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집 한 채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저 비탈 바다 온통 단풍 불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가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겠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진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살길에 접어들어
함께 불붙는 몸으로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 넣고서
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
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
토방 밖에는 황토 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아주 잊었던 연모 머리 위의 별처럼 띄워놓고
그 물색으로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겠네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
매봉산 넘어 원당 지나서 두천
따라오는 등 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
때때로 삶이 팍팍하고 고달플 때, 누군들 비포장도로를 열 몇 시간쯤 달려 길의 저 끝에 홀연히 열리는 낯선 너와집에 숨어들어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소금이나 핥으며 한가롭게 사는 꿈을 꾸지 않으랴. 속세를 등지고 세상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외딴 행복을 오롯하게 누리고 싶지 않은 자가 어디 있으랴.
그곳은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는 곳, “화전에 그슬린 말재 너머” 외딴 골짜기에 너와집 한 채가 있다. “따라오는 등 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고 첩첩 산 너머 꼭꼭 숨은 그곳에서 은일자의 삶을 살고 싶다. 들어오는 길을 지워버렸으니 나가는 길은 없다. 없으면 있는 자에게 아첨하고, 있으면 없는 자 위에 군림하며 교만을 부린다. 그게 세상이다. 그런 세상과의 일체 인연이 끊긴 곳이니 세상 사람들이 욕망하는 부귀영화라는 것도 다 덧없다. 이곳에는 치과의사도, 주유소도, 경찰서도, 세무서도, 부동산 중개인도 없다. 하루종일 기다려도 사람 그림자 하나 비치지 않는 곳이다. 있는 것이라곤, 화전민이 살다 떠나 빈 너와집 한 채,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진 개옻 그늘”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 그리고 “황토 흙빛 강아지 한 마리”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뜨는 나 어린 처녀”뿐이다.
봄이면 어린 약초들 돋는 걸 보고, 가을이면 골짜기와 구릉을 온통 덮으며 타오르는 단풍이나 보고, 폭설 내려 길 끊긴 한겨울에는 너와집에 틀어박혀 화투패로 점이나 칠 것이다. 나 어린 처자와 함께 돌밭을 일궈 겨우 감자나 심어 수확을 한 뒤 부엌 한켠에 저장해두었으니 겨우내 식량 걱정은 없다. 가자미나 꽁치와 같은 비린 것이나 갓 구워낸 빵을 먹고 싶을 때 저쪽 너머 세상을 잠깐 떠올려 볼 것이다.
《논어》에 나오는 얘기다. 공자가 노나라 권세가들의 미움을 사서 고향을 떠나 표랑의 길로 나선 것은 56세 때였다. 공자는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구나” 하고 괴로워했다. 제자 자로가 말했다. “어찌 알아주는 이가 없다 하십니까?” 공자가 말했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허물하지 않으며, 아래로 낮은 것부터 배워 위로 천명을 깨달았으니, 나를 아는 자 저 하늘일까?” 정처 없이 떠돌던 공자는 위나라에 있던 자로의 처남 안수유의 집에서 머물렀다. 위나라 임금 영공은 공자를 붙잡고 싶었지만 어떤 직책을 줄지 아직 결정을 못한 때였다. 공자는 시를 읊고, 거문고 타고, 경쇠를 치며 세월을 보냈다.
어느 날 공자가 경쇠를 치고 있는데, 마침 삼태기를 메고 흰 옷을 입은 자가 공자의 집 문 앞을 지나다, “유심하다, 경쇠를 치는 소리” 하고 혼잣말을 했다. 경쇠 소리가 맑고 듣기에 좋았으나 그 소리에 아직 야심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내가 말을 이었다.
“비루하다, 그 집착이여. 세상이 알아주지 않으면 물러서면 되고, 물이 깊으면 바지를 벗으면 되고, 얕으면 바지를 걷고 건너면 되리라.”
제자 염유가 문을 밀치고 밖으로 나서다가 그자의 말을 우연히 들었다. “경쇠를 치는 사람은 지금 세상에 성인이라 불릴 만한 사람이네.” 그러자 사내가 말했다. “어지간히 융통성이 없는 성인이시지.” 그 말만 남기고 사내는 노래를 부르며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공자가 자초지종을 듣고 말했다. “그렇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과감함도 어렵지 아니하리라.”
경쇠 소리만 듣고도 공자의 집착과 야심을 눈치챈 삼태기를 멘 사람은 예사 인물이 아닐 것이다.
물론 나는 공자의 경륜이나 지혜에 견줄 바가 없는 범속한 사람이다. 공자는 지금도 성인으로 추앙받는 훌륭한 인물이다. 허나 나는 공자보다는 경쇠 소리만을 듣고 공자의 집착을 읽어낸 삼태기를 멘 사내가 되고 싶다. 내 안에도 비루한 집착이 많이 있는 까닭이다. 조금이라도 집착과 욕심이 있다면, “토방 밖에는 황토 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고,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로 사는 삶에 만족할 수는 없으리라. 살다 지치고 내 안의 집착에 진절머리가 나면 저 울진군 북면 너머 깊은 산골짜기에 있다는 빈 너와집 한 채를 꿈꿀 수는 있으리라.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들고, 저 바깥세상 사람들이 능히 바쁜 돈과 명예를 구하는 일에는 한가롭고 그들이 한쪽으로 밀쳐놓은 한량으로 사는 것이나 느림 따위에는 부지런을 떨고 싶다. 나는 어린 처녀에게 생계를 의탁하며 기생하는 남자로 살고 싶지는 않다. 일을 잘하는 씩씩한 사내가 되고 싶다. 물론 이 생에서는 가망 없는 꿈이다. 소설가 박경리가 남긴 시 〈일 잘하는 사내〉에 나온다. “다시 태어나면 / 무엇이 되고 싶은가 / 젊은 눈망울들 /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 다시 태어나면 /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 깊고 깊은 산골에서 / 농사짓고 살고 싶다 / 내 대답 / 돌아가는 길에 / 그들은 울었다고 전해 들었다 / 왜 울었을까 / (중략)”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드는 것은 우주의 순리에 따르는 삶이다. 땅을 일구고 그 소출에 기대어 사는 삶은 본질의 삶이다. 길이 있다면, 정말 길이 있다면, 나는 우주의 순리에 순응하고, 땅의 본질이 요구하는 바대로 살고 싶다.
김명인(1946~)은 경상북도 울진 사람이다. 때로 고아원에 맡겨지고, 제때에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기도 했다. 신산스런 가난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새벽까지 수많은 먹을 것과 이름도 모를 음식들을 떠올려보다가 나중에 크면 식당을 차리리라는 결심을 할 만큼 가난은 혹독했다. 가난과 영동의 척박한 환경은 그의 시적 상상력의 원적지다. 그는 여기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보내고 서울로 올라온다. 의대 진학에 실패하고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뒤 스물세 살에 교사가 되었다. 혼혈아와 고아들이 많은 도시에서 “끝끝내 가르치지 못한 남학생들”과 “아무것도 더 가르칠 것이 없던 여학생들” 앞에서 그는 비로소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친다. 이 체험은 나중에 “어차피 태어나서는 우리 모두 미운 오리새끼였다”라는 구절 따위가 나오는 〈동두천〉 연작시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욕된 세상에서 그를 붙잡고 구원한 것은 시였다. 그는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하며 문단에 나오고,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시인들과 〈반시〉라는 동인지를 꾸리면서 시적 정체성을 세워나간다. 지금은 고려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출처: http://topclass.chosun.com/board/view.asp?catecode=J&tnu=20110310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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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