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동 깨스폭발후 의 뒷얘기/
작성자 전도꾼/ 조 무웅 목사 등록일 2011-06-11 조회수 0 추천 0
할렐루야/
온 나라 가 흥청망청 써제끼는 I,M,F 가 오기직전의 1996 년도시절 이었드랬엇다, 이 몸은 예천 의 지하 교회 에서 교인 단 1 명도없이 지하실 틈새 로 기어 들어온 쬐끄만 개구리 너댓마리 를 앉혀 놓구선 " 개구리 목회" 를 할떄 였었다,
대구 에사는 좀 어리 버리 한 "장 모모" 전도사 가 있는데 이 사람 이 하는 일은 뜬금없이 아무교회 나 방문 하여서 쓰잘데 없는 것을 질문이나 해대고 타고 다니는 다마스차 로 불법 택시영업 을 해서는 나한테 심하게 꾸중을 듣는 좀 삐리한 인생이 었다,
같이 노방전도 하자고 하면은 낌새를 알아채고는 줄행낭 을 놓는 한심한 전도사 엿엇다, 그 친구 를 " 신앙" 이 좀 들게 하려고는 대구반야월 에 있는 "팔복 실로암" 기도원 엘 철야기도 를 같이 할려고 같이 동행을 했었드랬엇다,
뒷산 에서 소나무를 부둥켜 안게 하고는 나무뿌리 가 뽑아 지도록 " 기도"좀 해서 주님 만나서 뜨거운 목회자 가 되라고 일르고는 나는 한쪽켠으로 가서는 기도 에 몰입 하였엇다,
한밤을 기도 로 지새우고는 새벽5시 에 " 새벽기도 " 에 참석을 하고는 지금은 대구캐톨릭병원 앞에서 목회를 하는 이 종언 목사님 과 아침식사 를 하고 는 목욕탕 엘가서 몸을 씻고 난다음 에 장 전도사 가 대구 상인동 에 있는 " 믿음 기도원 엘" 한사코 가자는 것이엇다,
원장 이 전라도 사람 인 최 정숙 전도사 인데 음식솜씨 도 끝내 주고 내가 가면은 전도 에 고생 한다고 어김없이" 삼만원" 씩을 주기 떄문 에 대구에 가기만 하면은 반드시 들리는 곳이 엇다,
그시간 이 오전 7 시 였드랬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가기가 싫어지는 것이엇다, 장 전도사 와 헤어져서는 내는 팔공산 자락 을 전도를 하면서는 예천 의 지하교회 로 돌아 왔었다,
한 10시쯤 엘 교회에도착 해서는 텔리비죤을 트니깐은 오전 7시45 분 에 상인동꼐스폭발이 일어나서는 고 옆의 상인중학교 학생들 수십명 과 시민 102 명이 죽는 대형참사 가 일어 난것이었다,
만약에 내가 오전 7시 에 반야월 에서 출발 하여 그 "믿음 기도원" 엘 갔었 드라면은 그 폭발 사고 를 당할뻔 한 시각 이 아닌가?
우리 주님 이 막으셨다는 영적인 감응 이 오는 것이엇다/ 할랠루야
그 사고 떄 월배 제일교회 의 모집사님 의 아들이 희생 되었단다, 그 집사님 은 홀로 된 집사 님인데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을 주님 보담 더 귀하게 여겼드랜다,
예배 중 에도 그 아들 이 핵교 에서 돌아 올시간이면 은 부리나케 뛰어 나가곤 했단다, 그 아들 을 잃고 나서는 꺠 닫고는 신학을 공부 하여서 지금은 전도사 로 주 의 일 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오랜기간을 최일선 에서 노방 전도 로 뛰다보니깐 은 하 나님 꼐서 온갖체험과 간증 거리 를 주시는 것이엇다/ 오직 예수
2011,6,11
대구산돌교회; 조 무웅 목사 노방전도목사 010-5400-3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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