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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가해 12월3일 (백)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선교의 수호자) 대축일
[청주] 복음을 전하라. -
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제1독서 : 신명 10, 8 - 9
† 제2독서 :1코린 9, 16 - 19. 22 - 23
† 복음 : 마르 16, 15 - 20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은 1506년 스페인의 바스크 지방 하비에르
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하다가 만난 이냐시오
성인의 영향으로 수도 서원을 하였다. 1537년 사제가 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예수회 첫 번째 회원으로 자선 사업에 헌신하였다. 그 뒤
그는 인도와 일본에서 열정적인 선교로 많은 이를 교회로 이끌었다.
중국 선교를 위해 중국으로 향하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552년
12월 중국 땅이 바라보이는 산첸 섬에서 선종하였다.
1662년에 시성된 그는 흔히 바오로 사도에 버금가는 위대한 선교사로
불린다. 수많은 위험과 역경을 딛고 먼 거리를 여행하며 선교에
헌신하였기 때문이다. 1927년 비오 11세 교황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을 아기 예수의 데레사(소화 데레사) 성녀와 함께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오늘 전례
오늘은 선교의 수호자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축일입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성인은 아시아 지역의 선교에 자신의 삶을 내바쳤고,
주님께서는 성인의 열정을 믿음의 열매로 맺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기까지 성인과 같은 수많은
선교사들의 땀과 피가 있었음을 기억하며 모든 선교사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 모세가 백성에게 레위 지파에 대한 하느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설명한다. 그들은 주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계약의 궤를 책임진 만큼,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제1독서).
★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직무라고 고백한다. 그러기에 그는 어떤 권리도 바라지 않고, 스스로
모든 이를 위한 종이 되었던 것이다(제2독서).
★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오르시기 전 제자들을 부르시어 복음을
선포하라고 명령하신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세상 곳곳에
복음을 전한다(복음).
◈ 오늘의 묵상
다니엘서 3장에 나오는 찬미가는 모든 피조물을 두고 주님을
찬미하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찬미가에 열거된 피조물들이
주님을 찬미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경이로운 시 한 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늘, 물, 해, 달, 별, 바람, 불, 열, 추위, 더위, 이슬,
소나기, 서리, 얼음, 눈, 밤, 낮, 빛, 어둠, 번개, 구름, 땅, 산, 언덕,
땅에서 싹트는 것들, 샘, 바다, 강, 바다짐승, 물고기, 새, 들짐승,
집짐승, 사람들 …….
암 판정을 받은 어느 교우를 찾아갔을 때, 고통 속에서도 불평 없이
이겨 내는 그의 모습을 보며 이 찬미가를 다음과 같이 바꾸어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나약한 육신이여, 주님을 찬양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육신을 파고드는 암투성이여,
주님을 찬양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정신적인 고통과 육체적인 상처들이여, 주님을 찬양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병고 속에서도 그가 주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만큼, 이 모든 것이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모든
피조물에 복음의 그늘이 드리워, 그 모든 것이 진정으로 주님을
찬양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부터 찬양의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나의 모든 욕심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나의
모든 잘못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나의 모든 아픈 과거야, 주님을 찬양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나의 모든 약점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
- 매일 미사 -
◈ [청주] 복음을 전하라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신부님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3년 가해 12월3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 마르코 16,15-20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
오늘은 지역 어르신께 점심식사를 제공합니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으로
어르신들을 대접하는 나눔 행사를 3번째 하고 있습니다. 점심 한 끼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더불어 함께한다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지난해에 600여분이 참석하셨는데 이번에는 700명이 넘을 듯합니다.
하루 편안히 다녀가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성탄이 우리만의 축제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기쁨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지역 어르신을
비롯한 가난하고 고통을 받는 이들,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와 정성이 지속된다면 그것이 지역 복음화를 위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6).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16,15)하고 명 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끈기를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타이르고 꾸짖고 격려하십시오”(2티모4,2). 하고 권고합니다.
로마서10장 17절에서는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면서도 막상
입으로, 삶의 모범과 표양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가장 큰 일은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스승이 하신 일이요, 참된 제자라면 그 일을 이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어려움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구애 없이
복음은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선포하는 자는 듣는 쪽의 반응에
얽매이지 않고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
주는 하느님의 힘이기 때문입니다”(로마1,16). 따라서 우리도 “예수천국”,
“불신지옥” 하면서 요란을 떨지 못하더라도 이웃에게 주보를 보내준다든지
전화를 한다든지 하는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물론
가두선교에 참여하여 천주교 소개 책자를 나눠주는 일을 계속하시는
분들에게는 더 큰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나눔 행사도
더 잘 준비하여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기억하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506년 스페인 바스크 지방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공부하던 중 성 이냐시오의 동료가 되었고 1541년
동양으로 와 인도와 일본에서 열성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이냐시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현장에서 어린아이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느라 성무일도를 보거나 식사하거나 휴식을 취할 시간조차 갖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문에 대해 쏟는 열정만큼 활동도
꼭 필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과 자신이
얻은 지식을 잘 쓰면,“주여, 제가 여기 있나이다. 당신은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원하시는 곳이면 어디에나 저를 보내 주십시오.
인도까지라도”하고 고백할 많은 이들이 나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삶 자체가 선교가 안 된다면 무의미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인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우리자신이 먼저 복음화됨으로써 전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1코린1,25). 우리가 어디에 있든 삶의
모범과 표양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전교
전에 교회 건축물을 지었던 어떤 신부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공사에 집중을 하다 보니 어느 날 굴삭기로 땅을 파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재미있더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해가 되십니까? 땅 파는 것이 뭐가
재미있다고, 글쎄 자신은 하루 종일 땅 파는 것만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게 뭐가 재미있어요?”라고 하자,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낚시꾼들도 낚시를 밤새워 하잖아. 그들이 물고기 잡는 것에만 재미를
느끼고 행복해할까? 아니야. 그들은 물 위에 떠 있는 찌만 바라봐도
재미있어하고 행복해 한다니까. 별 다른 움직임 없이 물의 흐름에 맞춰
흔들리기만 하는 찌 보는 것이 뭐가 재미있겠어? 그러나 밤새워 물고기
하나 못 잡았어도 재미있어 하지. 나도 마찬가지야. 집중하니까 땅 파는
것만 봐도 재미있더군.”
생각해보니 정말로 그런 것 같습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지루하고 힘들기만 할 것 같지만, 그곳에 집중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재미와 행복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안에서 재미와 행복을
느끼지 못하면서 온갖 불평과 불만의 이유들을 찾는 사람들이지요. 특히
승부에서 이기려는 목적이 더 중요한 사람들, 즉 세상의 관점으로만
행동하는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보입니다.
사실 세상의 관점만 내세우면 주님의 일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고
실천하기 힘든 일입니다. 바빠 죽겠는데 어떻게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달할 것이며, 내 코가 석자인데 어떻게 남을 도울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주님의 일을 실천하기에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만큼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입니다. 성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 끝까지 복음 선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셨지요.
그래서 자신의 고향인 스페인을 떠나 우리나라의 바로 옆에 있는
일본까지 와서 전교 활동을 하셨습니다. 지금처럼 빠른 비행기가 있는
시대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배로 인한 항해가 안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집중했기에
열정적으로 전교 활동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성인께서 사셨던 16세기와 지금 21세기를 비교해보십시오. 모든 점에
있어서 지금 이 시대가 훨씬 좋은 조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조건임에도 전교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일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일에 더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교 가능한 이유보다도 불가능한 조건만을 찾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주님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니, 어떻게 주님의 일을 하는 데에
재미가 있고 또 행복을 느낄 수가 있겠습니까?
선교의 수호자이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를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이제 주님의 일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때 나의 이웃
한 사람에게 주님을 알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진정으로
행복한 일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랑, 그 존재만으로 세상의 모든 짐을 가볍게 해 주는 최상의 선
(토마스 아 켐피스).
세례를 주시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축일 맞이하시는 분
축하합니다.
먼저 주님께 집중합시다.
제가 신학생 때 세종문화회관으로 뮤지컬 구경을 간 적이 있습니다.
사실 학생 신분에서 이 뮤지컬 가격은 너무 비싸더군요. 하지만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는 뮤지컬이고, 더군다나 너무나도 유명한
‘아가씨와 건달들’이라는 뮤지컬이기에 꼭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제일 싼 C석표를 예매해서 입장을 했지요. 입장을 해서
홀 안으로 들어가니 이상한 물건을 하나 팝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물건을 구입하더군요. 바로 망원경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무대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는 출연 배우의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이랍니다.
망원경으로 봐야 제대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먼 곳에 위치하고 있는
C석. 그래서 제대로 공연에 집중할 수가 없어 가격이 훨씬 쌉니다.
공연좌석뿐만이 아니지요. 운동경기 관람 역시 집중해서 잘 볼 수 있는
자리는 그 가격이 훨씬 비쌉니다. 그렇다면 성당에서는 어떨까요?
가격이 책정이 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지 사람들은 맨 뒷자리가 가장
집중이 잘 되는 곳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좁은 성당의 경우에는 맨 뒷자리가 더 좋을 수도 있겠지만, 웬만한 성당이
맨 뒷자리에서는 앞에 계신 십자가의 예수님 얼굴도 보이지 않습니다.
즉, 주님께 제대로 집중할 수 없는 C석일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 C석을 제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이 맨 뒷자리가 다 채워진
뒤에야, 점점 앞자리가 채워지니까요.
주님의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님의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주님께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주님도
잘 모르면서 어떻게 주님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나의 작은
습관에서부터 가능해집니다.
기왕이면 성당의 앞자리에 앉아서 주님의 얼굴을 제대로 보려는 노력을
할 때 또한 사제가 말하는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으려는 집중을 할 때,
주님의 일이 내 안에서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언젠가 해야
한다는 마음만 간직하려고 하지 마시고, 먼저 성당의 VIP석인 앞자리에
앉아 주님을 제대로 보셨으면 합니다.
- 인천교구 성소국장 조 명연 마태오 신부 -
◈ [서울] 성 프라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
2013년 가해 12월3일 대림 제1주간 화요일
오늘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동창 신부
중에 같은 본명을 가진 신부님이 있습니다. 언제나 가난한 이들과
함께 했던 친구입니다. 불의의 현장에서 하느님의 정의를 말했던
친구입니다. 캐나다에서 함께 살 때는 저를 위해서 식사준비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마지막
정리까지 다 한 후에야 잠자리에 들던 친구입니다. 중견사제 연수를
마친 후에 교구장님과 면담을 하면서 ‘도시 빈민 사목의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중에 가장 가난한 이에게 해 준
것이, 가장 헐벗은 이에게 해 준 것이, 가장 굶주린 이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온 몸으로 실천하는 동창
신부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1988년 저는 군대를 제대한 후에 ‘돈 보스코 직업 훈련원’에서 잠시
일을 했습니다. 그곳에는 멀리 외국에서 오신 신부님과 수사님들이
계셨습니다. 학생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밤에는 방송통신 고등학교
과정을 배우게 하고, 틈틈이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영어와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낮에는 용접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학생들을 위해서 후원회원들을 만나기도 하셨고, 재미있는
강론으로 학생들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수사님들은 직접 기술을 가르쳐
주셨고, 점심 식사 후에는 아이들과 함께 농구를 하셨습니다. 권위적인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늘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사랑과
관심을 주셨습니다. 존경받는 사제, 권위적인 사제, 엄한 사제들을
보았던 제게는 새로운 경험이었고,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사제가 된 후에 신부님과 수사님들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만주에 있는 ‘직업 훈련원’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한국은 이제 잘 살게
되었기 때문에 더 어려운 곳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70이 넘은 연세에도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려는 신부님의 열정을 존경합니다. 수사님들은
멀리 아프리카로 가셨다고 합니다. 역시 더 어렵고, 가난한 곳을 찾아서
떠나셨다고 합니다. 신부님과 수사님들께서 늘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를 ‘가별’이라고 불러주셨던 신부님이 생각납니다. 쉽고 편안한 길이
있지만 굳이 힘들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셨던 신부님이 생각납니다.
세상 사람들은 더 좋은 집,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차, 더 좋은 것들을
얻으려고 공부를 합니다. 출세와 성공이 삶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또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가치를
추구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책을 자주 읽고, 나는 누구인지를
고민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며, 가진 것을 기쁜 마음으로 나누어
주는 사람입니다. 밤하늘은 별들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처럼 이 세상은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아름다운 것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참된
신앙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기쁜 소식’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육체적인 욕망을 채워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곧 다시 갈망이 생기는 만족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빼앗아 갈까 걱정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비싼 대가를
지불해서 얻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얻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해하기 때문에
이해 받을 수 있고, 용서하기에 용서받을 수 있고, 사랑하기에 사랑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에게 영광과 찬미를
드리는 것이 참된 기쁨입니다.
- 서울 대 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기타] (2013년12월3일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축일 복음묵상)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지금 움켜쥐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혹시 그것 때문에 ...'
2013년 가해 12월3일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축일 묵상
“약한 이들을 얻으려고 약한 이들에게는 약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고린토1서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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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높다.
바람은 차고 세다.
성긴 가지에는
미련을 놓지 못한 녀석들이 안간힘을 쏟고 있다.
"녀석들,
그냥 놓으면 될 것을."
월요일은 좋다.
별난 삶이 되어버린 삶.
바둥거리는 녀석들처럼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아
그냥 다 내려놓고 혼자 안에 머문다.
그런데
왜 이리도 그리운 이들이 많은 걸까.
함께 할 수 있기 위해
혼자여야 하는 삶을
또다시
확인하는 하루다.
하늘이 높아서 좋고
바람이 차고 세서 좋다.
그리고
그리워할 수 있는 이들이 있어 좋다.
2012.12.10. 월요일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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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사제들 피정에 들어와 있습니다.
오랜만에 온천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쫓아 내보았습니다.
오늘은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축일, 저의 축일이네요. ^^
작년에 이 맘 때쯤 긁적였던 낙서 같은 녀석 하나 올려보았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 [서울] 새롭게 태어나면 하느님이 아버지입니다.
2013년 가해 12월3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선교의 수호자)
대축일
새롭게 태어나면 하느님이 아버지입니다.
하느님을 거부하고 관계를 끊고 세상일과 사물에 매이면 그저 먹고살 뿐.
그저 세상이 전부일 터이니 죽음으로 모든 게 허무로 돌아갈 뿐입니다.
그러면 그의 탄생의미는 동물처럼 먹고 자라고 새끼 낳고 죽을 뿐이지요.
그러면 인간의 가치를 숭고 영장 사고 같은 형이상학 운운은 필요 없습니다.
하느님 계심을 믿고 그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면 하느님이 아버지입니다.
하느님과 자녀관계의 길을 알려주신 분이 구세주이시며 곧 주님이십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마르코 16,16)”
- 이기정 사도 요한 신부 -
◈ [기타] 복음을 위해 고생해 봅시다.
2013년 다해 12월3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사제(선교의 수호자) 대축일
(코린토 1서 9장 16~19.22~23절)
오늘 오전에 바오로 딸 서점에 갔었습니다. 예비자 교리서 몇 권을
사다가 본당에 비치해 두려고 가기도 했고, 요즘 신부님들의
페이스북에 자주 등장하시는 교황님의 책도 몇 권 사다가 볼까..
하고 갔었습니다. 한 바퀴 둘러보면서 필요한 책들을 먼저 집어
들었는데요. 교황님의 책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녀님에게
물어보았더니 다른 책들은 지금 남아 있는 제고가 없고, 남아 있는
건 지금 이 교황님 어록 밖에 없다.. 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내용인가.. 하고 대충 훑어보았는데요. 기억나는 어록이
하나 있습니다. 사제들에게 주일 강론에 대해 이야기한 것인데,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략 이런 겁니다.
‘주일 미사 강론을 잘 준비하는 것은 신자들을 성화시킬 뿐만
아니라, 사제 자신도 성화시켜 줍니다.’
그 내용을 읽고 ‘그런 거 같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신자들을
위해 강론을 준비한다고 하지만, 그 일이 저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거든요. 사제가 되었다고 순례의 여정을 끝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 스스로도 그 길에 관해 끊임없이 묻고 고민하고 찾아나가야
하는데요. 그 일을 하는데 강론 준비가 많은 도움이 되어 주는 거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강론이 사제인 저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때로 강론 준비에 대한 부담을 느낄 때 이런 농담을 할
때가 있는 거 같습니다. ‘강론 준비만 없으면 사제생활 할 만 할
텐데..’ 하는 건데요. 아마도 그렇게 된다면 편할지는 모르지만,
신자나 자신이 성화될 수 있는 한 가지 길은 없어지는 거겠죠.
사도 바오로도 편한 것이 아니라 성화를 생각했기 때문에 오늘
독서에서와 같은 말을 하지 않았나.. 합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복음을 선포하지 않으면 너무나 편했겠죠. 옥살이를 하지 않아도 되고,
매 맞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는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헌신합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스스로의 성화와 하늘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기쁨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분의 손과 발이 되어서
살아갈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기쁨과 보람을 그는 생각할 수 없었겠죠.
이런 일이 그와 비슷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다른 동기 신부들과 같이 대림기도 만드는 작업을 했었는데요.
그 일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사서 고생이다...’ 라고 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왜냐하면 4명의 신부들이 각자 맡은 부분의 글을 써야 했고,
글을 다 모아서 편집한 후에는 본당에 샘플 보내고, 전화하고, 택배비도
아껴보려고 가지고 있는 차량으로 책자 배달하고, 큰 금액은 아니지만
수익금에 얼마를 보태어 신학생들 장학금으로 보냈거든요. 동기
신부들이 고생을 많이 했는데요. 책자 배달하러 나가기 전에 동기
신부가 저에게 “그런데 너 이거 왜 하는 거야?” 하는 질문을 하길래
“나도 몰라~” 하고 대답을 했었는데요. 오늘 독서에서 어렴풋이나마
답이 되어주는 말씀을 찾은 거 같습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복음을 위해 고생해 봅시다. 내 신앙생활이 편하다면 참
행복이 무엇인지도, 또 스스로의 성화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을 겁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카드를 줬는데,
카드 한도 초과라 안 된다고 하신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 현금으로 계산하고
카드 회사에 전화해 보니 직원이 이런 얘기를 하신다.
“방금 전에 백칠십만원이 두 번 결제되려고 했었습니다.” ^^;
- 밤송이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글 -
◈ [기타] 하느님의 능력에 대하여 관대하고(마르 16, 15-20)
2013년 다해 12월3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선교의 수호자)
대축일
하느님의 능력에 대하여 관대하고(마르 16, 15-20)
오늘 복음 묵상 중에 두께가 10cm나 되는 밥그릇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그릇 안에는 밥이 조금 밖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무슨
뜻인가 곰곰이 생각하고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은총을
조금밖에 담지 못하는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조직과 관리가 철저히 이루어지지만 하느님의 은사가
드러나지 않아 딱딱하게 느껴지는, 그래서 풍요롭지 못하고 은총을
조금밖에 드러내지 못하는 교회의 모습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믿는 이들에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라고 전합니다.
초기교회에 사도들은 놀라운 표징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이런 표징들은 점차로 줄어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초기의 논술에서 기적의 시대가 지나갔다는 표현을 쓴 바
있는 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사실상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얼마나 많은 기적들이 옛날에 있었던 그것들과 너무도
흡사한 기적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 이 놀라운 기적들에
대한 기억이 우리들 사이에서 소멸해 버리도록 내버려 둔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깨닫고 나는 특별히 여기에 이 기록과
증거를 작성하게 된 것이다. 여기 히포에서 이 기록의 착수가 시작된
것은 겨우 2년 전이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70건의 공인된 기적의
사례를 이 기록에 싣게 되었다.”(De Civitate Dei 22, 8 ; translation
in The Fathers of the Church, vol. 8, p. 445.)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저 역시도 사제 서품을 받으면서 성경에서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읽거나 들을 때 그것을 의미론적으로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난다-가톨릭출판사] 라는 브리지 메케나 수녀님의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나의 믿음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주님께 열려있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하여 관대하고
넓게 받아들이면 하느님께서는 놀라운 일들을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의 능력의 한계를 제한한다든지
혹은 기적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교회는 하느님 은총의 보고인 성사들을 거룩하게 집전하면서,
동시에 하느님 현존의 표징인 은사들이 잘 드러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 거룩한 성사들은 더욱 빛을 발하며 사람들이
믿음이 시들지 않으며, 냉담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꾸준히 할
것입니다.
현재의 많은 신자들이 세례를 받고도 30%도 주일미사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주일 미사 참여율이 줄어드는 것에 대하여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합니다. 우리가 성사들을 거룩하게 집전하고, 또 초대교회에
풍요로웠던 은사들이 믿음이 없는 이 시대에 다시 풍요로워져서
사람들이 주님이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아멘.
- 희망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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