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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나해 2월6일 금요일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수도회] 살아있는 몸짓으로, 분명한 선택을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 프란치스코회 신부 -
† 제1독서 히브 13,1-8
† 복음 마르 6,14-29
바오로 미키 성인은 1564년 무렵 일본 오사카 인근의 도쿠시마에서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예수회 소속의 대학을 졸업한 뒤 수사가 된 그는
열정적으로 복음을 선포하여 대단한 결실을 거두었다. 그러나 바오로
미키 수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박해 때 25명의 동료들과 함께 붙잡혀
1597년 나가사키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 1862년 그를 비롯한
동료 순교자들이 시성되었다.
★ 오늘 독서에서는 히브리인들에게 참된 공동체를 이룰 것을 강조한다.
“형제애를 계속 실천하십시오. 감옥에 갇힌 이들을 여러분도 함께 갇힌
것처럼 기억해 주고, 학대받는 이들을 여러분 자신이 몸으로 겪는 것처럼
기억해 주십시오. 돈 욕심에 얽매여 살지 말고 지금 가진 것으로
만족하십시오”(제1독서).
★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비판을 경청했던 관계였다. 그러나
자신의 생일잔치에서 헤로디아의 딸을 위하여 요한을 처형한 것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두려움에 떤다(복음).
◈ 오늘의 묵상
인류 역사상 이런 선물도 있었던가? 헤로데는 사랑하는 딸을 기쁘게 해
주려고 세례자 요한의 목을 쟁반에 담아 선물했다. 이렇게 해서 당대
최고의 예언자는 임금의 생일잔치 안줏감으로 처형되어 버렸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사랑을 위하여 북을 찢어 조국을 패전시킨 낙랑
공주도, 기울어진 나라를 넘겨준 을사오적의 매국노들도, 원자 폭탄과
네이팜탄과 고엽제 투하와 무차별 학살을 명령한 자도, 고문 기술자도
모두 제 목숨과 가족과 연인은 사랑할 것이다. 사랑이란 이처럼 못할 것이
없을 만큼 위대하지만 그 사랑도 타인의 생명과 공동체의 가치보다 더 커
버리면 헤로데가 되고 만다는 점을 깨우친다.
‘공적인 일을 먼저 하고 사사로운 일은 뒤로 미룬다.’는 뜻의 선공후사
(先公後私)의 삶에는 인정과 정의와 평화가 있다.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고, 도덕과 윤리, 예의염치를 강조하는 이유이다. 사람은 누구나
본성적 욕구에 따라 살기 십상이지만 그 욕구가 선이 되려면 항상
하느님의 법 앞에 있어야 한다. 생각이 본성의 지배를 받으면 이기적
폭력이 될 수 있고, 이성의 지배를 받으면 이웃과 세계를 발전시키는
진정한 사랑이 된다. 헤로데는 그 점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임을 알면서도 자식 사랑 때문에 그를 처형했다.
예수님과 요한은 자신의 길이 죽음을 향하고 있음을 잘 알면서도 하느님에
대한 충실성 때문에 피해 가지 않은 분들이다. 우리는 모두 그분들의
제자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언젠가 사제 서품식
미사의 성찬례가 시작되기 전 복사가 ‘쟁반’을 들고 나와 주교님의 빨간
모자를 받아 드는 걸 보고 덜컹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 매일 미사 -
◈ [수도회] 천국에서 천국으로 -한결같은 삶-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2월6일 금요일(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원 피정 2일째)
성 바오로 미키(1564-1597)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히브13,1-8 마르6,14-29
제1독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3,1-8
복음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4-29
천국에서 천국으로 -한결같은 삶-
산티아고 순례후 귀국날(2014.10.8.),
그리고 11.12일 뉴튼수도원에 갈 때의 태평양 상공에서 쓴 강론에 이어
세 번째 '하늘에서' 쓰는 강론입니다.
제 노트북 앞, 의자 뒷면에는 항공지도가 있어
뉴욕에서 서울까지의 비행경로를 실시간 한 눈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비행기를 탈 때면 내내 확인하는 비행경로의 지도입니다.
아무리 봐도 싫증나지 않고 신기합니다.
그 먼거리의 목적지를 향해 한결같이 날아가는 비행기의 모습이 그대로
막막한 사막의 고독 중에 하느님을 찾아가는 구도자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오늘 강론은 일기체입니다. 오늘 미국시간 2015.2.4.일 한밤중 01시에
일어나 맨손체조와 샤워 후, 2015.2.5.일 강론쓰기에 이어 짐싸기를
완료했고, 05:20분경 홈페이지에 강론을 올렸습니다.
5:20-5:50분까지는 성전에 가서 무릎꿇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고
마지막으로 뉴튼수도원 형제들과 함께 성무일도를 바쳤습니다.
이어 07:00-07:30분까지 86일의 뉴튼수도원에서의 내적순례여정을
마치면서 마지막 미사를 주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개무량합니다.
제 생애, 제 수도여정중 가장 행복했던 날들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예수님은 고향과 친척과 가족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했지만, 저는 86일
동안 내내 뉴튼수도형제들의 따뜻한 환영과 사랑의 환대를 받았습니다.
정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 사막의 영성을 체득한 기쁘고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하여 오늘 이 미사는 감사미사이자 뉴튼수도원을 위한
미사가 되겠습니다.“ 미사 시작하면서의 간단한 멘트입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지요. 잘 살고 못 살고의 사람의 판단은 얼마나
터무니 없는 착각이요 교만인지요.
여기 '사막'같기도 하고 '섬'같기도 한 수도원에서 형제들의 삶은 그
자체가 마음 짠하게 하는 가난입니다. 하느님만이 희망인 가난한
수도자들, 바라볼 수록 물밀 듯 밀려오는 연민의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히브13,8).
참 위로가 되는 히브리서 주님의 말씀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영원히 같은 분이시며, 영원히 함께 계신 예수님과 우정을
깊이하며 시종여일 한결같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바로 이게 살아있는 순교자의 삶입니다. 피흘리는 직접적 순교의 비상한
순교만 있는 게 아니라 대부분은 이런 평범한 순교적 삶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사랑을 일깨워 주고 살아 간 우리의 성인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살다 죽었는지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 받으십시오.
이런 믿음을 본받을 때 순교적 삶에 항구할 수 있는 은총도 받습니다.
일출(日出)의 아침 노을도 아름답지만 일몰(日沒)도 석양도 아름답고
신비합니다. 때로는 일출과 일몰이 구별되지 않습니다.
스페인 피스텔라에서도 그랬고 뉴튼수도원에서도 그랬습니다.
바로 성인들의 삶이 이러했습니다. 한결같은 순교적 삶을 사는 우리도
이렇게 처음과 끝이 아름답고 신비로울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주님의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시편27,1).
바로 사막같은 인생, 순교적 삶을 가능케 하는 시편의 고백입니다.
오늘 복음의 순교자 세례자 요한도, 또 오늘 순교축일을 지내는 일본의
순교성인들도 이런 시편을 고백하며 일상의 평범한 순교적 삶에
항구했기에 거룩한 순교의 죽음을 맞이했음이 분명합니다.
웬만한 믿음의 내공이 아니곤, 평상시의 충실한 순교적 삶이 아니곤 이런
피흘리는 순교는 어렵습니다. 주님 사랑의 절정의 표현이 바로 이런
순교입니다. 하여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3일 바티칸 시성성회의에서
남미 해방신학의 상징 로메로 대주교를 순교자로 선포했고,
이제 시복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합니다.
뉴튼수도원에서 뉴욕공항까지 07:45-11:00기 까지 장장 3시간을 사랑하는
도반, 송 바르나바 수사와 유 마티아 수사가 운전봉사를 해줬습니다.
순간 떠오른 오늘 강론의 주제, '천국에서 천국으로'입니다, 지상의
천국에서 저승세계에로의 천국이 아니라
이승에서 이미 '천국에서 천국으로'의 여정입니다.
모든 자리가 하느님 계신 꽃자리이기에 미국의 '뉴튼수도원' 천국에서
한국의 '말씀의 영보 수녀원' 천국으로의 이동입니다.
'천국에서 천국으로' 비단 수도자뿐 아니라
진정 한결같은 믿음의 삶을 사는 모든이들에게 해당되는 진리입니다.
말씀의 영보수녀원과는 인연이 깊습니다. 작년 안식년이 시작되면서
시작한 연피정이 올해 안식년이 끝나기 직전 또 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뉴욕공항에 전송나온 채 글라라 자매가 또 가슴 뭉클한 감동이었습니다.
뉴튼수도원에 있는 동안 정성을 쏟아주다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없는 돈에 선물을 싸들고 공항에 나온 자매입니다.
하느님은 분명 채 글라라 자매의 부족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공항 탑승구에서 제가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며 손을 흔들어
주던 유마티아 수사와 송바르나바 수사가 강론을 쓰는 지금도 눈에
밟힙니다. 아니 뉴튼수도원에 있는 가난한 모든 수사님들이 한참동안
눈에 밟힐 것입니다.
'눈에 밟히기는' 우리 요셉수도원의 정요한 세례자 수사가
2년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러했습니다.
오늘 복음의 순교자, 요한 세례자를 보니 생각납니다.
말그대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예수님과 함께 가난하게 한결같이 순교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 수도형제자매들입니다.
이런 우리가 하느님께는 늘 눈에 밟히겠지요.
마침 갑자기 생각이 나 태평양 상공 하늘 높이 날면서 뉴튼수도원에
체류하는 약 3개월 동안(2011.11.11.-2015.2.5일) 썼던 강론을 여러 시간
읽으며 제가 저에게 감동했고 즉시 하느님께 감동했습니다.
하느님이 열정과 영감을 주셨기에 가능했던 매일 묵상 강론입니다.
하루를 처음처럼, 평생처럼 산 느낌입니다.
오늘 아침 뉴튼수도원을 떠나기전 사무엘 원장신부에게 겸손히 강복을
청해 받은 것도 참 잘했다 싶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이런 생각을 주신
분도 주님이심을 깨닫기에 감사와 기쁨입니다.
이 강론은 5.6일 수녀원 피정지도 첫날의 강론이 될 것이고, 2.5일 미사는
수녀원에 도착하는 대로 드릴수 있도록 제의방에 조촐히 준비해 달라고
비비안나 비서 수녀님에게 부탁해 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태평양 상공 하늘로부터 이 수철 프란치스코
신부가 여러분 모두에게 강복을 드립니다.
-한국시간 2.5일 하늘에서 오전 03시에 시작하여 오후 3시에 완료-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요셉 수도원 신부 -
◈ [수도회] 기 프란치스코 신부님 - 살아있는 몸짓으로, 분명한 선택을
2015년 나해 2월6일 금요일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마르 6,14-29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마르 6,16)
살아있는 몸짓으로, 분명한 선택을
오늘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수난과 순교를 전해준다. 먼저 세례자
요한이 보여준 삶의 태도와 그의 생애의 의미에 집중해 보자. 오늘의
복음의 배경은 벌써 기원전 1세기경부터 있었던 하스모니아 왕가의
처절한 왕위 쟁탈전의 연장선상에 있다. 곧 정치적으로 대단히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고 로마제국의 힘을 빌어야 할 만큼 국력도 약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례자 요한은 추종자가 약 6천여 명에 이르는 대단한 세력의
중심인물이었다. 따라서 정치권은 긴장하였고 그를 처치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더구나 그는 여덟 번이나 결혼하여 열 명의 부인을 거느린 헤로데
왕의 잘못을 고발함으로써 하느님의 정의와 진리를 선포하였다. 이런 그의
처신이 그들의 미움을 사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1세기 말엽 <유대 고사>에서
세례자의 말로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 군중이 요한의 말을 듣고
매혹되어 모두 그 주위로 모여들었다. 군중이 요한의 권고에 따라
무엇이라도 할 것 같았으므로,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이 그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폭동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두려워했다. 따라서 헤로데는 무슨
변란이라도 일어나서 난처한 처지에 빠져 후회하느니보다 차라리 사건이
진전되기 전에 그를 없애버리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헤로데의
이런 의구심 때문에 요한은 옥에 갇히고 마케론트 요새로 이송되어 거기서
죽음을 당했다.”(18권 116-119항)
헤로데는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라고 하였고, 사실 요한이 그의
적이 아니었음에도 소신이 없고, 비겁하여 스스로를 속이며 요한을
죽였다. 이러한 헤로데의 태도의 결과는 요한의 죽음이었다. 이러한
죽음은 이 세상에서 자주 일어나는 전형적인 삶의 모순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야망, 이해타산, 뻔뻔스러움, 비열함, 그릇된 명예, 죄악, 불의,
세속적인 사고방식 등을 은폐하기 위하여 권력과 명분을 앞세워 무죄한
자들을 짓밟는 폭력행위이다. 더욱 슬픈 사실은 불의와 횡포, 죄악 앞에서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이 거짓과 위선과 체면 때문에 무시되는 것이며,
심지어 그에 대해 무감각하고 수수방관까지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어둠의
역사의 한 면이다. 헤로데와는 달리 요한은 죄악을 폭로시키는 용기가
있었고 자신의 신원과 소명에 대한 확고한 소신이 있었으며 그에 따라
처신하였다. 구체적인 삶의 순간에 그는 선택을 분명히 한 것이다.
오늘 바로 나 자신이 세례자 요한처럼 살아야 하지 않을까? 증거자가
너무도 부족한 이 세상에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과 평화를 몸으로 증거하는
하느님의 사람들이 절실히 요청된다. 오늘 정치와 종교의 충돌, 세속적인
사고방식과 신앙의 진리가 충돌할 때 나의 ‘신앙고백의 자리’는 어디인가?
신앙고백은 세례자 요한이 목숨을 바쳐 ‘주님의 길’을 준비하였듯이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님이 틀림없다.
오늘의 복음은 신앙인들에게 철저한 투신이 요구되며 불의와 거짓과
무관심 앞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선택하는 결단을 요청한다. 각자
기도하며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 오늘 나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나의 태도는? 죄를 짓고 소신 없이
우물거리는 헤로데처럼 그분을 외면할 것인가? 유다인들처럼 현세 생활을
윤택하게 해줄 해방자로 생각하는가?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자신의
안위에 연연하는 삶이 과연 아름다운 인생일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서울]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2015년 나해 2월6일 금요일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제1독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3,1-8
복음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4-29
어제는 부제서품식이 있었고, 오늘은 사제 서품식이 있습니다. 49명의
젊은이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성직자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새 사제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사람, 교회의 사람으로서 충실하게 주어진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용기와 지혜를 청합니다.
예전에 원로 신부님께서 새 사제에게 해 주신 덕담이 생각납니다. 그
말씀은 사제생활 24년을 넘어선 저에게도 소중한 말씀이 되었습니다.
사제는 ‘예의’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사제직은 벼슬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사제는 권위는 있어야 하지만 권위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말에게 사람들이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 등에 있는 십자가를 향해서 절을 한다는 것을 알듯이, 사제에게 주는
사랑과 존경은 사제가 선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른들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으로 돌보는 것은
사제가 갖추어야 할 첫 번째 덕목입니다. 말은 신중하게 하고, 복장은
단정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만 잘해도 신자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사제는 ‘강론’ 준비를 충실하게 해야 합니다. 이른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늦은 밤까지 야근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가족들을 위해서 갖은 수모와 모욕까지도 기꺼이 참아가는
가장들이 있습니다. 사제는 그분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강론을 해야
합니다. 사제가 독신으로 지내는 것은 온전한 몸과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전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
만큼 사제는 강론 준비를 치열하게 해야 합니다. 잘 준비된 강론은 일상의
삶에 지친 신자들에게 갈증을 풀어주는 생명수가 될 것입니다.
사제는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샘물은 계속 퍼내야 새로운 샘물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사제는 매일 기도의 샘물을 퍼야합니다. 그래야
영혼이 정화되고, 그래야 시대의 징표를 볼 수 있고, 그래야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식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제는 창문 없는 집에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창문이 없는 집은 감옥과 같은 것입니다. 하루의 문을
기도로 연다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칠지라도 넉넉하게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제는 ‘공부’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신학교의 공부는 3년이 지나면 이미
낡은 것이 돼 버립니다. 세상은 그렇게 빠르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신학,
인문학, 철학, 경제, 문학’과 같은 책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고백소에도,
사제관에도, 사무실에도 늘 책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사는 비용은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책은 세상과 소통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제는 ‘건강’해야 합니다. 적당한 운동으로 주어진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체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밝은 정신으로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가까이 하고, 소외된 이웃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제의 영혼도 건강해 지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이 있어야 그
위에 사목의 꽃이 필 수 있습니다.
새 사제들에게 오늘의 성서 말씀을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도회] 2015.02.06.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형제애를 계속 실천하십시오.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 (히브 13,1-2)
요즘은 핵가족 시대요. 아파트문화가 판치는 시대라
집에서 손님 접대 할 일은 많지 않지요?
우리는 보통 나와 가까운 가족, 친지, 친구들과는
잘 어울리고 또 잘 대해 주지요.
그런데 내가 잘 모르는 사람, 낯선 사람에 대해서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이 당연한 것인 양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사실 형제애란 가까운 사람들끼리 하나고 되고 즐기는 거라면
조폭문화와 다를 게 없습니다.
참 형제애는 내가 잘 모르는 낯선 사람, 손님들에게 잘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모든 사람이 나의 형제가 되는 것이겠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부 사람들에게만 형제가 되어주고
다수의 다른 사람들에겐 형제가 되지 않아도 좋다고 가르치시지 않고
만인의 형제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들이기에
우리 모든 형제라는 사실을 다시 회복하지 못한다면
하느님 나라는 요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낯선 사람, 모르는 사람, 손님들에게 잘 해 줍시다.
그들이 하느님께서 나에게 보내신 천사들일지 누가 압니까?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청주] 체면을 지킨다는 것|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2월6일 금요일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마르 6,14-29)
제1독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3,1-8
복음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4-29
체면을 지킨다는 것
여자는 기념일을 먹고 살고 남자는 체면을 먹고 산답니다. 여자는 쉽게
감동하기에 그렇고 남자는 자존심을 세워주면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그러나 자존심을 건 맹세는 함부로 할 것이 아닙니다.
헤로데 왕은 요한 이라는 인물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습니다(마르6,20). 그런데 그에게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는데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게 되었습니다. 왕은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을 즐겁게 해 주었기에 그에게 원하는 선물은
무엇이든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헤로디아의 딸은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르6,25)하고 요구하였습니다. 너무도 당혹스런 선물입니다.
헤로디아는 요한이 자기의 결혼에 대하여 잘못되었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앙심을 품고 있었던 터였습니다. 그 앙갚음의 기회를 딸을 통해서 하게 된
것입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더니……,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이미 약속한 것이고 또 손님들이 보는 앞이라 그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습니다(마르6,26). 그래서 결국은 요한의 목을 베게
되었습니다.
의인의 목숨과 자존심을 건 맹세에서 하나를 선택했거늘 그 놈의 자존심이
뭔지? 체면이 뭔지? 악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누가 뭐라 하든 “다만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라고 만(야고5,12)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의로운 일에 자존심이 좀 상하면 어떻고
체면이 좀 손상되면 어떻습니까? 가정에서도 직장 안에서도 그리고 어떤
공동체 안에서든 더 큰 것을 위해서 자존심이 상하고, 체면에 손상을 입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안에 그리스도의 기쁨과 평화가
함께 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자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비천하게 살 줄도 알며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 고프거나 넉넉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을 힘입어 나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필립4,12-13).
능력을 주시는 분을 힘입어 어떤 처지나 여건 안에서도 꿋꿋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는 것이요, 그것이 우리의
기쁨입니다. 위신, 체면을 지켜야 할 때 지키십시오! 자존심을 내세워야
할때 내세우십시오! 그리고 헛것인줄 알았으면 곧 버리십시오! 서둘러
버리십시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 병원 행정 부원장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서울] 종들의 종이란 말은
2015년 나해 2월6일 금요일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제1독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3,1-8
복음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4-29
◆ 종들의 종이란 말은
못되게 기르면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가 되고 크면 간이 붓는다지요?
자기위주로 살고 이기려고 무슨 짓이든 하고 남을 사람취급 안하지요?
역대 독재자들이 그런 자들이고 아니면 감방에 들어가 인생 보내야지요.
예수님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종이 되라 하셨습니다.
종들의 종(Servus servorum)이란 말은 교황이 자신을 칭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예수님의 가르침인 나눔 봉사 용서 회개를 촉구하며
살지요.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마르코 6,25~26)”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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