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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8월26일 [(녹)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청주] 실속이 있는 것은 알맹이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제1독서 1테살 2,9-13
+ 복음 마태오23,27-32
★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자신의 연민과 사랑을 밝힌다.
그는 신자들을 위하여 수고하고 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애썼으며,
아버지처럼 그들에게 권고하고 격려했다. 또한 신자들은 그가 전한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제1독서).
★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꾸짖으신다. 조상들처럼 예언자들을 죽이지는 않는다고 그들이 스스로
말하지만, 사실은 그 조상들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복음).
◈ 오늘의 묵상
텔레비전에서 우리는 여러 종류의 커피 광고를 만나는데, 그 광고에
출연한 모델이 보통 때에도 그 커피가 다른 커피보다 맛있고, 그래서
과연 그 커피를 마실까요? 아니면 출연료를 받고 그저 모델 역할만 하는
것일까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어제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자기가 “자녀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온화하게”(1테살 2,7)
처신하였다고 밝히고, 오늘은 “아버지가 자녀들을 대하듯” 신자들
하나하나를 그렇게 대했다고 고백합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들에게서
무엇을 받으려고 사랑을 베푸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는 신자들에게서
영광을 찾지도 않았고, 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자기 손으로 일을
했습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사심 없는 순수한 마음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전해지는 모양입니다.
신자들이 바오로 사도가 전한 말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대가는 물론 사심 없이 투명하게
복음을 전하는 그의 솔직하고 담백하며 하늘처럼 맑은 마음을 헤아렸기
때문이겠지요.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모든 이도 바오로 사도처럼 신자들 앞에서
경건하고 의롭고 흠 잡힐 데 없이 살면서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 매일 미사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5년 나해 8월26일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1테살 2,9)
여러분은 남에게 폐를 많이 끼치며 사시나요?
남에게 폐를 덜 끼치려면 열심히 일해서 자신의 손으로 먹고 살아야죠.
여러분은 남에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는 편인가요?
아니면 부정적이고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인가요?
사도 바오로는 민폐를 안 끼치려고 밤낮으로 애써 열심히 일하고
남들에게 늘 기쁜 소식, 좋은 소식을 전하기 바빴다네요.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사도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답니다.
가능한 한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열심히 일하고 늘 기쁜 소식, 좋은 소식을
전하려고 노력하면 우리도 하느님 나라의 멋진 사도가 된답니다.
오늘도 그렇게 삶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사도 되시길 축원합니다.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5년 나해 8월26일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마태 23, 27-32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첫단추가 중요합니다.
첫단추를 잘 못 꿰면 다시 바로잡기란 참으로 힘이 듭니다.
작은 것에서 시작한 것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옵니다.
예수님을 벗어난 삶은 회칠한 무덤처럼 길을 잃었기에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이 귀한 것인지를 다시 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 같은
우리 영혼에 위험신호를 보내주십니다.
부패한 우리 신앙을 성찰하게 됩니다.
중심을 다시 세우는 시간이기를 기도드립니다.
신앙의 역사는 회칠한 무덤속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생명은 역사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새롭게 열어가는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막다른 골목에서 다시 저자신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꿰어야 할 첫 단추는 진실입니다.
진실은 그리스도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 구속주회 한 상우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외양과 내면
고진석 신부(왜관베네딕도수도회)<연중 제21주간 수요일>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8월26일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 마태오 복음 23장 27-32절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외양과 내면
머리를 깎고 산 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수도원에 들어올 때부터
마음은 있었으나 언감생심 감히 시도하지 못했고, 첫서원을 하고 공부할
기회를 얻어 외국으로 나간 틈을 타서 삭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월 마지막 날 머리를 깎으며 지난달을 정리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로운 한 달을 시작합니다.
파르라니 머리를 깎고 나면 부질없는 생각들이 정리되고 더욱
정진해야겠다는 각오가 섭니다. 머리를 깎고 사니 여러모로 편합니다.
머리를 깎아서 얻는 이점 중에 하나는, 한 십 년 젊어 보인다는 겁니다.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남들이 동안이라고 말해 주면 기분이 좋습니다.
처음 삭발을 하고 다닐 적에는 공동체 형제들 중에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아마도 풋열심으로 혼자 열심히 사는 척
유세를 떨고 다니는 모양이 싫었던 것 같습니다.
『베네딕도 수도규칙』에도 삭발로 하느님을 속이는 거짓 수도승들에
대한 경계가 나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교만하고 위선적인 마음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곧 월말이 다가옵니다. 다시 한번 일상을 점검할 시기입니다.
덜 닦인 내 모습을 삭발과 수도복으로 위장하는 건 아닌지 겸허하게
살펴보아야겠습니다.
어느새 머리카락처럼 더부룩하게 자라난 위선과 교만한 마음을 잘라내고
싶습니다.
○ 신앙인으로서의 외적인 모습과 하느님을 찾는 내면의 마음이 일치하고
있습니까?
- 고진석 이사악 신부(왜관베네딕도수도회) -
◈ [수도회] 기 프란치스코 신부님 - 영적인 순수함과 유연함을 품고
2015년 나해 8월26일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마태 23,27-32
“너희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마태23,28)
영적인 순수함과 유연함을 품고
오늘의 시대는 순수한 신앙의 가치를 살아내기에 너무도 힘들고 강력한
도전들이 널려 있다. 순수한 마음으로 살다 보면 속고 바보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다. 제아무리 진실한 마음과 바른 생각을 지녔다 해도 그럴싸하게
보이지 않으면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다. 겉은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23,27-28 참조)라고 하시며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질책하신다. 율법을 형식적으로만 지키며 의로운 체하는 이들의
표리부동을 질책하신 것이다.
당시 길가에는 무덤들이 많았는데, 유다인들의 3대 명절 때는 순례자들이
붐벼 무덤에 몸이나 옷이 닿곤 했다. 그렇게 되면 불결해져서 축제에
참여할 수 없으므로 이를 막으려고 길가의 모든 무덤에 회칠을 해두는
것이 관례였다.
회칠한 무덤들은 맑은 날에는 하얗게 빛나 보였고 멀리서 보면 아름답게
보였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언자들의 신앙에 참여하고
예언자들이 당하던 박해를 보속하는 뜻에서 기념관과 같은 무덤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30절)라고 말한다.
실제는 어땠는가? 그들은 위선적인 행동으로 예언자들을 박해하던
이스라엘인들 편에 서 있었다. 그들은 구세사를 제 입맛대로 해석하고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쓰라린 대화를 곡해하였다. 그들의 이런 태도야말로
가장 위선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썩어가는 시체의 악취로 진동하고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찬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책망하신 것이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문제는 영적인 유연함의 결핍이다. 영적으로
유연하다는 것은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며 인내로이 기다리는 태도를
말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다른 이들의 충고나 의견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독선은 영신 생활에 결정적인 걸림돌이다.
영으로 유연한 사람은 성 프란치스코가 가르치는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하듯” “사랑의 정신으로 자진해서 서로 봉사하고 순종하며”
(인준받지 않은 수도규칙 5,14),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가슴 태우는
사람”(권고 9)이다. 그리고 형제의 죄 앞에 인내와 겸손을 지닐 줄 아는
사람이다.
위선에 빠지지 않으려면 영적인 허영으로 가득 찬 말을 중요시하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럴싸하게 보이는 성실은 쓸모가 없다. 화려한
언변이나 있어 보이는 외모나 옷차림, 명품 핸드백과 같은 것 때문에 다른
이에게 호감을 받거나 인정받을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은 자신의 내적인
불성실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진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행동은 참으로 경건했으나 그들의 내면은
교활했고 부패한 죄로 가득했다. 나 또한 속은 썩어 있고 미움과 탐욕,
절망과 부정적 시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죽은 무덤을 실속 없이
화려하게 꾸미는데 열을 올리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영적 유연함을
잃고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빛깔의 독버섯이나 회칠한
무덤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청주] 실속이 있는 것은 알맹이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8월26일 [(녹)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제1독서
<우리는 밤낮으로 일하면서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 2,9-13
복음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27-32
실속 있는 것은 알맹이다.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꾸중을 하였습니다.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겉은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듣고 그 회칠한 무덤이 바로 저라고 생각했습니다.
신부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
미사를 봉헌한다고 성덕이 출중한 것도 아닙니다. 그에 상응하는
마음가짐과 정성을 담지 않으면 거룩한 것을 더 많이 접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불경한 잘못을 범하고 맙니다. 알면 아는 만큼 더 잘 살아야
하는데 아는 것과 사는 것은 분명 다릅니다. 사실 신부이기 때문에 더
많은 위선을 떨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자들에게는 기도를 많이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을 하지만 최소한의
의무인 ‘성무일도’조차 거르고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성체조배는 물론
묵주기도를 하는 것은 기본이거늘 일반 신자보다 더 많이 기도한다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이러저러한 인간적인 욕망에 대해서도 절제 있는
기쁨을 누리지 못할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닌 척 하고
목을 빳빳이 세우고 다닙니다. 이런 모습에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까? 생각하면서도 몸은 여전히 육정을 따르고 맙니다.‘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를 얘기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내 눈 안에 들보를 지닌 채 남의 눈의 티를
빼주겠다고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
백성은 말로만 나와 가까운 체하고 입술로만 나를 높이는 체하며 그
마음은 나에게서 멀어져 간다”(이사29,13). 하였고, 주님께서도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 하여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구나”
하신 말씀이 새롭습니다. 아무리 겉이 화려하더라도 실속이 있는 것은
알맹이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삶을 봅니다. 그는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가운데 마니교( 3세기경에 페르시아인 마니가 창시한 이원론적
종교입니다. 마니교는 조로아스터교, 기독교, 불교, 바빌로니아 원시
신앙 등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마니교의 교리는 세계를 선과 악, 광명과
암흑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을 핵심으로 합니다. 이와 같이 선과 악이
뒤섞인 세계에서 광명과 암흑으로부터 분리하기 위한 사자로서 마니가
왔다는 것입니다)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모니카 성녀의
간절한 기도와 희생,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 주교의 영향으로 회개하고
입교하였습니다. 아우구스티노는 고백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나이다. 내 안에 님이 계시거늘 나는 밖에서, 나
밖에서 님을 찾아 당신의 아리따운 피조물 속으로 더러운 몸을 쑤셔
넣었사오니! 님은 나와 계시건만 나는 님과 같이 아니 있었나이다. 당신
안에 있잖으면 존재조차 없을 것들이 이 몸을 붙들고 님에게서 멀리
했나이다. 부르시고 지르시는 소리로 절벽이던 내 귀를 트이시고,
비추시고 밝히시사 눈멀음을 쫓으시니, 향내음 풍기실 제 나는 맡고 님
그리며, 님 한 번 맛본 뒤로 기갈 더욱 느끼옵고, 님이 한 번 만지시매
위없는 기쁨에 마음이 살라지나이다”(성 아우구스티노).
또 말합니다. “마음이 똑바로 향해 있으면 행동 또한 바릅니다. 마음과
행동이 일치할 때 구원의 은혜를 입을 것입니다.”과거가 중요하지 않고
새 삶을 시작 한 날이 중요합니다. 신앙인에게 있어 과거는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입니다. 과거를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고 앞날을 하느님의
섭리에 맡겨 드리며 주어진 오늘 이 순간을 사랑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말을 하고 저런 행동을 하며 위선과 허물로 누벼놓은 이날에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청합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의
허물을 용서하소서. 구원을 허락하소서. 아멘.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우리가 바로 사랑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2015년 나해 8월26일 [(녹)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제1독서
<우리는 밤낮으로 일하면서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 2,9-13
복음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27-32
한 남자가 번화한 도시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먹을 것을 구걸하는
한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그 아이는 어른의 보살핌을 오랫동안 받지
못해서인지 지저분하고 더러운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으며, 배고픔에
너무 힘들어하고 있었지요. 남자는 화가 나서 하느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십니까? 왜 이 죄 없는 아이를
도우시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그의 마음에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나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너를 만들지 않았느냐?”
주님께서는 우리를 동업자로 삼고 계십니다. 세상을 보다 더 나은 곳으로,
보다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의 이 손길을 거부할 때가 많습니다. 동업자가 되자고
하시는데 과감하게 거절하지요. 복자이신 마더 데레사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통해 이 세상을 사랑하신다.”
우리를 통해 사랑을 보여주시는데, 그 역할을 하지 않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사랑을 전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으면서 어쩔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사랑의 주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만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요?
동업자이신 주님의 손을 잡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은 바로 우리의 손을 통해서 세상에
펼쳐지는 것입니다. 만약 이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입으로만 사랑을
외치는 것과 똑같습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꾸짖는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인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불행하다고
말씀하시지요.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끊임없이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외치고 있으며, 사람들에게도 실천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실천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지요.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내려 하기 보다는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로 사랑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즉, 말로만 외치는 사랑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실천할 수 있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야말로 주님의 참된 동업자로 참 행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내 비결은 간단하다. 기도를 하는 것이다(복자 마더 데레사).
예쁜 꽃과 같은 예쁜 마음으로 살았으면 합니다.
사랑의 힘
복자 마더 데레사께서 살아 계실 때, 가난하고 병든 자를 위해 모든
사랑을 쏟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한 번은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을 사람들이 데리고 왔지요. 그런데 이
사람은 쥐와 곤충들이 그의 무릎 아래 살을 파먹어 두 다리뼈가 하얗게
드러나 있었고, 남아 있는 살에도 구더기가 기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제
죽음을 목전에 두었음에 의심할 바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복자
마더 데레사는 포기하지 않고 그에게 최고의 사랑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한 방문객이 복자 마더 데레사에게 말합니다.
“나 같으면 백만 달러를 준다 해도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하지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할
것입니다.”
우리가 잊어버리는 사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느님을 생각한다면
사랑의 일에 있어서 주저할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그 사랑에는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합리성과 편리만을 생각할 때, 사랑이란 단어는 자그마한 글자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행하는 사랑은
세상을 강하게 울리는 커다란 힘이 됩니다.
올릴 사진이 없어서 며칠 전에 찍은 인천 신포동의 닭강정 사진
올려봅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 -
◈ [서울]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2015년 나해 8월26일 [(녹)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제1독서
<우리는 밤낮으로 일하면서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 2,9-13
복음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27-32
저는 1991년 8월 23일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지난주일 동창 신부님들과
조촐한 모임을 함께 하였습니다. 24년 동안 사제로 지내면서 부족한
점들은 반성을 하였고, 서로를 격려하는 자리였습니다. 한 친구는 10년
이상을 도시 빈민들과 지내고 있습니다. 한 친구는 24년을 본당 사목만
하였습니다. 3친구는 이번에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소국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꾸르실료, 엠이의 일도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복음화 학교의 일도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매주 신학교에 가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복음 묵상을 나누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일은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저의 내면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은 늘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매 순간 충실하지 못하였고, 쓸데없는
것들에 많은 시간을 보내곤 하였습니다.
어릴 때, ‘개미와 배짱이’라는 이솝우화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개미는 뜨거운 여름에도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추운
겨울이 왔을 때, 개미들은 열심히 일해서 모은 식량을 먹을 수 있었고,
무사히 추운 겨울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배짱이는 여름 내내
신나게 놀았습니다. 주위에 먹을 것이 많았기 때문에 놀아도 걱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겨울이 왔고, 이제 주위에 먹을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배짱이는 추운 겨울에 먹을 것이 없었고, 아마도 노숙자
배짱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꾸짖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규정들을 이야기하면서 배짱이처럼
자신들은 열심히 율법을 지키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세례를 받았지만, 신앙인으로서 충실하게 살지 못한 사람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주일미사에 참례하지 못하는 사람, 본당에서 준비한
피정, 교육에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데 인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신앙의 뿌리가 깊지 못하기 때문에 곧
신앙이 식어버리곤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아주 근면하고 성실한 사도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뜨거운
열정도 있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우리가 신자 여러분에게 얼마나 경건하고 의롭게 또 흠
잡힐 데 없이 처신하였는지, 여러분이 증인이고 하느님께서도
증인이십니다.”
우리가 경제적인 풍요를 얻기 위해서 근면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오늘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복음을 위해서,
하느님께 나가기 위해서도 근면하고 성실해야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기도하는 사람, 좋은 말씀을 듣기 위해서 피정과 교육에
자주 참여하는 사람,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적극적인 사람들은
신앙생활에서도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들입니다.
여름에는 배짱이처럼 살아도, 개미처럼 살아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겨울이 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우리 모두는 언젠가 삶의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가
온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개미들은 추운 겨울을 위해서 식량을
준비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겠습니까? 나의
영혼과 이웃들을 위한 기도를 준비했다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을 도와주는 봉사를 준비했다면, 우리는 삶의 마지막이 온다 해도
아무 걱정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이 그 안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들통 한숨 당연하네요.
2015년 나해 8월26일 [(녹)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제1독서
<우리는 밤낮으로 일하면서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 2,9-13
복음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27-32
들통 한숨 당연하네요.
로만 칼라를 한 신부지만 살면서 보니 저도 인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서품 후 십 년 십 년 변해가는 세상과 함께 저도 변해 감을 실감합니다.
‘내 탓이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며 겉으로 말하지만 공감약해요.
높은 지위에 멋지게 보였던 사람들의 속 검음증이 들통나기도 하고요.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른 수많은 인간들이 서로 얽혀 사니 한숨 나네요.
예수님의 질타는 원죄지은 사람이 본죄까지 지으며 사니 당연 하네요.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마태오 23,28)”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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