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의 시와 베토벤의 음악
동독 국가보안부 취조관이며 비밀 경찰대학의 교수인 비즐러(울리쉬 뮤흐 분)의 삶을 바꾼 것은 브레히트의 시집〈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베토벤의 음악인〈아름다운 영혼의 소나타〉였다. 사회주의 이념과 체제의 신봉자인 비즐러 대위는 시인이며 극작가인 드라이만(세바스티안 코치 분)과 그의 연인인 연극배우 크리스타(마르티나 게덱 분)의 일상을 훔쳐보기(도청) 전까지는 자신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살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카프 계열의 어느 시인이 ‘잃은 것은 예술이며 얻은 것인 이념이었다.’고 탄식했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 비즐러는 ‘잃은 것은 주체적 삶이었으며 얻은 것은 타인의 삶이었다.’라고 역설적으로 술회하며 행복감에 젖었을지도 모른다.
극작가 드라이만은 평소에 존경해 마지않던 연출가 예르스카의 자살 소식을 접하고 연인 크리스타가 곁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피아노로 베토벤의〈아름다운 영혼의 소나타〉를 연주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같은 순간 냉혈한 비즐러도 그 음악을 도청하며 황량한 자신의 영혼을 위무 받는다. 그 전부터 비즐러에게는 변화의 조짐이 일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드라이만의 집을 수색하는 비즐러는 두 연인의 침대를 쓰다듬으며 사랑 없는 자신의 비정한 삶을 쓸쓸하게 반추하고,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브레히트의 시집을 몰래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브레히트의 시를 읽는 그의 눈가에 비치는 눈물방울은 주체적 삶을 이념과 체제에 저당 잡힌 채 ‘타인의 삶’을 살아온 그 자신에 대한 회한과 애도의 정서적 반응이었다.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의 장편 데뷔작이며 2007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인〈타인의 삶〉(2006)은 사회주의 체제에 의한 자유와 인권의 박탈을 고발한 정치적 영화라기보다는, 그러한 질곡을 벗고 타인의 삶에 의해 자신의 주체적 삶을 회복해 가는 한 냉혈적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멜로드라마에 가깝다. 이 영화에는 세 부류의 인간형이 소개되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 중심적 인물과 체제 안에서 밖을 그리워하는 경계인, 그리고 체제에서 체제로 이동하는 인물형이 바로 그것이다.
서로 연인 사이인 극작가 드라이만과 연극배우 크리스타는 함께 동거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주의 이념과 체제에 순응하여 인정을 받고는 있지만 근원적인 자유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 극작가 드라이만은 촉망받는 시인이지만 동독 예술가들의 자살률을 자유주의 진영 서독의 언론에 고발하고 싶어 한다. 연극배우 크리스타는 사랑과 예술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지만 둘 다를 함께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런 점에서 두 연인은 체제 안에서 체제 밖을 그리워하는 경계인들이다.
문화부 장관 햄프(토마스 디엠 분)와 그의 하수인인 출세지향주의자 그루비츠(울리히 터커 분)는 사회주의 체제의 핵심 인물이다. 햄프는 배우라는 직업의 안정적 보장을 미끼로 크리스타의 몸을 탐하다가, 결국에는 그녀를 완전하게 소유하기 위해 드라이만의 뒷조사에 혈안이 된다. 비즐러의 비밀 경찰대학 동기이지만 지금은 상관인 그루비츠는 결국 드라이만의 범죄에 대한 물증을 잡기 위해 그녀를 조직의 하수인으로 지목하는 계략을 꾸미게 된다. 이 두 사람은 체제 중심의 인물들이다.
비즐러는 그루비츠의 지시에 의해 두 연인의 사생활을 낱낱이 감시하게 된다. 그러다가 브레히트의 시에서 발견한 자유주의적 풍경과 베토벤의 음악에서 영혼의 위무를 받아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그는 두 연인의 삶에 동화되어 그들의 범죄 행위를 은닉해 주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감시에 대한 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하고, 또 다른 감시자의 정확성이 결여된 보고서를 훌륭한 것이라고 칭찬하기도 한다. 결국에는 신분의 추락을 애써 감수하며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자기 삶의 주체적 인물로 거듭나게 된다.
타인의 삶에 감염되어 인간의 길을 걷다
이 영화는 크리스타의 죽음을 통해 절정으로 치닫게 된다. 드라이만은 등록되어 있지 않는 서독제의 타이프라이터로 ‘동독의 자살 통계, 그 아픔의 숫자’라는 제호의 동독 예술가들의 자살에 관한 르포 기사를 써서 슈피겔지에 싣게 된다. 그 글이 방송에 보도되자 그루비츠는 감춰진 타이프라이터의 행방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드라이만의 집을 수색하게 된다. 결국은 크리스타의 자백에 의해 타이프라이터가 문지방 밑에 숨겨진 사실을 확인하게 되자, 비즐러는 서둘러 드라이만의 집에 달려가 타이프라이터를 몰래 빼낸다. 그렇지만 크리스타는 문지방을 뜯는 수사관들을 목격하고, 자책감에 거리로 뛰쳐나가 질주하는 화물차에 몸을 던지는 행위를 통해 속죄하게 된다.
영화〈타인의 삶〉은 34세 젊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답지 않게 치밀하고 끈질긴 화법의 화면으로 일관하고 있다. 옛 동독의 음울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잿빛 톤의 미쟝센 구사, 극중 인물들의 치밀하고 섬세한 리얼리즘 연기, 암울한 사회주의 체제 속의 불안과 우울함의 정서를 건드리는 가브리엘 야레드의 음악, 서사의 이음새에 틈이 생겨나지 않게 메인 플롯과 잔가지로서의 에피소드를 교묘하게 직조한 편집의 놀라운 세공력 등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 특히 통독 뒤의 후일담을 통한 관찰자적 시선으로서의 마지막 몇몇 반전 씬의 서사적 기교는 정말 놀랍다.
우편실로 좌천되어 무미건조한 나날을 보내다가 통독의 기쁨을 무표정하게 받아들이는 비즐러, 철저하게 감시당하고 있었다며 드라이만에게 야유조로 중얼거리는 햄프 장관, 허위 감시 보고서 작성 때문에 자신의 안위가 보장될 수 있었으며 그 장본인인 비즐러의 비밀 번호가 ‘HGW XX/17'이었다는 것을 확인하며 착잡한 표정을 짓는 드라이만.
비즐러는 퇴근하다가 서점의 진열대 안에 나붙은 드라이만의 사진이 붙어있는 책 광고를 보게 된다.〈아름다운 영혼의 소나타〉라는 책의 속표지에는 ‘HGW XX/ 17에게 이 책을 바친다.’라는 저자 드라이만의 헌사가 들어있다. 책을 선물용으로 포장하겠느냐고 서점 직원이 물어오자, 비즐러는 “저를 위한 책입니다.”라고 간명하게 대답한다. 드라이만의 헌사가 자신의 삶을 지켜준 타인의 삶에 대한 고마움이라면, 비즐러의 간명한 대답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변화시켜 준 타인의 사람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일 것이다.
타인의 삶을 바꾼 타인의 삶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는 1973년 독일 쾰른에서 태어난 젊은 감독이다. 그는〈도베르만〉(1999),〈십자군〉(2000) 등의 단편영화를 연출했는데 이 영화는 그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수상, 골든 글로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노미네이트 외 11개 세계 유명 영화제에서 수상하여 그의 천재적 영화 감각을 널리 각인시켰다. 이 영화는 4년 여의 사전 제작 기간과 1년여의 촬영 기간 끝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타인의 삶을 바꾼 타인의 삶에 관한 영화이다.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의 비즐러의 삶은 진정한 자신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이었다. 그런데 그는 타인의 삶을 엿보게 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내부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지금까지의 타인의 삶을 반성하고 진정한 자아 찾기를 결행하게 된다.
결국 이 영화는 타인의 삶에 감염되어 비로소 진정한 자아를 찾아 인간의 걸을 걷게 된 한 사내의 삶의 편력으로, 인간을 변화시킨 예술의 위대한 힘을 상징적으로 찬양하고 있다. 주인공 비즐러 역을 연기한 배우 울리쉬 뮤흐가 2007년에 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은, 자신의 진정한 주체적 삶을 옳게 살아보지도 못한 영화의 주인공 비즐러를 연상하게 해 아이러니컬하다 못해 어떤 운명의 강한 느낌을 갖게 해 준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에도 우리의 눈에 떠오르는 극작가 겸 연출가인 브레히트의 시 구절, 슬프고 아픈 영혼을 아름답게 위무하는 베토벤의〈아름다운 영혼의 소나타〉의 음률을 영영 잊지 못할 것이다. 그것들은 한 사내의 삶을 변화시켰듯이 필시 우리의 삶도 변화시킬 수 있겠기에.....
첫댓글 이런 무거운 주제를 빨려들게 만든 분들 정말 존경합니다. 김문홍 선생님 영화 평 읽고 나니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젊은 감독인데 통찰력이 대단합니다.
4년 여의 제작 기간과 1년 여의 촬영 기간만 보아도
치밀한 감독의 성격이 느껴집니다.
시와 음악을 넣어 예술혼을 승화시킨 영화 감상평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