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질마재문학상 수상자 대표시 5편
소리가 생각나지 않는 꽃 (외 4편)
조정권
호수에 앉아
무속력의 수면에
취한다
잔잔히 퍼져오는
소 얼굴에 취한다
저물 무렵 올라오는
하얀 꽃에 취한다
소리가 생각나지 않는
집으로 돌아오며
물 속 뿌리를 쥐고
잠 들 물빛에 취한다
찾아야 할 마음도 있지도 않거니와
따라야 될 마음도 없다
가만히 뿌리를 쥔 손놓고
잠 든 물빛에 취한다
반하생(半夏生)
흐르는 물살 위에서 핀 흰 꽃들
조그맣고 하얀 물살이꽃들.
물살이 꽃을 가꾸고
물길을 가꾸고 있다.
나도 물살을 타고 떠내려간다.
물 위에 사는
흐르는 물살,
떠내려가며
물들의 뿌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며
떠내려가며,
온 산 산새소리 다 합해놓은
저 밖의 시끄러움 하지(夏至)까지 따라가다가
환한 귀로 내다본다.
흐르는 물살 위에서 홀로 질 흰 꽃들
흰 꽃들이
조금 열어놓은
안의 부산스러움
취해있는 듯 깨어있는 듯
물속으로 내려가다가
물 갓 위로 귀 조금 더 얹어놓다가
닫아두다가 열어두다가.......
겨울 주례사
언 호숫가 겨울나무가 서 있다.
흰 눈의 면사포를 쓰고 있다.
눈이 온다.
일생 겨울숲속에서 밑 둥은 얼어있을 것이다.
바람 속에서
견디고 있는 마음과
벌서고 있는 마음
진정 두 마음은 한마음임을 약속하겠는가.
꽃잎
퇴근 시간 때 전철에 올라탄
등산복차림 사내가
산철쭉꽃가지 한 묶음 들고 내 옆자리에
그냥 말없이 앉아 있다
동덕여대역에서 내릴 때까지
나는 꽃을 무릎에 앉힌 두 손만 바라보았다.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은
모두 무거운 것들이었구나.
수수밭 빗소리
새말 IC 지나 강림(江林)
밤잠 없는
저 빗소리
수수밭에 민박하면 좋겠네.
수수껍데기 잎사귀에 일박(一泊)하는 빗소리
여관 창으로 들이쳐 주면 좋겠네.
내안으로 세게 들이쳐 주면 좋겠네.
무한대허로 내 두 귀 잡아끌고 가서
가느다란 실로 매달아놓은 빗소리
창틀 떨어져나간 杜甫네 집
잠 달아난 베개 들고
찾아와 주면 좋겠네.
—《미네르바》2011년 여름호
-----------------
조정권 / 1949년 서울 출생. 중앙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197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비를 바라보는 일곱 가지 마음의 형태』『시편』『허심송』『하늘이불』『산정묘지』『신성한 숲』『떠도는 몸들』『고요로의 초대』『먹으로 흰 꽃을 그리다』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