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중남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고대 및 현대 도시 고린도(코린트,Corinth).
이 도시는 구 고린도와 신 고린도로 나뉘는데 구 고린도에 고대 도시 유적이 있다.
고린도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들린 곳은 세계 3대 운하 중의 하나인 고린도 운하.
이 운하는 그리스와 펠로폰네소스 반도 사이에 있는 운하인데 서쪽 바다인 이오이나해와 동쪽 바다인 에게해를 연결한다.
길이 6.3km, 폭 25m(바닥의 폭은 21m) 의 규모인데 다리에서 수면까지의 높이가 약 80m인지라
다리 위에서 보면 아래가 까마득하게 보일만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운하 양 쪽 바다 풍광도 아주 아름답다.
AD 67년, 로마의 네로 황제는 6,000명의 노예를 데리고 자기 스스로 첫 삽질을 하여 운하공사를 시작하였는데
이듬해에 네로 황제가 죽자 이어 즉위한 가르바 황제가 경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중지한 이후
1881년 다시 시작하여 1893년에 완성하였으니 운하를 만드는데 거의 1800년이 넘게 걸렸다고 할 수 있다.
운하 안에 갑문이 없는 수평식 운하이며 양쪽 만의 간만 시간차 때문에 강한 조류가 일어나기도 한다는데
실제로 다리 위에선 몸을 가누기도 힘들만큼 심한 바람이 불어 운하 구경하는데도 상당히 용기가 필요한 곳이다.
운하를 가로질러 놓인 도로 표지판에 쓰인 낙서가 눈에 뜨인다. 어디든 낙서하고 싶은 심리는 만국 공통인 듯....
운하를 지나면 나타나는 구 고린도에는 고대 도시 유적지가 있다.
이 고대 도시는 지브롤터처럼 돌출한 아크로코린토스 언덕(해발 575m)의 성채 아래에서 성장했다.
아크로코린토스의 성채는 고대 도시의 위로 가파르게 솟아 있고 펠로폰네소스로 들어가는 육로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기 때문에
옛날 고린도는 전략적으로나 상업적으로 큰 중요성을 지닌 곳이었다.
이 지역에서는 BC 3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으나 BC 8세기초에 고린도 도시국가가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고린도의 정치적 영향력은 주변 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증대되었다.
그 당시 고린도의 인구가 자유인이 25만, 노예가 40만이었다고 하니 인구 3만 정도인 오늘날의 고린도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고린도에는 적어도 12개의 신전들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 신전 중에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 여신의 숭배자들은
종교적인 매음 행위를 자행했고 한 때는 1000명의 선발된 창녀들이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봉사했다고 한다.
이처럼 고린도의 부도덕성은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고린도인과 같이 행한다'는 말은 '성적 부도덕을 행한다'라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고린도의 폐허의 아폴로 신전은 BC 6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원래 38개의 기둥이 있었는데 반복되는 지진으로 인해 지금은 7개 밖에 남아있지 않다.
이 신전은 주전 6세기경에 세워진 그리스의 신전중에서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 다음으로 오래된 신전으로
전통적인 도리아식(Doric style)기둥이며 기둥이 하나로 된 통기둥인데 현재는 7개의 기둥만이 남아 있다.
옥타비아누스 황제 신전의 남아 있는 고린도식 열주가 너무나 섬세하고 아름답다.
고대 고린도시의 유적은 아크로코린토스 언덕의 정북쪽에 있으며 그 도시와 언덕은 둘레 약 10㎞의 원형 성벽으로 결합되어 있다.
중요 유적은 대부분 로마 시대의 것들이지만 아고라가 현재의 규모를 갖춘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인 BC 4세기의 일이라고...
아고라(시장)지역의 건물이 화려한 걸로 보아서 고린도 사람들의 생활은 대단히 화려하였다고 짐작되며 이곳은 성적으로도 매우 문란한 도시였다고 전해 온다.
그밖의 신전, 별장, 극장, 상점, 공중목욕탕, 도기제조소, 단련장, 거대한 개선문,
기타 건물들의 유적이 점점이 들어서 있는 아고라 일대는 1896년부터 대대적으로 발굴되었다.
바울의 재판터(Bema)는 광장 중앙에 쌓여 있는 돌더미로 본래 아고라의 중앙에 자리자잡고 있었으며
가이오가 총독으로 있을 때에 유대인들의 고소로 사도 바울이 재판을 받았단 자리이다(사도행전 18:12~17).
5세기에 이르러 기독교인들이 이 곳을 교회로 변형하여 사용하였다.
19세기 말까지 사용된 우물 피레네 샘터는 정원과 6개의 물저장소가 서로 유통되도록 되어 있고 한 시간에 11000리터의 물이 솟아 나왔다고 한다.
지금도 이 곳에는 물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신화에 의하면 아들을 잃어버린 어머니(피레네)의 애절한 사랑이 오늘도 눈물이 되어 흐르고 있다고 전한다.
그 당시 길가의 각 상점에서는 우물을 파서 포도주나 육류를 우물 속에 매달아서 냉장하였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팔았다.
대극장 유적은 에베소 유적지의 대극장에 비해서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다.
고대의 고린도 시가가 지진으로 무너진 후 1858년 그곳에서 북동쪽으로 약 5㎞ 떨어진 곳에 신 고린도 시가 건설되었다.
한때 65만의 인구를 자랑했던 고린도의 현재 인구는 약 3만 정도이며
신 고린도는 그리스의 북부와 남부를 잇는 교통의 중심지이지만 여행자가 보기엔 한적한 소읍 같은 도시이다.
신 고린도 중앙에 위치한 '신 고린도 바울 교회'의 왼쪽에는 베드로 사도 오른쪽은 바울 사도의 모자이크가 있는데
교회 입구 우측면에 위치한 대리석판에 흔히들 '사랑장(章)'이라고 부르는 고린도 전서 13장 1~8절의 말씀이 헬라어(그리스어)로기록되어 있다.
(펌사진, 출처 미상)
신고린도 교회 벽면에는 또한 역대 교역자의 명단이 벽에 적혀 있는데
1대 바울, 2대 아볼로, 3대 실라....
이렇게 이어 내려와 현재는 88대 교역자가 시무하고 있다.
AD 50~52년에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에 도착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웠는데
자신의 본업인 장막 만드는 일을 하며 안식일 마다 복음을 전파하고 강론하였다.
고대 고린도는 아프로디테(비너스)를 숭상하는 성적으로 매우 타락한 도시였는데
바울은 이러한 고린도인들의 음행을 꾸짖으며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하는 유명한 구절이 있는
고린도서를 고린도 성도들에게 보내어서 권유하였다.
이천년전 고린도 사람에게 주어진 말씀이지만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적용되는 살아 있는 말씀....
나도 그 자리에 서서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을 떠올려 보았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첫댓글 언제 이곳을 몽촌님께서 여행 다녀 오셨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