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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가해 10월8일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청주] 하면 할수록 더 잘하게 됩니다.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제1독서 갈라 2,1-2.7-14
† 복음 루카 11,1-4
★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예루살렘의 사도 회의에 참석했던 사실을 전한다.
그는 다른 민족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계시를 받고 이를 예루살렘
교회에 설명하고자 그리로 간 것이다(제1독서).
★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본 제자들이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사고 청한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알려 주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 단순하면서도 완전한 기도를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그러나 공허하게
입으로만 바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 대한 마태오 복음의
병행 구절(6,9-13)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보배로운 기도를 가르쳐 주시기
전에 ‘빈말을 되풀이 하지 말라.’고 타이르십니다(6,7 참조). 그러니
마음가짐이 단순하고 한데 모아질 때 비로소 그 기도가 곧바로 하느님
아버지를 향할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에 필요한 단순함과 진실함에 대하여 성찰하다가 문득 한국
서양화의 거장 장욱진 화백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양주에 그의 미술관이 개관했다는 소식에 반가운 마음으로 찾았던
것이 바로 지난여름입니다.
숲을 배경 삼아 소박하고 단순하게 세워진 미술관 건물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개관 특별전에는 귀한 작품이 많았는데, 서울 한복판의
전시 때와는 달리 넉넉한 공간에 잘 전시된 데다가 사람도 적어 차분하게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그림들을 오래 감상하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며
단순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장욱진 화백은 주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한 소재들을 그리면서 이상적인 내면세계를 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작품 세계처럼 그의 검소한 일상을 보여 주는 사진과 화구,
생활용품은 제 삶의 모습을 깊이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가장 진지한 고백, 솔직한 자기의 고백이라는 진실을 사람들은 일생을
통해 부단히 쌓아 나가고 있나 보다. (중략) 나는 이제껏 그림이라는 방법을
통해 내 자신의 고백을 가식 없는 손놀림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장 화백의
‘덕소 시대’의 삶을 잘 드러내는 수필집 『강가의 아틀리에』 머리말의 한
부분입니다.
‘단순하면서도 대담했던’ 그의 삶과 예술은 진실하게 기도하는 사람의
내면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림이 아니라 ‘주님의 기도’와 함께
일생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매일 반복해서 바치는 이 기도가, 허세와
안달이 아니라 진지하고 단순한 고백이자 주님에 대한 투명하고 조건 없는
의탁일 수 있도록 늘 마음가짐을 새로이 해야 하겠습니다.
- 매일 미사 -
◈ [인천] 용서하는 삶을 사는 것
2014년 가해 10월8일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 루카 11,1-4
어떤 본당신부님께서 신자들에게 강론 중에 물었습니다.
“여러분 중에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싫으신 분이 계시면 손들어
보세요.”
신자들은 웃으면서 주변을 바라봅니다. ‘설마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싫은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지요. 정말로 단 한 명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재차 확인을 하듯이 “정말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싫으신 분이 단 한 명도 안 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역시
신자들은 웅성대며 모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다면서 단 한 명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이제 신부님께서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십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하느님 나라에 가고 싶으신 분 손들어
보세요.”
어떠했을까요? 이 질문에 모든 사람이 곧바로 손을 들었을까요? 아닙니다.
사람들은 침묵 속에서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가고는
싶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하느님 나라에 갈 때는
언제입니까? 내가 이 세상의 삶을 모두 마쳤을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가면 절대로 안 된다 생각을 했나 봅니다.
왜 지금 당장은 안 될까요? 죄가 너무 많기 때문이지요. 깨끗해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지은 그 모든 죄를
생각해보니 곧바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아마 지금
당장 하느님 나라에 가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거룩하고 흠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과 늘
함께 했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쭉 봐왔던 제자들인데 과연
기도하는 방법을 몰랐을까요? 그보다는 기도하는 방법에 자신이 없을 만큼
스스로를 나약한 존재로 느꼈던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라는
호칭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는 종의 신분에서 건져 내시고,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불러 아들의 대열에 서도록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종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 아닌, 아들의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즉,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거룩하고 흠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아들의
모습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이름을 이 땅에 거룩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때 죄로 물들어 심판 날을 겁내는 것이 아닌, 오히려
아버지의 나라가 하루 빨리 오기를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거룩하고 흠 없는 삶일까요? 이를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용서를 본받아 우리 역시 용서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 말씀해
주십니다. 이것이 하느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을 닮고,
하느님을 위해 일하는 용서의 삶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그래야 심판
날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가 하루 빨리 오길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치유되어야 하며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고
병으로부터 회복되어야 하고 무지함으로부터 교화되어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또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
된다(오드리 햅번).
청원기도의 세 가지 원칙
(곽승룡, ‘기도, 영혼이 다시 태어나는 순간’ 중에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국회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 종종
의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했다.
“하느님은 청하는 이들을 항상 도우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위해 기도합시다.”
링컨 대통령은 기도할 시간이 없다면 생활하는 시간도 없다며, 바쁜 국정
가운데에서도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청원기도를 할 때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을 생각해야 한다.
첫째, 무엇이 필요한지를 되묻는다. 둘째, 욕심 없는 마음으로 청한다.
셋째, 공동선에 부합한 것을 청한다.
청원기도의 세 가지 원칙을 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청원기도를
바쳐보세요. 분명히 더욱 더 깊이 있는 기도, 주님의 마음에 쏙 드는 기도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인천교구 성소국장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서울]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2014년 가해 10월8일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 루카 11,1-4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십시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신앙인들의 책임이고 사명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낚시’를 하는 것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 낚시를 하려면 밑밥을 많이 주어야 합니다. 물고기들은 밑밥을 많이
뿌린 곳으로 모여들기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많은 기적과 표징을 보여
주셨습니다.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셨고,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표징을 보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기도의 밑밥, 봉사의 밑밥, 사랑의 밑밥’을 주어야 합니다.
둘째, 낚시를 하려면 집중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고기를 놓치는
것은 ‘집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잠시 다른 곳을 볼 때, 화장실을 다녀올
때 물고기는 어김없이 먹이를 먹고 달아납니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물위에
떠있는 찌를 잘 살펴야 합니다. 어느 순간 찌가 물위로 올라오게 됩니다.
그때 낚싯대를 들어 올리면 물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것들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밀과 가라지의 비유, 씨 뿌리는 이의 비유, 누룩의 비유,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스쳐가는 모든 것들을 사랑의
눈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낚시를 하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밤을 새우기도 합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 분명히 물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잘 알아듣지 못하고, 겁이 많았던 제자들을
믿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에게도
예수님은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용서하였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인내’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넷째, 낚시를 하려면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낚시를 할 때마다 물고기를
많이 잡는 사람은 없습니다. 때로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유다는 희망을 버렸기 때문에 용서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희망을 가졌기 때문에 회개의 눈물을 흘렸고, 용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희망은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가져야할 덕목입니다. 희망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전교가 가장 효과적인 전교인가! 저는 “가장 예수님적인 전교가 가장
효과적인 전교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모습으로 전교를
하였습니까! 예수님은 과연 어떻게 하였습니까!
첫째, 예수님은 몸으로 뛰셨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만나셨고,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만나셨고, 부유한 자와 가난한자를 가리지 않고
만나셨습니다. 하지만 가난한자 병든 자, 외로운 자를 더욱 많이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위로를 주셨고, 힘을 주셨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몸소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전교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기도 하셨고, 언제나 섬기는 자가 되라 하셨고, 자신의 십자가를
먼저 지라 하셨고, 착한 목자는 양들의 음성을 알아듣고, 양들을 푸른
시냇가로 인도하고, 비가 오면 양들을 안전한 우리로 인도하며, 사나운
짐승이 나타나면 지팡이를 들고 지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혼자 하시지 않고,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비록
제자들이 부족하고, 나약하지만 제자들을 신뢰하셨고, 제자들에게 힘을
주셨고, 제자들과 더불어 전교 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비록 겨자씨와 같이
작은데서 시작하지만 엄청난 결실을 맺으리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분이셨지만 기다려 주셨고, 인내해주셨고,
함께 하셨습니다.
넷째, 예수님은 늘 기도하셨습니다. 따로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고,
피눈물이 나도록 기도하셨고, 자신의 뜻보다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누워 잠을 자고 있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보시며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기도는 바로 전교의 힘이며, 기도는 바로
전교의 발판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다섯째, 예수님은 항상 당당하셨습니다. 비록 가진 것은 없으셨지만, 비록
내일 어찌될지 기약은 없으셨지만 늘 당당하셨고, 자신감이 있으셨습니다.
당당한 예수님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셨고, 권력에 무릎을 꿇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 불의와 권력을 야단치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하지만 가난하고,
지치고, 힘든 자 앞에서는 늘 자비를 베푸셨고, 늘 그들에게는 약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 서울 대 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예언자직의 대상엔 제한이 없다.
2014년 가해 10월8일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
복음: 루카 11,1-4
< 예언자직의 대상엔 제한이 없다 >
앤소니 드 멜로 신부님의 ‘종교박람회’란 책에 예언자직에 대한 이런 예가
나옵니다.
하느님은 한 예언자를 시켜 머잖아 지진이 일어나 땅의 모든 물을 삼켜
버리게 되리라고 사람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대신 생겨난 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미치게 되리라고.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 예언자 한 사람만이 하느님 말씀을 진정으로 받아들여, 자기가
사는 산속 동굴에 커다란 물독을 갖다놓고, 죽을 때까지 마셔도 넉넉할
만큼 마실 물을 잔뜩 길어다 부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지진이 일어나 물이 바싹 말라 들었다가, 새로 물이 솟아나
크고 작은 내와 못들을 채웠습니다. 몇 달 뒤, 예언자는 세상이 어떻게 됐나
살펴보려고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역시나 모두가 새로운 물을 마셔 미쳐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언자를 공박하거나 아예 상종하려 들지조차
않았습니다. 혼자만 멀쩡한 그가 미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산속 동굴로 되돌아갔습니다. 물을 비축해 놓았으니
천만다행이라고 여기며.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외로움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을 사귀며 살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간절해진 것입니다.
결국 또다시 평지로 내려간 예언자는 또다시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전혀 딴판으로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예언자는 결단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저장해 놓았던 물을 쏟아
버리고, 새 물을 마시며 다른 사람들의 미치광이 짓에 한데 어울리게 된
것입니다.
이 예화는 예언자직이 얼마나 고독하고 힘든 길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바오로 또한 약간은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바오로는 오늘
독서에서 교회의 수장인 베드로까지도 비판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사도단이 그리스도를 믿으면 할례를 받지 않아도 좋다고 결정을
내렸음에도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그리스도인들이 도착하자 그들에게
비판받지 않기 위해 은근슬쩍 할례 받지 않은 이방-그리스도인들과의
식사자리를 뜨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바로오는 베드로의 그런
일관성 없는 행동을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칫 잘못 이해하면, 바오로는 지금의 주교이고 베드로는 교황인데 어떻게
주교가 교황을 비판하느냐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판한다고
일치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비판하지 못하는 것이 더 먼 사이일
수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헌장’에서 신자들은 사제에게 필요한 요구사항을
가감 없이 건의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제는 목자이고
아버지입니다. 목자라도 위험하지만 않다면 양의 요구에 따라 움직일 수
있어야하고 아버지라도 자녀의 요구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목자가 양이
느끼는 풀 맛을 알 수 없고 아버지라 해도 아들의 생각을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받은 신자들에게는 ‘예언자직’이 부여됩니다. 예언자직은 물론
목숨을 내어놓아야 하는 직무입니다. 예수님도 “예언자가 예루살렘 아닌
곳에서 죽을 수 있겠느냐?”라고 하시며 당신의 삼중직무(왕직, 사제직,
예언자직) 가운데 예언자직 때문에 죽임을 당할 것임을 암시하셨었습니다.
그러나 이 예언자직은 아랫사람에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윗사람에게도
필요하다면 잘못하는 것을 말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직무, 즉 우리의
의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직언을 들을 때 기분은 썩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그렇게 직언을 해 주는 분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큰 레스토랑의 지배인을 형으로 둔 분이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그 가게
지배인이나 일하는 사람들은 음식이 맛이 없을 때 자신들에게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가장 고마운 손님들이라고 합니다. 밖에 나가서 맛이 없다고 하면
손님이 떨어지지만 자신들에게 말하면 고치려고 노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받아들여지면 좋은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사제가 나를 미워할까봐 말을 하지 않는다면 이것 또한 사랑의
결핍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기가 부모에게 젖을 달라고 운다거나
필요한 학용품을 살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마땅히
요구해야 하는 것 또한 상대가 마땅해 해야 하는 의무를 상기시키는데
도움이 됩니다. 물론 그 요구를 들어주고 안 들어주고는 상대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말을 해 주어야 할 의무는 있는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 수원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전삼용 요셉 신부 -
◈ [서울] 행복이 가능할 길은 예수님의 가르침뿐
2014년 가해 10월8일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 루카 11,1-4
행복이 가능할 길은 예수님의 가르침뿐
가족 적어 단란하다며 행복해하던 부부가 늙어서 자식을 두려워합니다.
귀염과 과잉보호로 아이는 성장하며 자기중심 형으로 자라기 십상입니다.
앞으로 한참 우리의 가족 대부분이 아마 그리 되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형제간 양보 대등 보살핌 나눔 질서 같은 심성이 자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참 커서 학교생활하며 배울 수도 있다지만 거긴 이미 경쟁사회인걸요.
이제 행복이 가능할 길은 예수님의 가르침인 지상명령뿐, 없다봅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루카 11,4)”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 [기타] 주님의 기도에 대한 간단한 묵상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하느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2014년 가해 10월8일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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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제자들의 부탁에 대한 응답으로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을
우리는 ‘주님의 기도’라고 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기도입니다.
무엇보다도 그 기본적인 뜻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입니다.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넘치지 않습니다.
하여, 작년에 올렸던 글을 다시 올립니다. 이미 읽어보신 분들께서도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곱씹어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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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유일한 기도 그것을 우리는 주님의 기도라고
한다. 그분께서 만드신 기도이니 모자람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마도 가톨릭이나 개신교 상관없이 가장 많이 신자들의 입술을 통해
드려지는 기도가 바로 주님의 기도가 아닐까? 하지만 얼마나 그 기도의
뜻을 이해하고 의식하면서 바치고 있을까?
이 기회에 주님의 기도에 대한 간단한 묵상을 나누어보고 싶다.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당신께서는 하느님이시며 우리는 당신을 아버지라 부른다. 그리고 그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인 흠숭과 찬미를 드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그 뜻이 먼저임을 고백한다.
게쎄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던 예수님께서 “아버지,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루카 22,42) 라고 하신
그 마음을 우리는 가슴에 새겨야 한다.
무엇보다도 기도란 그분에 대한 찬미와 흠숭(欽崇) 그리고 전적인 의탁의
자세로 시작되어야 함을 예수님께서는 일깨워주시고 계시다.
2.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당신께서 주신 생명 이끌어 주시고 책임져 주십사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하지만 이러한 간절한 바람 이전에 우리에게는 전제되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것은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우리를 내시었다는 믿음이며, 우리의
협조가 있다면 절대 우리를 내치시지 않으신다는 믿음이다.
옆에 성서가 놓여있다면 루카 복음 12장22절부터 32절까지 천천히
읽어보도록 하자.
솔로몬의 영화도 피었다 지는 들꽃보다도 하늘을 나는 새보다도 화려하지
못했다 하신다. 하물며 그보다 귀하디 귀한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이시다.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고 포기하는 것은 우리
쪽일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으신다. 그렇다.
우리가 구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도 가장 필요한 양식 즉, 그분의 사랑에
대한 확신일 것이다.
아울러 생각해야만 할 일이 있다. 그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눈길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계는 있다. 하지만 최소한 배고픔으로 힘들어하고
있고 심지어 죽어가는 이들이 이 세상에 공존한다는 의식이 필요할 것이고,
최선을 다해 그들과 함께 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어느 이는 말한다. “나는 누구를 도울 여력이 없다고.” 하지만 분명히
말하고 싶다. “이 세상에는 누구를 도울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3.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가장 엄하고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있는 구절이다. 만약 우리가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려 한다면 거기에는 엄격하고 분명한 조건이 따름을 말씀하고
계시다. 결국 구원이란 다른 말로 죄로부터의 해방이 아니겠는가? 죄로부터
해방이 된다는 것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우선 죄를
용서받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용서받는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 내가
먼저 용서해야 할 이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던지지 않는다면 나 역시 그분으로부터 용서를 구할 수 없다는 말씀이시다.
미워하는 것처럼 힘든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미움을 버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음을 우리는 체험으로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만큼
용서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용서하시란다. 무조건
용서하시란다. 그래야만 내가 용서를 받을 수 있다 하신다.
여기서 한 가지 늘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용서하는
마음이나 용서할 수 있는 힘은 그분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말이다.
용서하라신다. 무조건 용서하라신다.
4.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빛이 강하면 그 그늘도 짙어진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선을 향한 마음,
사랑을 하려는 마음, 즉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마음으로 애를 쓰려할 때
거기에는 늘 악의 세력이 더 크고 강하게 작용하기 마련이다. 사도
바오로께서 하신 말씀을 상기해보자. “여기에서 나는 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곧 내가 선을 행하려 할 때에는 언제나 바로 곁에 악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로마서 7,21)
어차피 우리의 실존은 그분의 품에 안기기 전까지는 온갖 종류의 유혹과
싸워야 하는 삶이다. 예수님께서도 누구보다도 이러한 인간의 실존에 대해
체험하셨고 이해를 하신 분이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간청하신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신다. 악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하라 하신다. 우리의
나약한 의지는 늘 유혹 앞에 흔들리고 넘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당연한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다. 때로는 악에 지는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성숙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어서야 한다. “고지가 저긴데 예서 멈출
수 없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다시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힘은 하느님께 청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기도에 대한 의미를 의식하면서 살았으면 한다.
한 번을 소리 내어 외워도 그 의미를 곱씹으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드렸으면
한다. 그분이 함께 하심을 믿는다. (20130219)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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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 [청주] 하면 할수록 더 잘하게 됩니다.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4년 가해 10월8일 연중 제27주간 수요일(루카11,1-4)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 루카 11,1-4
하면 할수록 더 잘하게 됩니다.
“기도는 하면 할수록 더 잘하게 됩니다. 기도를 자주 함으로써 기도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기도의 참
맛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알베리오네). 그리고 기도는 “영적 생활의
기초입니다. 기도할 때에 그대는 하느님과 통교하게 됩니다. 마치 전등이
발전기와 연결됨으로써 빛을 발하는 것과 같습니다”(구엔 반 투안 주교).
그러므로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호흡을 해야 살듯이 기도해야
신앙의 삶을 지킬 수 있습니다. “비록 잘못에 떨어졌다 할지라도
기도하기를 그쳐서는 안됩니다. 그 잘못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힘은
꾸준히 계속되는 기도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며 죄를 용서하시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나라는 하느님의
다스림을 의미하고 하느님의 다스림이란 결국 사랑의 삶을 말합니다.
요한사도는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고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까롤로 까레또는 “사랑이 있으면 천국이요, 사랑이 없으면 지옥”이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을 때 바로
그곳이 아버지의 나라입니다.
또한 우리는 매일 필요한 양식을 청해야 합니다. 양식은 단순히 밥을 의미
하지 않습니다. 우리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필요한
양식은 그날에 필요한 양식입니다. 잠언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마십시오. 먹고 살 만큼만 주십시오. 배부른 김에
하느님이 다 뭐냐? 하며 배은망덕하지 않게, 너무 가난한 탓에 도둑질하여
하느님의 이름에 욕을 돌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잠언30,8-9). 매일의
양식을 달라고 간절히 ‘날마다’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육적인 양식뿐 아니라 영적인 양식을 달라고 청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과
더불어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생명의 빵을 매일 모셔야 합니다. 미사는 다른 여느 기도 중에
가장 중요한 기도이며 영성체를 통해서 가장 완전하게 주님과 하나가 되는
은총의 혜택을 입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루카18,13)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실수와 잘못 안에
용서 받아야 할 연약함을 지니고 살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유혹은 믿음으로부터 멀어지는 위험을
의미합니다. 그 유혹은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예수님도 유혹을 받으셨고
말씀으로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사실 우리의 진보는 유혹을 통해 이뤄지고
유혹을 통해 자신을 완전히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겸손한 사람은 기도하게 됩니다.
성 레오교황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성인이여, 기뻐하십시오. 당신께
면류관이 가까이 있습니다. 죄인이여, 기뻐하십시오. 당신은 죄의 용서에로
초대받았습니다. 이방인이여 용기를 내십시오. 당신은 생명에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 생활을 청산하고 낡은 인간성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의 탄생에 참여하게 된 자들로서 육신의 행위를
끊어버립시다. 부패한 행실로 말미암아 이전의 비참한 상태로 돌아가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 과거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갈망하는 현재와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는 미래의 다스림이
하느님 안에 있음을 잊지 않고 자비와 사랑, 섭리의 하느님과 더불어
기뻐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성당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수도회] 아빠[단상]
2014년 가해 10월8일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제1독서
<그들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을 인정하였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2,1-2.7-14
복음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4
연중 제27주간 수요일(2014년 10월 8일) 아빠
기도를 잘 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우린 기도에 굶주리고 있지만,
그 방식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한 주님의 제자들처럼 기도 방법을 찾아 이리저리 기웃거립니다.
이런 방식으로도 해보고 저런 기도 방식도 써보고 합니다. 그러고는 지쳐서
기도하는 것을 포기합니다.
기도는 강에 놓인 다리처럼 건너가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기도 방식에
달린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어떤 기도이든 기본은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목적은 하느님을 내 자신보다 더 친밀한 분으로 받아들이고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기도의 모범이십니다. 하느님을 당신의 아버지로
인식하셨습니다. ‘아버지’(아빠)란 말은 ‘엄마’란 말과 함께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친밀한 관계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때론 우리와 가까이 하는 방법도 사랑하는 방법도
모르지만, 참 아버지이신 하느님은 우리보다 더 가까이 계시는 분이십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사람은 이미 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대로 살고 사는 대로 기도합니다.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인영균 끌레멘스 신부 -
◈ [수도회] 성공적 인생순례를 위한 비결 -
2014년 가해 10월8일 연중 제27주간 수요일(순례50일차-감사미사).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10월8일 연중 제27주간 수요일(순례50일차-감사미사).
갈라2,1-2.7-14 루카11,1-4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 루카 11,1-4
성공적 인생순례를 위한 비결
이렇게 비행기내에서 강론을 쓰기는 제 인생 초유의 일입니다.
순례50일차 강론을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쓰니 감격스럽습니다.
저는 감히, 나이 66세에 산티아고 800km를 완주하며 매일미사와
매일강론에 매일 시간경을 바친 사제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하느님은
안식년을 맞이한 당신의 사제인 저를 통해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하느님께 온통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저와 시종일관 동행했던 도반, 나이 69세의 박용대 이냐시오 형제도
한결같기가 놀라웠습니다. 매일 저와 똑같이 새벽같이 일어나 미사를
드리고, 매일 줄기차게 20-30km를 걸었습니다.
"형제님, 순례가 끝나면 성인이 될 것입니다. 집에 가시면 순례지마다
무수히 확인 도장 받은 훈장과 같은 증서와, 산티아고에서 받은 졸업장
같은 순례증서, 상장같은 거리확인서를 액자에 넣어 거실에 걸어 놓고
가보로 전하십시오"
순례중 나눈 덕담이 오늘 현실이 되었습니다.
"귀국하여 감사미사는 형제님 시성(?)미사가 되겠습니다. 사정상 순례를
도중에 포기한 김승월 프란치스코 형제에겐 시복(?)미사가 되겠습니다."
웃으며 나눈 오늘 아침의 덕담입니다.
"주님의 집에 가자할 제, 나는 몹시 기뻤노라."
매일 3시경 서두의 시편 말씀 그대로 매일 힘차게 걸었고, 주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주님을 등에 업듯이 미사가방을 제 배낭에 넣어 등에
업고 걸으니 주님께서는 저와 이냐시오 형제를 당신 등에 업어다 마침내
이 자리에 놓아 주셨습니다.
비행기내에서 언뜻 눈에 스친 일간 신문의 기사내용입니다.
-초갈등 사회 진입한 대한민국; 국민10명중 9명 '심각한 수준'
사실상 '관리 불가능 상태'- 라는 비관적 견해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지섭 전 삼성전자 부사장의 인터뷰중 한 대목입니다.
-사람은 부유해질수록 본질적 가치로 돌아간다. 합리주의는 삼성그룹의
창업이념 중 하나이나, 너무 합리적인 것만 찾다보면 감성을 놓치기 쉽다.
감성경영을 어떤 식으로 해결해 나갈지가 삼성전자의 숙제가 될 것이다.-
바로 중심과 질서가 문제의 핵심임을 깨닫습니다.
중심에 이어 질서를 잃어버렸기에 초갈등 사회입니다.
합리와 감성의 조화와 균형을 위해 중심을 찾아야 합니다.
두 말할 것 없이 중심은 하느님이십니다.
첫째, 늘 하느님을 기억하십시오.
하느님은 우리 삶의 방향이자 목표이고, 삶의 중심이자 의미입니다.
하여 오늘 복음의 주님의 기도 역시,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하며 아버지에게 우선순위를
주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살든 하느님 아버지를 중심에 모실 때 안정과 평화입니다.
불안과 두려움의 어둠도 걷힙니다.
하느님 중심 없이는, 하느님 은총 없이는 결코 인생의 신비는, 깊이는,
의미는 계시되지 않습니다.
둘째,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삶은 기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중 제자들의 요청에
당신 노하우의 기도인 '주님의 기도'를 전수하십니다.
삶은 관광이 아니라 순례입니다.
산티아고 순례여정은 인생평생순례여정을 상징합니다.
산티아고 순례중 이냐시오 형제와 저는 끊임없이 일정한 시간에 미사와
시간경을 바쳤고, 걸을 때는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하여 저는 800km 걷는 동안 한번도 스틱을 잡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지팡이' 묵주가 스틱을 대신했습니다.
바로 이런 기도가 순례 동안 하느님을 가리키는 저희 삶의 이정표가 되어
주었고, 삶의 질서를 잡아 주었습니다.
도반과 간혹 내적갈등도, 용서도 기도를 통한 인내가 해결해 주었습니다.
신실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어김없이 응답해 주셨습니다.
셋째, 하루하루 사십시오.
저의 지론이자 좌우명입니다. 우보천리,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입니다.
이냐시오 형제와 저는 그냥 하루하루 충실했습니다. 매일 헤드랜턴을
이마에 달고 인적없는 새벽길을 걸었습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면서도,
기도할 때는 기도하고, 걸을 때는 걷고, 잘 때는 자고, 먹을 때는 먹으면서
아주 현실주의자로 오늘만 살았습니다.
주님은 오늘 복음 말씀대로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즉 날마다
필요한 건강을, 믿음을, 사랑을, 희망을, 힘과 의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매일미사를 통해 날마다 선사되는, 하루하루 살게 하는, 말씀과
성체의 일용할 양식보다 더 좋은 양식은 세상 어디에도 없음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것이 산티아고 순례를 통해 제가 얻은 성공적 인생순례여정의
비결입니다.
하느님은 물론 저희를 사랑하는 수많은 형제자매들의 기도와 사랑 덕분에
이냐시오 형제와 저는 장장 50일간의
'파리-루르드-산티아고-파티마-마드리드' 순례여정을 성공리에 마치고
그리던 집에 돌아왔습니다.
매일 길 떠나기전 바치던 3시경 기도대로 되었습니다.
-저희를 인생의 순례자로 부르시는 하느님, 길 떠나는 저희를 안전하게
인도해 주시고, 낯선 곳, 낯선 얼굴들 속에서 놀랍고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곳곳에서 당신 얼굴을 보게 하시고, 몸은 고단해도 환한
얼굴로 충만한 생명력을 얻어 그리운 집으로 돌아오도록 축복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그러나 우리의 인생순례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통해 '하느님의 집'에 귀가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자비하신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에게 1독서의
바오로 사도처럼 평생순례여정에 항구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아멘.
-귀국 비행 순례여정 중 한국시간 2014.10.8 수요일 04시 완료하여,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2014.10.8 수요일 06시 홈페이지에 올리다-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요셉 수도원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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