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에서 대웅전을 향해 가는 스님들
경내 불영계곡
불영사의 상징인 부처바위. 부처 앞에 제자들의 바위도 보인다. 이 바위가 불영사 연못에
달밤에 비추면 영락없는 연지에 부처가 화현한다.
숲길을 포행하는 비구니 선승들
불영사 연지
600년된 경내 은행나무. 몇해전 벼락이 이 은행나무를 때렸다. 불상을 조성하기에 가장 알맞은 크기로
나뉘어진 이 고목으로 대웅전에 세 불상을 조성했다.
경내 은행나무로 조성한 세 불상
대웅전에서 예불을 드리는 스님들
사시사철 참선정진하는 경내 천축선원에서 참선 시작을 알리는 목탁을 울리는 선승
경북 울진 불영사다. 금강송과 경내의 배추, 연못 어느 것 하나 이곳 비구니 선승들을 닮지 않은 것이 없다. 푸르디 푸르다.
20여년 전만해도 퇴락한 천년고찰을 이토록 아름답고도 청정한 수행 도량으로 일군 이가 비구니 주지 일운(60)스님이다. 그가 이번에 <김치나무에 핀 행복>(담앤북스 펴냄)이란 책을 냈다. 사찰 요리 전문가가 아닌 선승이 어인 요리책일까.
“사람이 사는데 다섯가지 필요한 조건이 있어요. 깨끗한 공기·물·환경·음식·마음입니다.”
수행과 음식이 둘이 아님을 확연히 알게 하는 그의 한마디에 의구심이 단박에 녹는다.
그가 <불영이 감춘 스님의 비밀레시피>에 이어 이번에 소개한 ‘불영사의 85가지 김치 비법’이 더욱 궁금해지는 것은 가을 하늘처럼 맑고 밝은 그의 얼굴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책 어디를 뒤져도 특별한 건강식을 만드는 비방 같은 것은 없다.
“병은 자족할 줄 모른채 탐욕으로 먹는데서 비롯되지요. 감사하게 먹고, 30번 이상 씹고, 반드시 산책만 해도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냉장고에 보관한 귀중한 음식이 아니라 내 주변에서 자라는 채소가 최고의 건강식이고, 이것 저것 넣어 맛을 낸 요리가 아니라 첨가물 없이 채소 고유의 맛을 낸 음식이 최고지요.”
장독에서 묵은김치를 꺼내는 일운 스님
김치를 든 일운스님
김치들고 내려오는 일운스님
공양간에서 직접 요리하는 일운 스님
원주 스님과 함께 밥상을 차리는 일운 스님
음식상을 차리고 있는 일운 스님
불영사의 깔끔한 손님 밥상
일운 스님이 끓인 송이죽
너무도 간단하다. 그러나 식당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 가정에서도 잘 지켜지지 않는 원칙이다. 그래서 그의 책은 탐욕과 감각의 노예가 되어 본래의 담백한 맛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을 깨우는 죽비다.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실리는 무게는 다르다. 그는 단순 명쾌한 삶을 몸으로 살아낸 이다. ‘인생의 주인이 누구냐’는 의문을 풀기 위해 17살에 집을 나와 경북 청도 운문사로 출가한 그는 단 한번의 후회 없이 안팎의 극락세계를 만들며 달려왔다. 한 겨울에도 목도리와 모자와 장갑도 없이 손등이 부르트도록 나무를 하고, 노스님들의 요강을 배우고, 군불을 때느라 피곤해 나무둥치 위에서 졸다 떨어진 채 계속 잠이 들 정도의 고된 행자생활을 5년이나 하면서도 기쁘기만 했다는 그다.
무려 58명이 그를 멘토로 삼아 출가길에 들어섰다. 30대 초에 타이완에 유학을 가 배우는 처지에 있던 그에게 오히려 타이완의 젊은이 7명이 출가하는 희한한 상황이 연출된 것도 삶과 수행이 둘이 아닌 그의 모습 때문이었다.
인구 밀도가 가장 낮은 오지의 행사에 만명 넘은 손님이 찾아들고, 그가 캄보디아와 북한 어린이를 돕자고 한달에 1만원씩 내며 함께 수행정진하자는 염불만일결사에 벌써 1천여명이 동참한 데서도 그의 흡인력을 알 수 있다.
주지실에서 손님들과 환담하는 일운 스님
다른 스님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일운 스님(가운데)
음식축제를 알리는 플래카드 앞을 지나는 일운 스님
경내 배추밭의 일운 스님
수행자로서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그이기에 ‘인간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가장 큰 오산이다. 손수 요리를 해 노스님들을 공양하고, 추석 밤엔 승려·신자들과 함께 말춤을 추면서 ‘달밤에 체조’도 할 줄 아는 풍류객이기도 하다.
오는 13일 불영사에 가면 그와 불영사 식구들이 마련한 푸짐한 음식을 맛보고 장사익 등의 공연까지 볼 수 있다. 사찰음식축제와 산사음악회에서 요리와 노래 말고도 놓치지 말야야 할 것은 오후엔 일체 음식을 먹지 않으면서도 늘 빛을 잃지않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일운 스님의 마음이다.
울진/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