많은 약점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특별히
성직자나 수도자의 허물은 용납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그의 약점까지도 당신의 일을 하는데 쓰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여
이렇쿵 저렇쿵 흉을 보거나 잘못을 들춰내어 그리스도의 길을 가로막는
사탄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느님은 항상 일하시나 조용히 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얼마나
말이 많은지?”-아우구스티누스- 하느님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을 도구삼아 하십니다. 부족함도
많고 허물투성인 인간을 통해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순간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서 무엇을 이루시고자 하는가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내 원의를 내세우지 말고 주님의 뜻을 찾는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내
뜻에 꿰맞추려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사탄’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든지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 주님을 위해서 하는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1고린15,58).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주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삶
어제는 국정원의 대통령 선거 개입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천주교 인천교구 사제들의 시국미사가 있었습니다.
가톨릭의 사회교리에 기초할 때, 인간의 존엄과 인권 존중, 공동선을
위해 더 이상 그냥 침묵할 수만 없어 인천교구 160명의 사제들이
시국선언에 동참하고, 30여명의 사제들이 모여 미사를 봉헌했지요.
그런데 어제 미사를 봉헌하는데 너무나 더운 것입니다. 많은 사제들과
신자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공간은 너무나 비좁았고, 천장에서 에어컨
바람이 나오고 있었지만 이 모든 사람들에게 시원함을 가져다주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지요.
덥고 끈적끈적하고...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거룩한 미사 때
나 혼자 덥다고 종이를 꺼내 부채질을 할 수도 없지요. 그래서 꾹 참고
있는데, ‘왜 이렇게 미사는 긴지 모르겠다.’는 불평이 생깁니다. 바로
그 순간, 얼마 전에 있었던 아는 분들과의 술자리가 기억났습니다.
정말로 오랜만의 만남이었고,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술자리를 가졌지요. 그때도 너무나 더운 날씨였지만, 몇 시간을 함께
하면서도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미사가 길다고 속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시간, 주님의 뜻에 따라 사는 시간에 대해서는
인색하면서도 세상의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시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관대했던 것이 아닐까요? 어떤 분은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까? 기도를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대화는 일상생활 안에서도 나눌 수 있는 것으로,
기도 역시 꼭 성당에 가야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때 주님의 칭찬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주님의 뜻이 아닌 세상의 뜻을 따르는, 세상의
즐거움을 쫓을 때 주님으로부터 혼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베드로처럼 말이지요.
베드로는 주님을 향해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하지요.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고자 하는 고백입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교회의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칭찬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세상의 기준에 따라 말하자, ‘사탄’이라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당신에게서 물러가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삶은 곧 흔들리지 않는 넓고 평평한 큰 돌을
의미하는 반석과 같은 삶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기준을 내세우고,
세상의 즐거움만을 쫓는 삶은 길을 걸을 때 방해가 되는 걸림돌이
되는 삶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삶을 걸어가면서 주님의 칭찬을
받으시겠습니까?
밖으로부터 찾아오는 행복은 바짝 마른 벼처럼 가볍다
(유리우스 함마).
인천교구 사제들의 시국선언.
굳은 믿음을 갖기 위해...
아마 본당에서는 요즘 여름 캠프 시즌이 아닌가 싶네요. 캠프가
끝난 본당도 있을 테고, 아니면 지금 캠프 중인 본당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캠프를 할 때 마지막 날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지요. 바로 캠프파이어입니다. 아마 한두 번쯤은 체험하신
적이 있으실 것 같아서 이 캠프파이어를 떠올리면서 드는 생각을
나눠봅니다.
캠프파이어 불이 활활 타오를 때에는 어떤 나무를 집어넣어도 잘
탑니다. 심지어 젖은 나무라 할지라도 불이 좋으면 금방 타게 되지요.
그런데 두꺼운 장작 하나를 성냥이나 라이터 불을 통해서 태우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불을 붙이고 있으면 몰라도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혼자만의 신앙생활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활동을 하려고 하지 않지요. 혼자서
골방에 앉아 기도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분이 바로 앞서 두꺼운 장작을 성냥이나 라이터 불로 태우려고
애쓰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자만의 신앙생활로는 주님께 대한
믿음이 활활 타오르기가 너무나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이루면서 교회 안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들은
어떤가요? 특히 이 교회가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뜨거운 열정과
사랑이 가득한 곳이라면, 본인이 어떤 상태이냐에 상관없이 그
힘으로 똑같이 활활 타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혼자 살 수 없습니다. 혼자만의
신앙생활로는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이를 기억하면서 지금부터라도
교회 안에서 열심히 활동하시길 바랍니다. 분명히 이 교회 안에서
주님을 향해 활활 타오르는 굳은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 인천 교구 성소 국장 조명연 마테오 신부 -
◈ [기타] 교회의 본질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2013년 다해 8월8일 연중 제18주간 목요일 복음묵상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마태오16,22)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마태오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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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사도는 교회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교회는 그분을 초대 교황으로 생각하고 있다.
반석이라는 의미의 베드로라는 이름을 예수님으로부터 받았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을 받는다.
그의 손에는 천국의 열쇠마저 쥐어 진다.
베드로는 그런 엄청난 사명을 받자마자 어이없는 말 한마디에
예수님께 신랄한 꾸지람을 듣는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교회를 생각해본다. 어쩌면 베드로 사도의
모습이 우리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교회는 완벽한 사람들이 완벽한 모습으로 완벽한 이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공동체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자람과 약함을 철저하게
인정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길을
걸으며 살고자 하는 이들의 공동체이다.
처음부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선택하셨고 그 약함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 넘어지고 일어서고, 죄를 짓고 뉘우치면서, 과거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아진 자신의 모습에 감사하며 약속된 미래를 희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다. 이는 교회의 전체 역사와 그
교회를 구성하는 개인에게도 똑 같이 주어지는 과정이다.
처음부터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 교회였다.
그분의 선택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분이 지켜주시기에 존속한다.
자신들의 약함을 인정한 이들이 같은 목표를 향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나아가는 공동체가 교회이다.
그리고 그 목표는 하느님 말씀의 성취이다.
지금 이 순간도 교회는 베드로처럼 하느님께 칭찬 받을 일을 하기도
하고, 구원의 역사에 걸림돌이 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완전한 모습 안에서는 성령께서 활동하실 것이다.
칭찬도 하시고, 야단도 치시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시려 하실 것이다. 베드로 사도가 장엄하게 순교의 관을 받아쓸 수
있던 것처럼 완성으로 나아가게 하실 것이다.
교회의 본질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데 있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뜻은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것임을 교회는
고백한다.
교회가 늘 경계해야 할 것,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머리에만 의지하는 것이다.
언제나 악은 교회를 쓰러뜨리려 할 것이다.
그러기에 늘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을 실천해야만 한다.
식별의 은총은 기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수도회] 오늘은 ‘에이스’가 내일은 천덕꾸러기
2013년 다해 8월8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마태 16,13-23
<오늘은 ‘에이스’가 내일은 천덕꾸러기>
어릴 때부터 뵙고 지내던 어르신이 생각납니다. 정말 부지런한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란 말씀을 늘
입에 달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당신 건강의 비결은 ‘냉수마찰’
이었습니다. 그분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꼭두새벽에 일어나셨습니다. 수돗가에서 윗옷을 벗습니다. 그리고
수건을 냉수에 적셔 온 몸이 빨게 지도록 마찰하는 것입니다.
결과는? 냉수마찰의 효과는 확실했습니다. 그분은 겨울이 와도
감기 한번 안 걸렸고, ‘몸짱’이었으며, 늘 밝고 긍정적으로 살았으며
정말 건강했습니다. 100년 이상 장수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분은 나이 50도 안 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옆집에 또 다른 어르신 한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늘
‘골골’했습니다. 갖은 잔병에 시달렸으며 ‘내가 빨리 죽어야지’를
언제나 입에 달고 다녔습니다. 늘 안색이 안 좋았고 기력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골골 이라고 아직도 세상의 모든 병원이란
병원은 다 순례하시면서 살아가십니다. 정말 인명은 재천이라고
사람의 목숨은 인간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닌가봅니다.
참으로 변화무쌍한 존재가 인간임을 실감합니다. 오늘 당당하게
이름 날리며 살아가지만 내일은 어떻게 심연의 구덩이로 처박힐지
모릅니다. 오늘은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에이스’로 살아가지만
내일은 완전 천덕꾸러기로 전락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우리 인간은 ‘근원적 결핍’ ‘태생적 한계’를 지닌 인간이란
불변의 진리를 믿는 일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지속적인 겸손’의
태도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우리 가톨릭교회의 초대교황이자 수제자였던 베드로 사도 역시
‘한 부족한 인간’이었다는 것 얼마나 큰 위로로 다가오는지
모릅니다. 그 역시 우리와 비슷하게 부족함과 아둔함, 나약함과
불충실에 괴로워했고 때로 슬피 울었습니다.
오늘도 베드로 사도는 스승님으로부터 공개석상에서 ‘걸림돌’이요
‘사탄’이라는 끔찍한 말까지 들어가며 혼쭐이 나고 있습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보십시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베드로 사도는 영예스런 예수님의
수제자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독설을 퍼붓고 계십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걸림돌이 되느냐 반석이
되느냐는 한 순간입니다. 예수님께 주어진 운명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걸림돌도 되고 반석도 됩니다. 장차 예수님
앞으로 전개될 끔찍한 수난과 십자가 죽음의 운명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에 달려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들 예수님께 맡겨진 인류구원사업은 수난과 죽음을
통해 완성되기에 수난과 죽음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할 때 우리는 든든한 반석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거부하고 이 세상에서의 영예와
성공, 달콤함과 안락함을 추구한다면 우리 역시 걸림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집을 짓는 사람들에게 ‘반석’처럼 기분 좋은 것이 다시 또 있을까요?
넓고 크고 평평한 바위, 집의 기초를 놓는데 그만입니다. 생각만
해도 마음 든든하고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집의 터를 닦는 과정에서 삐딱이 자리 잡고 있는 걸림돌을
발견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생기기도 삐쭉삐쭉,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형국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 바위 제거해야 되는데,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박일은 걸릴
정도라면 얼마나 성가시겠습니까?
매사에 하느님 중심적으로, 하느님께 우선권을 둘 때, 우리는 든든한
반석이 된다는 것, 반대로 사람의 일만 생각할 때, 사심이 커질 때,
개인적 야욕이 포함될 때, 인간적인 시각으로만 만사를 바라볼 때
우리는 즉시 걸림돌로 전락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 관구 부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신부 -
◈ [기타] 성 도미니꼬 사제 기념일
2013년 다해 8월8일
드디어 ‘2013년 마르코 복음 성경캠프’가 끝났습니다. 캠프의 순서는
‘첫째 날은 시작전례, 모둠 모임 및 소개, 저녁식사, 역할극 준비, 모둠
역할극 발표, 마무리입니다. 둘째 날은 미사, 아침식사, 예수님의 말씀
12개를 중심으로 한 포스트 게임, 점심식사, 공동체 놀이, 물놀이, 간식,
저녁식사, 예수님의 수난 묵상, 빛의 예절, 불놀이, 본당별 장기자랑,
축복예절, 간식입니다. 셋째 날은 아침기도, 미사준비, 아침식사,
성경퀴즈, 파견미사, 점심식사, 귀가’입니다.
매 차수마다 아이들의 모습이 조금씩 다릅니다. 율동과 노래를 잘
따라하는 아이들, 역할극과 장기자랑을 잘 하는 아이들, 부모님을
보고 싶어서 우는 아이들, 넘어지고 다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정말 다행인 것은
크게 다친 아이들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조금씩
변화되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기꺼이
방학을 수련장에서 보내주신 선생님들은 교회의 보물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들이 있습니다. 여름 캠프 동안 수도 없이
들었던 노래와 율동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내용의 Go Go Go입니다.
아주 신나는 멜로디의 노래였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을 이야기하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입니다. 이 노래는 베드로의 고백을 느낄 수
있는 차분한 멜로디였습니다. 풍랑을 만난 제자들을 구해 주시는 풍랑을
잠재우신 예수님입니다. 멜로디에는 제자들의 긴박함이 들어 있으며,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어린이들의 것이다. 도
있습니다. 멜로디를 들으면 어린아이들의 순수함이 느껴집니다. 하느님과
이웃사랑을 이야기한 쉐마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이 또한 아주 경쾌한
멜로디입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시간이
나면 성경말씀을 외웠고, 모임을 전후로 해서는 성경말씀을 주제로 한
노래를 율동과 함께 불렀습니다. 앞으로 삼위일체, 사도행전, 요한복음을
주제로 한 여름캠프가 기획되고 개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예수님의 질문입니다.
유아세례를 받았고, 첫영성체와 견진성사를 받았고, 신학교에서 10년을
지냈습니다. 사제생활 22년을 하면서 진지하게 예수님의 질문을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제 앞에 놓인 일들은 고민하고,
준비하고, 실행하지만 정작 저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것에는
무관심했습니다. 왜 신앙생활을 하는지, 왜 사제가 되었는지의 궁극적인
출발점은 바로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고민하는 것입니다.
내비게이션의 목적지가 정확하게 입력되면 조금 다른 길로 운전을 해도
곧 다시 목적지를 향해서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적지를
제대로 입력하지 않으면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정해진 목적지에 도착하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체험하는 것은
내가 가는 신앙의 길을 충실하게 갈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책에서
읽고,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서 가슴으로 느껴야 합니다.
베드로는 머리로만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새벽닭이 울고 참회의 눈물을 흘린 다음에야
가슴으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체험했습니다.
캠프에 참가한 교사들도 며칠 동안은 정신이 없을 거라고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그만큼 힘들었고, 긴장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새벽에 일이 끝났고, 아이들과 온종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떠난 캠프장에서 저도 며칠은 멍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생각하면서 지낼 것입니다. 나는 왜 이곳에 있는지,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내 삶의 목적지는 어디인지를 생각할 것입니다.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2013년 다해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베드로는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 했습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빛, 말씀이라고 종종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을 이렇게 표현한 내용들을 모두 인정하기에 신앙인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예수님을 나의 두목님이나 우두머리로 생각합니다.
때로는 나의 불편함을 없애주는 내 삶의 도우미로 볼 때도 있습니다.
또는 나의 자랑거리나 내 뒤에 숨길 때도 있는 배반행위도 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마태오 16,16)”
- 이기정 사도 요한 신부 -
◈ [대구]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말했다가
“맙소사, 주님! 고난과 죽임을 당하는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베드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처럼 베드로는 사람의 일만을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은 했지만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고난과 죽음이 하느님과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을
받으면 피하려고만 하지 하느님의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이 당연합니다.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지요.
사실 저는 예전에 아버지를 많이 미워했습니다. 신문이나 뉴스에 나오는
사건처럼 나쁜 마음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아버지
안에도 예수님이 존재하실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을 찾게 되자 아버지가 새롭게 보였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저한테 축복이었습니다. 아버지를 통해 인간관계를 많이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일은 하느님의 일인 것 같습니다. 사람의 일로 보면
고통이지만 하느님의 일로 보면 축복입니다. 지금 힘들다고 좌절하지
마세요. 그 속에 하느님의 일이 숨어 있답니다.
- 이수환 신부(대구대교구 원평천주교회) -
◈ [기타] 하느님의 일을 생각합시다.
2013년 다해 8월8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마태오 복음 16장 13~23절)
오늘 복음 마지막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그 말씀을 읽고 나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었나..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는데요. 몇 가지 떠오른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식사 전
기도도 하지 않고 밥을 입으로 밀어 넣을 때입니다. 항상 그런
건 아니고요. 배고파서 급하게 음식 준비를 마치고 먹으려 할 때
종종 밥을 한 숟가락 입에 넣고 나서 ‘아차.. 기도 안 했지..’ 할
때가 있는 거 같습니다. 그분의 생각은 ‘배만 채우려 하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먹어라..’ 하는 것일 텐데.. 너무 쉽게
감사함을 잊어버리는 거 같습니다. 아마도 그런 제 모습에 대고
복음과 같은 말씀을 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두 번째는 누가 알아주기를 바랄 때입니다. 요즘 본당에 잔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수영장 청소도 해야 하고, 캠프 하는 본당이
바뀔 때마다 실내 청소도 해야 하고, 쓰레기 분리수거도 해야
하고, 관리도 해야 하고, 요구사항도 들어줘야 하는데요. 혼자
일하다가 문득문득 ‘내가 이런 일 하는 걸 신자들이 알고 있을까..’
하면서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고 기대할 때가 있는 거 같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겸손한 모습으로 ‘네가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잊어라...’ 하실 텐데, 저는 그러지 못하고 신자들이 저의
고생(?)을 더 많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욕구를 채우고자만 하는
거 같습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하느님의
뜻과 일은 생각하지 않는구나.. 하고 한 마디 하실 거 같습니다.
세 번째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입니다. 아마도
공소가 본당이 되고, 신부가 파견되었다는 것은 전에 없던 교육의
기회들이 생기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교리교육이라든지
성경공부라든지.. 하는 것들인데요. 시작은 했지만 자꾸 하지말까..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언제냐면 신자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입니다. 관심도 갖지 않는데 고생해서 준비할 거 없지 않나..
하는 인간적인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는데요. 아마도 그런 모습에
대고도.. ‘하느님의 일을 생각해야 할 거 아니냐.. 많든 적든 신앙교육을
해야 하는 너의 사명에 성실해야 할 게 아니냐..’ 하실 거 같습니다.
네 번째는 캠프 오시는 분들에게 주의 사항을 드릴 때의 제
모습입니다. 작년까지는 주의를 주더라도 강하게 이야기하거나,
계속 다니면서 잔소리를 하지 않았었는데요. 그렇게 하다 보니
저와 신자들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올 해 부터는 강하게,
그리고 지켜지지 않으면 옆에서 계속 주의를 주고 있는데요.
처음에는 강하게 어필만 하려고 했는데 한 차수 한 차수 지나갈
때마다 저의 이런 모습들이 보이더라고요.
‘요거 빨간불 나와서 그을음이 생기니 쓰지마라..’ 하고 주의를 준
뒤에, ‘쓰기만 해봐라..’ 하고 옆에서 보고 있다가 딱 걸리면 자매님에게
화를 내는 겁니다. ‘쓰지 말라고 했는데 왜 쓰냐.. 내가 세 번이나
말하지 않았냐..’ 하면서 화를 내기도 하고... 주의를 줄 때도 그냥
말하면 잘 안들을 거 같으니까 조금은 과장된 이야기를 첨가하기도
하고 설교조로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던 거 같습니다.
오시는 분들이 좋은 추억을 만들고 가실 수 있도록, 또 자연스럽게
규칙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들어 드리는 것이 더 필요한 일일 텐데..
그보다는 당장 편한 방법, 강하게 이야기하고 화내는 것으로 오시는
분들에게 주의를 주려 했던 거 같습니다.
아마도 그 일들의 방향을 주님이 원하시는 쪽으로 향하도록 하는
것이 제 과제일 거 같은데요. 여러분도 자신의 말과 행동이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성가연습을 하는데 한 자매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신다.
“배고파요~”
- 밤송이 신부님의 묵상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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