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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
윤 지 관 (덕성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
세월호의 희생자가 학생만은 아니고 그 가족들이 모두 비통한 시간을 보냈겠지만, 단원고 학부모들의 의연한 대응은 국민들의 가슴을 울렸다. 말로 표현 못할 절망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슬픔을 서로 나누면서, 국가의 책무에 대해서 추궁하고 모금 운동을 거부하는 등 시민으로서의 상식을 보여주었다. 그 또래의 아이를 가진 부모는 물론이고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는 대다수 국민이 자신의 일처럼 느끼며 이들에게 공감했던 것은 누구에게나 생죽음을 겪었을 어린 생명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기 때문이다. 학부모, 문득 생명과 사랑을 돌아보다 일찍이 4월 혁명의 실패에 좌절했던 시인 김수영은 그의 시 <사랑의 변주곡>에서 이런 역사의 배반을 겪으면서도 살아 있는 ‘사랑’의 힘에 대해서 노래한다.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고 시작하는 이 절창은, 사회변혁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 흐름을 탄생시킨 ‘사랑’이라는 기원을 불러낸다. 이제 ‘소리내어 외치지는’ 않아도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을 노래하는 시인이 지금 살아 있다면 어떻게 그 사랑의 씨앗이 싹을 틔워 아이들을 살려내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을 불러일으키고 이들을 수장시키고 만 집권세력의 부패와 무능력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게 되었는가를 목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 사회가 사랑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는 경험은 통상의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일상을 일시적으로 넘어선 영역에서 생겨나기 마련이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이루어진 이 뜨거운 연대가 학부모들 사이에 늘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단원고 학생들의 꿈에 부푼 수학여행이 고3이 되기 전 마지막 젊음의 축제였다는 말이 아프게 상기시키듯,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대학입시에 목을 매고 학부모들은 자식이 그 경쟁에서 이기게 하기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을 듯하다. 어린 학생들의 비통한 죽음이라는 엄숙한 현실 앞에서 이 욕망이 잠시 가라앉았을 뿐이다. 학부모라는 이름의 이 수수께끼와 같은 범주가 보여주는 이같은 이중성은 어쩌면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무한경쟁이 부추겨지는 사회에서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을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서 출세시키려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구실에 기대어, 교실붕괴를 한탄하면서도 사교육에 열중하고, 대학서열화와 그로 인한 입시지옥을 비판하면서도 그 아수라장에 아득바득 뛰어든다. 그러다가 자식의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세월호의 참사를 마주치고서야 잠시 그 너머를, 생명을, 사랑을, 문득 돌아보는 것이다. 사학재단 관련법안, 선장만 구하고 승객은 방치? 사실 세월호에 국민의 시선이 집중된 틈을 타서 앞으로 대학사회와 한국의 교육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법안이 지난달 말 여당의원들에 의해 발의되었다. 교육부가 추진 중인 강제적인 대학구조조정을 뒷받침하고자 하는 이 법안은 사학재단에 상식을 뛰어넘는 특혜를 주는 반면 대학의 학생과 교수 등 구성원들에 대한 대책은 미약하기 짝이 없는 내용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족벌경영에서 비롯된 잦은 부정과 비리로 대학을 어렵게 하던 부실사학들은 언제든지 대학을 마치 자신의 사유물처럼 처분할 수 있게 된다. 출산율 저하로 학령인구가 감소함에 따라 대학에 일정한 조정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런데 이 구조조정의 위기는 한국 대학의 구조적인 병폐, 즉 지나친 서열화에 인한 입시과열을 완화하고 고액등록금과 사학비리를 초래하는 사학중심의 대학편제를 선진국처럼 공교육 체제로 개편할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 정부는 이같은 개혁의 길을 마다하고 대학을 기업체처럼 구조조정하려고 든다. 마치 도산하는 업체의 경영진만 살리고 직원들은 쫓아내듯이, 교육현장의 교수와 학생은 거의 방치하면서 기득권층과 유착관계에 있는 사학재단에는 ‘특례’를 도입하여 현행법에도 어긋나는 특혜를 부여하려 한다. 이 법안이 통과되고 시행되면 대학교육의 현장은 혼란에 빠지고, 사학재단들은 마치 세월호의 선장처럼 여차하면 재산을 처분하고 빠져나가려고 할 것이다. 대학이 문을 닫으면 학생을 대학에 보낸 학부모들에게 결국 피해가 돌아가게 될 것은 당연하다. 한국 대학의 85퍼센트를 차지하는 사립대학들에서는 지금도 일방적인 학과통폐합 등으로 학생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고 앞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부모에게 이 사태는 아직 남의 일일 뿐이다. 과연 학부모들이 욕망의 쳇바퀴에서 벗어나서 교육부의 이 마구잡이 구조조정 계획에 맞서는 날이 올 것인가? 어쩌면 자식들이 다니는 대학들이 표류하다 침몰하는 참극이 도래해야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인의 말처럼 누구나의 마음속에 간직된 그 ‘단단하고 아름다운 복사씨와 살구씨’의 존재를 믿는 사람으로서는, 그 씨앗들이 어느 날 마치 혁명처럼 터져 나오면서 “한번은 이렇게/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오리라는 것도 믿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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