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
☆ 2013년 가해 12월19일 (자) 대림 제3주간 목요일
[청주] 구름만 많고 비는 내리지 않는다.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제1독서 : 판관 13, 2- 7. 24 - 25
† 복음 : 루카 1, 5 - 25
★ 삼손은 모태에서부터 나지르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나지르인’
이란 ‘하느님께서 성별(聖別)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마태오 복음서
2장 23절에서는 이를 예수님과 결부시킨다(제1독서).
★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부부는 의로운 사람들이었지만 나이 들도록
아이가 없었다. 그러던 중 즈카르야가 주님의 성소에서 분향할 때
천사를 통하여 아기의 탄생 소식을 받는다(복음).
◈ 오늘의 묵상
엘리사벳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녀와
그녀의 남편 즈카르야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래서 즈카르야에게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시어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즈카르야는 이를 믿지 못하여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그가
믿을 수 있도록 표징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표징도 많을
텐데 왜 하필 그를 벙어리가 되게 하셨을까요?
그리스 철학의 스토아학파를 창시한 철학자 제논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두 개의 귀와 한 개의 입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더 많이 듣고 적게 말하여야 한다.” 많은
사람이 듣기보다는 말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듣는 것에
소홀하면 상대방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 다툼이 일어나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듣지 않는 태도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에서도 ‘들음’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믿음은 들음에서 온다고
하였습니다(로마 10,17 참조).
오늘 복음에서 즈카르야가 벙어리가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동안 그는 자신의 뜻과 생각에만 머무른 나머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들어야 합니다.
곧 침묵 안에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분의 뜻을 알아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벙어리 상태에서 엘리사벳에게 주어진
놀라운 잉태를 지켜봅니다. 그리하여 벙어리가 되기 직전에 ‘불신의
말’을 했던 그가 입이 열리자마자 하느님에 대한 ‘찬미의 노래’를
부릅니다(루카 1,67-79 ‘즈카르야의 노래’ 참조).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도 벙어리가 되어야 하는 때가 많지
않을까요?
- 매일 미사 -
◈ [청주] 구름만 많고 비는 내리지 않는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3년 가해 12월19일 대림 3주간 목요일
<가브리엘 천사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알리다.>
(루카1,5-25)
구름만 많고 비는 내리지 않는다.
본당출신 원로신부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좋은 신부가 되려하지
말고, 착한신부가 되도록 노력하라. 좋은 신부는 인간적인 것에
의지하는 신부로 볼 수 있다. 인기에 영합하고 나를 중심으로 살게
된다.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결국 주님은 밀려나고
끝까지 갈 수 없다. 그러나 착한 신부는 그야말로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본받는 신부이다. 나를 드러내지 않고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하고 예수님처럼 살고, 힘들고 고통을 받는 이들, 지친사람의
손을 잡아주며 그들의 현장으로 다가간다.”
사제수품을 받으면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필리2,5) 간직하기로 다짐했던 첫 마음을 생각하고 착한목자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기도합니다.
즈카르야와 엘리자벳은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의 계명과
규율을 어김없이 지키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고, 어쩌다가 성전에서 봉사할 기회를 갖곤 하였습니다. 마침
즈카르야가 제비에 뽑혀 성전에 들어가 분향을 드리고 밖에서는
온 백성의 무리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주님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분향제단 오른쪽에 섰습니다. 즈카르야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
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루카1,13-14).
그러나 즈카르야는 하느님께 기도하면서도 그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아기가 받게 될 이름, 요한은 “하느님은 은혜로우시다”
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천사의 말을 의심하여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눈에 보이는 표징을 구했습니다. 결국 즈카르야는 이
불신 때문에 천사의 말이 그대로 이루어질 때까지 벙어리가 되어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즈카르야가 벙어리가 된 것이 곧 하느님께서
개입하셨다는 표징이 되었습니다.
즈카리야의 의심, 그리고 유다인들이 표징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그것들이 구원의 다가옴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인간의 불신 따위에 구애 받지는 않습니다. 인간이 무슨 짓을 해도
조건 없이 그리고 끝없이 쏟아지는 하느님의 은총을 말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다만 담을 그릇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담지 못할 뿐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의 역사에는 인간의 자발적인 협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인간은 이미 자유의지를 선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시는 구원이나 멸망의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의심함으로써 은총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니 그 자체가 멸망이 되고, 믿는 이들에게는 구원의
근원이 됩니다. 사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합니다”(요한20,29).
즈카르야는 벙어리가 되어 한 주간의 사제직무를 끝내고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꼭 지키시는 분이라는 확실한 표징을 간직한 채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는 말을 하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하느님의 은혜로우심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게 되었고 그가 고백합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일을 해 주셨구나”
(루카1,25).
즈카르야에게 말씀을 꼭 지키시는 분이라는 확신을 주신 분, 엘리사벳에게
주님께서 굽어보셨다는 믿음과 감사를 고백하게 하신 분, 그분께서
우리에게도 구원을 약속해 주시고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혹 ‘밀운불우’(=하늘에 구름만 빽빽하게 끼어 있을 뿐 비가 되어 내리지
못하는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여건이 조성되어 징조는 나타나지만 일이
성사되지 않아 답답하고 불만이 폭발할 것 같은 상황을 비유한 말입니다.)
일지라도 실망하지 말고 주님의 뜻을 헤아리며 은총의 비를 기다려야겠습니다.
주님께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은총의 때를 놓치지 않도록 깨어
있는 오늘 이기를 바랍니다. “주님, 당신의 길을 제게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제게 가르쳐 주소서. 당신의 진리 위를 걷게 하시고 저를 가르치소서.
당신께서 제 구원의 하느님이시니 날마다 당신께 바랍니다.”(시편25,4-5)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내게 다가오는 뜻밖의 일들
<가브리엘 천사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알리다.>
루카 1,5-25
작년인 2012년 11월과 12월에는 정말로 추웠었지요. 그래서 32년
만에 기록적인 한파와 폭설이라고 매스컴에서는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기사 하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춥고 눈이 많이 왔던 작년 11월과 12월에 스키복과 수영복
중에서 어떤 품목이 백화점에서 더 많이 판매 되었을까요? 당연히
눈이 많이 왔고 추웠으니 스키복이 더 많이 판매되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수영복이 더 많이 팔렸다고 합니다. 수영복 매출이 스키복에
비해서 자그마치 3%나 많았다고 하더군요. 이 기간 수영복이 20억 원
어치나 판매 되었는데, 이는 전년 대비 판매율이 37.7% 증가로 13.8%
증가한 스키복을 크게 앞지르는 수치였습니다.
뜻밖의 결과이지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종종 일어나는
세상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뜻밖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무조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면서 부정해야 할까요?
아니지요. 이것 역시 우리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뜻을 나약하고 부족하기만 한 인간이
어떻게 모두 알 수가 있겠습니까?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면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뜻밖의 일들이 다가오면 당황해 합니다. 특히 이
뜻밖의 일이 좋지 않은 일처럼 보인다면 부정을 하려하고, 원망의
생각과 말로써 그 일들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 과정
안에서 하느님의 뜻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고, 자신의 뜻만 내세우면서
하느님으로부터 점점 멀리 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의 탄생 소식을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말해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부부는 나이가
많았으나 아직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이에 대해 평생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아이를 갖게 될 것이라는 응답을
받게 되었고, 그것도 주님 앞에서 큰 일물이 될 것이라 하지요. 오랜
기도에 대한 응답이니 얼마나 크게 기뻐하고 감사할 일입니까? 하지만
즈카르야는 천사에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라고 의심을 품습니다. 뜻밖의
일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대답에 천사는 곧바로 입을 다물게
합니다.
우리 역시 뜻밖의 일에 대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주님께 말하려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입을 다물라고 하십니다. 주님께
대한 의심을 벗어버리고, 대신 주님의 큰 사랑으로 인한 그 모든 것을
기쁘게 그리고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게 다가오는 뜻밖의 일들. 이 뜻밖의 일들이 뜻밖의 감사와 기쁨의
일도 될 수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인간과 인간이 연결됨으로써, 개별적 존재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수행해 낼 수 있다. 그것이 밧줄의 아름다움이다(김훈).
인천 중3동성당의 야외 구유.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어떻게
하십니까?
광고의 힘
초등학교 시험 문제입니다.
“이것은 중세기에 성지 예루살렘으로 가는 성지 순례자나 여행자가
쉬어가던 휴식처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리고 아프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장소를 제공하고 필요한 간호를 베풀어
준 것이 그 효시가 되었습니다. 현재에는 불치질환의 말기 환자 및
가족에게 가능한 한 편안하고 충만한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총체적인
돌봄(care)의 개념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즉,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연명의술(延命醫術) 대신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위안과 안락을
최대한 베푸는 활동을 무엇이라고 할까요?”
정답이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호스피스’입니다. 그런데 한 초등학생이
이 문제를 보자마자 “아~~”하면서 자신 있게 답을 이렇게 적었답니다.
“보람상조”
광고의 힘입니다. 각종 매스컴을 통해서 자주 접했기 때문에, ‘보람상조’가
호스피스의 개념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광고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를 알 수 있지요. 이를 보면서 우리는 주님을 얼마나 세상에
알리고 있는지를 반성하게 됩니다.
어제 동창신부의 부탁으로 성탄 판공을 주고 왔습니다. 그런데 신자
수가 6,000명 이상 되는 큰 성당인데도 오랫동안 성사를 줄 필요가
없더군요. 조금 성사를 주다보면, 봉사자가 들어와 말씀하십니다.
“신부님, 끝났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점점 소홀히 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러한 소홀함이 주님을 세상에
알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구원이라는 커다란 사랑을 가져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특히 주님을 세상에 적극적으로 알리면서
말이지요.....
-인천교구 성소국장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기타] 모든 자식은 부모에게 소중한 십자가입니다.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모든 자식은 부모에게 소중한 십자가입니다.'
2013년 가해 12월19일 대림 제 3주간 목요일 복음묵상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 낳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다.” (루카1,7)
---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두 사람은 자식이 생길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주 오래 전에 이미
자식을 갖겠다는 꿈은 지운 지 오래다. 그런데 천사가 나타나 아이가
생긴다고 한다. 즈카르야는 믿을 수 없었기에 믿을 수 없다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믿지 않은 대가로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천사의 말대로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의 이름을 천사의
말대로 지을 것을 알린 후에야 굳었던 혀가 풀린다.
그렇게 어렵게 얻은 아들이 세례자 요한이다.
말 그대로 금지옥엽, 애지중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을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아들이었을까?
하지만 그 아들은 성장하자마자 광야로 뛰쳐나간다.
그리고 낙타 털옷을 걸친 행색에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지내며,
세상의 회개를 외친다. (요한이 집을 나와 광야로 들어갔을 때,
나이든 부모가 살아있었는지, 아니면 이미 세상을 떠났는지에
대해서는 성서가 전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살아있었다고 전제하고
이야기를 꾸려나가고자 한다.) 부모들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천사의 말만 믿으면서 자식이 성장해가는 것을 지켜보았을
터이다. 하지만, 아들이 보여주고 있는 삶에 기쁨을 느끼기보다는
근심과 두려움이 더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느 부모가 세례자
요한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자식을 보고 기뻐하겠는가?
부모에게 있어 자식들은 평생 십자가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십자가는 분명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십자가를 잘 지어야 한다. 아니 잘 껴안아야 한다.
모든 기쁨과 슬픔을 품고 있는 자식이라는 십자가.
잘 껴안으라는 말은 자식을 바보에 엉터리로 만들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잘 껴안으라는 말은 자식이 세상이 말하는 출세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도와주라는 말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이며,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도록 사랑을 가르치라는 말이다. 그렇다.
자식이라는 십자가를 제대로 껴안는 방법은 참된 사랑과 참된 기도
외에는 없음이다.
서글픈 일이지만, 나는 대한민국이 총체적으로 건강을 잃은 시간을
살고 있다고 본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종교, 문화 등 어느 한 곳
성한 곳이 없다. 이리도 병든 사회가 된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으리라 본다. 그리고 그 다양한 이유들 한가운데에는 욕망과
이기심 덩어리로 만들어진 못된 인간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참된 교육의 부재로 본다.
일그러지고 이기적인 사랑을 보이는 부모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옳은 것을 가르치지 못하고 비겁한 모습을 보이는 선생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자식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 정신을 차려야만 한다. 자식이라는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식이 옳은 길을 걷도록 모든 것을
감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서울] 하늘 뜻 따르는 데 사용해야
2013년 가해 12월19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하늘 뜻 따르는 데 사용해야
대도시의 공해가 많은 사람들의 암을 유발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이집트나 베트남 등지에 100년 만에 많이 내렸다는 눈도 걱정이고요.
미세먼지에 신경 쓰며 사는 우리도 모든 게 자연을 훼손한다는 거겠지요.
하늘의 뜻을 어기며 사는 게 문화요 예술이라고 할 수 있나 걱정됩니다.
왜 이렇게 하늘 뜻을 지키려들지 않고 조그만 머리만 따르는지 문제네요.
조그만 우리 머리에 든 뇌는 하늘 뜻 따르는 데 사용해야 되지 않을까요?
“천사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루카 1,19~20)”
- 이기정 사도 요한 신부 -
◈ [서울] 대림 제3주간 목요일
2013년 가해 12월19일
<가브리엘 천사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알리다.>
루카 1,5-25
대학생들이 학내 게시판에 ‘대자보’를 붙여 놓았다고 합니다.
제목은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합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에는 ‘대자보’가 소통의 도구였습니다. 2013년도에 ‘대자보’가
학생들의 소통의 도구로 다시 등장했다고 합니다. 스마트폰, 카카오톡,
문자메시지, 인터넷이 있어서 굳이 대자보를 사용하지 않아도 소통의
방법은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대자보를 쓰는 것은
나름대로의 고민과 아픔이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2013년 한 해 동안 안녕들 하셨는지요? 저는 올
한해 이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1월에는 남양주에 있는 중견사제
연수원에서 후암동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2월에는 후암동에서
용문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8월에는 용문에서 명동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동네에서 사는 것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사랑하셔서
제가 심심할 것 같아서 이렇게 자주 짐을 싸도록 해 주신 것 같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2013년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성탄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이들,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을 입양하는 분들은 외국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합니다.
건강하고, 잘생긴 아이들을 입양하는 것은 할 수 있겠지만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을 입양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외국의 양부모들은 한국의
장애 아이들을 입양하고 있습니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은
불행한 것이 아니라, 단지 불편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양부모님들이 아이들이 태어난 한국을 보여주기
위해서 장애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올 때가 있습니다. 저는
잠시 생각했습니다. 1등만 칭찬하는 사회,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만
대접받는 사회,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만 사랑받는 사회가 정말
예수님께서 원하는 사회였을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세상의 가치와 세상이 바라는 삶에서 벗어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좀 더 낮은
자세로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고 기다렸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거의 대부분의 차량은 ‘내비게이션’을 장착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운전하는 분들은 지도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지도와
내비게이션은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를 알려주는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도와 내비게이션은 편리함에 있어서 많은
비교가 됩니다. 특히 여성분들은 지도를 보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여성분들은 남성들과 달리 공간을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전에 남성들은 사냥을 하면서 먹을 것을 구했기
때문에 공간에 대한 파악능력이 발달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여성들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살림을 하였기 때문에 남성들에
비해서 가까운 사물들의 움직임을 잘 파악하는 능력이 발달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은 남성에게나, 여성에게나 길을 가는 운전자들에게
편리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은 정해진 목적지를
입력하면 친절하게 길을 안내합니다. 과속 표지판이 있으면 그것도
알려주고, 길에 턱이 있으면 그것도 알려 줍니다. 도착지까지의
거리도 알려주고, 남은 시간도 알려줍니다. 어떤 내비게이션은
막히는 곳과 막히지 않는 곳의 도로사정까지 알려줍니다. 내비게이션은
우리가 다른 길로 가면 다시 목적지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해 줍니다.
결코 화를 내거나 짜증내는 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도 꼭 해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업그레이드입니다. 우리나라는 새로운 길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업그레이드를 자주 해 주어야 합니다. 업그레이드만 자주해주면
내비게이션은 운전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고마운 안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내비게이션이 좋아도 운전자는 교통법규를
잘 지키고 안전하게 운전을 해야만 정해진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습니다.
신앙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영성입니다. 영성은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부, 성자, 성령의 모습으로
친밀한 관계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들 또한 성부, 성자,
성령의 친밀한 모습을 배우고, 우리들의 가정과 이웃에서 그
친밀함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성생활입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 예수님의 사랑, 성령의 은사는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는 신앙의 내비게이션입니다.
- 서울 대 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도회] 허물어져가는 고성(古城)의 아름다움
2013년 가해 12월19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가브리엘 천사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알리다.>
루카 1,5-25
허물어져가는 고성(古城)의 아름다움
나이 들어가면서 누구나 꾸게 되는 꿈이 한 가지 있습니다. 아름다운
노년기^^ 얼굴 가득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노인, 그 어떤 일에도
당황하지 않는 여유와 평화로움, 삶의 모든 이치를 달관한데서 온
넉넉함과 너그러움, 다가가는 모든 사람들을 환대하는 황홀하면서도
부드러운 석양 같은 그런 노인...
그러나 현실은 어디 그런가요? 오히려 정반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점점 고집에 강해집니다. 절대로 양보하거나 물러서지
않습니다. 바늘 하나 들어갈 여유가 없습니다. 삶은 우울한
회색빛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젊은 시절부터의 노년준비입니다. 아름다운
노년기를 보내고 계시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한 가지
비결이 있습니다. 평소에 전혀 그렇지 않던 분이 어느 날 갑자기
여유 있고 아름다운 노인으로 돌변하지 않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대체로 잘 바뀌지 않습니다. 젊을 때부터 그 모습 그대로
안고 나이를 들어갑니다.
젊을 때부터 마음 다스리는 연습을 잘 한 사람의 황혼은
찬란합니다. 젊을 때부터 침묵할 줄 알고 기도의 맛을 들인
사람의 노년은 풍랑 속에서도 평화롭고 고요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성탄의 조연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이
그랬습니다. 이 둘은 젊은 시절부터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살았습니다.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물론 우렁찬
애기 울음소리가 새어나오는 이웃집을 바라볼 때 마다 속이 상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한
마음이 들 때 마다 마음을 비우고 또 비웠습니다. 힘겨울 때 마다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뭔가 다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며
큰마음으로 하느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즈카르야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즈카르야는 한 순간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큰 의혹을 품고
고개를 가로로 흔들었습니다. 자신과 엘리사벳의 나이가 너무
늦었기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오늘 우리도 즈카르야처럼 말하고 행동합니다.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이에 뭘 새롭게 시작해?’ 하고 포기합니다.
불가능한 일처럼 보여도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를 하느님께
맡겨드리면 불가능한 것이 없으신 하느님께서 길을 열어주실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예 포기합니다. 아예 시도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웃어버립니다.
어느새 우리나라도 노령화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측면의 연구와 배려가 필요한 때입니다. 노인들께서 지니고
계신 풍부한 경험과 그냥 썩히기에는 아까운 지혜를 잘 활용할
방법을 모색할 때입니다.
그러나 노인들 입장에서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연세가 드셨어도, ‘이 나이에 무슨?’하는 생각 버리셔야 합니다.
목숨 다하는 마지막 날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마셔야 합니다. 생명이
붙어있는 한 어떻게 해서든 움직이셔야 합니다. 육체의 소멸과
반비례해서 영적인 영역의 성장이 커져가야 합니다. 내 안에 세상
것은 점점 작아지지만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커져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한 가지 중요한 작업이 있습니다. 늙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입니다. 소멸과 죽음에 대한 의미의 추구입니다.
훌륭하게 나이 드는 일은 고도의 기술입니다. 잘 늙은 방법을 젊은
시절부터 연습해야 합니다.
잘 늙은 방법,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만 문제는 실천여부입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긍정적인 수용, 나를 힘겹게 하는 그 무언가를
놓아버리기,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의 약해짐을
미소로 받아들이기, 불가능해보이지만 나 자신을 넘어서기...
투명한 아침 햇살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부드러운 석양은 더욱
찬란합니다. 휘황찬란한 도시도 멋있습니다. 그러나 허물어져가는
고성(古城)은 그에 못지않게 멋있습니다. ‘나’란 인간 존재를 아름다운
명품으로 형성시켜나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 관구 부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믿음을 주는 말
2013년 가해 12월19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 가브리엘 천사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알리다. >
복음 : 루카 1,5-25
< 믿음을 주는 말 >
이철환 작가의 ‘연탄길 2’에 ‘도시락 편지’란 사연입니다.
불우한 환경 때문에 배움을 포기하고 공장에 취직한 한 열등감 강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기름 때 묻은 자신의 모습이 싫어서 매일 술만
마셨습니다. 몇 년 후 마음 착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보잘 것 없는 일을 했지만 남편의 사람
됨됨이를 믿어주고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여전히
적은 월급과 기름때에 찌든 작업복을 내놓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매일 아침 남편의 가방에 도시락과 함께 이런 짧은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나는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자신에게 용기를 주려고 보낸 아내의 편지가 그는 너무 고마웠습니다.
몇 달이 지나도 아내의 편지는 도시락과 함께 계속 되었습니다. 그는
아내가 자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평소보다 두 시간 일찍 공장에 출근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두운
창고를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모른 이른 시간을 선택했고,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에 모든 청소를 끝마쳤습니다. 아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이 아내와 그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기쁨으로
남아 있기를 바랐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날 아침도 서둘러 공장으로 가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공장 청소를 했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사장실로부터
급히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는 영문을 모른 채 사장실로 올라
갔습니다. 사장님은 그에게 뜻밖의 말을 했습니다.
“나는 이십 년 전부터 자네를 지켜봤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해온 자네에게 경의를 표하네.”
그는 부장으로 승진한 뒤에도 공장 청소만큼은 변함없이 그가 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너무 자랑스러워요.”
이십 년을 보내 준 아내의 도시락 편지는 남편을 세워주는 힘이 돼
주었습니다. 도시락 편지는 사랑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즈카르야에게 하느님의 놀라운 계획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같이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서 어떻게
아들이 태어날 수 있느냐며 그 말씀을 믿지 못합니다. 왜 믿음이 약한
즈카르야에게 다른 벌도 많은데 ‘말을 할 수 없는’ 벌을 내리셨을까요?
어쩌면 믿음이 없는 사람은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낫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열등감 가득한 한 청년을 바꾸어 놓은 말은 ‘나는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이 한 마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믿고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십 년 동안 매일같이 도시락과
함께 편지를 써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나를 믿어주는 사람의
마음을 실망시키지 않으려합니다. 그래서 그 말을 믿게 되고 그렇게
실제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말이 아니라 그 말에 들어있는
믿음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수원교구청에 어제 부임해서 하루가 지났습니다. 아직은 얼떨떨합니다.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것은 항상 두려움을 수반합니다. 떠나기 전날 밤
불안해하는 저에게 큰 위로를 준 문자가 왔었습니다.
“신자들이 많이 섭섭하겠어요. 그래도 교구청에서 신부님을 기다리고
있는 주님의 뜻이 있을 거예요. 새로운 시작에 응원해요. 짐은 다
싸셨어요? 아쉬움에 잠 못 이루는 밤 되지 마시고 푹 쉬셔요. 그곳은
본당보다 재미없을 것 같은 불안감을 떨쳐버리시고요.”
“불안한 제 마음을 잘 아시네요.”
“사실이 그렇다고들 하더라고요. 그러나 그런 생각들을 신부님이
깨버리는 건 어떨까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굳게굳게 믿고 가보면 그분이
알려주시겠죠. ^^”
“그럼 일단 굳게 믿어볼게요. 고마워요.”
저는 이 짧은 문자를 통해서 오산성당에서의 마지막 밤을 편안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부족한 것은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새로운
곳이 분명 쉽지는 않은 삶이겠지만, 그래도 하느님께서 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삶이 준비되어 있다는 믿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믿음의 말은
믿음을 심어줍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나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하느님께서 항상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지닌 사람이 참으로
유익이 되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즈카리야와 같은 부정적이고
믿지 못하는 마음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불안감만 줄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말을 하지 못하게 하고 그 일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게 하는 편이 오히려 유익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온전한
믿음으로 좋은 믿음을 심어주는 말로 세상을 평화롭게 해 주는 하루를
살도록 결심했으면 좋겠습니다. 풍랑 속에서 불안해하고 있는 우리를
향해 예수님은 끊임없이 외치고 계십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요한 6,20)
오산 성당 홈페이지: http://cafe.daum.net/ca-osan
- 수원 교구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기획 연구담당 전 삼용 요셉 신부 -
◈ [수도회] 하느님 앞에서(In the eyes of God)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2013년 가해 12월19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가브리엘 천사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알리다.>
판관13,2-7.24-25 루카1,5-25
하느님 앞에서(In the eyes of God)
하느님은 당신의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어제의 주인공은
요셉이었고 오늘의 주인공은 즈카르야와 그의 부인 엘리사벳입니다..
오늘 복음 서두의 한 대목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하느님 앞에서’가 바로 핵심입니다.
영어를 찾아 봤더니 '하느님의 눈 안에서(In the eyes of God)'로
바로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삶을 뜻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아갈
때 마음의 평화입니다. 사람들 앞에서가 아닌 하느님 앞에서입니다.
하느님 앞을 떠날 때 나를 잊어 방황이요, 세상 것들이 그 삶의 중심이
됩니다.
얼마 전 국민의식조사 결과 팍팍해진 현실을 반영하듯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힘은 돈'이라는 말에 86.8%가 동의했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위인들은 모두 하느님을 힘으로 삼았고,
하느님 앞에서 충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살 때 겸손한 삶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살 때 자기를
알아 겸손이요 하느님과 멀어질 때 자기를 잊어 교만입니다.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부부는 늘 하느님 앞에서 살았기에 겸손했고
하느님은 이들을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1독서의 삼손의
부모인 마노아 부부 역시 하느님 앞에서 겸손했던 인물들임이
분명합니다.
매일 성전 안에서 공동전례기도 시간 역시 하느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비춰보는 겸손의 수행시간이기도 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살 때 항구한 삶입니다. 누가 뭐래도 하느님 앞에서
살 때 유혹에 빠지지 않고 흔들림 없이 항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정주서원 역시 하느님 앞에서 항구한 삶을 뜻합니다.
부부들에게 아이가 없는 것처럼 힘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즈카르야 부부와 마노아 부부가 이 어려움을 겪어낼 수 있었던 것도
하느님 앞에서 삶에 항구했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앞에서 항구했던 즈카르야
부부에게 아들 요한을 선사하십니다.
마노아 부인 역시 주님 천사의 전갈을 듣습니다.
“보라, 너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지만,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우리보다 우리의 처지를 잘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느님 앞에서
정주의 삶에 항구할 때 하느님은 적절한 때에 응답하십니다.
하느님 앞에서 살 때 깨어있는 삶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살 때
저절로 침묵이요 깨어있는 삶에 흠 없이 살아가는 무죄한
삶입니다. 바로 우리 수도자들은 물론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지향하는 삶입니다.
즈카르야 부부에 대한 하느님의 배려가 놀랍습니다.
요한의 출산에 앞서 특별 피정기간을 마련하십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할 것이다.”
하느님은 즈카르야에게 특별 침묵피정 기간을 마련하여 당신
앞에서 충분히 성찰할 시간을 마련해주십니다. 엘리사벳 역시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며 그 깨달음을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그대로 감사의 고백입니다. 엘리사벳 역시 다섯 달 동안의
특별피정기간 동안 하느님 앞에서 침묵 중에 충실히 깨어 지냈음이
분명합니다.
우리 인생은 햇풀과 같이 덧없이 지나가고 하느님은 영원히 계십니다.
늘 하느님 앞에서 살 때 영원한 삶이요 존엄한 인간 품위의 삶입니다.
주님은 매일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늘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삶,
항구한 삶, 깨어있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 -
◈ [기타] 많은 이들이 잉태의 축복을 받고
2013년 가해 12월19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가브리엘 천사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알리다.>
(루카 1, 5-25)
많은 이들이 잉태의 축복을 받고(루카 1, 5-25)
오늘 판관기에서 마노아의 아내는 주님의 천사로부터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라는 축복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복음에서는 둘 다 나이가 많고 아기를 낳지 못하는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아기를
갖게 됩니다. 잉태를 한 엘리사벳은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다가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라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요즘 세상에는 불임인 여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인에게
있어서 불임은 무척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 중에 하나입니다.
특히나 그 집안에서 후손을 고대하고 있다면 얼마나 더 걱정이 되고
미안한 마음이 들며 전전긍긍하겠는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전에 세 번이나 자연 유산이 되어서 힘들어 하는 신혼부부를 상담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나 시부모가 별로 걱정을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였지만 나의 판단으로 당사자들은 대단히 긴장하고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상담을 하면서 많이 안정이 되었고, 또 상담 기간 중 임신이
되어서 가능한 한 아내가 즐거운 일을 하도록 남편도 도와주고 또
본인도 그렇게 하도록 하였습니다. 전처럼 그렇게 병원에 자주 가진
않았지만 부부는 즐겁게 지내고 운동도 하면서 아기를 잘 출산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부부가 함께 기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편이 아내의 배에 손을 얹고 매일 축복의 기도를 하였고, 묵주기도도
꾸준히 바쳤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혼인한지 3년차에 접어드는 부부가 임신이 안 된다고 걱정하며
인공수정을 하려한다고 저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단호히
그것은 교회에서 금하는 것이니 안 된다고 하면서 축복의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본인들에게도 묵주의 9일기도를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금년이 지나기 전에 아기를 갖게 될 것이라고 덕담을
해주었는데 정말 그 해에 임신을 하여 아기를 잘 출산하였습니다.
14년 동안 아기를 낳지 못하여 안타까워하는 자매님이 있습니다.
이 자매님은 혼인 2년차 중에 임신이 된 줄 알고 기뻐하다 아닌
것을 알고 미사 중에 눈물을 펑펑 흘리며 슬퍼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기에 대하여 별로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와 대화를 나누고 또 찬양 치유 기도회에 함께 하면서
자신은 아기에 대하여 초월한 것이 아니라 포기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하였습니다.
아기가 생기기를 많이 기도했는데 그리고, 아기를 줄 것이라고
응답을 받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젠 포기하고 그것을 초월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포기하면서
예수님께 대한 희망도 보내버렸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회에 참여하면서 다시 희망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기 시작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전에 보내드렸던
희망의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다시 생기고 희망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요즘 성체조배 때에 주님께서는 자주 태문을 열어주시는 것을
상징하는 내용들을 이런 저런 방법으로 꾸준히 보여주십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의 태문이 열리고 기쁨을 얻게 될 것이라 개대됩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 이십니다. 임신이 안 될 때 간절히 주님께
생명을 청하면 주님께서 가엾이 보아주시고 축복을 내려주십니다.
많은 이들이 잉태의 축복을 받고, 그 자매님에게도 봄이 가기 전에
주님께서 새 생명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또한 많은 이들에게 영적인 태문이 열려 자신 안에 아기 예수님을
잉태할 수 있는 은총의 대림시기가 되길 기도합니다.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는 주님은 찬미와 영광을 받으소서. 아멘.
- 희망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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