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히브리서의 저자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시는 주님의
훈육을 견디어 내며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라고 권고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가르치시는 것을 듣고 놀란 이들이
못마땅하게 여기자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신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2,4-7.11-15
형제 여러분, 4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5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시면서 내리시는 권고를 잊어버렸습니다.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6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12 그러므로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13 바른길을 달려가십시오.
그리하여 절름거리는 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14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15 여러분은 아무도 하느님의 은총을 놓쳐 버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또 쓴 열매를 맺는 뿌리가 하나라도 솟아나 혼란을 일으켜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더럽혀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훈육과 채찍질’, ‘책망과 낙심’, 듣기만 해도 맥 빠지는 단어들입니다.
누구나 훈계나 책망을 듣고 싶어 하지 않고,
나를 채근하고 독촉하는 소리를 들으면 낙심하고 맙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고 하고,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라고까지 격려합니다.
자신을 향한 비난과 책망을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을 줄 아는 사람은
성인입니다. 대부분 우리는 변명과 합리화라는 심리적 자기 방어
기제를 동원해서 시련과 책망을 성장을 위한 훈육의 기회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이미 굳어진 나의 고정 관념과
편견이 나의 변화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자렛의 예수님 동향인들이 예수님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의 미성숙한 모습이 엿보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예수님의 모습을
보아 온 나자렛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큰 명망을 얻고,
권위 있는 예언자라는 사실을 애써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칭송하다 보면, 함께 자라 왔지만 비교되는
자신들의 초라한 민낯이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인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의 기적은, 하느님의 능력이 나를 움직일 수 있음을
믿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때로는 시련과 고통이,
해이한 내 마음에 채찍으로 훈육하시는 하느님의 표징일 수 있고,
내 고집과 아집으로부터 풀려나 나를 변화시킬 이웃을
만나는 기회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내 모습이 편견과 아집으로 굳어진 고집불통의 삶은 아닌지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출처 매일 미사-
♬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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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히브리서. 12,6)
우리의 삶 안에서 격어야만하는 모든 시련과 고통은 주님께서 우리를 올바른 자녀들로 키우기 위해서 훈육하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알려준 메시지를 우리는 한 번 쯤 들었습니다.
그런한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시련과 고통을 겪게 되면 주님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더 극심한 시련을 겪는 이웃들중에는 도저히 회복하기 어려운 가족 전체가 고통중에 살아가는 소식을 접할 때
저들이 겪는 고통도 주님의 뜻인가 하고 생각해 보곤 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그 누가 주님의 뜻을 온전히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저 주님의 자비하심을 믿고 기도드릴 뿐입니다.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