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의 「가을 수력학(水力學)」감상 / 문정희
가을 수력학(水力學)
마종기
그냥 흐르기로 했어.
편해지기로 했어.
눈총도 엽총도 없이
나이나 죽이고 반쯤은 썩기도 하면서
꿈꾸는 자의 발걸음처럼 가볍게.
목에서도 힘을 빼고
심장에서도 힘을 빼고
먹이 찾아 헤매는 들짐승이 되거나 말거나
방향 없는 새들의 하늘이 되거나 말거나
암, 그렇고 말고,
천년짜리 장자(莊子)의 물이 내 옆을 흘러가네,
언제부터 발자국도 없이
타계(他界)한 꿈처럼 흘러가네.
—시집『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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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혼(詩魂)은 이역에 살면서도 노장(老莊)의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체득하고 있다. 하지만 ‘가을 수력학’이라는 시제부터 사상이 아니라 시로 돌입하고 있다.
시인이란 누구일까? 배신자라는 낙인 때문에 조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먼 나라 베니스의 망자의 섬에 묻힌 에즈라 파운드(에즈라 파운드의 생애에 대한 내용은 '손님방' 참조)를 보고 시인은 또 이런 시를 쓰기도 한다.
‘나는 시를 버리더라도 먼저 바른 길을 가려보자. 센 바람 불어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고 약속한 뜻은 겁이 나도 지키고 힘들면 울어도 포기하지 말자'(시 「亡者의 섬」)고 한다. 30년 전의 시집에서 바로 오늘인 듯 생생하게 묻고 있는 시인이 새삼 그립다.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시인의 용도는 무엇입니까.
에티오피아에서, 소말리아에서
중앙아프리카에서
굶고 굶어서 가죽만 거칠어진
수백 수천의 어린이가 검게 말라서
매일 쓰레기처럼 죽고 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베트남에서
오늘은 해골을 굴리고 놀고
내일은 정글 진흙탕 속에 죽는 어린이.
열 살이면 사람 죽이는 법을 배우고
열두 살이면 기관단총을 쏘아댑니다.
엘살바도르에서, 니카라과에서
중앙아메리카에서, 남아메리카에서
해 뜨고 해 질 때까지 온종일
오른쪽은 왼쪽을 씹고
왼쪽은 오른쪽을 까고
대가리는 꼬리를 먹고
꼬리는 대가리를 치다가 죽고.
하루도 그치지 않는 총소리,
하루도 쉬지 않는 살인
하느님 시인의 용도는 어디 있습니까.
이란에서, 이라크에서, 이스라엘에서
레바논에서, 시베리아 벌판에서
세계의 방방곡곡에서
하느님, 시인의 용도는 무엇입니까.
남들의 슬픔을 들으면 눈물이 나고 가슴이 아프고
남들이 고통 끝에 일어나면
감동하여 뒷간에서 발을 구릅니다.
어느 시인이 쓴 투쟁의 노래는 용감하지만
내게 직접 그 고통이 올 때까지는
어느 시인이 쓴 위로의 노래는 비감하지만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하신 하느님
그러나 시인의 용도는 무엇입니까.
—「시인의 용도」, 마종기
문정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