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처 없는 여정인지라 다음 목적지가 정해져 있을이 없다.
함평지도를 보면 용천사, 고인돌 공원, 민물고기생태관 등 볼거리가 많았다.
그러나 무안, 목포방향에 자산서원이 눈에 띄었다.
나비축제장을 빠져나와 주유소 옆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자산서원 가는 길을 물었다.
넥타이 맨 중년신사가 나와서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준다.
그 중년신사가 “자산서원은 어떤 일로 가려고 하는가?” 묻는다.
그저 관광하려고 간다고 하니까 자기가 자산서원의 문화관리과장이라고 자기소개를 한다.
길을 물어도 직통으로 물었다.
엄다면 엄다리에 있는 자산서원은 조선 선조때의 학자 곤재(困齋) 정개청(鄭介淸 1529-1590)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던 서원이다.
이야기는 서원 겸 사당인 자산서원의 건물에 관한 이야기와
곤재선생의 저서인 '우득록(愚得錄)'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로 나누어 써야겠다.
(자산서원의 정문)
먼저 건물에 대해서 보면 곤재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616년 광해군이
사우(祀宇 사당) 건립을 윤허 하여 건립하였다(1차 건립).
그러나 1657년 서인들의 주청으로 훼철(毁撤 부수다) 되었다(1차 훼철).
이렇게 서인과 남인 사이의 권력 싸움 틈에서 300여년의 세월 동안
세우고 부수기를 다섯 번이나 되풀이 하였다.
마지막 훼철(5차 훼철)은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페령에 의해서 훼철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957년 당시 문교부 장관이던 윤천주(尹天柱) 장관의 복설(復設)허가로 건립되었다.
그러니까 6차 건립인 셈이다. 그러니 영욕의 자산서원이 아닌가.
앞으로는 시도유형문화재 146호인 자산서원이 잘 보존되기를 축원해본다.
다음은 우득록에 대해서 보자.
우득록은 곤재 선생의 시, 문집으로 5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숙종 14년(1688), 숙종은 우득록을 목판으로 각인하라고 하명하였다.
이 우득록은 현재 국립도서관에 보존되어 있으나 총 108매의 목판은 현재 48매만
보존되어 고성 정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서원에서 내려다본 함평들판)
단지 무안, 목포 가는 길목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들린 자산서원에서 권력의 무상함을 새김질 한다.
기와 지붕 위로 피어오른 꽃 만큼이나 영욕이 되풀이 된 자산서원에서 6차 훼철이 없기를 빌어본다.
첫댓글 자산서원의 정문인 겸허문과 돌계단이 잘 어우러져 아주 아름다워 보입니다. 다음 편이 또 기다려 집니다.
찾는이도 많지 않을것 같은데 지방마다 문화재를 보존 하려는 노력은 돋 보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