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5일 경상북도는 울릉도에서 조난어민위령비와 한국산악회 영토 표석, 독도의용수비대 비석 재건 제막식을 했다. 참석자들은 태극기 모양의 두루마기를 입고 행사를 치렀다. 비석 복원 숨은 노력자 한송본 씨가 추진 … 문화재청 전문위원 승인받아야 가능 지난봄부터 여름 사이 대한민국은 독도 영유권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그리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까맣게 잊어버렸다. 냄비 근성…. 그러는 사이 우리 국토의 막내 독도는 어떤 일을 겪었을까.
독도 문제에 관한 한 ‘주간동아’와 ‘동아일보’는 앞서 나갔다. 독도 영유권 문제가 심각해지던 3월, 주간동아는 476호(3월15일자)를 통해 1953년 10월15일 한국산악회 회원들이 독도에 들어가 일본인이 박아놓은 일본 영토 표목(標木)을 뽑아내고 한국 영토 표석(標石)을 설치하는 사진을 52년 만에 찾아내 공개했다. 이 사진은 한국산악회와 함께 독도에 들어갔던 김한용 씨가 찍어 미공개로 보관해오던 것으로, 한국산악회에서도 이 사진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위령비 산악회 표석 다시 세워 이어 동아일보도 3월20일자에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인 이화장에서 보관해오던 1950년 6월8일의 독도 조난어민위령비 제막식 사진을 공개했다. 이 위령비는 59년 사라호 태풍 때 유실됐다고 하는데, 당시 사진이 발견되지 않다 보니 제막 시기가 51년이고, 독도에 상륙한 일본인들이 부쉈다는 등 많은 오보가 양산돼왔다(이 위령비는 김한용 씨 사진에도 찍혀 있어 사라호 태풍 때 유실된 것으로 최종 확인되었다).
포대경 앞에 선 홍순칠 씨 동상 원형을 제작한 홍익대 미대의 최일호 작가.(왼쪽) 한송본 씨(오른쪽)가 주물공장에서 제작된 홍순칠 씨 동상 상반신 부분을 살펴보고 있다.(오른쪽)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구호 중의 하나가 역사 바로 세우기였다. 이에 주간동아는 독도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서라도 이 비석들의 복원을 주장했다(483호). 그래서일까.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 평화를 위한 바른 역사 정립 기획단’을 만들어 독도 문제에 대응했는데, 그 첫 사업으로 독도 비석 복원 작업에 들어갔다.
독도는 천연기념물 제336호인지라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들의 승인 없이는 시설물을 세울 수 없다. 전문위원들은 천연기념물 보호를 최우선시하므로 여간해서는 시설물 설치에 동의하지 않는데, 그때만은 예외적으로 이를 승인했다. 그러자 경북도청 문화재과가 재빠르게 준비에 나섰다.
이의근 경북도지사의 시책 사업비로 잡혀 있는 예비비 중에서 3000만원을 할애해 위령비와 산악회 표석 제작에 착수한 것. 또 독도 유일의 해안인 자갈마당에 서 있는 ‘대한민국경상북도울릉군독도지표(之標)’ 비석도 바로 세우는 작업에 착수했다.
바로 세운 의용수비대 비석, 복원한 한국산악회 표석과 위령비(왼쪽부터). 이 비석은 1954년 독도의용수비대가 세운 것인데, 태풍에 쓰러져 바다로 쓸려갔던 것을 찾아내 시멘트로 임시 기단을 만들어 세워놓은 것이었다. 엉성하게 만들다 보니‘지표’ 글자 부분은 시멘트 기단에 파묻힌 채로 세워져 있었다. 경북도청은 새 기단을 만들어 이 비석도 바로 세운 것. 그리고 8월15일 광복 60주년 사업으로 비석 제막식을 가졌다.
노무현 정부와 경북도로서는 뜻 깊은 일을 한 것인데, 이 일이 성사될 수 있었던 데는 한송본(63) 씨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한 씨는 바다에 유실돼 있던 지표(之標) 비석을 찾아냈고, 주간동아를 통해 비석 바로 세우기 사업을 하도록 정부에 압력을 가한 주인공이다.
8월15일 비석 제막식에서 한국산악회 최선웅 부회장(가운데)이 태극기에 서명을 하고 있다. “독도 찾는 국민들에게 애국심 고취” 그는 정부가 비석 복원 작업을 하는 동안 다른 일을 벌였다. 1954년 의용수비대를 구성해 독도 실효지배를 굳힌 의용수비대장 고 홍순칠 씨의 동상 제작에 나선 것. 그는 홍익대 미대 이두식 학장과 조소과 이수홍 교수를 통해 이 학교 대학원생인 최일호 작가를 만났다. 최 작가는 기꺼이 동상 원형을 만들어주었고, 한 씨는 이를 주물공장에 보내 동상을 제작케 했다.
한 씨의 바람은 이 동상을 독도에 세우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문화재청 전문위원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한 씨는 “독도 선착장은 인공구조물이므로 천연기념물이 아니다. 그곳에 홍 씨의 동상을 세운다면 독도를 찾는 국민들의 애국심이 고취되지 않겠는가.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때마다 우리는 이 동상을 전국으로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사 참가자들이 서명한 대형 태극기를 띄우고 있다. 홍순칠 씨는 6·25전쟁 복무를 막 끝내고 나온 25세 때 의용수비대를 만들어 독도를 지켜냈다. 과연 우리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이러한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문화재청이 이 시대 ‘ 마지막 의병’인 홍순칠 씨 동상 건립을 승인해줄지 주목된다. 기사제공 = 주간동아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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