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은 우연히 시작되었다. 위암환자였던 김윤섭 할아버지(80세,본명)는 내과에서 호스피스병동으로 왔고, 전립선암환자였던 이길용 아저씨(53세,가명)는 비뇨기과에서 호스피스병동으로 동시에 왔다. 그래서 302호 같은 병실에 나란히 눕게 되었다.(호스피스병동은 말기 암환자들이 입원하는 곳이라서 각 과에서 전과 되거나 대학병원에서 전원 되어 오는 경우가 흔하다.)
윤섭 할아버지는 전직 고등학교 선생님이다. 애꿎게도 중년기에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진짜 인생은 그때부터였다. 지팡이를 짚고 전국을 누비면서 장애인의 ‘희망 신협’을 만들었고, 무료 개안수술도 추진했다. 그의 활약은 알 만한 사람이면 다 알았다. 나는 소문에는 어두워 누군가가 귀 뜸을 해주어서 알았지만, 단 하루아침에 윤섭 할아버지의 팬이 되어 버렸다. 회진 왔다고 알리고자 두 손을 곱게 잡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손 마사지를 해준다. 잘 먹지 못해서 힘도 없을 텐데, 능숙한 솜씨는 시원하기까지 했다. 모든 사람에게 그런 식이었으니 병동식구들은 그를 ‘천사’라고 불렀다.
윤섭 할아버지는 전직 고등학교 선생님이다. 애꿎게도 중년기에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진짜 인생은 그때부터였다. 지팡이를 짚고 전국을 누비면서 장애인의 ‘희망 신협’을 만들었고, 무료 개안수술도 추진했다. 그의 활약은 알 만한 사람이면 다 알았다. 나는 소문에는 어두워 누군가가 귀 뜸을 해주어서 알았지만, 단 하루아침에 윤섭 할아버지의 팬이 되어 버렸다. 회진 왔다고 알리고자 두 손을 곱게 잡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손 마사지를 해준다. 잘 먹지 못해서 힘도 없을 텐데, 능숙한 솜씨는 시원하기까지 했다. 모든 사람에게 그런 식이었으니 병동식구들은 그를 ‘천사’라고 불렀다.
- 한 요양병원에서 암환자가 창밖을 보면서 생각에 잠겨 있다./조선일보DB
그래도 운은 있었다. 퉁퉁하게 생긴 한 아주머니가 길용 아저씨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하면서 병문안 왔다. 진실을 말해줄 것 같아 다짜고짜 붙잡고 물었더니 제대로 이야기 해주었다. 길용아저씨는 부잣집 맏아들로 태어나 대학도 나왔다. 하지만 하는 사업마다 망하면서 마약까지 손을 대어 얼마 전까지도 감옥에 있었다. 형사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니 맞단다. 에쿠나, 마약사범에게는 일반인과는 다르게 암성통증 관리(주사용 몰핀은 될 수 있는 대로 쓰지 말고, 금방효과는 없지만 오래 작용하는 마약성진통제를 써야한다)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중요한 사실을 이제 알려주다니.
입원하자마자 전화 한 여인은 전(前)부인이었고, 입원비 내라고 할까봐 길용아저씨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시치미를 뗀 모양이다. 그의 인생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펼쳐졌다.
웰다잉(well-dying)은 삶의 완성이 아니라, 삶의 결과물이다. 누구나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은 더군다나 아니다. 저마다 주어진 힘든 삶을 잘 살아 내야만이 누릴 수 있는 삶의 마지막 축복인 것이다.
석양이 붉게 물드는 느지막한 회진을 마치고 복도 끝에서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인생의 시작과 끝을 선택 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면 그 가운데에 누리는 절대적인 자유를 우리는 얼마만큼 예쁘게 잘 쓰고 있을까? 호스피스병동에서는 그 누구도 환자가 살아온 인생을 평가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어떤 인생을 살아왔든지 이제는 격려해주고 편안하게 품어주는 ‘어머니’같은 따뜻함이 필요한 공간이다. 그래도 솔직히 고백하지만, 내심 부러운 인생은 항상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