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인 것 같아 올려봅니다. (출처: SERI)
감사합니다.
세계인과 다문화경영(Cosmopolitan & Cross-Cultural Management) - 시삽메일
제73강 저출산 문제에 대한 문화적 접근
2009.12.01, 한세희
최근 정부에서 저출산 문제에 대한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셋째 자녀부터는 대입, 취업 경쟁에서 특혜를 주고 그 부모의 정년을 연장해 준다는 내용입니다. 즉 다자녀 가족을 사회적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게 하겠다는 것으로, 경쟁에서 승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는 것을 엿보게 됩니다.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세계 최저에 근접한 출산율 문제는, 5년 연속으로 OECD 1위를 기록하고 올 상반기 중에도 지난 해에 비해 47%나 증가한 자살률, 그리고 각종 행복지수 통계에서 OECD 꼴찌 수준을 보이고 있는 것과 연결시켜 입체적으로 바라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자살률의 급증은 90년대 중반부터 우리 경제 시스템이 글로벌화하면서 사회 내 경쟁의 수위가 급격히 높아지며 빚어진 사회양극화와 함께 일어난 현상입니다. 사회는 이제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로 나뉘게 되었고, 승자들 역시 언제 패자로 떨어질 지 모르는 살얼음을 딛고 살게 되었습니다. 승자가 될 확률이 바늘구멍처럼 좁아지면서 “패자로 살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이 낫겠다”는 집단무의식이 일부 사람들 가운데 형성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살인적인 자살률이 그 방증입니다.
이는 “내 자식이 패자로 사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안 낳겠다”는 또 다른 집단무의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자손을 통해 생명을 연장하는 생물체이므로 자신의 생명과 자손의 생명은 사실 같은 뿌리입니다. 출산의 포기는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자살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국민소득이 세계 최저 수준이었던 수십 년 전에 비해 우리는 더 잘 먹고,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좋은 집에서 삽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부자 클럽의 회원이 되었고 외국에서는 부러움을 사며 선진국으로 대접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불행해졌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정말 행복한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행복해지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살인적인 입시경쟁, 취업경쟁, 직장 내 승진 경쟁과 해고의 위협, 그리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체제, 가문의 이익과 체면을 앞세우는 전통적 집단주의,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가부장적 권위주의 등 사람들을 행복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은 너무나 많습니다.
무수한 사람들을 우울증으로 내몰고 있는 이 집단 스트레스의 근저에 과도한 경쟁체제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자녀를 많이 낳으면 입시, 취업 등의 경쟁에서 특혜를 받게 된다는 것은 일견 희소식 같아 보이지만, 그로 인해 누군가를 경쟁에서 밀어 내어야 하는 제로섬 게임일 뿐입니다.
경쟁이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적절한 경쟁은 사회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고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합니다. 공정한 경쟁은 원칙을 지키게 하여 사회를 투명하게 하고 강자가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여 사회를 정의롭게 합니다. 그러나, “만인이 만인을 상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벌이는” 과도한 경쟁은 인간성을 훼손하고 사람들 간의 불신을 조장하여 오히려 삶의 질과 사회적 효율을 떨어트립니다.
따라서, 마치 보일러 내의 증기압이 과도하게 올라가면 안전밸브가 열려 이를 조절해 주듯, 한 사회 내에 공정하고 적절한 수준의 경쟁을 유지하도록 관리하는 “경쟁관리시스템(Competition Management System)”이 필요한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안전밸브가 올바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저출산, 자살, 행복지수 등의 문제들은 궁극적으로 해결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일러 내의 최적 증기압”을 결정하듯 “한 사회 내의 바람직한 경쟁의 수준과 방식”을 결정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므로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런 접근이 가능한데, 그것은 경제 중심의 논리에서 한 걸음 나아가 “문화적 관점으로 사물을 보는 것”입니다. 즉, 그 사회 구성원들의 집단무의식 속에 내재해 있는 문화 가치들을 최대한 존중하는 데서부터 출발하여야 하고, 그러한 가치들과 그 사회가 처해 있는 환경적 요소들 사이에 조화를 이루도록 경쟁의 수준과 방식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학교 내에서 모든 학생들의 성적을 1등부터 꼴찌까지 일렬로 세워 공개한 후 성적 순으로 장학금을 주고 더 좋은 교실과 더 우수한 교사를 배치한다면 단기적으로는 성적이 향상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구성원들의 문화에 따라 현저하게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개인주의와 남성성 지수가 높은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아마도 긍정적인 효과가 나올 수 있겠지만, 집단주의와 여성성 지수가 높은 한국이나 타이완 같은 나라에서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부정적인 효과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수치에는 차이가 있지만 타이완 역시 우리와 비슷한 출산율/자살률 패턴을 보이고 있습니다. )
한국보다도 남성성 지수가 현저히 낮은 핀란드가 학교나 학생들 간의 경쟁을 최소화한 교육시스템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학력 수준을 성취하고 있고 지난 15년간 지속적으로 자살률이 감소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우리 문화의 대척점에 있는 앵글로색슨의 가치관에 기초한 사회개혁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더욱 불행으로 내몰 가능성이 큽니다. 이제는 우리 문화에 적합한 경쟁의 강도와 방식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해체된 전통적 공동체 문화를 그대로 복원해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부장적 권위주의에 기초한 그 모델은 더 이상 현대사회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다 민주적이고 평등하면서도 함께 더불어 사는, 공정하고 적절하게 경쟁하여 “모두가 승자가 되는” 새로운 사회 모델을 만들지 않는다면 저출산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선진국 소리를 듣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리지 않고 집집마다 아기 웃음 소리가 들리는 더 행복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많은 부분, 공감합니다, ....윗글의 일부 인용하여 보면, 과당경쟁이 아닌, 적절한 경쟁은 상호간에 유익하다 생각됩니다,
제가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자면 참으로 난감합니다. 여태까지의 조중동 내지는 영향력을 행세한 미디어들의 행태들을 되돌아보면, 저출산 문제는 의도된 기획이라고 여겨집니다.
남북한이 통일이 된다면.. 통일이 되어야만 어지럽게 이야기 하고 있는 소위 '출구전략'? 이라도 구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복잡한 문제는 단순하게 풀 필요가 있습니다.
공감가는 대목이 많으네요..잘 읽었습니다.^^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모두가 승자가 되는 그런 사회를 꿈꿉니다. 글 감사합니다.^^
전 도와줄라캐도 도와줄 수 없는 1인임돠~^^
옳소~!!!! 평등에 대한 새로운 인식 없이는 제 아무리 좋은 정책도 다 쓸모가 없을 겁니다.
대부분 공감합니다^^; 경쟁을 최소화한 교육시스템, 공정하고 적절한 수준의 경쟁을 유지하도록 관리하는 “경쟁관리시스템"은 나라와 민족, 문화를 불문하고 모든 사회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지금의 우리나라에는 절실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