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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30일 타계한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1주기 추모 참배 행사가 열린 29일 오후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마련된 묘역을 찾은 참배객들이 추모의식을 지켜보고 있다. | |
ⓒ 연합뉴스 |
1년 전 아버지를 땅에 묻던 날도 갑자기 함박눈이 쏟아졌다. 믿기 어려운 아버지의 죽음 앞에 눈물만 흘리던 딸 병민씨는 "살포시 어깨에 내려온 그 눈이 제 어깨를 두드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민주주의자'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1주기 추도식이 열린 2012년 12월 29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있는 그의 묘지에는 또다시 눈이 내렸다.
눈은 김 상임고문을 그리워하며 눈시울을 붉힌 200여 명의 어깨를 토닥였지만, 사람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두 달여 전, "2012년을 점령하라"는 당부를 남겼다. 총선과 대선이란 두 번의 기회가 있다며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고 했다. 하지만 야권은 두 번의 선거에서 모두 패했다. '점령하라'는 그의 유지를 끝내 받들지 못한 것이다.
손학규 "국민을 살려내라고 했는데... 김근태 앞에 설 낯이 없다"
▲ '민주주의자'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1주기 추모행사에 참석한 손학규 민주통합당 전 대표가 "김근태 앞에 설 낯이 없다"며 미안함을 표현하고 있다. 손 전 대표는 "명령은 지키지 못했지만, 그 명령은 살아있다"며 "그걸 지키겠다"고 말했다. | |
ⓒ 박소희 |
▲ '민주주의자'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1주기 추모행사가 열린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모인 사람들. | |
ⓒ 박소희 |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김근태 앞에 설 낯이 없다"며 입을 뗐다. 손 전 대표는 "그 명령은 단지 정권을 잡으란 게 아니라 세상을 바꿔 특권과 반칙 아래 신음하는 국민을 살려내란 뜻이었다"며 "정권교체 실패에 좌절한 한진중공업 최강서 조직부장, 현대중공업 해고노동자 이운남씨 등 다섯 분이나 벌써 세상을 하직했는데, 당신은 그걸 염려한 것"이라며 절친했던 벗에게 미안해했다.
김 상임고문의 후배 장영달 전 의원 역시 "의장님을 보냈던 1년 전에는 그 숭고한 뜻을 성취하리란 마음으로 돌아섰는데 '오늘은 어찌해야 될지'하는 아득한 심정 등으로 여기 왔다"며 비통함을 드러냈다. "역사의 고비에서 우리는 길을 잃었고,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 선배님은 곁에 안 계시다"던 장준영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은 추모사 중간 중간 말을 잇지 못했다. 추모 행사 내내 무덤가 주변에서 눈물을 훌쩍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선거 패배를 반성하고, 야권을 강하게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사회를 맡은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저희가 잘못했다, 단일화에 매몰 돼 국민의 고단한 삶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했고, 근거 없는 낙관론에 빠져 기득권을 다 내려놓지 못했다"고 말했다. 앞서 오전 10시 서울시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추모미사에서 안충석 신부는 "(대선은) 전략과 정책의 경쟁인데, 이게 없어 필패를 초래했다"며 "컨트롤 타워가 없었고, (사람들의) 손발이 맞지 않았고, 새누리당만큼의 준비가 없어 당했다"고 지적했다.
"매해가 2012년" 사랑·희망·위로를 말하며 김근태를 기억하는 사람들
▲ 12월 29일 서울시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민주주의자'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1주기 추모미사에 참석한 딸 병민씨 등이 손을 잡고 '사랑으로'를 노래하고 있다. | |
ⓒ 박소희 |
▲ '민주주의자'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1주기 추모행사에서 유족 대표로 감사 인사를 하고 있는 딸 병민씨. 왼쪽은 아들 병준씨, 가운데는 부인 인재근 의원. | |
ⓒ 박소희 |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도 '내일'을 말하는 이들은 있었다. 추모 미사를 집전한 김남길 신부는 "김근태 의원이 갈망한 민주화는 자리에서 오는 권력, 진실과 정의에서 오는 권위를 구분하는 데에서 시작한다"며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과 여정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함세웅 신부도 "2012년은 올해가 아니라 매해며, 우리는 매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사랑"을 이야기했다. 그는 "김근태 선배가 떠난 후 1년을 되새기며 저는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며 "선배가 고문을 견디며 끝까지 후배들 이름을 대지 않을 수 있던 것은 그가 온전히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이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랑의 회복, 죄의 참회로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며 "어렵겠지만 (선배처럼) 겸손하게, 참고 견디는 사랑으로 가보겠다"며 추모사를 끝맺었다.
김 상임고문의 자녀는 그를 그리워하고, 그에게 미안해하는 이들의 마음을 다독여줬다. 아들 병준씨는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무슨 이야기를 했을지 상상해봤다"며 "아마 만나는 분마다 손을 잡고 '미안하다'는 말씀을 해주셨을 듯하다"고 말했다. 딸 병민씨도 "굉장히 슬프고 힘든 1주기를 맞이했지만, 아버지라면 희망을 말씀하셨을 것"이라며 "여기 내리는 눈에, 바람에 위로받으시고 2013년을 맞이하셨으면 좋겠다"고 참석자들을 위로했다.
▲ '민주주의자'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1주기 추모행사가 열린 12월 29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그가 잠든 곳으로 가는 길에 놓인 사진들. | |
ⓒ 박소희 |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19779
첫댓글 고문 후유증이었을까 ... 아니면, 엘리뜨(?) 의식이 있어 그랬을까 ...
소위 가방끈이 짧은 대통령에게 '계급장 띠고 맞짱뜨자' 번번히 외치던 사람 ...
그리안해도 안에서는 물론 밖의 세력들로 부터 위협에 몰리던 학벌 없던 사람...
그때부터 새로운 역사쓰기는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자유인 이고자 소망하는 자가
남의 힘 속에 있는 것을 원망하거나 겁내지 말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남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 에픽테토스(스토아 철학파의 대가,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스승)
하늘에서는 고통없이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