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구(李書九, 1754년∼1825년) 실학 문신
이서구(李書九, 1754년∼1825년)는 조선의 문신·학자이다.
자(字)는 낙서, 호(號)는 척재,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조선 제14대 임금인 선조대왕의 열두째아들인 인흥군(仁興君)의 후손으로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사관·지평·경상우도 암행어사 등을 지냈다. 1795년 정조 때 천주교도를 옹호한다는 죄로 영해부에 유배되었다가 대사성이 되었다. 이듬해 교정당상이 되어 왕명으로 <장릉지>를 편찬했으며, 1800년 순조 때 호조판서로 지실록사가 되어 <정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 후 형조판서·대사헌·대호군을 거쳐 우의정에 올랐으며, 판중추 부사로 재직중 죽었다. 명문장가로서 특히 시명이 높아 박제가·이덕무·유득공과 함께 한시의 4대가로 알려졌으며 5언 고시에 능했다. 저서로 <서산집> <장재집> <여지고> 등이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인 척재 이서구(惕齋 李書九, 1754년~1825년)는 사가시인(四家詩人,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중 유일한 적출로, 우의정까지 오른 인물이다. 이서구는 역사적으로 안동 김씨 세도 정권에 부합하지 않는 우현좌척(右賢左戚)의 원칙을 견지하며 경세제민(經世濟民)을 실천한 인물로, 이 때문에 생전에 김씨의 세도 정치에 의해 13년 동안 방폐되었고 사후 25년 동안이나 추탈관작의 위험에 놓였다. 이 설화는 이서구의 사상과 옛 기록에 적힌 내용에 근간을 두고, 이서구가 선정을 베풀었던 경상도, 전라도, 평안도 지역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에 형성되어 전승된 것으로 추정된다. 뿐만 아니라 은거지인 경기도 포천 지역에도 치적이나 인품과 관련한 많은 설화가 전승된다.
문헌설화와 구비설화 양쪽 모두 이서구의 출생부터 죽음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전승된다. 전설 속의 이서구는 백성을 위해 선정을 베푸는 인물로 묘사되어 예언가로, 이인(異人)으로, 구원가로 형상화된다. 특히 수학과 입신과 능력에 관한 이야기가 많으며, 그의 우월성에 초점을 맞춰 내용이 전개된다. 이서구의 출생에 관한 내용은 태몽과 환생 모티프로, 영웅 출생 때 흔히 볼 수 있는 신이한 이적에 대한 모티프는 차용하지 않았다. 자라서 수학할 때는 이인이 스승으로 등장하는데, 아버지가 스승을 믿지 못하여 중간에 그만두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이는 이서구가 지역적 인물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근거로 제시된다. 입신담은 주로 관료 시절 선정에 관한 내용으로, 전라도 지역을 배경으로 한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전승된다.
이서구는 도술, 예언, 풍수에 아주 능했는데, 이런 능력을 백성을 위해 사용한다. 예언에 관한 것으로는 나합(羅閤)의 탄생을 예견한 것이 주를 이룬다. 풍수에 관련한 설화는 전라도 지역에서 많이 전승되는데, 후대에 들어선 철도나 댐 등의 지형에 관한 내용이 많고, 전주의 집 방향을 서향에서 남향으로 바꿔 가난을 벗어났다는 가사좌향(家舍坐向)에 관한 각편이 많이 전승된다. 그 밖에 전주의 땅 기운을 지키고자 북고사를 진북사로 개칭한 이야기, 전주의 재물 운이 빠져나가지 않게 서북쪽에 숲을 조성해 숲정이라 부른 이야기, 승암산의 화재를 막으려고 인봉에 방죽을 만든 이야기, 북쪽 가련산의 지세를 비보하여 물을 바로 흐르게 한 이야기 등이 전승된다.
또한 신이한 능력을 부각하기 위하여 설화 속의 이서구는 새소리를 알아듣고, 살인자를 잡기도 하며, 비둘기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후임자를 예견하기도 하고, 이방의 아들이 중의 아들임을 밝혀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원혼을 만나기도 하고 이계(異界)와 소통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이서구의 죽음에서도 예언 모티프가 차용되어 묘비를 세우는 문제, 묘를 쓰는 문제에 대한 그의 이인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서구전설>은 이타적인 인물됨에 초점을 두지만, 각편에 따라 이종사촌의 입신 기회를 빼앗아 자신이 입신하기도 하며, 집안을 살리기 위해 능력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조카나 아들을 명풍수로 둔갑시켜 잘살게 해 주거나 생명을 늘려 주기도 하며, 7대손이 살인죄로 죽게 될 것을 예견해 구해 내기도 한다. 각편에 따라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의 전설 전승 양상에서 이름난 이인이 무명씨인 은일자에게 굴복당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 전설 역시 참외밭 주인, 평범한 노파, 더벅머리 총각 등과 비교해서 열등성을 보이는 각편이 있다. 이는 유명한 인물보다 역사 이면에 감춰진 인물이 세상을 움직이는 데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전승 집단의 의식이 표현된 것이다.
이 설화의 연구는 기록류와 문헌설화, 구비설화의 모든 자료에서 진행되었다. 기록류와 문헌설화에서 보이는 이서구는 지인지감에 뛰어난 도술을 행하는 이인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이런 능력은 구비설화에서도 전승되는데, 특히 전라도 지역에서 활발하게 전승되는 것은 그의 경세가로서 능력과 인물됨에서 비롯한다. 많은 각편을 보이는 구비설화에서는 이서구의 능력이 예언, 지인지감, 풍수, 도술 등으로 다양하며, 그 내용도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구술되고, 사후에도 설화의 전승력은 약화되지 않고 각종 밀서의 저자로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 전설은 이서구의 출생지인 경기 지역과 치적이 남아 있는 전라도, 경상도, 평안도 지역 및 은거지인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전승되지만, 부임지였던 전라도 지역에서 전승이 가장 활발하다. 이 전설의 전승에서 특이한 점은 이서구의 예언자로서의 인물 형상이 후대에도 계승되어 설화가 각색, 전승된다는 점이다. 특히 동학농민운동과 남조선운동에 이서구가 이인으로서 영향력을 미쳤다는 내용이 문헌설화와 구비설화, 그리고 매천 황현의 기록에 남아 있다. 나합의 탄생을 예견한 일, 남조선에 관한 일, 동학농민에 관한 일들로 사후에 각색 전승된 각편은 그의 이인성에 예언자의 이미지를 부각해 그를 민중의 구원자로까지 형상화한다. 또한 김조순의 첩인 나주 출신 기생의 출생을 추수법(推數法)으로 예견한 이야기, 동학농민으로 백산이 죽산이 될 것을 예견한 일, 제주도 바깥에 있다는 남조선의 일 등 백성의 구원자로서의 인물로 형상화되었다. 이런 예언자, 구원자로서의 <이서구전설>의 생명력은 1890년 이전부터 최근까지 예언서의 저자로 조작된 예가 있을 정도로 많다.
중이 죽어서 환생한 이서구
시방 원동사라고 하는데, 중이 하나가 이왕지사 전라감사나 암행어사나 두 개 중의 하나를 할려고 원등사라는 데를 들어가서 공부를 했어. 공부를 세상없이 할려구 해야 안돼. 이놈의 것이 자기 마음대로, 아 전라감사를 할려구 해도 안되지. 암행어사를 할려구 해도 안되지, 안된단 말이야.
“에라 썩은 놈이거. 내가 이렇게 해도 안 되니까 죽어서라도 해보게 죽기라고 해야겠다.”
그 원등사 어딘가 방죽이 있다더구만. 그 방죽이 있는데 그 방죽 있었는데 하도 안되니까 생각을 해도 안 된게, ‘에 내가 ㅈ구어서 전라감사를 해야겠다. 암행어사나 해야겠다.’하고는 물 속으로 푹 들어가서 죽었단 말이여. 죽어서 그 유서를 원등사 뒤에 굴이 있댜. 죽으면서 그 유서는 굴 속에다 써 놓고 갔어. 굴 속에다가, 그 굴이 시방도 깊으다구먼.
그래서 거기 가서 죽었단 말이여. 죽어버렸으니께 소용이 없지. 없으니까, 없는 그 절로 딴 중이 와서 사는데, 그 굴 속을 보니까 웬 유서가 하나 있단 말이여. 아 유서가 요상스러운데 그런 유서가 있단 말이여.
“아 이거 내가 가질 게 아니라 전주감사에게 갖다 주어야겠다.”고.
[청중 : 그 유서를?]
응. 아 감사한테 갈려고 그 유서를 갖고 중이 갔단 말이여. 아 문지기들이,
“중놈이 어디 감사를 볼려고 들어온다.”
고 막 밀어내고 막 밀어내고 한단 말이여. 아 그러니 들어갈 수가 었어야지. 또 가면 또 밀어내지, 또 가면 또 밀어내지. 몇몇 세 차례 네 차례나 갔단 말이여.
가만히 보니까 전라감사. 이서구씨가,
[전에는 충정도 어디에서 살았다고 기억을 더듬어 설명.]
가만히 들은게 웬 중놈은 갖고, 못들어간다, 들어간다 하니께 뭐 상의할 일이 있다고 그런댜. 그러니까 주인이 이제 뭐라고 하는가 하니, 아니, 이서구씨 어머니가 웬 사람이 그렇게 시끄럽게 하느냐고,
“아 중놈이 와서 감사댁을 뵌다고 해서 그런다.”
고 뭔 유서가 있다고 한다고 그런게 그럼 이서구씨 어머니가, 참 내가 하나를 빼 먹었네.
그이가 이서구씨를 밸 적에 꿈에 그 공부하던 중이 이름이 바우고 성이 이가여. 이 바우여. 이 바운데, 그 꿈을 꾼게로 무슨 절에 큰 바위덩어리가 이서구씨 오메(어머니) 목구멍으로 들어가버리더랴. 그래갖고서 이서구씨를 배갖고 감사를 하는 것인데, 내가 첫머리를 빼먹고 하네.
그래갖고는 중이 와서 그런게 대뜸 가서 유서를 들여보내라, 안 들여보내라. 가만히 보니까 어머니가 들어오라고 할 게 아녀?
들어오라고 하니께, 들어온께 이런 유서가 있어서 뵈인다고 해. 그 유서를 본게로 자기 꿈이나, 꿈 배가지고 이서구씨를 낳는데, 꿈이랑 딱 맞더랴. 그래갖고는 인쟈 으 이제에 와서는 그전에는 원등사라고 안했는데 거기서 원없이 되었다고 원등사라고 지었다고, 그런 얘기가 있구먼.
첫댓글 본 글은 돌베개 출판 63인의 역사학자가 쓴 한국사인물열전의 인물 중에서 선택하여 구글 백과 등을 인용하여 정리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