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영어 재목이〈사랑할 때와 죽을 때(The Time To Love The Time To Die)〉인〈童年往事〉는 허우 샤오시엔의 1985년도 작품으로, 이 영화는 베를린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하여 대만의 뉴 시네마 영화 운동의 저력과 그의 영화작가로서의 국제적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펭퀘이에서 온 소년들〉,〈동동의 여름방학〉과 함께 그의 자전적 3부작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주인공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의 삶의 통과제의로서의 성장 과정을 롱 쇼트에 의한 장시간 화면의 독특한 표현 기법으로 그리고 있다. 그의 독특한 표현 기법인 롱 쇼트에 의한 장시간 화면의 형식적 특성은 이 작품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비정성시〉가 역사 속에서의 한 가족사의 부침을 통한 삶의 의연한 자세와 인간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담고 있다면, 이 작품은 한 가족의 잔잔한 일상사 속에서의 가족 관계에서 비롯되는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의 통과제의를 통해서 한 인간이 성숙되어 가는 과정을 시적인 영상으로 담담하게 그려가고 있는 작품으로 대만의 현대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아하’라는 인물이다. 전직 교사 출신인 아버지와 어머니, 두고 온 고향(대륙)에 대한 원초적 향수로 인해 몽유병자처럼 일상의 공간을 떠도는 할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함께 가족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장녀 훼이린, 그리고 장남 아쫑을 비롯한 세 동생인 아하오, 아하, 아미 등의 인물들이 허우 샤오시엔이 설정한 롱 쇼트에 의한 장시간 화면의 프레임 속에서 만남과 이별, 사랑과 죽음이라는 삶의 드라마를 펼쳐가는 가족의 이야기이다.
작가 허우 샤오시엔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아하를 중심으로 삶의 드라마가 연대기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전개되어 나가고 있는 이 작품은 1940년대 후반 대만의 산죽 지방의 이하의 집과 마을, 그리고 학교를 배경으로 시적인 일상의 풍경이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게 펼쳐진다. 헐리웃 영화의 인과율에 의한 서사 구조를 따르기보다는 주인공 아하의 성장 과정을 따라 단편적인 일상의 풍경들이 우리 앞에 제시되는 것이 이 작품의 시 공간적 특성이다.
아하의 아버지는 전직 교사 출신으로 지금은 집에만 칩거하면서 늘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있다. 나중이 아버지가 죽고 나서 유품 중에서 비망록이 발견되는데, 아버지는 폐결핵에 걸린 사실을 가족에게 숨긴 채 재채기도 함부로 못 하고, 식기도 따로 쓰면서 가족의 접근을 꺼려했다는 숨은 의도가 바로 그 비망록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자식들의 접근을 꺼려하며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은 사실은 그러한 일 때문이었다고 이를 동생들에게 알려주며 오열하는 장녀 훼이린의 모습은 일종의 비장미를 느끼게 하고 있다. 할머니의 이상한 행동은 원초적 향수의 은유적 표현이다. 할머니는 은박지로 저승에서 쓸 돈을 만들기도 하고, 어느 때는 아하와 함께 대륙으로 가자고 조르기도 하고, 말년에는 인력거를 타고 집을 떠나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아하와 함께 석류 열매를 가지고 공기받기를 하는 등 두고 온 고향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은유적 현실로 드러내고 있다.
어머니와 장녀 훼이린의 끈질긴 생명력은 대만 여인들의 가족에 대한 진한 연대감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집안의 생계를 떠맡는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하는 매사에 반항적이고 거칠다. 비오는 창가에서 거칠게 사랑 노래를 부르고 있는 아하의 곁에서 어머니는 장녀 훼이린에게 구차했던 과거의 삶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퍽 인상적이다. 어머니의 돌연한 죽음은 아하의 정신적 성숙의 중요한 계기가 된다.
어머니의 장례식 장면은 삶과 죽음의 윤회관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장례식에 장송곡으로 쓰여지는 곡은 어이없게도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가인 ‘고요한 밤’이다.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현실적인 슬픔과 탄생이라는 미래에의 낙관적 전망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충돌시킴으로써, 허우 샤오시엔은 죽음과 삶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라는 중국적 전통의 윤회적인 생사관을 제시하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은 장녀 훼이린과 아하에게 정신적 성숙을 가져다주는데, 훼이린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대북으로 떠나고 아버지의 죽음 이후 비행을 일삼던 아하는 한층 성숙된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은 부권의 상실을 의미한다. 아하는 부권의 상실로 인해 삶의 중심에서 벗어나 마을과 학교에서 비행을 일삼게 되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는 다시 삶의 중심으로 돌아오게 된다. 예씨 집에 빚을 받으러 갔다가 그 집의 구차한 살림을 보고 포기한 채 그냥 돌아오는 경우, 여자 친구 우 수메이의 권유로 사관학교를 포기하고 대학 진학을 결심하는 장면 등이 이를 잘 예시하고 있다.
가족 구성원의 죽음은 아하에게는 하나의 통과의례로 작용하고 있는데, 죽음에 따라 아하의 현실을 보는 시각과 행동 패턴이 달라지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의 가족들의 그 죽음에 대한 태도는 사뭇 다르게 나타난다.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카메라는 수평이동하는데, 연륜에 따라서 슬픔의 농도가 큰 편차를 보이게 되어 그 감정의 굴곡이 아주 미세하게 표현되고 있다.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의 네 아들의 속수무책과 삶에 대한 방관의 철없음은 가히 충격적이다. 할머니의 시신이 썩는 줄도 모르고 방치해 두었던 네 형제의 철없는 무관심을 질책하는 장의사 직원들의 무언의 표정은 분노보다는 진한 연민을 자아내게 한다. 할머니의 시신 앞에 우뚝 서 있는 네 형제의 막막한 표정의 막막한 표정의 라스트 신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 속에 장녀 훼이린이 끼어있지 않은 까닭은, 앞으로의 집안의 생계 책임에 대한 누나의 역할 거부를 상징하는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네 형제의 어깨 너머 저편에 존재하는 누나의 역할에 대한 상징성은, 인간의 삶에 대한 허우 샤오시엔의 낙관적 전망으로 이 영화의 역동적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영화의 표현 미학은〈비정성시〉보다는 훨씬 더 시적이고 환상적이다. 그 첫째 요소가 롱 쇼트에 의한 장시간 화면의 기법이다. 이 기법은 여러 대상을 동시에 한 화면 속에 보여줌으로써 그 대상들 간의 상호 관계를 파악하게 해주며, 아울러 인물이 화면 밖으로 사라지고 나서도 같은 쇼트를 지속시켜서 그 상황의 의미를 관객의 심상 속에 오래 간직하게 해주는 의미 공간 확대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짧은 쇼트의 연결에서 오는 이미지의 단절을 피하기 위한 기법으로 허우 새오시엔의 독특한 영상 미학이기도 하다. 그는 같은 쇼트 내에서도 공간의 이동이 필요한 경우에도 쇼트끼리의 연결보다는 카메라의 수평이동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의미 공간과 감정의 지속을 그대로 유지시켜 주고 있다. 특이한 점은 인물들의 움직임의 속도에 따라서 카메라의 수평이동 역시 완급의 리듬으로 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좌우로의 공간 이동의 경우에는 수평이동의 기법을 쓰고 상하로의 공간 이동 역시 쇼트의 연결을 피해 틸트 업과 틸트 다운의 기법을 시용함으로써 장시간 화면을 그대로 유지시키고 있다.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죽음에 대한 감정 표현을 제각기 다르게 나타내는 가족들의 묘사에서 사용되는 수평이동의 기법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영화의 표현 미학 중 두 번째 특징은 삶의 페이소스를 나타내는 음악과 현실음의 사용이다. 이 작품에서의 음악과 음향은 중요한 의미 기능을 지니는데, 인과율에 의한 서사 구조가 아닌 단편적인 일상의 풍경과 그 속에서의 정적인 삶의 움직임을 그얬서의 기 때문에, 여기서 사용되는 음악과 음향은 중요한 오브제의 기능을 지니게 된다. 지극히 절제된 애수를 띤 단조음의 피아노 음악, 빗소리, 흔들리는 나뭇잎, 자동차와 자전거 소리,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 등의 자연음과 일 기인 현실음은 껼인공 아하의 성장에 따른 삶의 변화라는 추이 과정을 은유기인 현실음은 주고 있다. 나뭇잎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소리, 석류나무 이파리들의 격렬한 움직임,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 등은 껼인공 아하의 성장 과정에 따른 좌절과 불안, 그얬서의고뇌의 심리 상태를 적절하게 실음은 주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부권의 상실로 인한 청소년기의 아하의 여러 가지 비행 등에서 일상의 현실음이 많이 사용되는 좃을 바로 이러한 까닭에서이다. 또한, 이 작품은 화면 밖에서 들려오는 여러 가지 음향을 통해 다음 장면의 상황을 미리 예고해 주는 기법도 자주 사용하고 있다.
허우 샤오시엔은 이 영화에서 ‘비서술 인서트’를 두드러지게 사용하고 있다. 이 표현 기법은 극적 공간이나 사건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텅 빈 거리나 나무들을 보여주는 쇼트로서, 인과율에 의한 서사 구조의 사건 진전에는 직접 관여하지는 않으나 장면 전환의 여백을 채우는 쇼트의 기능을 가지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장면 전환의 시간적 여백 처리의 기능도 담당하고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앞 장면의 이미지를 관객의 심상에 지속적으로 남아있게 하면서 다음 장면의 상황을 에고하는 의미 공간 확대의 기능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