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디삿트와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원류와 집안시, 티벳지역의 거대 피라미드에
대한 여러 글들이 이 카페에도 있다고 알고 되는데요.
님께서 보여주신 기사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겟습니다.
이 밑은 한국피라미드에 대한 여러 가설들이 있는 카페의 글 입니다.
------------------------------------------
[조선 광여도 중 조선여진양국경계도의 한 부분 (출처 - 서울대 규장각 홈페이지)]
위 조선 지도에 보면 백두산 서쪽 지금의 중국 [집안] 지역에
황제릉(皇帝陵)과 황제평(皇帝坪)이 보인다.
여기서 황제릉(皇帝陵)이란 [고대한민족 피라미드]를 뜻한다.
[동여도 (조선시대지도 - 보물 1358 호) 평안도 쪽 한 부분] 출처 - 서울대 규장각 홈페이지
위 그림에도 압록강 위에 [황성평(皇城坪)]이라는 데가 있다.
- 황성평(皇城坪) = 황제평(皇帝坪)
조선의 강계도호부(江界都護府)에서 관할하던 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 평안도(平安道) 강계도호부(江界都護府) 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
황제묘(皇帝墓) - 황성평(皇城坪)에 있으니,
돌을 갈아 만들었다.
높이가 가히 10장이고 안에는 침상이 셋이 있다.
또 황후묘와 왕자묘가 있다.
[출처 - 한국 고전 번역원 http://www.itkc.or.kr/MAN/index.jsp]
--------------------------------------------------
위에보면 [돌을 갈아 만든 묘]가 있는데
높이가 10장이라 했는데 이는 하여간 굉장히 높다는 것.
압록강변에 있는 [태왕릉]을 복원한 그림. (복원전문가 박진호씨가 복원)
( 한변길이 66미터, 높이 25미터 - 대강 10층 아파트 높이)
[태왕릉]은 [장군총]과 모양은 똑같고 크기는 훨씬 더 크다.
둘 다 [집안]에 있다.
장군총
장군총 태왕릉 등 한민족 피라미드는 고구려때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보다 훨씬 더 이전의 것들.
태왕릉 말고도 천추묘, 221호 무덤 등도 대형 피라미드인데
크기가 태왕릉과 비슷하게 크다.
장군총, 태왕릉은 고구려보다 훨씬 이전의 작품 <- 관련글
현재의 태왕릉 - 누군가 거의 훼손해 버렸다.
그런데 위 기록에 [침상이 셋이 있다] 했는데
태왕릉은 침상이 2개.
태왕릉 내부
[출처 - http://cafe.naver.com/8653kpi.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379]
위에서처럼 태왕릉은 침상이 2개.
그럼 침상이 3개인 다른 피라미드가 또 있었다는 얘기.
그리고 그 피라미드가 당시 가장 컸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크니 아마도 어떤 황제의 묘겠지' 해서 황제묘(皇帝墓)라 했을 것이고
[황후묘와 왕자묘가 있다] 했으니
부근에 2개의 피라미드가 더 있었다는 얘기.
[황제묘, 황후묘, 왕자묘]의 [배열]에 대해서는 대강 짐작할 수 있다.
백제(百濟)는 왜 백제(百濟)인가. <- 관련글
압록강변의 [황제묘, 황후묘, 왕자묘] 또한 위처럼
오리온 별자리 3연성 즉 [삼태성(三太星)]의 형식으로 배열되었을 것이다.
구글어스로 보면 위와 같이
태왕릉 남서쪽에 태왕릉보다 더 큰 피라미드 모양이 있다.
구글어스로만으로는 100%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피라미드로 보인다.
- 큰 직각돌들은 누군가 거의 다 가져가 버렸다.
[황제묘]는 평상 3개짜리 가장 큰 피라미드였을 것이고
일제(?)가 좀 작은 장군총은 그대로 두고
더 큰 태왕릉은 거의 부숴버린 것을 볼 때
그보다 더 큰 [황제묘]는 더 확실히 부숴버렸을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한국고대사를 철저하게 깍아내리는 것이었으므로.
그러므로 [황제묘]는 지금 남아있더라도 큰 돌이 별로 없는 채로 있을 것이다.
위의 피라미드와 같은 모습으로.
3개의 피라미드가 삼태성(오리온별자리 3연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황제묘, 황후묘, 왕자묘]라는 표현을 할만하다.
위에서 보이듯이 이 3개의 피라미드를 중심으로
[황성평] 즉 [집안]이 존재하고 있다.
산으로 둘러쌓인 가운데 평야지대 [황성평]
그 중심은 [황제묘, 황후묘(태왕릉), 왕자묘(장군총)]
보이듯이 저 곳은 압록강 이남에는 평야지대가 작고
압록강 이북에는 평야지대가 많다.
그래서 중심지가 압록강 이북에 있게 됨을 알 수 있다.
저 곳은 [洞(동) - 마을]이라는 말이 생겨나게 된 곳.
[洞(동)]자의 전서들.
이 글자의 ㅂ은 [고대 지도자]를 뜻하고
그 위 모습은 피라미드를 간단하게 그린 것.
[洞(동)]자의 전서들은 [강(水)과 피라미드와 지도자]를 표현하고 있다.
물론 압록강보다 이전에는 고대한국 중심지가 한반도에 있었고
그 지역 강들 (특히 한강, 대동강)유역에도 피라미드가 있었다고 본다.
위에서 사진이 나온 [ 서울시 송파구 석촌동 피라미드]의 연대는 지금 정확히 알수 없고
누군가에 의해서 허물어 졌더라도 고대한국의 또 다른 피라미드 유적들
즉 땅 아래 기단석이 발견될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황성평] 즉 지금의 [집안]을 고대한국 제3차 중심지로 본다.
5~6천년전 지구기온이 최고조에 달했을때 (지금보다 더웠을 때)의 중심지.
지구기온 상승에 따른 고대한국 중심지의 북상 <- 관련글
[신라 금관]
신라금관의 出 형상도 [고대한국 3연성 피라미드]의 표현이라 본다.
[위에 나온 조선 [동여도]의 부분도]
황성평(皇城坪) 옆에 [고환도(古丸都)]라 써 있다.
[고환도(古丸都)]란 옛 [환국(丸國)]의 도읍 즉 서울이라는 얘기.
[고환도(古丸都)]란 말은 [황성평(皇城坪)]을 설명하는 말.
지금도 [집안] 북부에 환도산(丸都山)이 있고 환도산성(丸都山城)도 있다.
[환(丸)]은 [둥글다, 알]의 뜻인데 이는 [태양]을 뜻하는 말 중 하나.
자연계에서 가장 둥근 것이 [태양]이라 하겠는데
[환인(桓因)임금], [환국(桓國)]의 [환(桓)]자 역시
태양 즉 日 이 들어가 있고
한국(韓國)의 한(韓)에도 태양 즉 日 이 들어가 있고
조선(朝鮮)의 조(朝)에도 日 이 들어가 있다.
이는 한국땅이 해뜨는 땅 즉 동방(東方)이기 때문.
즉 [환국(桓國)]이나 [환국(丸國)]이나 같은 말이라 볼 수 있는데
[환(桓)]이 태양 즉 日 을 강조한 글자라면
[환(丸)]은 피라미드를 강조한 글자.
[丸(환) - 전서]
[출처- http://www.internationalscientific.org/CharacterASP/]
아쉽게도 [丸(환)]자의 갑골문 , 금문은 찾지 못했고 전서들은 위와 같다.
이 그림글자은 강(水) 옆에서 사람이 예의를 갖추는 모습.
즉 [강가에 있는 예의 바른 사람의 땅] 정도의 뜻.
그런데 강을 표현하는 동시에 피라미드를 표현하고 있다.
고대한국을 뜻하는 고대한자들에는 이렇게 강과 피라미드를
동시에 표현하는 형태들도 많이 나타난다.
이 글자는 [예의 바른 사람]과 뭔가 [네모난 것]이 있다.
[네모난 것]은 [피라미드]의 간략화.
이 글자들은 [예의 바른 사람]과 [네모난 것]을 함축하여
아예 [피라미드 형상]도 보여주려 하고 있다.
이 글자는 [예의 바른 사람]을 피라미드 모양으로 그리면서
동시에 그 땅이 [선돌]이 있는 땅임을 나타내고 있다 하겠다.
[土(토)]자의 [금문(金文)]에 위와 같은 것들 즉
[선돌에 뭔가 칭칭 감아놓은 모양]도 나온다.
土자의 비밀 <- 관련글
이 글자의 [칭칭 감아놓은 모습]은 고대한자에서
[선돌의 땅] 즉 [한반도-만주]의 고대한국땅을 뜻하기 위해서
간략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흔히 쓰이는 모양.
즉 위 글자는 대강 다음과 같은 뜻.
[ 선돌이 있는 땅에 예의바른 사람들이 사는데 그곳에는 피라미드가 있다.]
선돌은 고인돌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고대문화 중 하나.
고구려 수도였던 아니던 [집안]은 고구려 영토였고
고구려 초기부터 고구려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백제, 신라도 그렇지만 고구려도 고대한국의 적통임을 표방했던 것을 보아도
고구려 , 발해에게 있어서 황성평(皇城坪) 즉 집안은
아주 중요한 곳 즉 성지(聖地)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구려 , 발해가 고대한국 피라미드의 누각을 새로 만들었을 수는 있다.
돌 부분은 수천년을 가도 끄떡 없을 수 있지만
그 위의 누각은 천년 안에 무너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보면 그렇다.
그러므로 피라미드에서 고구려, 발해 때 만든 누각 유적이 나온다 해도
그 피라미드 자체가 고구려, 발해 때 만든 것이라는 것은 아니다.
지금 [집안]의 고대 피라미드들이 고구려때 만든 것이라는 근거는 전혀 없고
그 보다 훨씬 더 전에 만든 것이라는 근거는 결정적인데도
고구려때 거라고 '둔갑'되어 있는 것은
삼국시대 이전 한국사를 모두 없애려는 '일제'의 술수와
역시 그러고 싶어하는 '꽁정파'의 술책이 합해진 결과.
장군총, 태왕릉은 고구려보다 훨씬 이전의 작품 <- 관련글
집안 바로 위가 [통화시], [통화현] 이라는 곳.
슬금슬금 [중국문명의 기원]을 만주로 이동하고 있는 '꽁정파'가
언제부터인가 그 [통화]의 [신별유적]이라는 데에다가
여명문화(黎明文化 - 문명이 시작된 문화)라는 이름까지 붙이면서
중국문명의 기원지라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소위 '백두산 꽁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것은 바로 황성평(皇城坪) 즉 집안이 중국문명의 기원이라고
대대적으로 공개하기 바로 전단계 태세.
고대한국문명을 중국문명으로 '둔갑'시켜보려고 하고 있는 것.
집안 바로 옆 [통화]까지 왔으니
다음단계는 [집안]
꽁정의 마지막 단계에 꽁정파는
' 집안의 피라미드들이 고구려 때 것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중국문명의 기원 때 것이었네요.
그리고 또한 세계문명의 기원이었네요.'
하고 대대적으로 선전할 계획.
그러기 위해서 오랜세월 치밀하게 꽁작을 벌이고 있는 것.
성황당(聖皇堂)의 원조는 고대한국 피라미드 <- 관련글
그리고
아래 글은 [고대한국 3연성 피라미드]에 대한
좀 더 발전적 제시.
[버전2] 고대한국 3연성 피라미드 <- 누르세요
--------------------------------------------------------------------------------------------- 한국 상고사를 다방면으로 접근해야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글들입니다.
한가지 아쉬은 점이라면 주인백께선 무당문화에 별로 관심이 없어보인다는거...^^;;
첫댓글 아주 옛날 제정일치 시대 제사장은 무당(신과 소통하는)아니였을까요?? 우리 전통문화,의식속에 녹아있는 무속, 서양문물이 '과학'이라는 무기로 합리적인 것으로 포장되어 들어와 비논리적,비합리적인 미신으로 의도적으로 비하한 것이라고 봅니다.. 우주와 자연과의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지 '과학적'이라는 낮은 단계로 입증해야만 합리적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과학적,합리적'이라고 규정하는 그 순간 바로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제사장이 바로 무당인거 맞다고 알고있구요. 한국상고사를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도 이 무교가 한웅, 마고시대와 맥이 닿아 있다는걸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