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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ann Sebastian Bach (1685 - 1750)
Sonatas for Violin and Harpsichord No.4 in C minor BWV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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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nn Gould & Jaime Lared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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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는 사촌 누이이며 사랑하는 아내인 마리아 바르바라와 갑자기 사별하게 되었고, 더우기 바흐는 쾨텐에 돌아와서야 아내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4명의 아이가 있었던 바흐는 큰 충격을 받았다. 6곡의 소나타 중에서 4번과 5번이 다른 4곡과는 내용이 달라서 비통함이나 단호한 의지, 혹은 종교적인 체념이 보이고 있는 것은 아내의 죽음과 관계가 있다고 짐작하고 있다.
바흐 -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무반주(파르티타 포함)의 것[BWV1001~1006)], 통주저음이 딸린 것[BWV1021, 1023], 그리고 악보에 음표가 명 확히 기입되어 있는 쳄발로와 협연하는 것들 세종류가 있다.
그 중에서 바이올린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는 6곡이 남아 있다. [BWV1014 ~ 1019] 이 6곡은 음악사적으로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통주저음이 딸린 낡은 스타일의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근대적인 2중주 소나타로 넘어가는 교량 역활을 하는 것이 이 소나타이기 때문이다. 여섯곡의 소나타는 완전한 자필악보가 현존하지 않는다. 이 6곡의 악보가 처음 인쇄 된것은 바흐가 세상을 떠난 후의 일이었다. 6곡의 소나타가 언제 작곡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작품들은 쾨텐시대(1717~1723)인 1718년 부터 1722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있다. 바흐의 연구가 깊어가면서 5번과 6번을 제외한 나머지 4곡은 1720년 경의 작품이라고 추정되었다. 이 6곡의 소나타들이 작곡되던 시기의 바흐는 음악을 좋아하는 쾨텐의 영주 레오폴드 제후의 초청으로 궁정악장으로 취임했고 쾨적한 생활을 보낼 수 있었으며 이 궁정이 예배에서 음악을 그다지 중요시 하지 않는 칼뱅파에 속해 있어 바흐는 종교음악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으며 대신 교회와 관계가 없는 작품, 그것도 기악곡으로 새 경지를 개척해 나갔다.
1720년까지 바흐의 생활이 얼마나 충실했으며 행복으로 가득차 있었는지는 그 시게에 작곡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BWV1046~1051]을 비롯한 많은 작품(단조라 할지라도)이 낙천적이고 구김살 없는 양상을 보이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1720년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그해 5월에 바흐는 칼스바트(지금의 체코 영토인 카를로비바리)에 보양하러 가는 레오폴드 재후를 따라 쾨텐을 떠났다. 그가 떠나고 없는 7월7일, 바흐는 사촌 누이이며 사랑하는 아내인 마리아 바르바라와 갑자기 사별하게 되었고, 더우기 바흐는 쾨텐에 돌아와서야 아내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4명의 아이가 있었던 바흐는 큰 충격을 받았다. 6곡의 소나타 중에서 4번과 5번이 다른 4곡과는 내용이 달라서 비통함이나 단호한 의지, 혹은 종교적인 체념이 보이고 있는 것은 아내의 죽음과 관계가 있다고 짐작하고 있다. 제 1번의 내면적인 슬픔과 고요, 격정과의 대비는 그 전년도인 1719년에 넷째 아들을 잃은 것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여섯곡의 소나타는 6번(5악장)외에는 모두 '느리게-빠르게-느리게-빠르게'하는 이탈리아 교회소나타의 악장배치를 하고 있다. 그러나 바흐는 이 테두리 안에서 이탈리아 3부 아리아의 구성을 전용해 보거나 론도에 가까운 형태로 협주곡에의 접근을 꽤하거나, 샤콘느, 혹은 파사칼리아에 가까운 것을 배채하기도 했다. 이와같이 바흐는 통주저음이 달린 소나타와 트리오 소나타에서 쳄발로의 기능을 살려 바이올린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를 창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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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연휴의 끝지점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휴식을 취하기에 가장 적절한 음악인 듯~~~감사히 듣습니다~^^
저도 수요일까지 급하게 글 쓸 게 좀 있어서 들어왔다가 도움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저도 감사한 마음으로 듣습니다...
수고스럽게 올려주신 곡 잘 듣습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