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 유스에서 뛰고 있는 백승호, 한국 무대에서 모습을 드러내다
(바르셀로나 유스에서 뛰고 있는 백승호, 전남 강진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국제축구대회에서 바르샤 유스 대표로 참가하였다)
지난 8월 27일, 전남 강진에서 제7회 한국중등연맹회장배 겸 전라남도지사배 국제축구대회가 열렸다. 이번 대회에서는 한국중등연맹 대표팀을 비롯하여 호주, 스페인, 일본 등 총 6개국에서 10개팀이 참가하였고,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15세이하 선수들은 약 400명 정도라고 한다. 이번 대회에서 유난히 반가운 얼굴이 있었으니, 바로 스페인 대표로 나온 바르셀로나 유스팀에서 활약하는 백승호였다. 백승호는 한국에서 뛰다가 바르샤 스카우터들의 눈에 띄어서 바르샤로 스카웃되면서 국내 언론을 장식했던 유망주였고, 바르샤 유스팀으로 입단한 이래 꾸준하게 엘리트 코스를 단계적으로 밟고 있었던 참에, 이번 대회에 바르샤 대표(바르샤 카데테 A) 선수로 참가하게 되었다. 바르샤 입단할 때부터 주목을 끌다보니 취재진들은 백승호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기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이날 바르샤 유스 대표팀은 호주 풋볼 웨스트를 상대로 4대0 대승을 거두고, 다음 경기인 한국중등대표팀과의 경기에서 2대0으로 승리했고, 한국중등대표팀과의 경기에서 백승호는 골도 기록하였다. 참고로 이 대회가 8월 30일에 준결승, 그다음인 8월 31일에 결승전을 치르기 때문에 앞으로 백승호가 얼만큼 보일 지도 이번 대회의 흥미거리로 꼽을 수 있다(그런데 태풍 볼라렌 때문에 28일 경기일정이 취소되어서 일정 변경이 불가피할 것이다).
해외로 진출하는 유망주들에게 매번 따라붙는 거북한 단어, '대승적 차원'. 그리고 '도가 지나친 관심'이 불러오는 폐해
백승호가 이번 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인 것은 맞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대회 첫 날 백승호의 활약상을 놓고 일부 축구팬들은 "저것이 바로 바르샤의 작품", "역시 바르셀로나는 다르구나."라는 식으로 마치 백승호를 처음부터 끝까지 바르샤가 다 키워놓은 것 마냥 치켜세우고 있고, 일부 언론에서도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바르샤 유스 소속으로 있는 동안 백승호의 기량이 발전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모든 것이 바르샤가 만들어준 것은 아니고, 그의 기본기는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 만들어진 것이다.
(백승호 또한 한국에서 키워낸 소중한 인재들 중 하나다. 한국 구단들의 노력을 무시해버리면 곤란하다, 사진출처 한국축구신문)
백승호는 서울 대동초등학교 시절에 주말리그에 출전하여 18경기 30골을 뽑아내어 득점왕과 최우수선수상을 차지했었고, 차범근 축구대상까지 거머쥘 만큼 한국에 있을 때부터 재능이 남달랐던 것이고, 2010년에 바르셀로나 스카우터들에 눈에 띄었던 것이다(당시 백승호는 수원 유스산하 지정학교인 매탄중 입단이 확정된 상황이었다). 말이 좋아 스카웃이 되어서 바르샤로 입단한 것이지만, 뒤집어서 말하면 수원 입장에선 좋은 선수를 하나 잃은 셈이다. 백승호 또래의 재능있는 선수들이 이런 식으로 이적하는 건 유럽에서도 비일비재하고, 때로는 교묘하게 법을 피해가 어린 선수들을 빼가는 빅클럽들의 케이스도 많았다(해적질로 빼가는 케이스도 허다하다). 이렇게 유망주들이 빠져나가면 그에 대한 어떠한 보상도 그들을 키워낸 구단에선 받아내지 못했다(백승호가 바르샤로 넘어갈 당시에 수원은 당시 그를 지킬만한 제도가 마련되어있지 않아서 속수무책으로 그냥 넋놓고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깔려있는 것은 전혀 배제해놓고, 사람들은 우리나라 유망주를 해외로 보내는 것을 마치 "대승적 차원"이라고 표현하면서 양보해야한다고 강조한다.
대승적(大乘的) 차원, 요즘 축구계에서 가장 흔하게 쓰는 말과 동시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다. 이렇게 구단이 무일푼으로 해외클럽에게 내보내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대승적 차원인가? 물론 백승호 같은 유망주가 유럽에서 성공하여 세계적인 선수가 되면 분명히 한국 축구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을 것지만, 자고로 축구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특출난 선수 한 명만 있어서는 안된다. 제2의 백승호, 제3의 백승호 등 지속적으로 배출할 수 있는 구단과 시스템이 더더욱 중요한 것인데, 사람들은 이러한 키우는 시스템의 중요성보다도 그저 유럽의 축구가 선진국이니까 그놈의 "대승적 차원"으로 무조건 보내야만 한다고 밀어부친다. 그리고 해외만 나갔다하면 아직까지도 해외에서 뛰는 유소년 선수들이 세계최고의 재목감이라는 그릇된 착각(그 착각의 산물인지 어떤 사람들은 해외에 나간 모든 어린 한국 선수들이 어디서 뛰는 지 달달 외우고 다닌다고들 한다)과 만약 그들이 조금이라도 정체되거나 유럽에서 실패하고 돌아오면 실패한 놈이라고 냉정하게 외면한다.
이러한 현상은 사실 백승호에게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었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예전에 남태희에 관한 포스팅(http://blog.daum.net/manutdronaldo/193)을 다룰 적에 남태희에 대한 언론이나 사람들의 시선도 지금 백승호를 바라볼 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남태희는 어엿하게 울산의 체계적인 유스시스템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잘나갈 당시에는 그가 키운 것은 레딩이라고 여기면서 울산의 노고를 깡그리 무시해버렸다. 게다가 당시 남태희의 신분이 유스라는 점 때문에 발렝시엔은 남태희를 공짜로 낚아채갔고, 결국 그를 발굴해서 키운 울산은 그 어떤 대가도 보상받지 못했다. 손흥민이 함부르크로 넘어간 방법도 남태희와 비슷한 유형이었고, 후에 지동원이 선더랜드로 이적할 당시, 대승적 차원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명분으로 전남을 나쁜 구단으로 매도했던 적도 있다. 반면에 남태희와 같이 레딩으로 유학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온 김원식에 대해서는 그 아무도 찾아주질 않고, 그가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는 지 조차 관심갖지 않는다(김원식은 현재 서울 2군 소속이다. 원식이는 요즘 밥은 먹고 다니는지 안부가 궁금하구나 ㅠ). 김원식 말고도 백승호보다도 먼저 라리가로 유학갔던 양동현만 하더라도 유학갈 당시에 비해 현저하게 주목을 덜 받고 있다. 그래서 바르샤에서 활약하고 있는 백승호 이외에 바르샤 카데테B에서 뛰고 있는 장결희, 이승우, 발렌시아 유스에서 뛰고 있는 이강인의 나이대가 아직 사춘기를 겪는 나이대인걸 감안한다면, 그들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그들의 성장에 지장을 줄까봐 걱정스럽다.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한 "진정한 대승적 차원"이란
(한국 축구를 위한 "진정한 대승적 차원"은 어린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아닌 국내 구단들의 유스 시스템 활성화다. 사진출처 KFA)
한국 축구를 위한 "진정한 대승적 차원"은 어린 선수들의 유럽 러쉬가 아니라 우리나라 유망주들이 국내에서 잘 클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야하는 게 아닐까 싶다. 지금은 한국 축구가 유소년 육성에 대해 어느정도 인지하고 그에 대해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연맹에서 승강제 도입과 함께 드래프트제도를 폐지하기로 결정내렸고(당장 폐지는 아니고 점차적인 폐지로 2016년에 완전히 사라진다), 해외구단들의 해적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클럽유소년우선지명제도를 도입하는 방어책을 제시했다. 이런 규정으로 인해 유소년 선수들이나 신예들이 구단에서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 내에 존재하는 프로구단들도 유소년 시스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미 국내에서 최고의 유스 시스템을 자랑하고 있는 울산, 포항, 전남이 있고, 수원이 최근에 엄청난 물량공세를 퍼부으면서 유스 시스템에 엄청나게 공을 들이고 있는 실정이다(막강한 물량공세 덕분인지 늦게 유스 시스템에 눈을 뜬 수원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게다가 연맹에서 각 구단들이 유소년을 육성하는 것을 의무규정으로 지정해놓았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구단에서 유소년들을 육성하게 된다. 또한 초중고리그 주말리그 등을 도입하면서 프로구단 산하 유스지정 학교 이외에 축구부를 키우는 다른 초중고등학교들에게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주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리고 축구팬들이나 언론들의 인식의 전환 또한 중요하다. 해외에 일찍부터 나가있는 유망주만이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유망주는 아니며, 무조건 해외에 일찍 나가는 것만이 발전이고 그들을 어떻게해서든 보내주는 것을 "대승적 차원"이라고 여겨선 안된다. 해외로 가더라도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 현재 전국에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수천명의 유망주 선수들이 피치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미래를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그 중에는 우리의 예상 그 이상으로 뛰어난 재능들이 진흙 속에 숨겨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섣불리 해외에 나가는 것 마냥이 절대적 진리라는 생각을 버리고, 그들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해선 안된다(아직 미쳐 다 성장하지도 못한 어린 선수들에게 부담감만 가중시킬 순 없지 않은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이 어떻게 성장하는 지 뒤에서 조용히 응원하는 것이며, 그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P.S : 백승호에 대한 기량 평가에 대해서는 아직 그 누구도 확답할 수 없는 것이다. 만 15세이기 때문에 변수가 아직 많이 존재한다. 내가 바르셀로나 현지에서 백승호에 대한 평을 들은 바로는 바르샤가 공들여서 키우고 있는 요주의 인물들 중 하나라고 했으니, 더이상 그의 실력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를 폄하할 필요도, 지나치게 띄울 필요도 없다. 그저 백승호가 잘 되기를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는 것이 서로에게 제일 도움이 될 것이다.
첫댓글 좋은글 잘 읽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