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의 기도 -
☆ 2014년 가해 3월11일 (자)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수도회] 하느님 말씀의 위력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
† 제1독서 : 이사 55. 10 - 11
† 복음 : 마태 6, 7 - 15
★ 이사야 예언자가 주님 말씀의 힘을 전한다. 하늘에서 내린 비와 눈이
땅을 적셔 마침내 굶주린 이들을 위한 양식을 내놓듯이, 주님의 말씀은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그분께서 뜻하신 바를 이룬다(제1독서).
★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관한 중요한 가르침을 주신다. 기도는 빈말을
번드레하게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오늘 이사야서가 들려주는 제1독서 말씀의 아름다움은 읽고 또 읽어도
가시지 않습니다. 이 구절을 읽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하늘에서 내린
비와 눈이 부드럽게 땅을 적셔 초목이 자라고 열매 맺어, 그것이 양식이
되어 사람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지는 모습이 마치 격조 높은 흑백
무성 영화를 보듯이 떠오릅니다. 이러한 아름다움과 행복이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이라고 예언자는 알려 줍니다. 그 말씀은
헛된 소리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인간의 말'로써 수많은 일을 수행합니다. 그러나
그 말이 주님의 말씀을 닮지 않는다면 아름다움과 선을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과 말의 관계를 심오하게 성찰한 독일의
철학자 막스 피카르트는 이 시대 사람들의 번드레한 말의 헛헛함을 그의
책 『인간과 말』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경우, 언어는 더 이상 빛이 아니다. 언어는 단순한 조명에 불과하다. 언어는
빛 아래를 파고들어 가지만, 어디로 향해야 할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빛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소리만이 있으며, 말들은 서로 충돌하기만 한다.
소리가 빛을 대신한다. 파괴된 말들, 그 말들이 만드는 소리는 그을음처럼
빛 없이 불안하게 펄럭거린다. …… 하지만 말은 빛이 되고 싶다. 말은
빛이기 때문이다. 빛으로 존재한다는 기쁨을 원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진실한 기도는
빛이 되려는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닮으려는 인간의 말입니다. 진심
어린 기도가 사람들이 드러내고자 하는 아름다움과 선의 참된 샘임을
거듭 되새겨 봅니다.
- 매일 미사 -
◈ [청주]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4년 가해 사순 제1주간 화요일(마태6,7-15)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마태 6,7-15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8월14일부터 18일까지 한국을 방문하십니다.
교황께서는 '일어나 비추어라'를 주제로 한 이번 방한에서 15일에는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해 아시아 젊은이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고 미사를 봉헌할 예정입니다. 16일에는 조선왕조 때 박해로 숨진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식을 거행할 예정이며 충북
음성의 꽃동네도 방문해 꽃동네 가족들과 장애 어린이들도 만날 계획입니다.
또한 17일에는 한반도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염원하는 미사 집전을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께서는 “존경하는 교황 프란치스코
성하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교황 성하의 방문은 우리나라의 큰
기쁨이며 축복이 될 것입니다. 이번 교황 성하의 방문이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아시아 전체에 주님의 평화를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이들에게도 희망을
주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는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님께서도 "교황성하의 방한이 한국
사회와 교회에 큰 희망과 기쁨이 되고, 세계 평화를 위해 큰 발걸음을
내딛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교황님의 한국방문으로 교회가 더욱 쇄신되고 모든 이에게 축복이 되며
한반도의 평화를 회복하는데 기여하고 힘들고 고통을 받는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방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기도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누군가가
기도해 준다고 하면 마음의 위로를 받습니다. 본인은 기도에 소홀히
하면서도 남에게는 기도해준다고 말하고 또 기도해 달라고 청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기왕 기도할 바에야 효과 있는 기도, 올바른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그저 입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되는 기도, 열매를
맺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빈말을 되풀이 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마태6,7-8).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청하기도 전에 알고 계신다니 청하는 바가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를 먼저 살펴야 하겠습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기도의 본질적 요소는 많이 생각하는 데에 있지 않고, 많이
사랑하는 데 있다. 기도란 사랑의 행위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고
하였습니다. 더 많이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마음을
잘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고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사랑함으로써
사랑자체이신 하느님과 잘 통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묵주기도, 9일기도, 15기도, 33일 봉헌기도, 자비의 기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 등등. 성인 성녀들이 즐겨 봉헌하였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에 따르는 삶의
쇄신과 실천 없이 목표한 바를 채우기에 급급해 하면서 꼭 들어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수록 그만큼 더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루이 에블린은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고 열심을 다해 공덕을 쌓고, 많은 것을 청하지만
실제로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구원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기를 빌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먼저, 더 많이, 더 깊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한상봉) .그러므로
구하기도 전에 우리의 뱃속까지 환히 꿰뚫어 보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오늘이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기도가 들어지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이사야서 말씀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이사49,15). 들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14,14) 그러나 “결코 의심하는 일 없이 믿음을 가지고 청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주님에게서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야고 1,6-7). 나보다 나를 더 환희 아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채워주시는 하느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때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주시지 않고 더 좋은 것을 당신께서
주시고자 하는 때 당신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주심을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제대로 의미 있는 기도를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2014년 가해 3월11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마태 6,7-15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자전거로 산을 오르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이 장면을
보고, 저와 제 옆에 있는 신부가 동시에 한 마디 했지요. 그런데 그 내용은
달랐습니다. 그 신부는 '힘들겠다.'고 말했고, 저는 '재밌겠다.'라고
말했거든요. 왜 그랬을까요? 저는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하니 힘들더라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 신부는 자전거 타는 것을 싫어하니
자전거로 산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힘들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재미를 느낀다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도 신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재미만 추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말초적 재미는
금방 싫증을 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재미를 느낌과 동시에 의미를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재미가 있어도 의미가 없는 재미란 영원히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솔직히 저의 경우, 자전거를 타서 건강을 얻게 되었습니다. 매년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던 제가 이제는 고생한 일이 거의 없습니다. 바로
자전거는 내 건강을 찾아준 소중한 의미인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에
재미도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자전거를 타는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든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오래할 수 있으며, 그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득 주님께 드리는 우리의
기도 역시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단순히 말초적인 재미 정도의 수준에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필요한 것을 얻고자 하는 기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달라는 기도만이
우리 기도의 전부는 아니었을까요?
이러한 상태에서는 오래 기도할 수 없습니다. 즉, 오래 주님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필요하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면 주님의 곁을
떠나버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도 자체에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언제나 주님께 모든 주도권을 맡기게 됩니다. 자신이 원하고 필요한 것이
이루어지는 시간은 주님께서 결정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그 시간을 기쁘게
기다립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직접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빈말을 되풀이하고,
말을 많이 하는 무의미한 기도가 아닌, 주님께서 원하시는 의미 있는 기도를
하라는 것이지요.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기도, 동시에 용서를
통한 우리 구원에 대한 말씀이 핵심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기도는 어떠한
기도였을까요?
단순히 오래 성당에 머물러 있으면서 많은 말을 주님께 한다고 해서 기도를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하느님의 영광과 이 세상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지 않다면 의미 있는 기도가 될 수 없음을 기억하면서,
제대로 의미 있는 기도를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큰 기쁨 안에서
오랫동안 주님 안에서 머무르며 주님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행복을 소유할지라도 그것을 선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은
기쁨을 누릴 수 없다. 불행에 시달리는 사람일지라도 그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으면 그는 기쁨을 느낀다(다비드 슈타인들).
어떤 삶?
많은 이들이 인생 한 방이라는 말을 자주 쓰면서 로또복권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1등에 당첨되면 과연 행복할까요? 순간적인 만족을 얻을
수는 있지만, 참 행복과는 거리가 멉니다. 얼마 전 뉴스 기사에서 스마트폰
절도를 하다 잡힌 30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돈이 없어서
절도를 했다고 하는데, 사실 2006년에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되어서 14억
정도를 받은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는 흥청망청 돈을 쓰면서 그 많은 돈을
단 4년 만에 완전히 탕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돈이 떨어졌으니 절도
행각을 벌인 것이지요. 그러면서 잊지 않고 구입하는 것이 바로
로또복권이라고 하네요.
그도 말하지만 로또복권에 당첨되지 않았으면 평범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미 없는 유혹을 통해 결국 자신의 삶 전체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게
된 것이지요.
말초적 수준의 의미보다는 참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는 삶, 참으로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으니까요.
- 인천교구 성소국장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서울] 사순 제1주간 화요일
2014년 가해 3월11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마태 6,7-15
어제 저녁에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교황님께서 한국을 방문하신다는
소식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시는 교황님, 겸손함을
삶으로 보여주시는 교황님, 복음의 기쁨을 진한 향기로 전해 주시는
교황님이십니다. 교황님의 한국방문은 한국교회와 제게도 큰 기쁨이고
영광입니다. 아직 신앙이 없는 분들 중에도 교황님께서 오시면 미사에
함께 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다고 합니다. 어떤 분들은 자리를 얻을 수
없는지 물었다고 합니다. 저는 교황님의 방문을 세 번째 볼 수 있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1984년도에는 신학과 3학년이었습니다. 1989년도에는 복학해서 신학과
5학년이었습니다. 올해는 사제생활 23년 만에 교황님의 방한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1984년에는 신학교에서 교황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1989년에는 통역 봉사자로서 교황님께서 주재하시는 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는 교황 방한 준비위원회의 ‘영성/신심’분과 위원장으로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교황님께서 방한하시기 전에 기도운동을 하고,
교황 방문의 의미와 순교자 영성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에 대한
자료를 발간하려합니다. 교황방문의 의미에 대해서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순교자들의 영성이 가정, 교회, 세상에 스며들 수 있도록 기도운동을
전개하려 합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제가 주어진 소임을 충실하게 할
수 있도록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돌아보면 지난 30년 동안 제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절망과
고독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좌절과 아픔의 시간도 있었습니다. 시련과
고통의 시간도 있었습니다. 실패와 실수 때문에 부끄러웠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희망과 기쁨의 시간도 있었습니다. 보람과 즐거움의 시간도
있었습니다. 사제로서 자부심을 느낀 적도 있었습니다. 저로 인해서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었다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모든 것들이 주님께서
제게 주신 큰 은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30년의 시간을
돌아보면 모든 것들이 주님께서 이끌어 주셨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제가 시련 중에 있을 때 주님께서는 더욱 제 곁에 계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행기를 타면 내가 사는 땅을 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산과 강,
들과 마을을 볼 수 있습니다. 땅위에서는 좀처럼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게
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세상은 덧없고, 허무할 수 있습니다. 강한
사람들이 이기고, 약한 사람들은 도태되는 냉정한 세상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존과 번식을 하려는 유전자의 하드웨어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들이 새롭게 보이게 됩니다. 우리는
물질의 옷을 입었지만 우주를 관통하는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영적인 존재인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자세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비는 땅을 적시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한 후에 다시 하늘로 올라갑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는 아무런 조건을
요구하지 않고, 대지에 생명을 불어 넣어줍니다. 무상으로 자신의 것을
내어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는 것,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주님의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바로 더불어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의인들이 울부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시고, 영혼이
짓밟힌 이를 구원해 주신다."
- 서울 대 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도회] 하느님 말씀의 위력 -주님의 기도-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3월11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이사55,10-11 마태6,7-15
2014년 가해 3월11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마태 6,7-15.
하느님 말씀의 위력 -주님의 기도-.
하느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은 살아계신 주님의 현존입니다. 말씀은 생명이자 빛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는 말씀을 사랑합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나
자아초월도 이뤄지고 평화와 기쁨, 위로와 치유도 받습니다.
끊임없는 말씀의 은총이 우리를 정화하고 성화합니다.
바로 이사야가 말씀의 은총을 실감나게 묘사합니다.
말씀이 짧고 은혜로와 1독서 전부를 인용합니다..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한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한다.“
(이사55,10-11)..
바로 이게 하느님 말씀의 은혜요 위력입니다. 하느님은 말씀을 통해
끊임없이 일하시며 우리에게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주십니다.
말씀 중의 말씀이 오늘 복음의 주님의 기도입니다.
주님은 기도의 노하우를 통째로 우리에게 전수해 주십니다.
주님의 기도이자 동시에 우리의 기도입니다.
이 주님의 기도를 끊임없이 바칠 때 기도는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주님은 기도할 때에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라 하십니다.
군더더기 말을 붙이지 말라하십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가 우리의 모든 필요를 담고 있습니다.
기도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기도를 합니다.
기도하는 만큼 살고 사는 만큼 기도합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주님을 알아 닮아가게 되고 참 나의 실현에 이르게 됩니다.
주님의 기도는 그대로 주님의 삶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삶이 복잡하고 혼란하며 무질서한 것은 주님의 기도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본질적 필요만 담고 있는 주님의 기도를 정성껏 끊임없이 바칠 때, 우리는
무욕의 사람으로, 단순하고 자유로운 사람으로 변모되어 갑니다.
성서를, 복음을 압축, 요약한 주님의 기도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누구인지 아무리 물어도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믿음과
사랑으로 주님의 기도를 끊임없이 바칠 때 하느님이,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아 알게 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님의 기도 서두도 은혜롭습니다.
어느 수도승은 이 대목에서 목이 매어 기도를 더하지 못했다 합니다.
어디에서나 주님의 기도를 바치라고 눈 들면 '하늘'입니다. 혼자 바치는
기도이기 보다는 공동체가 전례 중 함께 바치는 기도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주님의 기도의 절정은 미사전례 중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한
자녀들로서 공동체의 일치는 물론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주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바친 후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일용할
양식을 나눔으로 주님과는 물론 형제들과의 일치도 완전히 이루어 집니다..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을 우선함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해 주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삶이 불안하고 두려운 것은 내
중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일 때 허무와 무의미,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안정과 평화의 삶입니다. 탐욕을 무력화시켜 참으로
우리를 무욕의 단순한 삶으로 변화시켜 주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내일도 아닌 바로 '오늘'을 위해 청하는 '일용할 양식', '용서하고 용서받기',
'유혹에 빠지지 않고 악에서 구해달라'는 청원이 우리 삶을 참으로 단순하고
자유롭게 해 줍니다. 모두가 일상에서 필수적인 요소들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바치는 말씀 중의 말씀인 주님의 기도 은총이 우리 모두 점차
주님을 닮게 하고 참 나가 되게 합니다. 그러니 이보다 더 좋은 기도는
없습니다. 이 하나의 기도로 충분합니다.
하느님 주신 참 좋은 선물이 주님의 기도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주님의 기도대로 살게
해 주십니다.
"주님, 저희가 미사은총으로 현세의 욕망을 억제하며 천상 것을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 -
◈ [수도회]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인끌레멘스신부님 복음단상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주님의 기도를 알려주신 의도
2014년 가해 3월11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복음 : 마태오 6,7-15
< 주님의 기도를 알려주신 의도 >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법한 우루과이 어떤 작은 성당에 있는 주님의 기도에
관한 어떤 문구를 되새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이라고 하지 마라..... 세상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라고 하지 마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라고 하지 마라. 아들 딸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하지 마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고 하지 마라. 물질 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하지 마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하지 마라.
죽을 때까지 먹을 양식을 쌓아두려 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고
하지 마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라고 하지 마라.
죄 지을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하지 마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이라고 하지 마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이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주님의 기도가 매우 ‘교훈적’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의 기도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가르쳐주신 의도가 바로 그 기도에 나와 있는 정신을 먼저 실천하라는
숨은 뜻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것 달라, 저것 달라 청하기 이전에
그것을 청하는 나의 자세를 먼저 살펴보라는 뜻 같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란 영화는 돈을
추구하며 살았던 한 인간의 일생이 그려져 있습니다. 디카프리오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가 아주 밑바닥에서 시작하여 약간의 범법을 저지르며 미국
주식 시장에서 늑대라 부릴 정도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의 세일즈 능력은
탁월합니다.
그리고 그가 자신과 함께 할 능력 있는 사람들을 구할 때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자신이 가진 볼펜을 한 자루 던져주며 그 볼펜을 자신에게
팔아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볼펜은 품질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볼펜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만을 알려주려 합니다. 매우 따분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볼펜을 집더니 이렇게 디카프리오에게 말을 합니다.
“당신 이름을 적어서 저에게 주시겠습니까?”
디카프리오는 대답합니다.
“난 지금 볼펜이 없는데요?”
“그럼 이게 필요하시겠군요.” 하면서 볼펜을 던져줍니다.
차이가 무엇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볼펜을 팔아야 하면서도 자신만
생각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볼펜의 성능만 강조하고 자신이 팔아야
하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사람은 상대에게 집중합니다.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먼저 생각합니다. 볼펜이 없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이 필요한 것을 스스로 인식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기도를 하면서 내 위주로만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도를 하기 이전에 하느님께서 필요로 하는 것을
내가 갖추고 있는지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기도 안에는 우리가 무언가를
청하기 이전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가 들어있을
것입니다. 그 조건을 채워주지 않으면 하느님은 우리 청을 들어주실 마음이
생기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하느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땅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땅은 인간이 죄를 지어 아담과 함께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마음이 먼저 하느님께서 거하실 수 있는 성전이
되도록 깨끗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죄 있는 채 기도하면 들어주실 마음이
생기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정말
친근하게 느끼고 있어야 합니다.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은 가족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아를 죽여야 합니다. 내가 영광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한다면 그분의 귀는 내 기도를 흘려버리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 하느님은 이 세상에 당신 나라를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기도하려 하는 것이 그분의 뜻과 부합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누군가의 행복을 상하게 하는 기도라면 어떻게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 하느님께서 주시려는 양식이
있습니다. 빵이 아니라 바로 말씀이십니다. 말씀은 곧 성체와 성경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주시려는 양식을 거부하는
삶으로 다른 것을 청하고 있다면 어떻게 들어주시겠습니까?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 다른
이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서 기도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 죄를 짓지 않으려
하고 또 지었더라도 항상 회개하고 돌아오려는 마음을 지니지 않았다면
다른 기도를 아무리 해 봐야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기
위한 조건일 것입니다. 먼저 그 뜻을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분은 우리 청을
들어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의 방법은 없습니다. 산을 오르는데 수많은
길이 있고, 친구를 만나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다양한 것처럼 기도의 방법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합당한 사람이 되어있느냐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항상 하느님 앞에 나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분의 뜻을 잘
새기며 내 자신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 수원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기획 연구 담당 전삼용 요셉 신부 -
◈ [기타]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주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원하시는 그분의 모든 뜻이 담겨져 있는
최고의 기도입니다..
2014년 가해 3월11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복음묵상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마태오6,7)
----
이 글을 이미 읽으신 분들이 많이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이 주님의 기도를 다루고 있고, 다시 한 번 읽어보셔도 될 중요한
내용이기에 오늘 복음묵상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
[주님의 기도에 대한 묵상]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유일한 기도 그것을 우리는 주님의 기도라고
한다. 그분께서 만드신 기도이니 모자람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마도 가톨릭이나 개신교 상관없이 가장 많이 신자들의 입술을 통해
드려지는 기도가 바로 주님의 기도가 아닐까? 하지만 얼마나 그 기도의
뜻을 이해하고 의식하면서 바치고 있을까?
이 기회에 주님의 기도에 대한 간단한 묵상을 나누어보고 싶다.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당신께서는 하느님이시며 우리는 당신을 아버지라 부른다. 그리고 그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인 흠숭과 찬미를 드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 뜻이 먼저임을 고백한다.
게쎄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던 예수님께서 “아버지,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루카 22,42) 라고 하신
그 마음을 우리는 가슴에 새겨야 한다.
무엇보다도 기도란 그분에 대한 찬미와 흠숭(欽崇) 그리고 전적인 의탁의
자세로 시작되어야 함을 예수님께서는 일깨워주시고 계시다.
2.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당신께서 주신 생명 이끌어 주시고 책임져 주십사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하지만 이러한 간절한 바람 이전에 우리에게는 전제되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것은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우리를 내시었다는 믿음이며, 우리의 협조가
있다면 절대 우리를 내치시지 않으신다는 믿음이다.
옆에 성서가 놓여있다면 루카 복음 12장22절부터 32절까지 천천히
읽어보도록 하자.
솔로몬의 영화도 피었다 지는 들꽃보다도 하늘을 나는 새보다도 화려하지
못했다 하신다. 하물며 그보다 귀하디 귀한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이시다.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고 포기하는 것은 우리 쪽일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으신다. 그렇다. 우리가 구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도 가장 필요한 양식 즉, 그분의 사랑에 대한 확신일
것이다.
아울러 생각해야만 할 일이 있다. 그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눈길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계는 있다. 하지만 최소한 배고픔으로 힘들어하고
있고 심지어 죽어가는 이들이 이 세상에 공존한다는 의식이 필요할 것이고,
최선을 다해 그들과 함께 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어느 이는 말한다. “나는 누구를 도울 여력이 없다고.” 하지만 분명히
말하고 싶다. “이 세상에는 누구를 도울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3.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가장 엄하고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있는 구절이다. 만약 우리가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려 한다면 거기에는 엄격하고 분명한 조건이 따름을 말씀하고
계시다. 결국 구원이란 다른 말로 죄로부터의 해방이 아니겠는가? 죄로부터
해방이 된다는 것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우선 죄를 용서받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용서받는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 내가 먼저 용서해야
할 이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던지지 않는다면 나
역시 그분으로부터 용서를 구할 수 없다는 말씀이시다. 미워하는 것처럼
힘든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미움을 버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음을 우리는 체험으로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만큼 용서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용서하시란다. 무조건 용서하시란다. 그래야만 내가
용서를 받을 수 있다 하신다.
여기서 한 가지 늘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용서하는
마음이나 용서할 수 있는 힘은 그분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말이다.
용서하라신다. 무조건 용서하라신다.
4.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빛이 강하면 그 그늘도 짙어진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선을 향한 마음,
사랑을 하려는 마음, 즉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마음으로 애를 쓰려할
때 거기에는 늘 악의 세력이 더 크고 강하게 작용하기 마련이다. 사도
바오로께서 하신 말씀을 상기해보자. “여기에서 나는 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곧 내가 선을 행하려 할 때에는 언제나 바로 곁에 악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로마서 7,21)
어차피 우리의 실존은 그분의 품에 안기기 전까지는 온갖 종류의 유혹과
싸워야 하는 삶이다. 예수님께서도 누구보다도 이러한 인간의 실존에
대해 체험하셨고 이해를 하신 분이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간청하신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신다. 악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하라
하신다. 우리의 나약한 의지는 늘 유혹 앞에 흔들리고 넘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당연한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다. 때로는 악에
지는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성숙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어서야 한다.
“고지가 저긴데 예서 멈출 수 없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다시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힘은 하느님께 청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기도에 대한 의미를 의식하면서 살았으면 한다.
한 번을 소리 내어 외워도 그 의미를 곱씹으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드렸으면 한다. 그분이 함께 하심을 믿는다.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 [서울] 내 뜻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
2014년 가해 3월11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마태 6,7-15
내 뜻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
일등 하게, 예뻐지게, 대박 나게, 사업성공 하게, 건강회복 되게 해주소서.
이런 소원을 하늘의 힘님께 부탁하며 이뤄지기를 비는 게 기도인줄 알지요.
그러니 세상살이는 경쟁 욕심 야심 싸움 죽임 등으로 들볶이고 있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 세상에 이뤄지라는 나의 뜻이어야 합니다.
인간의 최고 나라보다 아버지의 나라가 이 세상에 이룩되길 바라는 겁니다.
인간 뜻이 최고라는 주장이 큰 실수임을 깨달을 때 그는 종교인입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마태오 6,10)”
- 서울 대 교구 이기정 사도 요한 신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