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Faint Memory
13년전 여름, 나와 가족은 정든 뉴욕시를 떠나 새직장이 있는 북녁 엔디캇 (Endicott)으로 이사를 했다. 우리는 그곳 미국인 장로교회에 유일한 동양인 가족으로 환영을 받으며 가입해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이교회 목사는 아이리쉬로서 얼굴이 좀 복잡하게 생긴 거구였으며, 빈센트 얼리 (Vincent Earley)라고 불렀다.
아내와 나는 얼리 목사가 인도하는 성경공부에 열심히 참석하면서 그의 주장-곧 모든 사람은 동등하므로 모든 사람은 서로 첫이름을 부르라는-대로 얼리 목사님(Reverend Earley) 이나 얼리씨(Mr. Earley) 대신 빈스(Vince)로 부르며, 또 장로이며 변호사인 토마스씨 (Mr. Thomas, Esq.) 나 내쉬 의사님 (Dr. Nash) 대신, 밥(Bob) 또는 쳑(Chuck)등 첫이름으로 서로 부르는 생소한 분위기를 서서히 익혀 갔다.
처음으로 미국교회에서 맞는 성탄절 예배에서 목사…빈스는 설교를 짧게 끝내면서, 교인들을 기립시킨 후, “우리가 지난 일년동안 서로 빚지고 부담되었던 것이 무엇이든지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자”고 제안하면서 앞으로 내려 와서 맨앞줄에 서 있는 사람을 안아 주자 모든 사람들이 앞과 옆에 있는 사람들과 안아 주고 받기를 시작하였다. 나도 처음으로 남과 안았다. 빈스는 내게 와서 큰 허그 (hug)를 하였는 데, 나는 옛날에 아버지가 안아 주었을 때 느꼈던 그아늑하고 평안한 느낌을 느꼈다.
한번은 목사…빈스를 만나서 내가 경험하는 고독이라는 문제로 상담을 하였다. 그는 나의 얘기를 경청하였으며, 내얘기가 아픔이나 감정이 북받치는 부분에 이를 때마다 그의 오른 눈꺼풀이 경련하곤 하였다. 그는 내가 한국인 사회로 돌아 가면 외로움이 없어 질 것인가고 묻기도 하였다.
“백은 우리교인들이 자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한다고 생각하느가?”고 물었다. 나는 그들이 무관심할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백, 사실을 얘기해 주지. 자네가 우리 교회에 온 후, 여러 사람이 자네에 대해서 물어 왔었지. 자네의 표정과 미소에서 특이한 것을 본다면서 말이지. 또 사실은 여러
사람이 자네를 집사나 장로로 추천해 온 지 여러번 되는데, 우리는 자네가 미국 생활에 좀더 익숙해지기를 기다리고 있지. 내가 부탁이 있는 데, 꼭 이행해 주겠나? 다음 주일부터 내반에 들어 올때, 자네 자리로 바로 가지 말고 적어도 다섯 사람에게 가서 악수를 청하고 인사를 하게. 그렇게 할 수있지?” 라면서 내손을 잡아 주었다.
한번은 예배가 거의 끝나고 축도 순서가 되었을 때, 빈스는, 교인들 모두가 하나님앞에서 같은 제사장들이라는 말씀이 성경에 있다면서 자기 말를 복창하라고 일렀다.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의 감동하시고 함께하시는 역사가…”
목사와 예배 참석자 모두가 복창하는 축도는 그스테인레스 유리를 통해서 들어 오는 아름다운 햇빛이 가득한 성전안에 분명히 메아리가 되고 있었다.
어느 해던가, 추수 감사절을 두주일 앞둔 예배 시간에 빈스는 여전히 설교 순서가 되자 강단뒤에 나와 섰다.
“지금까지 나는 여러분들을 병원으로 양로원으로 방문하고 상담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여러분을 섬겨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러분이 내게 그렇게 해 줄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가 거기서 말을 중단했을 때,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고 청중이 숨도 멎는 것 같았다.
“매일 나는 아침부터 여러분을 만나서 인생 문제와 고민을 듣고 얘기하고 늦게 귀가하면 나는 조그만 잔으로 포도주를 조금씩 마시며 내 피로를 풀곤 했지요. 이렇게 여러 해를 해 오던 중, 이것이 알콜 중독 초기증상이 된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이 거기서 다시 중지되면서, 하얀 손수건이 그의 눈으로 올라 갔다. 교회는 숙연해지고 사람들의 머리가 떨어 지고 여기 저기 어깨가 들먹이기 시작하였다. 교인들이 가슴에 아픔이 전달되고 눈물샘이 솟아 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예배가 끝나는 즉시로, 동부에 있는 알콜 중독 치료소로 떠납니다. 거기서 한달간 치료를 받을 것입니다. 내가 돌아 올 때까지 여러분은 내가 여기 있는 것처럼
교회를 잘 운영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한장로가 일어 나서 우리가 빈스를 완전히 신임하고 격려한다는 뜻으로 기립하자고 말했을 때, 모든 교인들이 일어나서 울고 있는 빈스를 바라 보았다.
예배가 끝나고 빈스가 교인들을 배웅하려고 출구앞에 섰을 때, 전교인들이 긴줄로 기다려 서서 그를 안아 주고, 악수하고, 격려해 주었다.
그는 나를 포옹하면서 “백, 인간이 이렇게 약하오.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오.”라고 말하였다. 그는 약속대로 한달후에 훨씬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 왔으며, 군대 생활같은 치료소 생활을 얘기해 주었다.
5년전 어느 봄날, 빈스는 설교가 끝날 쯤에, “내가 목사로 안수를 받으려고 이강단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20년을 이교회에서 봉사하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었는 데,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6월말로 이교회를 사임하겠으니 제직 여러분은 다음 오실 분을 위한 준비를 하십시요. 이교회도 새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모든 교인들은 경악했고 충격을 받았다. 두어해만 더 있으면, 정년 퇴직이 되고 은퇴후 혜택이 약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의 부탁대로 우리 온교회는 성대한 예배와 만찬과 포옹으로 그를 환송하였다.
쟌쟌 성백문 (1991-3-2 중앙일보 뉴욕판 게재, 2006-01-24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