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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다해 8월16일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청주] 헤어진다는 것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제1독서 : 여호 24, 1 - 13
† 복음 : 마태 19, 3 - 12
★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다. 나이가 많아 죽음의 때에 이른 여호수아는 모든
이를 한곳에 모이게 하여 약속의 땅에 대한 주님의 약속을 상기시킨다
(제1독서).
★ 예수님께서는 이혼에 관한 바리사이들의 질문에 대하여, 부부는
본디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이니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부란 본디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으로
둘이 아니라 한 몸이기 때문에, 사람이 함부로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군 생활을 할 때 뜻하지 않게 ‘군기 교육대’에 간 적이 있습니다. 군인들의
복무 자세를 바로잡는다는 그곳에서 저는 얼차려(기합)를 받다가
난생처음으로 체력의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습니다.
그때에 저는 탈진 상태에 있으면서, 도저히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십자가의 길을
떠올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라는 언덕까지 오르실
때 세 번 쓰러지셨는데, 그 고통이 생각보다 매우 처절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더 나아가, 당시 군인 신학생이었던 저는 사제 생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곧, ‘사제로 평생 살아가려면
적어도 세 번은 처절하게 쓰러지겠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부부 생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혼인하여 가정을
일구고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일을 많이 만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을 겪는 가운데 자신의 배우자와 도저히 함께 살 수 없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의 위기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곧 십자가의 길이 그렇고,
사제나 수도자의 길이 그러하듯, 부부 생활에서도 적어도 세 번은 쓰러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쓰러짐은 도저히 일어서기 힘들
정도로 처절하게 다가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이 오더라도 좌절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모든
부르심에는 이러한 위기가 따르기 마련이고,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그러한 위기를 이겨 내며 다시 일어섭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고,
교회의 역사 안에서 수많은 신앙인들이 그러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한 몸이 된 부부들 또한 쓰러져도 일어서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이를 원하시고, 또한 그렇게 일어서도록 힘도 주실
것입니다.
- 매일 미사 -
◈ [청주] 헤어진다는 것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성모성당
2013년 다해 8월16일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 마태오 19,3-12
헤어진다는 것
남성은 결혼을 통해 정신적 안정을, 여성은 경제적 안정을 얻으려
한다고 합니다. 한 결혼정보업체가 미혼 남녀 5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결혼을 통해 보완하고 싶은 것으로 남성의
54.6%가‘정신적 안정 및 풍요’를 꼽았고, 12.1%는‘가사에 도움’이라고
답했습니다. 반면에 여성들은 47.2%가‘경제적 안정’을 꼽았고, 정신적
안정 및 풍요가 25%, 사회적 지위가8.3%로 나타났습니다.
남성의 지향과 여성의 지향이 다르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살겠다며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초호화 결혼식을 올린 부부도, 잉꼬부부로 알려진 부부도 쉽게
헤어지는 모습을 봅니다. 많은 경우 ‘성격 차’ 때문에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다며 각자의 길을 갑니다.
성격이야 서로 다른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상대의 성장 과정이나
환경이 다를 진대 어찌 성격이 똑같겠습니까? 쌍둥이로 태어난 사람도
같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서로를 인정하고 부족함을 채워주는 가운데
더 깊은 사랑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너무도 쉽게 너와
내가 다른 것을 ‘네가 틀렸어’로 밀어부치고 맙니다. 그래서 마침내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하며 등을 돌립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19,6). 혼인을 하느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헤어질 수 없지만 단순히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혼을 쉽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일생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하느님과 일가친척 앞에서 서약을 하였습니다. 남녀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존재이지, 욕심을 채우는 수단이 아닙니다.
서로는 동반자이면서 서로 사랑 받고 존경 받아야 할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단순히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과 우리 자신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영원에서부터 인간의 신랑이시고 인간은 하느님의
신부입니다.(예레31,3) 하느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하느님을 향한
믿음의 관계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철학자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지혜롭고 의롭고 착한 사람을
소크라테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불행하게도 결혼만은 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의 아내 크산디페는 세기의 악처로 이름이 나
있습니다. 물론 집안 살림에는 관심도 없는 남편을 좋아할 아내가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남편에게 바가지는 예사이고 심지어는
때리기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태산 같은
인내심으로 이겨 나갔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마구 욕을 해 대다가
아무 대꾸를 하지 않는 소크라테스로 인해 화가 풀리지 아니하자
걸레를 빤 물을 남편의 머리에 끼얹었습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태연하게 “뇌성벽력이 대단하더니 종래는 비가 오고야 마는군”
하였답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부부간에 크고
작은 고민거리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나 참고 견디면 성공하는
것이요, 인내하지 못하면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남편
된 사람은 자기 아내를 자기 몸 같이 사랑하고, 아내 된 사람은 자기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에페5,33). “결혼한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인데 아내는 남편과 헤어져서는
안됩니다. 만일 헤어졌거든 결혼하지 말고 혼자 지내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 남편과 다시 화해해야 합니다. 또 남편은 자기 아내를
버리면 안됩니다”(1고린7,10-11).
서로간의 관계 안에서도 신의를 지키고 부족함을 가슴에 담을 수
있는 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던히 참아주고 변화를
기다려주는 넉넉함이 우리를 풍요케 할 것입니다. 헤어지자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전쟁터에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바다로 항해를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며, 결혼할
때에는 세 번 기도한다.”(러시아 속담)고 했습니다. 결혼해서 일생을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나 풍랑이 몰아치는
험한 바다보다도 더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매 순간
기도하며 애쓰지 않으면 서로의 다른 점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사랑합니다.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항상 변함없는 사랑의 마음으로 주님게 청하십시오.
어제 운전을 해서 어디를 가고 있는데 글쎄 차 안에 파리 한
마리가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운전을 하고 있으니 차 안에 들어
있는 파리를 잡을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이 파리가 도대체 가만히
있지를 않네요. 좀 도망가라고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았지만 그 순간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시 창문을 닫으면
어디선가 나타나 저의 운전을 방해하더군요.
여기 좀 앉았다가 또 저기 좀 앉았다가 그리고 금방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파리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의 마음도 이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변덕이 죽 끓듯 하다’는 속담처럼, 이랬다
저랬다 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반성하게 됩니다. 얼마 전에 재미있는
글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결혼 10주년 기념일,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뭐 갖고 싶어? 새 차? 다이아 반지? 아니면 밍크코트?”
이에 아내가 냉정한 눈빛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혼을 원해요.”
그러자 남편이 아내에게 심각한 얼굴로 하는 말.
“미안하지만, 그렇게 비싼 건 안 돼.”
이 부부가 과연 행복할까요? 어떤 목적을 가지고 결혼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처음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간직하면서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바뀐 것이지요. 마치 파리가 한 자리에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것처럼 변덕스러운 마음 때문에 처음에 간직했던 사랑의 마음이
변한 것이 아닐까요?
오늘 주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라는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말씀하십니다. 변덕스러운
마음으로 쉽게 갈라서서는 안 되며, 대신 사랑의 마음으로
주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성가정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결혼하는 것은 대접받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즉, 무엇인가를
받고자 한다면 결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결혼생활이 힘들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이렇게 숫자로 표현했더라고요.
“결혼은 3만 5천 번의 식사 준비, 1~3만 번의 이부자리 정리, 7천
번의 화장실 청소, 아기 기저귀는 2년 기준 4,320번 갈아야 한다.
따라서 남녀가 같이해야 한다.”
이렇게 힘든 결혼을 어떻게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 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함께 꾸려나가야 하는 것이 결혼인 것입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변덕스러운 마음이 아닌, 항상 변함없는
사랑의 마음을 주님께 청하십시오. 그리고 각자의 자리(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상관없이)의 그 최고의 사랑을 실천하도록
노력하십시오. 분명 그 자리에 주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미워해도 사랑해도 둘 다 바뀐다. 그러나 미워해서 바뀌면 둘
다 불행하고, 사랑해서 바뀌면 둘 다 행복하다(조정민).
스페인의 성가정 성당입니다.
성가정 만들기
사실 저는 결혼을 할 수가 없지만, 신부라는 위치 때문에 결혼 주례는
정말로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막 결혼하는 신혼부부를
보면 그렇게 멋있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 모습이 영원할까요?
앞으로 삶이 이렇게 멋있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길 바라면서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지만, 실제의 삶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어쩌면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는 마지막으로 왕자 옷, 공주 옷을 입어보고
앞으로는 대접 받으려는 왕자의 마음, 공주의 마음을 벗어버리라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신 대접하는 삶, 사랑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지요.
결혼을 하면 이제 여자와 남자가 아니라, 인간이 된다고 하지요. 왜냐하면
가정을 꾸려 나가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갖추어야 하고
이를 통해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이 가득한 성가정이 가득한 우리 사회가 될 때, 비로소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 인천 교구 성소 국장 조명연 마테오 신부 -
◈ [수도회] 수도생활 못지않는 결혼 생활
2013년 다해 8월16일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마태19,3-12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수도생활 못지않은 결혼생활>
‘가정공동체’ ‘가정교회’에 대해서 강의할 때 마다 제가 단골로 써먹는
조금은 썰렁하고, 고전적인 우스갯소리가 하나 있습니다.
한 신부님께서 강론 시간 때 ‘행복한 결혼생활’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300명은 족히 될 남녀교우들에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여기 계시는 자매님들 가운데 다시 태어나도 지금 남편을 내
남편으로 선택하겠다는 분 손들어보세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적어도 몇 명은 손들겠지, 생각하셨는데,
200여명이나 되는 자매님들 가운데 단 한 명도 손을 들지 않으셨습니다.
난감해진 신부님은 당부조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옆에 사람 눈치 보지 마시고 소신 것 손 한번 들어보세요.”
그때 다행히 손을 번쩍 드신 자매님이 한 분 계셨는데, 연세가 80중반
정도 되시는 자매님이셨습니다. 그렇게 부부금실이 좋은 이유에 대해서
교우들에게 소개를 해주시라고 했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나는 젊어서 첫 번째 남편과 사별하고 쭉 혼자
살아오다가 나이 좀 들어서 재혼했는데, 살아보니 둘 다 별 것 없더라구.
그 ×이 그 ×이더라구. 그렇다면 또 다시 결혼한다면 낯선 ×보다는
익숙한 ×이 더 낫지 않겠수?”
그렇습니다. 할머님 대답이 정답입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기
마련입니다. 다른 가정은 다 깨가 쏟아지는 성가정처럼 보이지만 각
가정마다, 각 부부마다, 너나 할 것 없이 나름의 한계와 부족함을 안고
한 평생 아옹다옹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보통 우리네 삶입니다.
지나친 기대가 실망을 초래합니다. 요즘 ‘아친남’(아내 친구 남편)이라는
말이 유행합니다.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관리를 잘 해 실제
나이보다 10살은 어려 보여야 합니다. 그럴듯한 직장에 매일 출근하는
남자여야 하고, 자주 해외출장도 나가주는 남자여야 합니다. 출근하기
전에 아침식사를 근사하게 차려놓고 부드럽게 아내를 깨워주는 남자여야
합니다.
‘아친남’과 대응되는 말도 쉽게 만들 수 있네요. ‘남친아’(남편 친구 아내).
나이를 먹어도 늘 난초처럼 청초하고, 다소곳하고, 예의바르고, 항상
웃고, 거기다 돈까지 잘 벌어오고...
세상에 이런 남편, 이런 아내는 없습니다. 10명의 남편이나 아내가 지닌
단점들은 쏙 빼버리고 장점만을 모아 한 사람에게 몰아주면 모를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남편도 아내도 어쩔 수 없이 부족한 인간, 나약한 인간, 모순과 한계를
지닌 인간, 그러나 노력하는 한 측은한 인간일 뿐입니다. 그래서 긴
여행길을 함께 걸어가며 서로의 결핍을 채워나가며, 서로 도와주고,
서로 성장시켜 주며, 서로 일으켜 세워 주는 것이 바로 결혼인 것입니다.
수도생활 못지않게 많은 십자가와 큰 희생이 따르는 수행생활입니다.
모든 것이 나와 다른 ‘그’입니다. 그러기에 ‘그’의 나와 다름을 당연한
것으로 바라보고, 끊임없이 ‘그’에 대해 연구해야 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하고, ‘그’를 이해하고, ‘그’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부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기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2013년 다해 8월16일 연중19주간 금요일 복음묵상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마태오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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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성사 때 자주 읽히는 복음말씀이다.
이 말씀과 그에 대한 강론을 듣고 있는 새 신랑 새 신부는 추호도
이 말씀에 대해 어려움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기에는 혼인의 이 순간이 무지갯빛 설렘으로 가득하다.
혼배성사 강론 때 하는 이야기를 떠오르는 대로 몇 가지 정리해 본다.
1. 누구를 위한 선택인가? 누군가를 배우자로 선택해 한평생을 함께
살고 싶다는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결국 자신을 위한 선택이기 마련이다.
정말 사랑하는 부부로 살기 위해서는, 서로가 자신을 위한 배우자가
아닌, 배우자를 위한 자신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2. 남자와 여자는 원래 다른 것이 많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자연스러움이다.
그 자연스러움 때문에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다름이 틀린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3, 우리 인간이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무엇인가?
두 사람에게는 쉬운 일보다는 어려운 일들이 더 많이 기다릴 것이다.
감정에 의해서 시작된 사랑은 슬픈 일이지만 퇴색하기 마련이다.
서글픈 이야기지만, 로미오와 쥴리엣의 사랑이 아름답다고 회자되는
것은 그들이 일찍 죽을 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보통 무엇 때문에 좋아하게 된 것은 그 무엇 때문에 싫어지게
될 공산이 크다. 예를 들어, 잘생기고 예뻐서 서로 선택했다고
하자.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그 잘생긴 남자와 그 예쁜 여자는
늙어갈 것이고,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은 늘 텔레비전 화면에서
새롭게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의지(意志)이다. 내가 선택한 그 사람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사랑이다. 최선을 다해서 사랑해야 한다.
4. 아내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다.
모든 남편이 아내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쉴 수 있는 자리를 아내에게서 찾는다는 것이다.
아내가 쉴 수 있는 자리가 되지를 못한다면 남자들은 바깥으로
눈을 돌리기 마련이다.
5. 남편이 잊어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다.
모든 아내가 남편에게 원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기댈 수 있는 가슴이다.
남편의 경제적 능력이나 그 어떤 비교에 의해 만들어지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힘이 들 때, 외로울 때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가슴 있는 남편이어야 한다.
6. 엄마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다.
모든 아이들의 얼굴에는 반드시 엄마의 얼굴이 있다.
아이들의 얼굴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이는 엄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7. 아버지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포근한 산 같은 존재여야 한다.
비록 아버지보다 모든 것이 커진 아이들이라고 해도 아버지는
늘 산 같은 존재로 남아야 한다.
8. 두 사람 사이에는 하느님이 계심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왜 흔들리지 않겠는가?
왜 부딪히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에는 하느님께서 계시고,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사랑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불완전함을 그분의 완전하심으로 극복하는 지혜를 청해야 한다.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기타]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2013년 다해 8월16일
매일 강론을 준비하면서 사용하는 것은 컴퓨터입니다. 컴퓨터에
저의 생각을 옮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키보드’입니다. 키보드가
없으면 문서를 작성하기도 어렵고, 원하는 정보를 얻기도 어렵습니다.
키보드에는 많은 자판이 있습니다. 어떤 곳은 많이 사용해서인지
반들반들 합니다. 하지만 어떤 곳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Fn'이라는 기능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전문가들에게
필요한 기능인 것 같습니다. 컴퓨터의 키보드는 사용자가 있어야
기능을 합니다. 키보드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을 입력하면 모니터에는 사랑이 깜박입니다. 미움이란 말을 입력하면
마찬가지로 미움이 모니터에 깜박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셨으면 그동안의 모든 일들은 가능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집트에서의 탈출, 광야에서의 생활, 약속의 땅에
들어온 것, 많은 이민족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은 모두 하느님의
도우심과 하느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작업을 하면서 이면지를 사용하곤 합니다. 요즘 쓰는 이면지는
지난겨울에 텍사스로 가서 강의를 하려했던 원고입니다. 저는 뜻하지
않은 골절사고로 텍사스엘 갈 수 없었습니다. 그 뒤로 사순시기에
가려고 했는데 교구의 인사이동으로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주교님께서는 제게 ‘용문수련장’을 관리해 주도록 말씀을 하셨고,
사제들은 주교님의 말씀에 순명을 해야 하기에 저는 텍사스엘 갈 수
없었습니다. 사실 제가 하는 많은 일들이 결국은 주님의 이끄심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모르는 방법으로 저를
사랑하시고, 제게 새로운 길을 알려 주십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말을
하더군요. ‘모든 우연은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부부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모든 성사는
그 주례가 사제이지만 혼인성사는 그 주례가 혼인 당사자들입니다.
사제는 그 혼인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이루어졌음을 선포할 뿐입니다.
혼인 성사는 당사자들의 서약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언제나 함께 하겠다는 서약’입니다. 또 그 서약은
교회와 하느님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지금 만나는 배우자를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키보드의 자판을 생각합니다. 다른 자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저의 손가락을 만납니다. 언젠가 단 한번 쓰여질
그 날을 위해서 오늘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외로운 자판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나의 모든 것, 내가 만나는 이웃들,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하느님 앞에서는 컴퓨터의 키보드와 같은 것은 아닐까?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혼인은 새로 태어남이다
2013년 다해 8월16일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
복음 : 마태오 19,3-12
< 혼인은 새로운 태어남이다 >
옛날 서양에 남의 양을 훔친 죄로 「양도둑(Sheep Thief)」이라는
두 글자의 약자인 ST를 이마에 낙인으로 받은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 중 형은 모욕을 참을 수 없어 외국으로 도망가 자신을 감추며
살아보려 했으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마에 있는 두 글자가
무슨 뜻이냐고 캐묻는 바람에 결국은 이곳저곳으로 떠돌다가 더
이상 숨어살 수 없음을 깨닫고 절망 끝에 먼 타양에서 외롭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내가 양을 훔친 사실은 내가 딴 곳으로 달아난다
해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 남아서 내 이웃과 나 자신에게
다시 정직과 믿음을 되찾도록 노력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해가 바뀌는 동안 그는 정직하다는 평판을 얻었습니다. 물론
수많은 수모를 참아가며 노력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날
이곳을 지나치던 낯선 사람이 그 동생의 이마에 있는 글자를 보고
동네 노인에게 “저 사람 이마에 있는 글자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노인은 “글쎄요, 잘은 모르겠는데 아마 그분은 매우
성실하고 훌륭한 분이니 그 글자는 성인(Saint)의 약자일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합니다.
사제가 되어 고해성사를 들어보니 결혼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들도
서로 싸우는데, 하물며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사람이 함께
맞춰가며 살아간다는 게 쉽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힘이 든다고 현실을 회피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위의
예화에서의 형처럼 현실을 회피하려든다고 해서 있는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으로 묶인 것은 어느 것이나 영원성을 가집니다.
혼인은 성령으로 두 사람이 하나로 묶였기 때문에, 마치 밀떡이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처럼, 이젠 둘이 갈라질 수 없는
하나로 영원히 묶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인도 성사인
것입니다.
오히려 동생의 경우처럼 힘들고 어렵지만 잘 받아들이면 나에게
혼인이 큰 영광으로 남게 됩니다. 양 도둑, ST(Sheep Thief)
이니셜이, 성인 ST(Saint) 이니셜이 되는 것입니다. 어차피 한번
하면 그만이라면 참고 끝까지 가야합니다.
창세기에 “하느님이 아담(사람)을 동산에서 내쫓았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런데 ‘내쫓다’는 동사는 히브리말로 ‘가라쉬’라 쓰는데,
이 가라쉬는 내쫓는다는 말 대신 ‘이혼하다’라는 뜻도 지닙니다. 어찌
보면 인류 최초의 혼인은 하느님과 인간이었고, 인류 최초의 이혼도
하느님과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인간을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을
당신 집에서 내쫓기 이전에 이미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혼인을 통해
당신 집으로 다시 들어오게 할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한 번 잘못을
했다고 내치는 그런 분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이 당신과 합당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준비가 되도록 잠시 내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하는 방식도 ‘혼인’의 신비로 하셨습니다.
혼인은 하나의 새로운 탄생입니다. 마치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면 이전의 우리가 아닌 새로운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처럼
혼인도 하느님의 사랑 안에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병아리가 어찌 알로 돌아갈 수 있고, 개구리가 올챙이로
되돌아갈 수 있으며, 나비가 어찌 애벌레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우리가 어찌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혼인도 존재와 본질의 변화인 것입니다.
그래도 되 돌이킬 수 없는 새로운 탄생인 것입니다.
하느님이 한 번 인간을 사랑하셨다면 인간이 되돌아서지 않는 이상
그 인연을 끊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연을 끊으려한다면 우리는 그런
하느님의 사랑을 닮은 사람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 나오면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가 들썩입니다.
그런 명작들을 어떻게 그렇게 많이 쏟아낼 수 있을까요?
그는 “여행이 나를 키웠다”고 말을 합니다. 아무 계획도 없이 그냥
배낭 달랑 메고 여행을 떠나면, 그 여행에서 그는 풍부한 정신적
고양과 판타지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여행이 그를 눈물 흘리게 하고,
여행이 그에게 글을 쓰게 한다는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을
통해 항상 ‘새로 태어나고 있다’라고 말합니다.
결혼도 이와 같은 것 같습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만남으로써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해 준 것, 사랑을 알게
해 준 배우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만남을 그렇게 깊을수록
그 만남 속에서 내가 새롭게 잉태되고 태어나게 됩니다.
- 수원 교구 오산 성당 전 삼용 요셉 신부 -
◈ [서울] 성생활도 그에 따른 책임까지
2013년 다해 8월16일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열대어 엔젤을 부화하며 참 신기한 암수의 생활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놈 30여 마리 중 하나가 치열한 경쟁 후 암놈 하나와 일치합니다.
그 다음은 한 쪽이 죽을 때까지 절대로 갈라지지 않고 지냅니다.
생김이 그래서 엔젤이라 한 건지 습성 때문에 그리 붙인지 몰라도요.
어쩜 이런 것이 대자연의 기본이 아닌가 생각하며 많은 걸 느꼈습니다.
사람의 성생활도 그에 따른 책임까지 하나라는 생각이 깊어지더군요.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다.(마태오 19,9)”
- 이기정 사도 요한 신부 -
◈ [기타]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노력합시다.
2013년 다해 8월16일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마태오 복음 19장 3~12절)
예전에 구역 미사를 하기 전에 자매님들이 남편 얘기를 하시다가 조금
극단적인 상황의 이야기가 나온 거 같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못 살지
않을까... 이혼해야 하지 않을까...’ 하시다가 저에게도 동의를 구하는
물음이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한테 물어보면 당연히 이혼은 안 되죠.’
하니까, 그런 구절이 성경에 있느냐고 물어보셨었는데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거 같습니다.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나서,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신비와 축복을 이어가느냐 깨뜨리느냐..
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렸다.. 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거 같은데요. 그
축복을 잘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저는
결혼을 해보지 않아서 감이 잘 안 오지만, 공동체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임을 생각해보면 그것에 빗대어 몇 가지 얘기를 해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첫 번째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말아야겠다.. 하는 겁니다. 부끄럽지만
어제 저녁에 수영장 청소를 하면서 감정이 극단으로 왔다갔다 했습니다.
의무 대축일이라 본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는데 공소 신자들은 거의
오지도 않았고, 다른 신자들도 많이 나오지 않으셨더라고요. 그 부분에
대해서 제가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걸 신자들이 알면서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저를 화나게 하더라고요.
화난 마음에 생각이 극단으로 갔었습니다. 이제 공소 미사는 가지
않으리라.. 미사 해 주러 가도 잘 나오지도 않고, 나오고 싶을 때나
나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뭐 하러 미사를 해 주나... 하고 극단적으로
생각을 했었는데요.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할지 몇
번의 경험으로 대충 그려졌거든요.
그런데도 화가 나면 저도 그렇지만 부부들도 극단적인 생각을 많이
하시는 거 같습니다. ‘이런 사람이랑 절대 못 살아.. 한 번만 더 그렇게
하면 이혼이야.. 별거야..’ 그렇게 해야 상황이 나아질 거 같고, 버릇이
고쳐질 거 같지만 실제로 상황은 더욱 나빠지기만 하는 거 같습니다.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은 ‘이런 극단적인 생각은 부부에게나 공동체를
위한 생각이 아니야..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신 일치를 어떻게 하면 보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한 몸을 이루는 일 뿐만 아니라, 부부가 더욱
성숙해 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일단 극단적인
생각을 몰아내고 붙잡지 않는 것이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하는
말씀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인 거 같습니다.
두 번째는 보이지 않는 담이 생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겁니다. 본당에
신자들이 얼마 되지 않다보니까 그분들이 저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대충 보이는 거 같습니다. 평일 미사에 잘 나오다가
나오지 않거나, 작업에 동참하다가 피해 다니는 모습을 보거나, 인사를
해도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서둘러 가려는 모습들을 보면 이 분이 뭔가
나에게 서운한 일이 있나보다..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느낌이 오면 되도록 즉시 찾아가 뵈려고 합니다. 요즘 왜 그러시는지..
어떤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하는 것들을 묻고 듣곤 했었는데요. 그렇게
즉시 찾아 나서게 된 이유가.. 그렇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담이 꽤 높아져
해결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을 종종 경험하곤 했었거든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회복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다가가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부부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은 담이 쌓이는
걸 방치하다가 수 십년 말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부부처럼 될 수도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런 일이 있기 전에 담을 허물어 버릴 수 있도록 다가가
대화를 시도하고 오해를 풀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갈라지지 않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그가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아도 나는 그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리라.. 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부부는 한 몸인데 나를
위해 기도한다면서 배우자를 함께 포함시키지 않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겠죠. 그가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하든 말든 나를 위한 기도에는
그를 위한 기도가 항상 포함되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 일이 배우자와의 일체감을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그렇게 기도하다
보면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작은 사랑을 실천하면서 오는 작은
기쁨들이 더 큰 열정으로 기도하게 해 주고, 그 기도가 다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반응들이 생기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저와 한 몸이고 지체인 공동체를 위해서 매일 기도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신자들과도 함께 저녁 9시가 되면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하자..
고 했는데 얼마나 실천하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어느 자리에 있든 함께
바치는 기도가 서로를 하나의 끈으로 연결해 줄 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성장하고 자랄 수 있는 토대가 되어 주는 거 같습니다.
오늘 하루,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신 일치를 사람이 갈라놓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 봅시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돼지 우리를 청소하는데
돼지들이 비키라고 해도 안 비킨다.
그래서 오물을 퍼서 돼지가 있든 말든 구석으로 던졌는데,
머리에 오물을 맞은 돼지가 그것을 털어내려고 몸을 털었다.
그럴 줄 예상을 못해서 방어할 틈도 없었다.
‘앗!’ 하면서 날아오는 오물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 밤송이 신부님의 묵상 글 -
◈ [기타] 어린 아이가 어찌 거짓말을
2013년 다해 8월16일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어린 아이가 어찌 거짓말을(루카 1, 39-56)
오늘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라는 말씀을 들으면
연관되어 떠오르는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메주고리예의 기적]이라는 책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그때 나는 18개월 된 딸 이바나를 발현 장소에 데리고 갔지요. 나는
아이가 숨을 쉴 수 있도록 되도록 높이 쳐들고 있었답니다. 어찌나
사람들이 밀쳐대던지 목격증인 마리야 옆에 있던 나는 본의 아니게
목격증인들로부터 1.5m 정도 앞에 있었으니 바로 성모님께서 서 계시던
곳이었지요. 바로 그때 아주 이상한 광경이 벌어졌어요. 어린 이바나가
내 어깨로 기어오르더니 손으로 무언가를 잡아보려고 있는 힘을 다하여
팔을 뻗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아이의 곁에는 스플리트에서 온 사제가
한 분 서 계셨는데 아이가 하는 일에 매혹되어 있더니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답니다.”
“발현이 끝난 후 마리야는 어린 이바나도 성모님을 뵈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성모님이 쓰고 계시던 12개의 별이 달린 관을 가지고 놀고 싶어
그것을 잡아보려 애쓰고 있었는데 이를 성모님께서 보시고는 즐겁게
웃으셨다고 마리야는 말했습니다. 그 신부님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그는
발현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속임수라는 증명을 해 보이려고
왔었는데 그만 성모님께서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보여주신 것이죠. 그
신부님은 눈물을 흘리며 ‘어린 아이가 어찌 거짓말을 할 수 있겠는가.’
라고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어서 이에 대하여
교황청의 공식적인 입장에 대하여 말씀 드립니다. 1981년 성모님께서
메주고리예에 처음 발현하셨을 때 그 곳 주교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셨고,
함께 기도해주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고연방은 공산주의 치하에
있었고, 주교님은 공산당원에 불려가신 다음 그 발현이 진실이 아니라고
번복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황청에서는 그 발현의 신빙성에 관해서 유고연방 주교회의에
재조사를 요청하였고, 1991년 4월 10일 전 유고슬라비아 주교회의에서는
자다르 선언문을 선포하였습니다. 곧 그 선언문은 “지금까지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우리는 초자연적인 발현과 계시 등이 있다는 것에 대하여 아직도
조사 중에 있습니다.” 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교황청은 이 선언문을
따릅니다.
끝으로 현재 비공식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메주고리예 순례활동에 관해서
교황청 신앙 교리성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이 입증된 것이 아니고
또 아직도 교회 당국에 의해 조사가 필요하다는 조건 하에서 순례를
허락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에도 200여명의
사제단이 공동으로 미사를 그곳에서 집전하기도 하였고, 또 신자들
4만여명이 함께 미사에 참례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교황청에서 직접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조사 중에 있는
상태입니다.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없지만 성모님께서는 32년이 넘도록
매일 발현하고 계십니다. 처음에는 여섯 명의 청소년에게 발현하셨는데
각 개인마다 열 개의 비밀 메시지를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목격증인들은 고해사제에게 그 일(???)이 발생하기 열흘 전에 단식을
하게 되어있고 3일 전에 그 비밀에 대하여 말하고, 고해사제는 전세계에
발표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작년에 제가 메주고리예를 순례했을 때에도 태양에서 빛이 쏟아지는
것처럼 놀라운 일이 그곳을 떠나는 날 아침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사진기로 찍었고, 사진에는 성체모양의 아름다운 원과 그보다 훨씬 작은
아름다운 원이 나타났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게신 곳에 늘 함께
계신다고 하셨는데, 큰 원은 예수님이시고, 작은 원은 어머니 마리아로
해석되었습니다. 태양을 입은 여인이라는 말씀은 이미 파티마에서
태양의 기적이 있었고, 지금 메주고리예에서도 놀라운 태양의 기적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특별히 스테파노 곱비 신부님을 통해서 제2의 성령강림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되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지난날의
삶을 하느님 은총의 빛으로 조명을 받아 명확하게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여 자신의 양심을
새롭게 하여 성령으로 충만된 삶으로 나아가게 되기를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께 속한 이들입니다. 그러고는 종말입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모님께서는 제2의 성령강림이 세상의 끝날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루이사 피카레따를 통해서도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묵시록에서도 천 년 통치(왕국)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 20장 4절에서 “그들은 그
짐승이나 그의 상에 경배하지도 않고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도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나머지 죽은 이들은 천 년이 끝날 때까지 살아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새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깨어 기도하며 준비해야하겠습니다.
요즘 고3수험생들의 어머니들이 자녀들이 시험을 앞두고 주님께
의탁하며 매일같이 100일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인류를 위해서 32년이 넘도록 매일같이 발현하고 계시며 눈물을
흘리시면서 인류에게 회개하고 기도하며 단식하며 준비하라고
호소하고 계십니다. 앞으로 다가올 이 세상 인류에게 어떤 시험이
닥쳐오고 있기에 성모님께서는 그토록 오랜기간 동안 준비시키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도 성모님을 통하여 회개하고 기도하며 준비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미사성제에 충실하고 단식하며 기도하는 삶을
더욱 열심히 살아갈 것을 결심합시다. 아멘.
- 희망 신부님의 묵상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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