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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다해 9월16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청주] 그저 믿습니다.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제1독서 : 1티모 2, 1 - 8
† 복음 : 루카 7, 1 - 10
고르넬리오 교황은 251년에 교황으로 뽑혀, 로마 박해 시대에
2년 동안의 짧은 교황직을 수행하면서 배교를 선언했던 신자들을
용서하며 다시 교회로 받아들였다. 그는 이단을 거슬러 교회를
지키다가 유배되어 253년에 순교하였다.
치프리아노 주교는 고르넬리오 교황과 같은 시대의 목자로서 교황의
권위를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북아프리카 출신의 그는 늦은
나이에 개종하여 사제품을 받고 훗날 카르타고의 주교가 되었다.
치프리아노 주교는 박해 속에서도 고르넬리오 교황을 도와 교회의
재건에 힘쓰다가 258년 무렵 순교하였다.
★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권고한다. 그 기도에서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제외시키지
않기를 바라는데, 이는 하느님께서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이의
구원을 바라시기 때문이다(제1독서).
★ 이교도인 백인대장이 예수님께 자신의 병든 종을 고쳐 주십사고
청한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겸손하고 믿음 깊은
간청에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그 종을 낫게 하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백인대장은 비록 이교도로서 침략자였음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의 됨됨이를 인정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었고, 그들을 위한 회당까지도 지어 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자기 종이 병들어 죽게 되자, 그를 내다 버리지
않고 어떻게 하면 그를 살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을 졸였습니다.
이토록 존경받을 만한 사람인 백인대장을 위하여 사람들은 자기 일이
아닌데도 예수님께 그의 종을 고쳐 주십사고 간곡히 부탁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흔쾌히 백인대장에게 가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백인대장은 예수님께서 도착하시기도 전에 이렇게 전갈합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이러한 백인대장 정도의 됨됨이와 자기 종을 아끼는 마음만 보더라도,
사실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여기는 것일까요?
주님께서 얼마나 거룩하신 분이신지, 주님의 진면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자신이 그분을 모실 자격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사야 예언자도 그러하였습니다. 이사야는 환시 중에 하느님의
성전을 보게 되자, 이렇게 외칩니다. “큰일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이사 6,5)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잘나서 성전에 들어올 수 있거나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의 몸을 모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우리를 주님께서 초대해 주시니,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 매일 미사 -
◈ [청주] 그저 믿습니다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신부님
2013년 다해 9월16일 성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 루카 7,1-10
그저 믿습니다.
한 신자분께서 “저는 기도를 잘 하지 않습니다. 믿음도 부족합니다.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잘 안됩니다. 마음은 간절한데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기도를 하는 대로 들어 주신다면 매달려 보겠는데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일에나 성당을 찾는 발바닥 신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두고 하는 말씀으로 알아들었습니다. 미사를 봉헌하고 성무일도를
바치는 것에 급급해 하는 자신을 보면서 기도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들은바 대로
행함으로써 하느님을 체험하라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루의 끝맺음에 서면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한
가지도 못하고 후회하며 부끄러워합니다.‘내일은 잘해야지’ 하고
결심하고서는 아무 의식도 없이 또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러고서도
굳센 믿음의 소유자가 되길 바라고 있으니 뻔뻔합니다.
민수기 14장 28절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내가 살아있는 한, 너희가
내 귀에 대고 한 말에 따라,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그대로 해 주겠다.”
고 약속하셨습니다. 간절한 청은 물론 불평 불만하면서 뱉어버린 말도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해서 투덜대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내가 원하고
바라는 때가 아니라 당신이 보시기에 가장 좋은 때에 당신의 뜻을
이루어 주십니다. 따라서 오늘 이루어 주실 수도 있고, 내일 이루어
주실 수도 있으며 내 세대가 아니라 다음세대에 이루어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저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백인대장은 자기
종이 병들어 죽게 되자 예수님께 ‘저는 제집에 주님을 모실 자격도
없고,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하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청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당신을 의심하는 고향
사람들 앞에서는 별로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지만(마태13,58) 믿음으로
준비된 사람에게는 당신 말씀의 능력이 살아났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의 능력은 작용합니다. 다만 내가 믿음으로
준비되지 못한 탓으로 그 능력을 체험하지 못할 뿐입니다. 주님의
능력은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습니다. 그러니 믿고 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구하는 바대로 실천해야겠습니다. 그러면 그대로 얻게 될
것입니다. 믿음은 무능한 인간과 전능하신 하느님과의 상봉입니다.
사랑합니다.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사는 것
많은 학부모들의 주관심사는 아마 자녀들의 성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수능 시즌이 되면 학부모들의 정성이 얼마나 커지는지 모릅니다.
이때는 신앙이 중요한 것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각종 미신이 다
등장하지요. 시험 날 미역국을 먹으면 미끄러진다고 하고요,
시험기간이나 시험 날에 머리 감으면 머릿속 지식이 씻겨 나간다는
등등의 미신을 굳게 믿는 것 같습니다. 이는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제가 강화에 살고 있었을 때, 수능 때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절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에서 정성을 다해서 기도를 올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이곳의 스님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불교를 믿는 사람만이 오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성당이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수능 성적만
잘 나올 수 있다면 자신의 종교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겠지요.
주님께서는 믿음의 중요성을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이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도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데, 겨자씨만한
믿음조차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주님보다 다른 것을 더 많이 믿기
때문입니다. 통장의 돈을 믿고, 사람들에게 명령할 수 있는 세상의
지위를 믿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서, 주님께 대해서는
겨자씨만한 믿음도 만들지 못하는 것이지요.
믿음이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주님께 무조건 매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급할 때에만 주님께 찾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이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백인대장과 같은 믿음입니다.
로마의 백인대장이지만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호의적이었지요.
그래서 이 백인대장의 노예를 고쳐달라고 부탁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그의 호의를 알고는 고쳐 주려고 하지요. 바로 그때 백인대장은
친구들을 보내어 이렇게 말하게 합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우리의 믿음과 다른 모습이 무엇일까요? 백인대장은 자신이 주님을
모실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즉, 주님이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이지, 우리가 주님을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에서 시작된 믿음만이 참된 믿음이라고 예수님께서 감탄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채우기 위해
내 자리로 주님이 오셔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요?
이제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가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사는 것. 내가 주님을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의 초대에
응답하는 것. 이러한 믿음이 지금 필요합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나
혼자만 행복해지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달라이 라마).
어제 특강을 했던 부평2동성당.
죽기 전에 가장 많이 하는 후회 TOP 5
며칠 전, 인터넷에서 본 감동 깊은 글입니다. 함께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올려 봅니다.
한 호주 여성이 학교 졸업 후 은행에서 일하다가 평생 할 일이 아니다
싶어 그만 두고 꿈을 찾기 위해 영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거기서 있는 동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 노인 병간호.
호주에 돌아와서도 틈틈히 작곡공부를 하며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 그런데 이 아가씨 붙임성이 워낙 좋았는지 워낙 사람을 편하게
했는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안 노인들은 이 아가씨에게 평생
사는 동안 후회되는 일들을 묻기도 전에 다들 줄줄이 얘기했다.
이 아가씨는 들은 얘기들을 정리하다가 똑같은 얘기들이 반복된다는
걸 깨달아 가장 많이들은 다섯 가지 후회와 그에 얽힌 에피소드를
책으로 엮어냈다. 그리고는 바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책에 대한
기사다.
죽기 전에 가장 많이 하는 후회 TOP 5
1. 난 내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했고 - 따라서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대신 내 주위 사람들이 원하는 (그들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았다.
2. 그렇게 열심히 일 할 필요가 없었다. - 대신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더 많이 보냈어야 했다.
3. 내 감정을 주위에 솔직하게 표현하며 살지 못했다. - 내 속을 터놓을
용기가 없어서 순간순간의 감정을 꾹꾹 누르며 살다 병이 되기까지 했다.
4. 친구들과 연락하며 살았어야 했다. - 다들 죽기 전 얘기하더라고
한다. '친구 OO를 한번 봤으면..'
5. 행복은 결국 내 선택이었다. -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는데
겁이 나서 변화를 선택하지 못했고, 튀면 안 된다고 생각해 남들과
똑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 '돈을 더 벌었어야 했는데..', '궁궐 같은 집에서 한번 살았으면..',
고급차 한번 못 타 봤네..', '애들을 더 엄하게 키웠어야 했는데..'
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후회할 일을 더 이상 만들지 맙시다.
- 인천 교구 성소 국장 조명연 마테오 신부 -
◈ [기타]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2013년 다해 9월16일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복음묵상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주님을 찾아 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루카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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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백인대장의 말에서 비롯된 미사의 기도문이 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Lord, I am not worthy to receive you, but only say the word
and I shall be healed.)
미사 때, 성체를 모시기 직전,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주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라는 사제의 외침에 대해 교회 공동체 전체가 응답하는 고백이자
기도이다. 개인적으로는 미사 기도문 중 제일 좋아하는 문장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고백이자 기도이다.
무엇에 대한 고백인가?
당신의 한 말씀이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무조건 믿는다는
고백이다. 무엇에 대한 기도인가?
그 한 말씀이 나에게서 이루어지기를 청한다는 기도이다.
결국 성체에 대한 절대적 흠숭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성체를 영할 때, 거기에는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그 간절함은 신앙에서만 가능하다.
마음을 다해서 성체를 영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가톨릭 교회가
2천 년간 지켜온 신앙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성체에 대한 신자들의 태도에 무척 엄격한 편이다.
어린 아이들은 손을 닦은 후에 미사에 참례하게 하고, 오랫동안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나, 얼굴 모르는 이들이 성체를 모시려 할
때는 그 자리에서 반드시 필요한 내용을 확인한 후에 영하게
하거나, 고해성사를 받은 후에 영하도록 권한다.
이러한 나의 태도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사제로서 성체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고, 또 하나는 신자들에게 성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성체를 모실 자격이 있고 없고를 가리려고 하는 행위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세상에 자격이 있어서 성체를 모실 이는 없다.
성체는 우리가 잘 살아서 얻게 된 보상이 아니라, 우리가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의 귀한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물을 받는 우리로서는 보다 합당한
자세로 성체를 모셔야만 한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다.”
그렇다. 우리는 성체를 모시기에 합당치 않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선물로 당신 아들의 몸을 주셨고,
우리는 그분을 모신다. 더없이 간절한 마음으로 더없이 죄송한 마음과
더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성체를 모실 일이다.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서울]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2013년 다해 9월16일
오늘은 성소후원회 임원들과 청양 다락골 줄무덤 성지로 답사를 갑니다.
답사는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임원들이 함께 하면서 단합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성지순례 당일에 혹시 벌어질 상황들을 대비하는 것입니다.
미사 장소, 식사 장소, 성지 안내 등에 대해서 미리 점검하는 것입니다.
저는 본당에 있을 때 큰 행사가 있으면 꼭 답사를 다니곤 했습니다.
구역장, 반장들과도 가고, 사목위원들과도 가고, 레지오 단원들과도
가곤 했습니다. 그렇게 답사를 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듣고, 답사를 다녀온
분들이 행사의 의미에 대해서 다른 신자들에게 설명해 주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답사는 성소후원회 임원들과의 단합에 더 큰 의미를
두려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미 하느님나라를 다녀온 것 같은 삶을 사는 분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분들은 확신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얼마나
좋은지를 알고 있습니다. 성체성사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직책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분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식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열린 마음, 순수한
마음이 있으면 이미 시작된 하느님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나라를 희망으로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얻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있을 때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매일미사 참례를 정성껏 준비하는 분, 장례가 나면 먼저 가서 고인을
위해 연도를 바치는 분, 작은 것이라도 이웃과 함께 나누시는 분, 본당의
피정과 교육에 빠짐없이 참석하시는 분, 이웃을 험담하기 보다는 잘못을
뉘우치도록 기다려주고 기도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이
세상에 살지만 이미 하느님나라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백인대장’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율법과 계명을 몰랐지만
마음은 이미 하느님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삶은 참된 신앙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을 위해서 회당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었습니다. 병든 종을 내치지 않고 정성껏 돌보아 주었습니다.
주님께서 한 말씀만 하시면 종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은 피부색, 신분, 학식에 따라서 커지는 것이 아님을
늘 말씀하셨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 시로페니키아 여인, 백인대장’은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그분들의 믿음을
칭찬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 해도, 교만과 욕심에 사로잡혀
있으면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야단치셨습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네.”
- 서울 대 교구 성소 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믿음 위에 사랑이
2013년 다해 9월16일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복음 : 루카 7,1-10
< 믿음 위에 사랑이 >
지난 14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거지목사’로
추앙받던 한 남자의 이중생활을 낱낱이 파헤쳐 졌습니다.
가락시장에서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구걸하던 한 남성이 어느 날
동전 바구니 대신 마이크를 잡고 전도하는 목사가 됐습니다.
(실제로 목사안수를 받은 적은 없다고 합니다.)
그는 장애를 가진 자신을 버렸던 세상에 대한 원망을 신앙으로
극복하였다며 자서전을 썼고, 그 후 여러 매체를 통해 그의 인생
역전 스토리를 알렸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돌보는 데에 평생을 바치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아무런 욕심 없이
평생 봉사하는 삶을 사는 그에게 사람들은 거지목사라는 별명이
붙여졌습니다. 그는 바로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실로암 연못의 집
담임 목사이자 원장인 한ㅇㅇ씨였습니다.
그러나 한 제보자에 의해 결국 이 거지목사의 이중생활이 탄로가
났습니다. 올 3월 사망한 故서유석씨(지체장애 1급)의 누나라고 자신을
소개한 제보자는, 자신의 동생을 한목사의 시설에 오랫동안 맡겨왔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동생을 돌봐왔던 한목사가 세상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장애인들의 아버지가 아니라 악마라고 했습니다.
취재 결과 이 같은 투서는 사실이었고 거지목사는 자신의 카드빚을
장애인의 가족에게 전가하는 등 철저한 이중생활을 영유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거지목사’는 제보자 동생 명의의 카드로 노래주점을
비롯해 호텔, 피부 관리실 등을 이용하며 호화생활을 누려온 것으로
밝혀져 경악케 했습니다.
[참조: 디지털타임즈, 2013-09-15, 거지목사 이중생활]
마르틴 루터는 ‘믿음만으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가톨릭과 결별했습니다.
그리고 실천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는 야고보 서간을 지푸라기
서간이라고 하며 정경목록에서까지 제외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믿기만 하면 된다는 개신교 신자들은 세례를 받았으면 구원받았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만, 천주교 신자들은 실천의 문제를 고려하기에 자신
있게 구원받았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물론 믿음을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참 믿음’이냐 ‘거짓 믿음’이냐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말은 믿는다고
하지만 삶은 완전히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참 믿음을 증거해
주겠습니까? 바로 사랑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이 서로 믿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에게 새로운 계명을 준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여라.”
따라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기보다는 사랑으로 구원받는다고
말해야 합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형제에게 사랑을 베푼 이들만 구원받는
심판의 내용을 보아도 믿음보다는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매우
주관적이어서 평가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시는데, 그렇다면 누가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지녔다고 자신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이 있으면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양 날개가
희망과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백인대장은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이었고,
오늘도 자신을 위한 기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종을 위한
기적을 요구하고 있으며, 또 이방인의 집에 들어왔다가 비판을 받게
될 예수님을 위해 굳이 들어올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합니다. 배려의
전문가인 것입니다. 세례는 받지 않았지만 이 백인대장의 믿음이
세례 받은 사람들보다 못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으로
믿음이 증거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의 정도를 사랑으로
측정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시라노: 연애 조작단’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엄태웅이 전에 헤어졌던 여자 친구 이민정을 최
다니엘이라는 사람을 통해 만납니다.
둘이 헤어진 이유는 이렇습니다. 둘은 파리 유학 중에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남자가 먼저 일본 여학생과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사실을 알고 화가 난 이민정이 자신의 선배 형의 집에서
자고 있는 것을 본 것입니다. 엄태웅은 둘이 절대 그럴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자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따집니다. 여자는
자신을 믿지 못하는 엄태웅을 그렇게 떠났고, 지금 몇 년 뒤에 한국에서
이런 식으로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 해변에서 이루어지는 프러포즈 신에서, 최 다니엘의 입을
통해 엄태웅은 믿지 못해 자신을 떠나가게 만든 이민정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성경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나오는데, 예전에는 그 중에서 왜
사랑이 가장 중요한지를 알지 못했어. 믿어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 하지. 그런데
이젠 알 것 같아. 믿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믿는다는
걸... 조금만 더 사랑했다면 다 해결될 문젠데...”
그렇습니다. 사랑을 위해 믿음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믿음만
강조하다가는 자칫 사랑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만으로가 아니라 ‘사랑으로’ 심판받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 수원 교구 오산 성당 전삼용 요셉 신부 -
◈ [서울] 예수님이 감탄하실만한 일
2013년 다해 9월16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예수님이 감탄하실 만한 일
감탄할 일들 가끔 일어납니다. 개천에서 용 났다며 빈정대기도 하지만.
그래도 감탄하지요. 그러나 대개는 돈, 권리, 명예 같은 것들입니다.
그렇지만 가끔 이런 것 말고도 사람의 됨됨이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인간에 대해 감탄하실 만한 일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사람 됨됨이입니다. 그 됨됨이에 들도록 해야 되지 않을까요?
하느님을 믿음으로 받들고 이웃과 사랑으로 나눌 줄 아는 삶입니다.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군중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루카 7,9)”
-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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