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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가해 6월21일 토요일 [백]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청주] 네 근심을 주님께 맡겨라.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빈영억 라파엘 신부
† 제1독서 : 2역대 24, 17 - 25
† 복음 : 마태 6, 24 - 34
알로이시오 곤자가 성인은 1568년 이탈리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군인이 될 처지였던 그는 귀족 사회의 폭력과 방종에
실망하고 선교사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다. 알로이시오 곤자가는 17세 때
재산 상속의 모든 권리를 포기한 채 로마에서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그러나
그는 로마 전역에 번진 흑사병의 환자들을 정성껏 돌보다가 감염되어
신학생 때인 23세의 젊은 나이에 선종하였다. 1726년 베네딕토 13세 교황은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사를 성인의 반열에 올리고 청소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 요아스 임금과 지도자들이 여호야다 사제가 죽은 뒤 그릇된 길에 빠져
우상을 섬긴다. 여호야다의 아들 즈카르야가 그들에게 주님의 경고를
전했지만 임금은 사람들을 시켜 그를 돌로 쳐 죽인다. 요아스는 전쟁에 패한
뒤 신하들의 모반으로 살해된다(제1독서).
★ 예수님께서는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고 마실지 걱정하지 말라고
깨우쳐 주신다. 하느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필요함을 아시므로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으면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오늘은 알로이시오 곤자가 성인의 기념일입니다. 16세기 이탈리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강한 반대를 이겨 내고 예수회에 입회하여
수도자의 길을 걷습니다. 알로이시오는 신학 공부에 매진하면서 특히
병자들을 돌보는 일에 자신을 바쳤습니다. 로마 전역에 번진 흑사병의
환자들을 보살피다가 감염되어 주님의 품에 안겼을 때 그는 아직 꽃다운
스물세 살의 청년이었습니다.
알로이시오 성인에게서 사람들이 떠올리는 성덕은, 환자를 돌보는 따뜻한
동정심, 그리고 명예와 부에 집착하는 집안 환경 속에서도 정결함과
가난함을 선택한 깨끗한 마음입니다. 깨끗한 마음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참으로 가치 있고 아름답게 한다는 사실을 이 ‘젊은 성인’에게서 배우고
싶습니다. 오래전에 우아함과 품격 높은 연기로 유명했던 유럽의 한
여배우가 배우로서, 여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한
질문에 이러한 명답을 남긴 것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아름다움, 그리고
현명함. 그러나 마지막은 환하고 깨끗한 마음!”
오늘 복음은 비교적 자주 듣는 말씀이고, 들을 때마다 잔잔한 위로와 평화를
느끼는 말씀입니다.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을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먼저’ 찾으라고 하십니다. 이는 다름
아니라 ‘깨끗한 마음’을 가지라는 당부입니다. 세상이 주는 그 어떤 것에
앞서 마음이 깨끗해야 삶이 참으로 행복하고 아름다워진다는 진리를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 매일 미사 -
◈ [청주] 네 근심을 주님께 맡겨라|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4년 가해 6월21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마태6,24-34)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마태 6, 24 - 34
네 근심을 주님께 맡겨라.
일상을 살아가면서 근심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겉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남모르는 걱정을 안고
살아갑니다. 사실 모두가 근심걱정을 하지만 결정적으로 무엇을
걱정하느냐가 다를 뿐입니다. 따라서 걱정해 봤자 소용없는 것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우주 만물을 다스리도록 허락하신 능력의 주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데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믿음이 없으니 고민하고 걱정합니다. 마음 안에
하느님을 모시지 못하고 있으니 근심합니다.
어니 젤린스키의 ‘모르고 사는 즐거움’에서는 근심걱정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걱정의 40%는 절대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관한 것이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다.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관한 것이다. 겨우 걱정의 4%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걱정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시편저자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여라. 그분께서 네 마음이 청하는 바를
주시리라.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시편37,4-5). “네 근심을 주님께 맡겨라. 그분께서 너를 붙들어
주시리라. 의인이 흔들림을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시리라”(시편55,22).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마음이 산란해 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14,1). 하셨습니다. 결국 믿음을 가진
사람은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어떤이는 주님께 의탁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여 근심을 끌어안고
삽니다. 그러나 실상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입니다.
루카복음에 보면 시중드는 일로 분주한 마르타에게 주님께서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것이다”(루카10,41-42). 하시며 주님의 말씀을 듣는 마리아의 위치를
확인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안에 머물면 쓸데없는 일로 바쁘지
않을 것이요, 또 괜한 걱정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음식과 몸을 보호하기 위한 의복의 걱정에 앞서서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 안에 있고 주님께서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공중의 새나 들판의 꽃들조차도 하느님의 안배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존재로 만물의 영장입니다. 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우주 만물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하느님의 돌보심을 믿고 신뢰하며
모든 근심걱정을 송두리째 맡겨야 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 이러한 물음은
인간적인 걱정입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노력으로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고
거기에 행복이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도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헛된 일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을 차지하면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 의탁하고 섭리에 맡기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필리4,6).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 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1베드5,7). 사랑합니다.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수도회] 자기 품위 유지를 위한 세 필수 조건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성 요셉 수도원)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6월21일 토요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1568-1591)
수도자 기념일 역대기 하 24,17-25 마태 6,24-34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마태 6, 24 - 34
자기 품위 유지를 위한 세 필수 조건
요즘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앞두고 참 말이 많습니다.
떠나야 할 때 깨끗이 잘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힘든지 깨닫습니다.
진작 자기 과오를 인정하고 깨끗이 떠났다면 그렇게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며 추해 보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새삼 때를 놓치지 않고 떠날 때 잘
떠나는 분별의 지혜와 결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오늘은 '자기 품위 유지를 위한 세 필수 조건'에 대한 묵상 나눔입니다.
첫째, 부끄러워하시오.
하느님 앞에서, 이웃 앞에서, 자신 앞에서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염치를
알아야 사람입니다. 부끄러움을 알아야 뻔뻔하지 않습니다.
부끄러움을 알아야 말과 행동을 삼가고 조심합니다.
또 부끄러움을 알 때 떠날 때 잘 떠납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오늘 역대기 하권에 나오는 요아스 임금은 전혀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하느님 앞에 자신의 삶을 성찰했다면 그렇게 우상숭배를 하며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를 살해하지 않았을 것이며 비참한 최후도 맞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 절제가 없는 탐식, 탐애, 탐욕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이들이 사람을 더럽혀 추하게 만들고 품위를 손상시킵니다.
오늘 기념하는 곤자가 수도자가 23년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하느님 앞에 참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사셨습니다.
늘 하느님 앞에 자신을 성찰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왜 역사 공부를 해야 하나?“
"부끄러움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읽은 어느 학생의 질문에 대한 역사 교수의 대답입니다.
둘째, 두려워하시오.
하느님을 두려워하시오. 하느님을 두려워 할 때 자기 절제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잃어 삶의 중심을 잃고 방황입니다.
공포의 두려움이 아니라 외경(畏敬)의 두려움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할 때 함부로 처신하지 않습니다.
재물이 아닌 하느님만 한 주인으로 섬깁니다.
하여 우선적으로 하느님을 찾는 일에, 하느님의 일에 전념합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오늘 복음의 핵심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여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을 때 저절로 삶의 중심과 질서는 잡혀 안정과 평화도
이뤄집니다.
셋째, 걱정하지 마시오.
대부분의 걱정은 환상입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걱정입니다.
걱정하기로 하면 끝이 없습니다. 걱정한다고 바뀌는 것도 없습니다.
한 마디로 약한 믿음에서 기인하는 걱정들입니다. 약한 믿음 때문에 과거에
대한 상처와 아픔, 현재와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믿음이 상처를 치유하고 걱정을 몰아냅니다.
정말 청해야 할 것은 믿음의 은총입니다.
오늘 복음도 온통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 보아라.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 보아라.“
'믿음의 눈'으로 제대로 보지 못해 걱정의 환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니 내일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입니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합니다. 결국 하루하루 살라는 말씀입니다.
모두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아 갈 때 이뤄지는 자기 품위 유지를 위한 세
필수조건입니다.
1.부끄러워하시오. 2.두려워하시오. 3.걱정하지 마시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당신을 경애(敬愛)하는 우리 모두의 믿음을
굳건히 해 주시어, 마음 안 온갖 걱정의 어둠을 깨끗이 몰아 내 주십니다.
아멘.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 신부 -
◈ [기타] 그분의 사랑을 믿습니다.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복음의 요구는 최고를 위한 삶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최고란 그분의 약속입니다.'
2014년 가해 6월21일 토요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복음묵상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마태오6,31)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마태오6,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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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을
상징합니다. 즉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걱정하지 말라
하십니다. 분명 현실적이지 못한 말씀으로 들립니다.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무엇인가를 걱정하며 살게 되어있습니다.
심지어는 사랑을 하면서 조차 걱정을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
비현실적인 듯한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이 말씀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늘 생각하며, 그것을
기준으로 모든 판단과 선택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먹는 것보다,
마실 것보다, 입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먹고 마시고 입지 않고는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알고 계시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여기서 하느님 나라가 의미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분의 의로움이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삶의 실천입니다.
그분의 뜻을 따른다면 모든 것을 채워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얼마나 많은 걱정거리가 주어질 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앙인답게 그분께서 약속하신 것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비록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에 궁핍을
느낄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믿습니다.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 [서울]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2014년 가해 6월21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마태 6, 24 - 34
벌써 20년이 다 되어갑니다. 1997년 8월과 9월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두 여성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 여인은 다이애나
황태자비였고, 다른 한 여인은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셨습니다. 한 여성은
평범한 시골의 아가씨에서 영국의 황태자비가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죽음은 참
안타까웠습니다. 프랑스에서 교통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황실의 가족이
되는 것도, 많은 부와 명예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야 했고, 지금 그 여인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른 한 여성은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가톨릭의 성인이 되었습니다. 평생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외모는 주름이 많은 할머니가 되셨지만 그분의 숨결과 그분의
따듯한 마음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삶을 따라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자주 찾아가셨고,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였고, 병자들을 위해서
자주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이 병자성사의 기원입니다. 병자성사를 받는
다는 것은 비록 우리의 육신은 죽을지라도 우리의 영혼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용서와 치유를 받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우리는 병자성사를 통하여 아픈 우리의 몸이 치유되기도 합니다. 저도
중환자실에서 병자성사를 받았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저의 병이
치유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병자성사를 통해서 환자들이 치유되는
것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병자성사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세례성사, 견진성사, 신품성사, 혼인성사는 한번만 받을 수 있는
성사입니다. 그러나 성체성사는 사제의 축복으로 매일 이루어질 수 있으며
신자들은 봉성체, 병자성사, 미사참례를 통하여 성체성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고백성사는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에게 잘못을 하면 언제든지
받을 수 있는 성사입니다. 특히 고백성사는 신자들의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신자들이 사제에게 고백성사를 청하면 사제는 고백성사를 주어야 합니다.
병자성사 또한 우리의 몸이 아프면, 성당에 나올 수 없을 정도면 언제든지
청할 수 있는 성사입니다. 고백성사는 화해의 성사이고, 병자성사는 치유의
성사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먹고 입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가족을 이루고,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늘을 나는 새도, 들의 꽃도 다 먹이고 입히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기 때문에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의를 구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입니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합니다.”
- 서울 대 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도회] 기쁨과 희망의 원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인영균끌레멘스신부님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2014년 6월 21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마태 6, 24 - 34
기쁨과 희망의 원천
걱정과 근심은 우리의 본능입니다. 앞날을 내다보며 불안합니다. 근심과
걱정이 없으면 참 좋겠지만 우리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안한 감정은 우리의 욕심 때문이 아닐까요? 더 편하고,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이 가고자 하는 이기심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 마음 속 깊이
감춰있는 것을 솔직히 보면 탐욕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설길
수 없다”고 비수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의 안락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는 것이 우리가 선택해야 할 바입니다.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은 ‘이기적인 나’에서 나와 ‘모든 이의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만 우리 걱정과 근심은 희망과 기쁨으로
변합니다.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인영균 끌레멘스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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