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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다해 10월21일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청주] 참 부자가 되십시오.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영억 라파엘 신부
† 제1독서 : 로마 4, 20 - 25
† 복음 : 루카 12, 13 - 21
★ 바오로 사도는 아브라함의 사례를 들며 믿음으로 의로움을 얻게
된다고 강조한다. 자식 없이 늙어 가며 나그네살이를 하는 아브라함에게
땅과 후손에 대한 약속은 사실상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제1독서).
★ 예수님께서는 재물에 대한 탐욕을 경계하시며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그는 많은 소출을 거두어 편안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의 삶이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욕심 많고 쾌락적인 한 사람이 죽어서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그야말로 그가 살기에는 참으로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온갖
하인들이 그를 섬기고, 주위에는 무엇이든지 풍부했습니다. 그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만족해하며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내가 이렇게 욕심이 많아도 하느님께서는
나를 천국에 보내 주셨구나.’
그런데 이러한 생활도 하루 이틀이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쉬울 게 없다 보니 처음에는 좋았던 것들도 하나하나
싫어졌습니다. 더 이상 희망할 무언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인들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나 참! 이상하네. 천국에 왔으면
행복해야 하는데, 지루하고 아무런 희망도 없네. 이 어찌 된 일인가?”
그러자 하인이 대답하였습니다. “지금 이곳을 천국으로 아셨단 말입니까?
당치도 않은 말입니다. 이곳은 지옥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원하는 것이 풍족하거나 넘친다 해도 희망할
것이 없는 곳은 지옥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곳에는 자기가 원하는
것들만 있지,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원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따름입니다. 그것은 결국 한계를 드러내어 지루함으로
이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의 코헬렛은 이렇게 말합니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1,2)
오늘 복음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가 진정 어리석은 이유는 하느님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 없이 나오는
행복이란 없습니다. 일시적인 만족이나 안정은 있을지언정 그것은
결국 허무함과 지루함으로 치닫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참된
행복을 보장하십니다. 우리는 그러한 행복을 바라고 있습니까?
- 매일 미사 -
◈ [청주] 참 부자가 되십시오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신부님
2013년 다해 10월21일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 루카 12,13-21
부자가 되십시오.
한 때“부자 되세요”라는 인사가 유행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부자가
되기를 바라지만 참된 부자가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참 부자가 되느냐
안 되느냐는 얼마만큼 돈을 버느냐에 달려 있지 않고 얼마만큼 잘
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결코 많이 가졌다고 해서 부자일 수는 없습니다.
참 부자가 되고 싶은 바람을 하느님께서 꼭 들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어떤 탐욕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제 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고 하셨습니다. 사실‘주님을 경외하며 가진 적은 것이, 불안 속의 많은
보화보다 낫습니다’(잠언15,16). ‘돈을 사랑하는 자는 돈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큰 재물을 사랑하는 자는 수확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전도5,9).
재산에 욕심이 생기면 아무리 많은 재물을 소유해도 부족합니다. 그리고
많은 재산을 가지고도 즐겁게 살 줄 모릅니다(집회14,5). 그러므로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고 그런 생각마저 버리십시오(잠언23,4).
‘재물은 조금도 믿을 것이 못됩니다. 돈이 있다고 우쭐대다가는
나둥그러집니다’(하바2,5). 그러므로 ‘옳지 못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는
것보다는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고 올바른 마음으로 자선을
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황금을 쌓아두는 것보다는 자선을 행하는 것이
좋은 일입니다’(토비12,8).
사실 생명은 지상의 재물이나 넘치는 부의 산물이 아닙니다. 생명을
안배하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이십니다. 현대의 의학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생명을 일시적으로 연장할 수 있을지언정 영원생명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재물의 소유를 통해서 생명의 안전을 생각하는
그릇된 생각을 버려야겠습니다. 하느님을 염두에 두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결코 부자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하느님 안에서 만족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큰 부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자가 되십시오. 석가모니도 말했습니다. “만족함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하더라도 가난하고, 만족함을 아는 사람은 가난하더라도
부유하다.”
오래 전의 이야기 입니다. 가족은 물론 친지가 없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작은 아파트에 계셨는데 본당 수녀님께서 틈틈이 방문하여
청소도 해드리고 말벗도 해주시곤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수녀님께서 할머니를 책임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아파트를 처분해서 양로원에 들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혹 마음
상할까봐 조심스레 할머니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께서는
양로원에 들어가면 당신의 재산을 다 잃는다고 생각 하셨습니다. 하는
수 없이 생각을 접고 할머니를 열심히 챙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녀님은 홀로 돌아가신 할머니를 발견하고 뒷수습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연고자가 없는 관계로 이러저러한 조사 끝에 동사무소를
통해서 쓸쓸히 장례를 치렀습니다. 할머니에게는 아파트가 생명이나
다름없었겠지만 그 아파트를 잘 활용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재물을 모으려거든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십시오”(마태6,20). 사랑합니다.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기타] 탐욕을 경계하라 하신다.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모자람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나눌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2013년10월21일 연중 제 29주간 월요일 복음묵상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루카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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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貪慾)이란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는 것을 말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던가?
‘지나침은 이르지 못함과 같다’는 논어(論語)의 선진편(先進篇)에
나오는 공자(孔子)의 지혜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과유불급이라는
말에 만족하지 못할 것 같다. 지나침이 이르지 못함과 ‘같은 것’이
아니라, ‘못하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열불급(過劣不及)이라는 사전에도 없는 말을 만들어 본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이는 욕심과 같은 부정적인 것들뿐만 아니라,
좋은 것들도 지나치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런 삶의 법칙을 모를 리 없는 세상 속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알면서도 눈앞에 보이는 욕망에 제어력을
잃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들이다. 한마디로 어리석음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말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지나치다’는 말의 반대말은 ‘모자라다’
혹은 ‘이르지 못하다’이다. 그러면 이 두 의미 사이의 중간쯤 되는 뜻을
가진 말은 없을까?
‘알맞다’나 ‘적당하다’라는 말이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적당히’라는 표현을 ‘얼추 맞춰서’ 혹은 ‘대충대충’
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며 사용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적당(適當)하다’라는 단어의 의미는 ‘들어맞거나 알맞다’라는
뜻이다.
즉 적당하게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은 틀림없이 마땅한 이치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적당히’라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단어일 수 있다.
왜 우리는 적당하게 알맞게 살아가기가 힘든 것인가?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눈에 보이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많은 이유들 중에 나름대로 한 가지를 생각해본다.
탐욕은 상처에서 나온다.
모자란다는 것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만들어진 상처의 부작용이다.
모자람의 결과는 보통 둘로 나뉘어진다.
열등감과 겸손이다.
열등감은 채워야 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하고,
모자람을 인정한 겸손은 보다 나은 노력과 타인의 모자람까지도
감싸 안을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한다. 열등감은 모자람의 이유를
타인의 탓이나 세상의 탓으로 돌리게 하지만,겸손은 전체적인 답을
찾으려 한다.
상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상처가 더 이상 삶을 흔들어대지 않게 해야 한다.
탐욕을 경계하라 하신다.
이는 물질적인 것만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경계하라는 말씀이시다.
요즘, 치유라는 아름다운 우리 말이 버젓이 있음에도,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가 방송매체들을 통해서 자주 듣게 된다.
치유보다 힐링이 고급스럽게 들리나보다.
이 역시 하나의 상처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탐욕을 경계하라는 말씀은 상처를 치유하라는 말이다.
‘자신’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정적인 움직임들, 그 움직임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최선을 다하는 ‘자신’이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도가 필요하다.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2013년 다해 10월21일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
복음 : 루카 12,13-21
<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
서울시 글짓기 대회에서 등을 한 구로초등학교 학년 용욱이의 글입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구로동에 사는 용욱이예요. 구로
초등학교 학년이구요. 우리는 벌집에 살아요. 벌집이 무엇인지 예수님은
잘 아시지요? 한 울타리에 가구가 사는데요. 방문에 이렇게 번호가 써
있어요. 우리 집은 호예요. 화장실은 동네 공중변소를 쓰는데, 아침에는
줄을 길게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해요. 줄을 설 때마다 저는 호에 사는
순희 보기가 부끄러워, 못 본 척 하거나 참았다가 학교 화장실에 가기도
해요.
우리 식구는 외할머니와 엄마, 여동생 용숙이랑 식구가 살아요. 우리
방은 할머니 말씀대로 라면박스만해서 식구가 다 같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엄마는 구로동에 있는 술집에서 주무시고 새벽에 오셔요.
할머니는 운이 좋아야 한 달에 두 번 정도 취로사업장에 가서 일을 하시고
있어요. 아빠는 청송교도소에 계시는데 엄마는 우리보고 죽었다고 말해요.
예수님, 우리는 참 가난해요. 그래서 동회에서 구호양식을 주는데도
도시락 못 싸 가는 날이 더 많아요. 엄마는 술을 많이 먹어서 간이
나쁘다는데도 매일 술 취해서 어린애 마냥 엉엉 우시길 잘하고 우리를
보고 “이 애물단지들아! 왜 태어났니... 같이 죽어버리자”고 하실 때가
많아요.
지난 월 달 부활절날 제가 엄마 때문에 회개하면서 운 것 예수님은 보셨죠?
저는 예수님이 제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정말로 이해 못했거든요.
저는 죄가 통 없는 사람인줄만 알았던 거예요. 그런데 그 날은 제가 죄인인
것을 알았어요. 저는 친구들이 우리 엄마보고 ‘술집 작부’라고 하는 말을
듣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구요. 매일 술 먹고 주정하면서 다 같이 죽자고
하는 엄마가 얼마나 미웠는지 아시죠?
지난 부활절날 저는 ‘엄마 미워했던 거 용서해주세요’ 라고 예수님께
기도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는 모습으로 ‘용욱아 내가
너를 용서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저는 그만 와락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어요. 그 날 성당에서 찐 계란 두 개를 부활절 선물로 주시길래 집에
갖고 와서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드리면서 생전처음으로 전도를 했어요.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구요.
몸이 아파서 누워계시던 엄마는 화를 내시면서 “흥, 구원만 받아서 사냐”
하시면서 “집주인이 전세금 만원에 월세 만원을 더 올려달라고 하는데,
예수님이 구원만 말고 만원만 주시면 네가 예수를 믿지 말라고 해도
믿겠다” 하시지 않겠어요. 저는 엄마가 예수님을 믿겠다는 말이 신이
나서 기도한 거 예수님은 아시지요? 학교 갔다 집에 올 때도 몰래 교회에
들어가서 기도했잖아요. 근데 마침 어린이날 기념 글짓기 대회가
덕수궁에서 있다면서 우리 담임선생님께서 저를 뽑아서 보내 주셨어요.
저는 청송에 계신 아버지와 서초동에서 꽃가게를 하면서 행복하게 살던
때 얘기를 그리워하면서 불행한 지금의 상황을 썼거든요. 청송에 계신
아버지도 어린이날에는 그 때를 분명히 그리워하시고 계실 테니 엄마도
술 취하지 말고 희망을 갖고 살아주면 좋겠다고 썼어요.
예수님, 그 날 제가 등 상을 타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시지요? 그 날
엄마는 너무 몸이 아파서 술도 못 드시고 울지도 못하셨어요. 그런데
그 날 저녁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 오셨어요. 글짓기의 심사위원장을
맡으신 노 할아버지 동화작가 선생님이 물어 물어 저희 집에 오신 거예요.
대접할게 하나도 없다고 할머니는 급히 동네 구멍가게에 가셔서 사이다
한 병을 사오셨어요. 할아버지는 엄마에게 똑똑한 아들을 두었으니 힘을
내라고 위로해 주셨어요. 엄마는 눈물만 줄줄 흘리면서 엄마가 일하는
술집에 내려가시면 약주라도 한잔 대접하겠다고 하니까 그 할아버지는
자신이 지으신 동화책 다섯 권을 놓고 돌아가셨어요.
저는 밤늦게까지 할아버지께서 지으신 동화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어요.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책갈피에서 흰봉투 하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펴보니 생전 처음 보는 수표가 아니겠어요. 엄마에게 보여
드렸더니 엄마도 깜짝 놀라시며 “세상에 이럴수가... 이렇게 고마운 분이
계시다니” 말씀하시다가 눈물을 흘리셨어요.
저는 마음속으로 ‘할아버지께서 가져 오셨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주신
거예요’라고 말하는데, 엄마도 그런 내 마음을 아셨는지 “얘 용욱아
예수님이 구원만 주신 것이 아니라 만원도 주셨구나”라고 우시면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할머니도 우시고 저도 감사의 눈물이 나왔어요.
동생 용숙이도 괜히 따라 울면서 “오빠, 그럼 우리 안 쫓겨나구 여기서
계속 사는 거야?” 말했어요.
너무나 신기한 일이 주일날 또 벌어졌어요. 엄마가 주일날 성당에
가겠다고 화장을 엷게 하시고 나선 것이에요. 미사에 가신 엄마가
얼마나 우셨는지 두 눈이 솔방울 만해 가지고 집에 오셨더라구요.
나는 엄마가 오셨길래 또 같이 죽자고 하면 어떻게 하나 겁을 먹고
있는데 “용욱아, 그 할아버지한테 빨리 편지 써. 엄마가 죽지 않고
열심히 벌어서 주신 돈을 꼭 갚아 드린다고 말이야”라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저는 엄마가 저렇게 변하신 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고마우신 예수님, 참 좋으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사랑으로 주신 수표는 제가 커서 꼭 갚을께요. 그러니까 제가 어른이
될 때까지 동화 할아버지께서 건강하게 사시도록 예수님이 돌봐주세요.
이것만은 꼭 약속해 주세요. 예수님, 너무나 좋으신 예수님 이 세상에서
최고의 예수님을 용욱이가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용욱이 드림
용욱이는 가난하지만 하느님의 섭리를 피부로 느끼며 사는 아이입니다.
돈만 알았던 어머니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착한 아이인 것입니다. 이런
아이가 세상에 물들지 않기만 바랄 뿐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라고 말씀하시며 재산을
모아놓는 것에 대한 어리석음에 대해 부유한 사람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오늘 죽는 줄도 모르고 창고를 늘리는 부자.
작년, 분노왕이란 프로 화에 꽃뱀에게 빠져 아버지가 자수성가해서
모은 돈 억을 다 날려버리고 빈털터리가 된 사연이 방영되었었습니다.
그 여자를 믿고 통장과 인감도장까지 모두 맡겼었던 것입니다. 그
여자는 한 건물을 사기는 했지만, 그 건물을 담보로 엄청난 돈을
대출받아 돈을 다 빼 돌린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가족과도 헤어지고
행려자 생활을 오랫동안 해야 했습니다. 본인이 탐욕을 부렸으면서 왜
분노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항상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섭리는 가난할 때 더 명확히 드러납니다. 전기세가 없거나,
기름이 떨어졌거나, 쌀이 떨어졌을 때. 저도 중학교 때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 만원을 타 온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나중에서야 그 때 마침
쌀이 딱 떨어졌을 때였다고 하셨습니다. 부유하다면 어떻게 이런
하느님의 섭리를 느끼며 살 수 있겠습니까?
켈커타의 사랑의 선교회 모원에 사는 여명의 수련 수녀들이 음식이 없어
모두 굶게 생긴 일이 있었습니다. 주방 담당 수녀는 마더 데레사에게
사정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는 마더 데레사가 몇몇의 후원자들에게
전화를 해서 도와달라고 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더 데레사는
여러 사람을 만나는 중이었으며 그 어린 수녀에게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자매가 이번 주 주방 담당인가요? 그렇다면 경당에 들어가서 예수님께
먹을 것이 없다고 말씀드리세요. 그 문제는 해결됐군요.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지요.”
그리고 십 분 후 현관 초인종이 울렸고, 처음 보는 어떤 남자가 서류철을
들고 마더 데레사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수녀님을 보자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데레사 수녀님, 공립학교 교사들이 파업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지금
막 들어왔습니다. 수업이 취소되어서 개의 점심 도시락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도시락을 처리하게 도와주시겠습니까?”
탐욕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항상 보살펴 주신다는 그
섭리를 믿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단 한 순간만이라도
돈이라는 걱정에서 벗어나, 내일 걱정은 내일 하며 살아가는 자유로움을
느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돈,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오산 성당 홈페이지: http://cafe.daum.net/ca-osan
- 수원 교구 오산 성당 전 삼용 요셉 신부 -
◈ [서울]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2013년 다해 10월21일
대학 입학 수학능력 시험이 이제 20일도 남지 않았습니다. 수험생들이
모두 원하는 결실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수험생들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등급에 따라서 아이를 소개하는 것이 조금씩 다르다고 합니다.
1등급인 학생의 어머니는 이렇게 소개한다고 합니다. ‘우리아이는 정말
공부를 잘 합니다.’ 2등급인 학생의 어머니는 이렇게 소개한다고 합니다.
‘우리아이는 성격이 참 좋습니다.’ 3등급인 학생의 어머니는 이렇게
소개한다고 합니다. ‘우리아이는 건강 하나는 끝내 줍니다.’ 4등급인
학생의 어머니는 이렇게 소개한다고 합니다. ‘우리아이는 아버지
닮았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성적에 따라서 등급을 정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등급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 행복의 등급도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 평생 변하지 않는 등급도 아닌 것입니다.
무지개의 색깔은 일곱 가지입니다. 그것은 일곱 개의 등급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곱 개의 서로 다른 색깔이 있는 것입니다. 일곱 개의 색은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자연은 이렇게 서로 등급을 나누지 않고 저마다의 특징을 드러내면서
질서와 조화를 이루면서 존재합니다.
모든 전자 제품은 전기가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전기가 없으면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실 수도 없고, 텔레비전에서 재미있는
프로를 볼 수도 없고, 어두운 밤에 환한 불빛을 비출 수도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기이지만, 이제 우리는 전기 없는 생활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과 연결되지
않는 신앙은 힘이 없고, 생기가 없으며, 위기와 고통의 순간이 찾아오면
쉽게 포기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느님과 연결된 신앙은, 하느님과 함께
하는 신앙은 늘 기쁨이 충만하고, 즐거우며, 고난과 아픔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게 해 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로 하느님과 함께하는 ‘믿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이야기하면서 믿음만이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 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영원히
썩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곳에 우리의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고
하십니다. 세상의 것들은 사라지고, 좀이 생기고, 남이 와서 빼앗아
가기도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신뢰하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갖는 사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곳에 보물을 쌓아두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길이와 순서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갈 곳을 모르는 우리에게,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가장 안전한 곳은 어디일까요? 가장
믿을 만 한 분은 누구일까요? 그렇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를 죽음 이후에도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입니다. 세상의
곳간에 쌓아 놓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믿고,
따라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 서울 대 교구 성소국장 조제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죽음 앞에서야 헛됨을 깨닫고
2013년 다해 10월21일 연중 제29간 월요일
죽음 앞에서야 헛됨을 깨닫고
수명은 재산과 비례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 없습니다.
수명은 권력도 실력도 미모도 그 어떤 세상의 것과도 역시 무관합니다.
수명은 천운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대다수이며 그게 믿을 만합니다.
그러니까 수명생각 안하고 재산 권력 실력 미도 등에 몰두한다는 거지요.
삶은 죽음의 여정이고 죽음은 삶의 목적지인데도 이를 도외시한 겁니다.
그러니 죽음 앞에서야 그간 산 걸 헛되다며 때늦게 후회 한탄을 하거든요.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루카 12,15)”
- 이기정 사도 요한 신부님의 매일 묵상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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