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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12년간 목숨걸고 연구한 지만원 박사 직격 인터뷰(대담 : 뉴스타운 손상윤 회장) ⓒ뉴스타운 |
5.18은 35년만에 밝혀진 세기의 여적(餘敵)사건
5.18, 12년간 연구한 지만원 박사 직격 인터뷰(대담 : 뉴스타운 손상윤 회장)
진실은 살아 있다. 때문에 왜곡된 역사는 분명히 바로 잡힐 것이다. 하지만 그 진실 찾기란 생각보다 쉬운 것은 아니다. 정부나 정치권이 방해하면 더더욱 어렵다. 바로 5.18 광주사태의 진실이 그랬다.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5.18 단체들까지 지난 35년간 철저하게 진실을 왜곡하고 방해 해왔다. 국민들조차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해버릴 무렵 한 개인이 5.18 광주의 진실 찾기에 목숨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5.18은 북한특수군 600명이 사회 불만세력들을 부나비로 이용해 남남전쟁을 유발시켜 놓고 이를 남침전쟁으로 연결하기 위해 벌인 고도의 이간작전" 이라는 진실을 밝혀냈다. 그가 바로 지난 12년간 외로운 사투를 벌이며 목숨을 담보로 5.18 역사를 바로잡은 지만원 박사다. 그를 만나 5.18의 진실과 왜곡된 역사를 들어봤다.<편집자주> | |
▲ (질문 : 손상윤 회장) 왜 12년째 광주5.18진실 찾기에 매달렸습니까?
(답변 : 지만원 박사) 지난 35년 동안 5.18은 누구도 건드려서는 안 될 철웅성 같은 민주화의 성역으로 고착되면서 5.18 민주화 세력은 점령군과 같은 특수지위를 누려오면서 '민주화'를 방패삼아 대한민국 정치, 사회, 문화, 교육등 모든 분야를 장악하면서 적화공작을 해왔습니다. 이대로 가면 머지 않은 장래에 민주화 세력이 국회를 장악하여 '적화통일법'을 통과시켜 합법적으로 적화통일을 실현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 12년이란 긴 세월 동안 광주 5.18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데 앞장서 왔는데 5.18을 한마디로 함축한다면 어떻게 표현 하시겠습니까?
김일성이 보낸 600명과 전라도 맹주 김대중 세력이 야합하여 대한민국을 전복시키기 위해 일으킨 게릴라 폭동입니다. 광주에 민주화 시위는 없었고, 민주화 시위를 지휘한 광주인은 없습니다. 광주폭동의 지휘자는 지금의 인민군 원수 리을설 이었습니다. 따라서 민주화 유공자 대우를 받고 있는 5,060명은 여적죄로 처벌돼야 할 것입니다.
▲ 좌파정권 10년 이후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까지 왜 이러한 진실을 나 몰라라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한마디로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는 2002년 평양에 가서 3박4일 머무는 동안 김정일과 6.15 선언의 내용인 연방제통일을 약속하고 돌아와 연방제통일을 줄곧 강조해왔습니다. 또한 박근혜는 김대중에게 아버지가 독재한 것을 대신 사과했고, 5.18 정신을 최고의 정치이념으로 추켜올렸습니다. 집권 이후 통일대박론을 내세워 통일을 정책순위 1위로 선정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5.18을 북한특수군 600명이 주도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의 입장이 매우 곤경해지고, 통일정책은 수포로 돌아갈 뿐만 아니라 북한을 유엔에 고발해야 하고, 여적행위를 한 광주 사람들을 처벌하고 유공자 대우를 취소해야 하는 일대 대청소 작업을 해야 합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능력 범위를 많이 초과하는 것으로 매우 뜨거운 감자입니다. 지금 무척 당황하며 고민에 빠져 있을 것입니다.
▲ 12년 동안 광주 5.18의 진실 찾기에 매달려 오면서 많은 핍박과 협박, 심지어 감옥에 까지 간 건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까?
나는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간첩행위로 보고 이를 지적한 최초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김대중의 분신인 국정원장 임동원이 나를 도청하고 뒤를 따라다니며 감시하면서 내 프리랜서의 길을 모두 차단했습니다. 나는 임동원을 걸어 손해배상 청구를 했지만 2008년 겨우 2,000만원만 배상받았습니다.
그 다음 5.18에 북한특수군이 관련돼 있다는 역사관을 표현한 것이 5.18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광주검찰이 서울 사람인 나를 광주로 압송 해다가 101일 동안 감옥에 넣었습니다. 압송해 가는 동안 아들 벌되는 광주 경찰 4명은 수갑을 뒤로 채웠고, 이동하는 6시간 동안 번갈아 가며 구타하고 온갖 저주스런 언어폭력을 가했습니다. 광주 검찰청에 도착해서도 최성필 검사는 나를 때릴 듯 고성을 지르면서 뒤로 묶인 수갑을 2시간 동안 더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생긴 부기는 3개월이 지나도 가시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고, 대한민국 위에 전라도가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18만 쪽의 수사기록을 정리하여 4권의 책을 썼습니다. 이에 대해 또 5.18 단체들이 5.18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를 해 무려 5년 동안이나 피를 말리는 재판을 했습니다. 학자가 대작의 역사책을 썼다 해서 재판하는 나라는 아마 우리나라뿐일 것입니다. 5.18 세력이 그만큼 점령군 행세를 하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인 것입니다. 판사들은 5.18 이라 하면 벌벌 떨었고, 재판도중 2명의 판사가 겁을 먹고 재판을 기피했습니다.
재판에서 승소한 나는 2013년 2개의 종편방송에 나가 연구결과를 방송했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대통령 직속 기관인 방송통신심위위원회가 방송국을 처벌했습니다. 방송국만 처벌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인터넷에 올린 연구결과들을 집단으로 삭제 처분 했습니다. 이는 내 연구결과를 일체 발표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행정법원(김국현 판사)은 이런 전체주의적 검열조치가 정당한 조치였다고 판결했습니다. 이것이 5.18의 위력인 것입니다. 이번에 '광수(5.18 광주 북한특수군)'들을 발굴한 것은 이 모든 것에 대한 종말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늘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 12년 연구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5.18 분석 최종보고서'를 출간해 많은 국민들이 광주 5.18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됐습니다. 내용들이 가히 충격적이었는데 이러한 사실들을 어떻게 모두 밝혀낼 수 있었습니까?
5.18의 성격이 반국가 폭동이냐, 민주화운동이냐 하는 것은 5.18 사태의 본질에 따라 결정된 것이 아니라 정치꾼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타협되고 절충된 것입니다. 5.18 재판은 두 번 했습니다. 1981년 대법원은 김대중을 역적으로 판결했고, 1997년 대법원은 전두환을 역적으로, 5.18 시위대를 준-헌법기관으로 판결했습니다. 검찰조사 결과는 1980년 기록과 1996년 기록이 똑 같습니다. 단지 판사들의 해석이 정반대였습니다. 두 번씩이나 재판을 했지만, 그들은 나처럼 분석적이지도 못했고 12년 동안 연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나는 베트남 게릴라 전쟁에 44개월 참전해서 북한의 게릴라 수법을 잘 알고 있었으며, 분석학의 요람으로 알려진 미해군대학원에서 분석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일반 수사관들과는 분석의 깊이가 다른 것입니다.
▲ 광주 5.18의 진실이 목숨을 걸고 밝혀내야 할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종북세력들의 파워는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성격규정을 해 준 데에서 나옵니다. 5.18이 남북한이 내통 야합해 일으킨 여적폭동이라는 사실을 밝혀 내야만 이 나라를 호령하면서 적화시키고 있는 종북세력의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트릴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 광주 5.18사태를 북한의 대남공작 세력과 이 땅의 반역자들이 결탁해 민주화운동으로 둔갑시켜놓았다고 주장하시는데 그 이유가 있습니까?
김대중은 5.18을 주도한 사람이고, 5.18이 민주화운동으로 성격 규정됨에 따라 민주화의 화신으로 등극해 있습니다. 여기에 노벨평화상까지 장식돼 있어 죽은 상태에서도 살아 있는 대통령의 권력을 제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김대중은 북한의 권력을 형성하고 있는 광수 세력들과 한편이 돼 있고, 김대중을 숭상한다는 전라도 사람들 역시 광수들과 한편이 되어 북한을 위해 행동하고 있습니다.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성격규정하여 입법으로 못을 박아 놓은 것은 권력 내부에 속속 박혀 있는 간첩들과 김대중 세력의 합작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 혹시 북한특수군 600명 침투 사실을 연·고대생 600명으로 희석해 보도 토록 한 세력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북한특수군 600명은 광주에서 "연-고대생 600명"으로 통칭됐습니다. 이는 광주사람들만 아는 암호였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북한특수군 600명 침투라고 하니 한꺼번에 온 것으로 생각하는데다, 그 많은 북한특수군이 어떻게 넘어 올 수 있느냐에 의구심을 품고 있습니다. 군사전문가로서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5.18 단체들과 민주팔이 세력들은 바로 이런 점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어디에도 600명을 한꺼번에 적지로 떼 지어 보낼 군 지휘관은 없습니다. 1968년 김신조 팀 33명이 청와대 정문 가까이 침투했습니다. 그해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3회에 걸쳐 울진-삼척에는 130명의 북한특수군이 침투했습니다. 그들은 1979년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 이후 소규모로 지상과 바다를 통해 침투했던 것입니다. 이는 탈북자들이나 당시 광주 폭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 입증됐습니다.
▲ 박사님 께서는 육사를 졸업한 후 대령으로 예편하기까지 월남전에도 참전했으며, 관측장교, 작전장교, 포대장까지 역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정보 등의 분석전문가로서 시스템공학 박사라는 점입니다. 이런 점이 이번 광주 5.18 진실을 찾아내는데 도움이 됐을 것 같은데요?
시스템공학이란 응용수학입니다. 수학적 접근방법은 가장 강력한 문제풀이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이 문제를 국제사회는 물론 UN에 까지 찾아가 진실을 알리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입니까?
물론입니다. 이 문제는 국제사회와 UN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문제를 풀어야 할 대통령이 너무 유약한데다가 모든 국가기관에 북한과 연계된 공산주의자들이 대거 포진되어 사실상 대통령과 국가 위에 군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UN 등 국제사회에서 판을 짜는 것이 거의 유일한 해결방안이라 생각합니다.
▲혹 시 국민들께 전하고 싶은 매세지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 국민은 위험에 처한 이 시국을 이해하지 못하고 잠을 잡니다. 누군가가 깨워야 하지만 깨우는 사람은 없고 깨울 힘을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이때에 하늘이 우리 500만야전군에 지혜를 주셔서 84명의 광수를 찾아내게 했습니다. 이 84명의 광수는 모든 적을 압도할 것입니다. 국가 위에 점령군으로 군림해온 5.18 세력은 엄청난 권력 수단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쥐죽은 듯 조용합니다. 과거처럼 "내가 민주화 인사다" 이렇게 나서는 인간 없습니다. 군사혁명을 한다 해도 그 엄청난 빨갱이 세력을 이렇게 고요하게 잠재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84명이나 되는 광수들을 발굴한 것은 빨갱이들이 왜곡시켜 놓은 역사기록을 한 순간에 정상화 시킬 수 있는 원자탄이었습니다. 이를 널리 알기기 위해서는 힘을 모아야 합니다. 국민 모두는 500만야전군 깃발로 모여 국가를 구하는 성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에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대담 : 뉴스타운 손상윤 회장, 대담정리 손상대 사장)
국가가 반드시 처리해야 할 '3대 죄'
- 북한의 죄 : 선전포고 없이 600명 북한특수군 침투시켜 전쟁행위를 범한 전범으로 UN 제소 해야.
- 5.18유공자들의 죄 : 적군과 함께 대한민국에 항적한 여적죄 처벌, 유공자증 박탈, 손해배상 등의 절차 이행해야.
- '김대중 내란음모'자들의 죄 : 김대중은 여적의 수괴, 각자에 여적죄 물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