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문은 창덕궁의 중심 건물인 인정전의 정문이다.
효종·현종·숙종·영조 등 조선왕조의 여러 임금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위에 올랐다.
인정문은 조선 영조 20년(1744) 불탄 것을
이듬해 복구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寶物 814호 昌德宮 宣政殿
선정전은 조선시대에 왕이 신하들과 나라 일을 의논하고
왕비와 함께 크고 작은 행사를 하던 곳이었다.
이곳은 임금님의 집무실이지만 왕비가 가끔 이용하기도 했다.
성종 때는 왕비가 노인들에게 잔치를 열어주기도 했으며,
누에를 치는 행사도 하였다.
寶物 816호 昌德宮 大造殿
대조전은 왕비가 거처하는 내전 중 가장 으뜸가는 건물이다.
이 건물에서 조선 제9대 왕인 성종을 비롯하여
인조·효종이 죽었고, 순조의 세자로 뒤에
왕으로 추존된 익종이 태어나기도 하였다
寶物 818호 昌慶宮 通明殿
창경궁 안에 있는 왕의 생활공간으로
연회 장소로도 사용했던 곳이다.
조선 성종 15년(1484) 처음 지었던 건물이
임진왜란의 피해로 불에 타 버려 광해군 때 고쳐 지었으나
정조 14년(1790)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순조 34년(1834) 창경궁을 고쳐 세울 때
같이 지은 것이다.
寶物 819호 德壽宮의中化殿 및 中化門
중화전은 덕수궁의 중심 건물로 임금님이 하례(賀禮)를 받거나
국가 행사를 거행하던 곳이고
중화문은 중화전의 정문이다.
광무 6년(1902)에 지었으나 1904년 불에 타 버려
지금 있는 건물은 1906년에 다시 지은 것들이다.
寶物 820호 德壽宮 咸寧殿
함녕전은 고종황제가 거처하던 황제의 생활공간(침전)이다.
광무 1년(1897)에 지었는데 광무 8년(1904) 수리공사 중 불에 타,
지금 있는 건물은 그해 12월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이곳은 순종에게 왕위를 물려 준 뒤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가 돌아가신 곳이기도 하다
寶物 385호 明政殿 同廻廊및明政門
성종 15년(1484) 창경궁을 세울 때에 지은 것이지만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광해군 시절 다시 지었다.
회랑 중 남쪽과 북쪽 일부분은 일제시대 때 철거되었던 것을
1986년 복원한 것인데, 2칸 규모로 기둥 윗부분에
새부리 모양으로 뻗어 나온 장식을 하였다.
寶物 821호 宗廟 永寧殿
종묘는 조선시대 왕·왕비·공신 등의 신주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그 중 영녕전은 종묘의 일부로 정전의 서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영녕전을 짓게 된 동기는 시간이 흐르고 죽은 왕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건물을 늘리거나 새로 지어야 할 필요 때문이었다.
이 건물은 세종 3년(1421) 정종의 신주를 종묘에 모실 때 지은 것으로,
태조의 4대조와 정전에서 계속 모실 수 없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옮겨 모신 곳이다
寶物 386호 玉泉橋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에 들어서면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옥류천을 가로 질러 이 다리가 있는데,
이곳은 산천의 정기를 옮겨다 주는 명당수가 흐르는 곳이다.
전체적인 형태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 2개를 이어붙여
안정감이 느껴지며, 궁궐의 다리에 맞는 격식을 갖추고 있다.
寶物 141호 서울 文廟
서울 문묘는 조선 태조 7년(1398)에 처음 세우고
정종 2년(1400)에 불에 탄 것을 태종 7년(1407)에 다시 지었으나,
이 역시 임진왜란으로 타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들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문묘는 대성전을 비롯한 동무·서무 등 제사를 위한
공간인 대성전 구역과 명륜당, 동재·서재 등 교육을 위한 공간인
명륜당 구역으로 크게 나뉘어 있다.
寶物 142호 서울 東廟
서울 흥인지문(보물 제1호) 밖에 있는 동묘는
중국 촉한의 유명한 장군인 관우에게 제사지내는 묘로서
원래 명칭은 동관왕묘(東關王廟)이다.
동묘를 짓게 된 이유는 임진왜란 때 조선과 명나라가
왜군을 물리치게 된 까닭이 성스러운 관우 장군께
덕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서 인데,
명나라의 왕이 직접 액자를 써서 보내와 공사가 이루어졌다.
寶物177호 서울 社稷檀 正門
사직단이란 나라와 국민 생활의 편안을 빌고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 지내는 곳으로 사(社)는 땅의 신을,
직(稷)은 곡식의 신을 말한다.
이 문은 사직단의 정문으로 태조 3년(1394) 사직단을 지을 때
함께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렸다.
그 뒤 숙종 46년(1720) 큰 바람에 기운 것을 다시 세웠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 미루어
임진왜란 후에 새로 지은 것으로 짐작한다.
첫댓글 우리나라의 보물,훌륭합니다.
역대임금님들께서 불타면 다시 복원하신 없적을
후손에게 물여주셔서 감사 합니다.
,갑진보물들 잘보았습니다.
소중한 보물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앉아서 우리나라 국보관람 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나라의 보물 훌륭 합니다
광해임금이 복원을 많이 하느라 악덕 임금이 되었는가 보다
잘 보고
훌륭한 보물 이군요!!!! 잘보았습니다
찬란한 보물 잘보고 담아갑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감니다,
우리 선조들이 남긴 값지고 찬란한 보물
잘 유지하며 지키는 힘이 중요하겠습니다.
보물제공에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감사합니다
우리국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자료 감사합니다
조선시대 찬란한 문화유산.보물 잘보고 갑니다.
Thanks
좋은자료 잘 보고 갑니다.
귀중한 우리의보물 잘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러주도록 합시다
잘보고 감사 합니다.
귀중한 보물 잘 감상햇습니다.
우리나라의 찬란한 문화유산 보물 작품과 글 감사한 마음으로 즐감하고 나갑니다 수고하여 올려 주신 덕분에
편히 앉아서 잠시 즐기면서 머물다 갑니다 항상 건강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나라의 보물 잘 보구가지요 감사합니다
우리나라의 찰란한 문화유산보물 감상 잘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히 잘 보고 갑니다
귀한 자료 잘 보고 가렵니다요
잘보고갑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고은 글을 올려주시어 잠시 편히 쉬면서 잘 있다 갑니다.
항상 고맙고 감사합니다. 늘 즐겁고 행복한 날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궁궐이 임진왜란때 왜놈들이 불을질려 그의 테워버렸군요. 잊지못할 왜놈들입니다.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문화유산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이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