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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나해 8월16일 연중 제20주일
[청주] 참된 양식, 참된 음료 -
청주교구 청주 성모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제1독서 잠언 9,1-6
◎ 제2독서 에페 5,15-20
+ 복음 요한 6,51-58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20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당신의 몸을 우리에게 내어 주시고자 날마다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미사성제의 식탁에서 주님을 모시는 우리는 그분께서 주시는 그 힘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분의 사랑의 초대에 감사드리며 기쁘게
주님 앞에 나아갑시다.
★ 잠언에서 지혜는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지혜는 집을 짓고 잔치를
마련하여 사람들을 초대하는 여인과 같다. 그 초대에 응답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음을 버리고 지혜의 길을 걷게 된다(제1독서).
★ 에페소서도 지혜에 대해 언급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식별하며, 성령으로 충만하여 언제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일에 아버지께 감사드린다(제2독서).
★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을 초대하신다. 그분께서 몸소 주시는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그분의 살이다. 그분의 살과 피를 받아 모시는 사람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고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복음).
◈ 오늘의 묵상
신약에 가까이 오면서 구약 성경에서는 오늘 잠언에서 보듯, 지혜가 점점
의인화되어 사람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구약의 예언서는 자주 세말에
주님께서 친히 잔치를 차려 주신다는 사실을 예고하는데, 이 말씀대로
하느님의 지혜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당신 몸과 피를 양식으로
내어 주시면서 오늘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잔칫상에 초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는 그분의 약속을 보장받고, 또한 그는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기 때문에 바오로 사도처럼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머무르신다는 사실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아울러 성체를 모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데, 동참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2독서가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 하고
제시합니다. 경외심을 갖고 주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그분을 섬기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며 이를 통하여 지혜 자체이시며 말씀(로고스)이시고
생명이신 그분과 일치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잔칫상에 초대받은 우리가 얼마나 큰 은총의 선물을 받고 있는지, 그래서
얼마나 행복한지 곰곰이 살펴보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매일 미사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5년 나해 8월16일 연중 제20주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요한 6,56)
예수님은 자신의 살과 피를 받아먹어라고 하십니다.
사람이 살아 가면서 가장 소중한 것 중의 하나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실까 하는 겁니다.
뭘 먹고 마시냐의 선택은 영육간의 건강을 위해 아주 중요합니다.
음식을 잘못 먹으면 배에 탈이 나고 맛있다고 너무 많이 먹으면
살이 찌고 똥배가 나옵니다.
현대인들은 사실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이 납니다.
오늘은 뭘 드시고 싶으세요? 뭘 마시고 싶나요?
우리가 몸에 좋은 음식을 잘 고르고 적당히 잘 섭취해야 하듯이
영에 좋은 음식도 그렇게 고민하며 섭취해야 하지 않을까요?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고 생명과 지혜의 말씀을
묵상 가운데서 받아 모시고 감사와 찬미의 화살기도를 바치며
주일을 보낸다면 건강한 영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 나의 몸과 마음에 가장 유익한 먹거리가 무엇인지 고민해 봅시다.
영육간의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 유혹에 빠지지 말고
멋진 식사하시기 빕니다.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돈 보스코의 치명적인 매력
2015년 나해 8월16일 연줃 제20주일
제1독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셔라.>
○ 잠언의 말씀입니다. 9,1-6
제2독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5,15-20
복음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51-58
돈 보스코의 치명적인 매력
오늘 8월 16일,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는 살레시오 가족의 창립자이자
아버지 돈 보스코는 참으로 행복한 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세상을 떠난 지 50년, 100년이 지나면 소리 소문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고인(故人)의 유골 역시 웬만큼
효성 지극한 후손들이 아니라면 백골이 진토되고 풍화되어 허공에
날아다닐 세월입니다.
이런 면에서 돈 보스코는 참으로 특별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존재감이나 영향력이 더해만 갑니다. 그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만 갑니다. 그가 유산으로 남겨준 교육방식과 영성생활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되었습니다.
살레시오회는 교회 역사 안에서 비교적 역사가 짧은 수도회임에도
불구하고(창립 160주년) 현재 회원 숫자나 사업 규모, 진출 국가 수효를
따진다면 전 세계에서 1~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이제 돈 보스코의 영성을 따르는 사람들은 살레시오 회원들뿐만이
아닙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자 못지않은 규모의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님들이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돈 보스코의
영성을 모토로 삼은 가족 수도회나 수녀회, 봉헌생활회 숫자는 40개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평신도들 가운데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돈 보스코의 영성에
매료되어 협력자 회원으로서 세상 안에서 또 다른 돈 보스코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돈 보스코 교육을 받은 수많은 졸업생들, 마치 하늘의 별처럼
셀 수도 없이 많은 졸업생들이 세상 방방곡곡에서 하느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최근 저희 살레시안들이 큰 자부심을 지니게 된 큰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만민이 존경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예수회
출신이시지만 청소년기 때 살레시오 학교를 다니셨다는 것입니다.
교황님이 기쁨에 찬 열린 행보 배경에 돈 보스코의 영성이 한 축을 이루고
있다고 저희는 감히 자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돈 보스코 현상’ 돈 보스코의 특별한 영향력, 그 배경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 묵상해 봅니다.
아무래도 그분의 치명적인 매력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돈 보스코는
살아생전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성인(聖人)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사람들을 자신의 주변으로 끌어
모으는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보통 수도회 창립자들은 자신의 영성이나 가치관에 매료된 동료들과
의기투합해서 수도회를 창설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돈 보스코의 수도회
창립 역사는 독특합니다. 돈 보스코 몸소 교육시켰던 제자들을 모아서
살레시오회를 창립한 것입니다.
수도회 창립 멤버 가운데 어떤 사람은 이런 고백까지 한 이 있습니다.
“나는 솔직히 수도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돈 보스코와 함께 하고 싶어서 이 길을 선택합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한 가난한 청소년의 영혼 구원을 위한 헌신, 그것이
한 평생에 걸친 돈 보스코의 사목활동이었습니다. 단 한명의 청소년이 열
명이 되고 백 명이 되고 천명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돈 보스코란 큰 거목
아래 셀 수도 없이 많은 청소년들이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아이 한 아이와 눈을 맞추며 끊임없는 위로와 용기와 격려의 눈길을
보내던 돈 보스코였습니다. 한 아이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면 악마에게도
허리를 굽힐 각오가 되어 있다고 고백했던 돈 보스코였습니다.
아이들에게 밝은 미래를 열어주고, 아이들에게 더 큰 비전, 더 큰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평생토록 노심초사했던 돈 보스코였습니다.
그분의 그 치명적이 매력이 오늘 모든 살레시오 회원들에게 되살아나기를
바랍니다. 그 매력에 매료된 가난한 청소년들이 살레시안들을 통해 힘과
용기를 얻고 다시금 제 갈 길을 열심히 걸어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청주] 참된 양식 참된 음료|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8월16일 연중 제20주일(요한 6,51-58)
참된 양식, 참된 음료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의
허물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사랑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한없는
사랑을 성체성사를 통해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하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참된 양식과 음료를 먹고
마심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차지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미사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변화”, “영성체”. 예, 다 중요합니다.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화되는 성변화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도 변화되십시오.”
여러분의 삶은 살아있는 미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신다면 그 은혜에 감사하고
나도 내어주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거듭 태어나
베푸는 삶을 살아갈 때 성변화의 의미가 살아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분을 닮고, 아니 또 하나의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영성체는 개인적으로 볼 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생명의 빵을 먹음으로써 주님과 하나가 되고
영생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영성체보다 더 깊고 더 완전한
사랑의 일치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성체를 갈망하고 잘 준비된
마음으로 성체를 모셔야 합니다. 성체를 모시기 전에 내가 모시는 성체가
하느님이시라는 진리를 깊이 생각한다면 우리의 삶이 분명이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하늘의 양식을 받아 모시면서도 하느님을
직접 모신다는 중대한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체를 모셔도 아무
결실을 얻지 못합니다. 깊은 신심을 가지고 주님을 모셔야 하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가가 사람은 자신을 살피고 나서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합니다. 주님의 몸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사람은 그렇게 먹고 마심으로써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입니다”
(1코린 11,28-29). 자신을 성찰하고 고해성사를 통해 예수님과의 유사성을
회복한 후 영성체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우리의 육신에 영양을 주기
위하여 빵을 먹어야 하듯이, 우리는 영혼을 위하여 성체를 모셔야 합니다”
(성 가롤로 보르메오). 식사를 거르는 것보다 영성체를 못하는 것을 더
견디기 힘들어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13년간이나 감옥살이를 하셨던 구엔 반 투안 주교님은 위장약이라고 쓴
꼬리표와 함께 작은 병에 담아 보내진 미사주와 습기를 피하도록 손전등
안에 숨겨 보내진 제병을 가지고 세 방울의 포도주와 한 방울의 물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미사를 거행하셨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이것이
저의 제대였고 주교좌성당이었습니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가 말했듯이
‘불사불멸의 약, 죽지 않고 예수님 안에서 언제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해독제‘ 였습니다.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저는 예수님과 함께 손을 펼치고
십자가에 저를 못 박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그분과 함께 가장 쓴 잔을
마셨습니다. 날마다 축성 말씀을 암송하며, 제 피에 섞인 그분의 피를 통해
온 마음과 영혼으로 예수님과 저 사이에 새롭게 맺어진 영원한 계약을
확인하곤 했습니다. 제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사였습니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미사참례를 얼마나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미사참례를 잘 하지 않습니다. 미사는 의무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의 빵으로 오시는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것입니다.
성체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성체를 단 한 번이라도 받지 못하여 그로부터의 혜택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유리아노 예마르).
영국의 위대한 총리대신 성 토마스 모어는 매일 미사에 참례하였고
영성체를 하였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수많은 국정의 임무를 맡고 있는
한 사람의 평신도가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토마스는 “내가 신경을 써야 할 일은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생각을 정리하기가 쉽습니다. 하느님을 거스르게 될 기회들도
많지만 나는 매일 예수님께로부터 힘을 얻어서 그 악의 기회들을 멀리할
수 있습니다. 나는 매우 어려운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 빛과 지혜가
필요한데 매일 영성체를 통해 예수님과 그것을 상의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나의 위대한 스승이십니다.”
사람들에게는 체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체질은 선천적인 것도
있고 후천적인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후천적 체질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음식입니다. 고기를 많이 먹느냐 아니면 야채를 먹느냐에 따라서 알카리성
체질, 산성체질이 될 수 있고 몸 짱이나 비만형이 되기도 한답니다. 요즘은
특별히 웰빙식품을 선호하며 건강을 챙깁니다. 그러나 육적인 건강
못지않게 영적인 건강을 먼저 챙겨야 합니다.
특히 영적인 양식인 성체를 잘 모시는 사람은 성체체질로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니 예수님의 성품, 예수님의 가없는 희생적
사랑을 살게 됩니다. 모름지기 향을 싼 종이에선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모신
사람에게서 예수님의 향기가 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만약 성체를
모시면서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면 주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탓입니다. 준비된 마음 안에 성체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미련한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잘 살펴보라고 말합니다. 시간을 잘 쓰라.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라. 술에 취하지마라.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해지라.
모든 일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려라.
시간을 잘 쓰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십시오. 텔레비전 보는 시간보다 성경을 보는 시간이 더 많아야
하지 않겠어요? 술독에 빠지는 시간보다 성령으로 충만한 기도시간을
챙기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모든 일에 사랑을 담고, 일을
하고나서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당신의 은혜로 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이 순간 다른 것을 제쳐두고 미사를 봉헌하고 곧 성체를 모실 수 있음이
기쁨이요, 감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일화입니다. 한국에 오셨을 때 어느
인터뷰에서 테레사 수녀님은 “하루에 성체를 두 번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루에 미사를 두 번 참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침 미사 때 성체를
모시며 예수님과 만나고 그 후에는 일을 하며, 즉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돌보며 그 안에서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예수님을 두 번 모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고통을 받고 소외받는
이들과의 만남이 두 번째 영성체라고 하신 수녀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내 것을 나누고 이웃과 함께할 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 사랑은 이웃사랑으로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할 때 그곳에서 이웃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습관적으로 성체를 모시는 이 모두가 거룩해지고
모두가 주님을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행하는 이라야 만날
수 있습니다. 매번 성체를 정성껏 모시고 성체를 모신 힘으로 행복하게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라고 하셨습니다. “머무르고”에
대해 생각합니다. 머무른다는 것은 “머물렀다.”의 과거 얘기가 아니라
지속적인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늘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함께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성체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분 안에
있게 된다면 바로 그곳이 천국입니다. 영성체로 “지상의 천국”
(성녀 막달레나 소피아바라)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가을이 오면 -김용석-
나는 꽃이에요.
잎은 나비에게 주고
꿀은 솔방벌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게 보냈어요.
그래도 난 잃은 건 하나도 없어요.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거예요.
가을이 오면.
성체의 신비를 잘 말해주고 있다고 봅니다. 꽃잎도, 꿀도 향기도 다
주었지만 정작 잃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꽃은 노래합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기뻐합니다. ..나를 아낌없이 내어줄 때 나는
성장하고, 풍성하게 되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것이 성체의
신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심지어 몸과
피까지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나눔은 이천여 년 동안 그리스도교가
지속되어온 힘이고 바탕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몸을 모시는 우리가
알아야 할 삶의 지향도 이것입니다. 작은 꽃이 자기의 향기와 꿀을 나누며
많은 열매를 맺듯이, 우리도 성체를 받아 모시며 예수님처럼 나를 나누며
살아갈 때 참으로 풍요로울 수 있습니다(이기양신부).
- 청주교구 청주 성모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우리를 위해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 주신
사제가 되기 전에는 사제가 되면 어떠할지를 많이 상상했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경건하게 미사를 집전하고 열심히 강론을 하는 모습,
신자들과 함께 기도하는 모습, 선교를 하면서 많은 신자들을 성당으로
이끄는 모습, 신자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 모습 등등……. 그런데
막상 사제가 되고 보니 제가 상상했던 것 외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제게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 아직까지도 저를 낯설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는 혼인 주례입니다.
사제로 살기에 결혼을 할 수가 없는데, 결혼 한 번 해보지 못한 사람이
다른 사람 혼인 주례를 선다는 것이 정말로 어색하겠습니까? 그것도
사제서품 받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30살밖에 되지 않았으니, 저와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은(때로는 저보다 많을 때도 있었지요) 신랑
신부 앞에서 사제라는 직분 때문에 하는 혼인 강론은 정말로 죽을
맛이었지요.
아무튼 그렇게 어색한 혼인 주례를 정말로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전에 있었던 본당에서 제가 주례를 섰던 부부 모임도 생겨서 일 년에 한두
번 모여서 좋은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특히 그들의 결실인 아이까지
데리고 오기 때문에 항상 북적 북적대는 모임입니다.
사실 이 부부들이 처녀총각 시절에는 술도 많이 마시고, 집에도 늦게
들어가곤 했지요. 그 모습이 결혼을 하고서도 그리 바뀌지는 않더군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바뀔 때가 언제냐면 바로 아이를 가지고 나서입니다.
술을 마시지 않고, 담배를 끊고 또 집으로의 귀가도 빨라집니다. 그리고
좋은 생각과 좋은 것들만 보려고 노력합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뱃속에
있는 사랑하는 아기를 위해서입니다. 아기를 위해서 평소에 즐기던 것들을
모두 끊고 바른 생활을 하는 것이지요.
이 부부들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미사 때마다 주님을 모시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는데 과연 우리는 어떠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을까요? 평소와 똑같이 아무런 변화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면 당연히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보다 더 좋은 생각과 말을
하려하고 좋은 것만을 보려하는, 즉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우리를 위해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 주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내 안에 들어오기에 당연히 우리 역시 사랑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데 급급한 삶이
아닌, 주님께서 명령하신 삶을 쫓아 살아갈 때 진정으로 주님의 살과 피는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가 되어 구원의 길로 들어서게 해 줄 것입니다.
미사 때 내 안에 모시는 주님을 다시금 기억합시다. 그리고 주님을 모신
내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묵상해보시길 바랍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단 한 가지에만 집중하면 성공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시소
긴 널빤지의 한가운데를 괴어, 그 양쪽 끝에 사람이 타고 서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놀이 기구를 무엇이라고 할까요? 맞습니다. ‘시소’지요.
어렸을 때에 참 많이 탔었는데, 그리고 지금도 아파트의 놀이터를 보면
빠지지 않고 있는 것이 이 ‘시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시소가
영어인지를 몰랐습니다(무식하죠?). 우연히 책을 보다가 알게 되었네요.
‘SeeSaw’라고 합니다. 즉, 올라갈 때는 풍경이 보이고(See), 내려올 땐
풍경이 보였다(Saw)는 의미랍니다. 그냥 무조건 단순히 ‘시소’라고만
생각했는데, 의미를 알고 나니 더욱 더 새롭게 시소를 보게 됩니다. 이렇게
의미를 알면 그 대상은 다르게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사 때 느끼는 것이 별로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왜
성당에 가야하는지를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십시오. 혹시 그 의미를 알려고 노력을 했었는지를……. 미사의
의미, 성당 한 가운데에 있는 십자가의 의미, 성당 마당의 성모상의 의미,
기타 등등 그 의미를 하나씩 알아나간다면 주님이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성당에 가는 것이, 미사에 참석하는 것이 너무나도 기쁠 것입니다.
성체기적성당의 내용이 담긴 팜플렛입니다. 인터넷검색하시면 그 내용이
우리말로 나옵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서울] 하느님은 나의 아버지
2015년 나해 8월16일 연줃 제20주일
제1독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셔라.>
○ 잠언의 말씀입니다. 9,1-6
제2독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5,15-20
복음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51-58
하느님은 나의 아버지
조상이 돌이다, 곰이다 등 꾸며내기 마련이라 별 재미있는 말이 많습니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본다면 생명이 생명을 낳지, 죽은 후엔 못 낳습니다.
그래서 족보다, 선조다 하지만 모두 문자가 생긴 후부터 기록앴을 겁니다.
부모님이 다 살아 계셨기에 내 몸이 형성됐고 피도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의 부모님 또 그 위 끝까지 가도 살아있을 때에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 분을 하느님 아버지라고 예수님이 압축하여 실감나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요한 6,54-55)"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성체 성혈 없이 살 수 없어야 하느님의 자녀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8월16일 연중 제20주일
<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복음: 요한 6,51-58
< 성체 성혈 없이 살 수 없어야 하느님의 자녀>
내가 누구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누군가가 바나나를 무척 좋아합니다. 돈을 줘도 싫다, 회를 쓸어 주어도
바나나를 집습니다. 그러면 그 누군가는 원숭이나 그 수준의 사람인
것입니다. 만약 어떤 이가 권력을 쥐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을 서슴없이 저질렀다면 수준 낮은 사람이 확실합니다. 사람은
사람다워야 하는데, 그 의미는 사람은 사람이 좋아해야 할 것을 바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고아로 자라나 자수성가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도 소원하던 스포츠카를 구입했습니다. 하루는 자신의 아들이
스포츠카를 뾰족한 것으로 긁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너무 화가
나서 그 아이의 손을 집히는 공구로 내려쳤습니다. 아이는 손을 쓸 수 없게
되었고 아버지는 그 아들이 차에 써 놓은 것을 보고 자살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 아들이 차에 써 놓은 것은 “아빠, 사랑해요!”였습니다. 그러나
아빠는 자녀보다 돈을 더 좋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돈을 더 좋아하고
있었다면 아버지의 자격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곧 내가
누구인지를 드러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속해 있는 그 곳이 자신이
머무는 그 곳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사람으로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만이 그분의 영원한
삶을 함께 누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자녀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일까요? 하늘의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인도의 유아 사망률은 세계 최고라고 합니다. 보통 아기
천 명당 오십 명이 사망합니다. 주된 사망 원인은 열악한 신행아 보호와
영양실조, 폐렴 등이라고 합니다. 물론 열악한 사회적 환경의 이유도
있겠지만 더 큰 문제는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지 않는 것에 있다고
말합니다. 인도 사람들은 모유, 특별히 초유에는 몸에 안 좋은 성분이
들어있다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은 아무래도 분유 회사에서
그렇게 홍보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모유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모유 수유를 하는 정도는 30-40%라고 합니다. 초유에는
지방 함유량이 낮은 반면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풍부하고 아기의 건강을
지키는 많은 항체가 들어있습니다. 또한 소화가 잘 되기 때문에 아기
음식으로는 그만입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생후 6개월까지 모유만
먹일 것을 강조합니다. 그랬더니 아동 사망률이 15%나 감소했다고
합니다. 인도는 워낙 인구가 많은 나라라 15%란 숫자는 일 년에 모유만
먹여도 수백만 명의 생명이 생명을 건질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유럽에서 전쟁 직후 고아가 된 아기들을 최고 시설의 병원에서 가장 좋은
음식과 치료를 통해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이 이상행동을
보이고 또 많은 아기들이 버티지 못하고 사망하였습니다. 나중에
간호사들보고 아기들에게 우유를 먹이기 전에 한 번씩만 안아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망률이 현저하게 줄었다고 합니다.
쌍둥이로 태어난 한 아기가 인큐베이터에서 죽어갈 때 다른 쌍둥이 자매를
넣어주니 그 건강한 아기가 죽어가는 동생의 어깨를 손으로 감쌌고
그랬더니 죽어가던 아기가 살아났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 사랑이 안아주는 것이든 모유든
무엇이든 간에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으로 표현 된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모든 것이 다 주어졌어도 사랑을 받지
못하면 인간답게 살 수 없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사랑을 부족하게 받았기
때문에 모든 성격장애와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표현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그 본성상
상대에게 자신을 알립니다. 대화가 없으면 상대 안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
알 수 없듯이 사랑도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표현되어야만 합니다.
어떤 직장에 다니던 한 분이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나이가 많아서
좀처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수도회에서
입회해도 좋다는 통지가 왔습니다. 그 통지를 회사에서 받았는데 그분은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가 감사기도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문을 걸어
잠그고 기도를 드리려고 했는데 생각이 나지 않아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우리에게 강복하소서.”
입에 익숙한 기도가 그것이라 그렇게 기도했지만 감사의 정이
흘러넘치는데 어떻게 침묵하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감정이
그러하듯이 사랑 또한 인지할 수 있는 형태로 드러나지 않으면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짝사랑하던 아이에게 한 마디도 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까지 후회가 됩니다. 용기 있는 사람이 미인은 차지하는
이유는 사랑한다고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표현하는 사람만이 사랑을 할
줄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이 우리가 오관으로 인지할 수 있는 형태로 표현 된 것을
‘성사’라고 부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그 사랑이신 하느님의 영이
빵과 포도주의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졌다면 그것이 ‘성사’인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로부터 오는 사랑의 성사가 필요하듯이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성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사는 반드시 우리가 사랑이라 느낄 수
있도록 표현된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느낄 수 있도록 빵과 포도주의 형태로 당신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사람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의 사랑의 표현을
찾아내야만 하는 것처럼 인간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유일한 것을 찾으라면 당연히 성체와 성혈을 찾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표현은 모두가 ‘희생’입니다. 젖을 물려주는 것까지도 내 자신을
내어주는 행위이고 그 행위를 통해 어머니의 생명이 아기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생명입니다. 하느님은 그 생명을 당신 아드님의 살과
피로써 우리에게 전달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면 아드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한 초등학생 아이가 어머니에게 감사편지를 쓰라고 했더니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엄마,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 좋은 집
사서 나가드릴게요.”
과연 이것이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말일까요? 아이는 부모에게 사랑을
끊임없이 청해야합니다. 그 사랑이 부모에게 희생일 수는 있지만 또한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는 것이기에 부모에게 기쁨을 줍니다. 우리가 성체가
하느님의 생명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끊임없이 청한다면 그분은 또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다른 모든 것을 다 잃더라도 성체만 청할 수
있다면 하느님의 자녀임을 확신해도 좋을 것입니다. 하늘의 양식,
하늘로부터 오는 사랑의 표현, 하늘로부터 오는 모유, 성체와 성혈을
좋아한다면 그 사람의 정체성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 수원 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전삼용 요셉 신부 -
◈ [서울] 연중 제20주일
2015년 나해 8월16일 연줃 제20주일
제1독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셔라.>
○ 잠언의 말씀입니다. 9,1-6
제2독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5,15-20
복음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51-58
제래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대출하는 도서 중에서 가장 선호하는 책이라고 합니다.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인류의 문명이 어떻게 발전하였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식량생산과 도시생활은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는 토대가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도시생활과 가축을 기르는 것은 문명의 발전의 기회가 되기도
하였지만, 전염병으로 인한 막대한 피해를 가져오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올 여름이 가기 전에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인류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하였고, 에너지의 발전은 인류
문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인간의 몸이 에너지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도구를 만들어서 인간은 에너지의 힘을 증대시켰습니다. 불의
발견과 이용은 추위를 이길 수 있게 하였고, 인간의 영양상태를 좋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석탄, 석유, 전기, 원자력’으로 인류는
에너지의 사용을 확대하였고, 현대문명은 에너지를 먹으면서 성장한
것입니다. 저 역시 현대문명의 혜택을 충분히 받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편안하게 먼 거리를 이동합니다. 컴퓨터를 이용해서
작업을 하고, 인터넷을 통해서 정보를 얻습니다. 디지털 화된 전자기기를
통해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있습니다. 연극, 영화, 뮤지컬을 통해서
다른 이들의 생각과 상상을 공유하게 됩니다.
새는 하늘을 날 때 ‘좌, 우’의 날개를 함께 사용합니다. 그래야 원하는
목적지를 향해서 날 수 있습니다. 저는 인류가 ‘에너지’라는 날개를
발전시키고, 이용하는 것은 잘하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류는
‘영성’이라는 날개를 키우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화려한 집은 있지만
화목한 가정은 보기 힘들어 졌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는 누리지만 고독과
소외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인류는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하지만 인류의 10억 명 가량이 굶주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인류의
30%는 에너지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조상들이
가꾸었던 지성, 영성이라는 날개를 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참된 지혜와 영원한 생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디지털 문명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말입니다. 그것은 에너지의 발전으로는
키울 수 없는 말입니다. 그것은 지성과 영성으로 이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소유하는 삶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주라는
배에서 단 한명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만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時間, 空間, 人間’이라는 말은 모두 관계의 틀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말임을 깨달아야만 알 수 있는 말입니다.
지혜는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힘입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겸손입니다.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별하는 분별력입니다.
떠나야 할 사람을 박수치며 떠나보내는 것도 지혜입니다. 새로이 오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지혜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알고 인정하는 것도 지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빵과 피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생명의 피에 대한 신앙적인 의미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피는 우리의 몸을 돌면서 영양분을 공급해 줍니다. 우리 몸에서
발생한 노폐물들을 내 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피는 우리 몸에 들어온
나쁜 병균들을 물리치는 일을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영혼은
‘믿음, 희망, 사랑’의 영양분을 공급받게 됩니다. ‘분노, 시기, 원망’과 같은
노폐물을 내보내게 됩니다. 유혹, 욕심, 게으름과 같은 악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둘째, 피는 가문과 혈통을 뜻합니다. 지금은 많이 퇴색되었지만 족보는
가문의 혈통을 말해주는 보물입니다. 성서는 예수님의 탄생에도 예수님의
족보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동물과 식물에도 품종이 있습니다. 우수한
품종은 보존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열매를 맺는 품종, 더 건강한 후손을
낳은 품종들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이 보다 더 자랑스러운 혈통은 없습니다. 혈통은 자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지만, 우리는 우리들의 노력과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크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피는 기운을 뜻합니다. 혈기왕성한 사람은 의욕이 넘치고,
창의적이며 매사에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혈기가 없는 사람은 젊은이라고
해도 매사에 의욕이 없고, 나약하며 시련이 닥치면 금세 좌절하고 맙니다.
우리 민족은 많은 외침을 받았지만 민족의 혈기가 강해서 모두 이겨냈고,
오늘날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신앙인은 그리스도의 혈기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협조자인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은
교회를 보호해 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는 모두 세례를 통해서
성령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넷째, 피는 희생과 봉사를 상징합니다. 예전에는 희생 제물로 동물의 피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우리들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피를 맑게 하기 위해서 운동을 하고,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피를 맑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미사에 정성껏 참여해야
합니다. 규칙적으로 기도를 하고, 자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만 동맥경화에 걸리고, 심장 질환에 걸리고, 당뇨에 걸리고,
고혈압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도 동맥경화, 심장 질환, 당뇨와
고혈압이 올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하십시오, 그것은 지상 최대의 힘입니다.
읽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것은 지혜의 샘입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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