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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나해 10월8일 목요일 [(녹)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수도회] 어떻게 기도할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 제1독서 말라 3,13-20ㄴ
+ 복음 루카 11,5-13
◈ 오늘의 묵상
누군가 부탁을 해 올 때, 저는 그 부탁을 들어줄 것인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하여 대답한 다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번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열 번 찍어 안 넘어갈 나무 없다.”는 말이 좀 생경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다 보니, 열 번 찍으면 넘어가는
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 번 부탁은 거절하지만, 자꾸 조르게
되면 결국은 들어주는 것을 보면서 그 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열 번
찍으면 나무가 넘어가나요?” 대답은 간단했지요. 아무나 조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넘어갈 준비가 다 되어 있는 나무를 알아보고 골라서 조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나무들은 처음에는 넘어갈 것이 아니었는데 나중에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꾸 매달리면 결국은 넘어가게 되어 있는
나무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하느님의 모습도 이렇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버지가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주듯이, 선하신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분이시기에, 그 좋은
것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을 아시면 우리에게 그것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꾸준하게 열심히 간청하였지만, 그 결과가 우리의 청원과 전혀
다를 수가 있음을 종종 체험합니다. 설령 우리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느님께서 싫어서 들어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을 마련해 주시려고 잠시 유예하시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매일 미사 -
◈ [서울]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2015년 나해 10월8일 목요일 [(녹)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제1독서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3-20ㄴ
복음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5-13
10월 3일에는 혼배미사를 2번 하였습니다. 12일에는 루르드회 피정
강의가 있습니다. 18일에는 레지오 단원 교육과 성체 분배자 교육이
있습니다. 22일에는 꾸르실료 봉사를 들어갑니다. 27일에는 성북동 성당
견진 교리가 있습니다. 30일에는 전농동 성당 견진 교리가 있습니다.
능력은 별로 없지만 누군가 부탁을 하면 거절을 잘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려 시대에 이조년 선생님께서는 아름다운 글을 남겨 주셨습니다. 이름
하여 ‘다정가’입니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누군가 이렇게 풀이하였습니다.
“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난 밤 삼경에
소쩍새는 접동접동 구슬피 밤을 울어 예도
나뭇가지에 맺히는 봄소식을 알 리 없고
이 내 몸은 다정도 병이어서 잠 못 들어 한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니, 어쩌면 우리들 때문에 더욱 잠 못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면 하느님께서는 들어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숨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닮은
존재라는 것은 겉모습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영혼이 하느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굳이 배우지 않아도 ‘양심’이 이끄는 데로
살아갑니다. 부끄러움을 알고, 자비를 베풀 줄 알고, 옭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알고, 겸손할 줄 압니다.
원망, 분노, 욕심, 시기, 질투, 폭력, 전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참된 자아를 보지 못하고, 거짓된 자아를 따라가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기도는 내면에 있는 참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요? 자신의 내면을 사랑하면 비로소 보일 것입니다. 그때
보이는 것은 예전에 보던 것과는 분명 다를 것입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장인정신의 신앙으로
끈기 의지력 항구한 노력 계속 반복 이런 정신이 이젠 많이 흐려졌네요.
한탕주의 대번에 단번에 단칼에 한 번의 터치로 뭐든 하는 세상 맞아요.
변화무쌍한 세상에 물들어 그저 빨리 뛰다 코 깨져 신세타령하지 맙시다.
시간 흐르고 세월 가고 나인 들어 늙어가는 몸이라 슬퍼하지 맙시다.
10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힘주네요.
장인정신의 신앙으로 꿋꿋이 버티어 신 닮으면 하느님 뵙게 될 겁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루카 11,9)”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 [인천] 주님의 넓고 깊은 마음을 본받아
2015년 나해 10월8일 목요일 [(녹)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 루카 11,5-13
‘내 자신을 아프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내 자신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 자신이 받은 아픔을 잘 잊지 못하는데, 상처를 준 사람은 그
기억을 하지 못하거든요.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말과 행동에 대해서
쉽게 잊는 것은 바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입니다.
솔직히 저는 사람들에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상처를
준 말,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에 대해서 그 자리에서 이야기하지 못하고
그냥 마음속으로 삭히곤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 분과 술자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술의 힘을 빌어서 그때 제가 받은 상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요. 참으로 서운했다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의 말을 가만히 듣던 그분은
깜짝 놀라면서 말씀하십니다.
“그때 그런 일이 있었어요? 제가 정말로 그런 말을 했어요?”
상대방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데, 저만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고
이 일로 인해서 힘들어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은 내 자신을 아프게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아픔을 느꼈을 때 곧바로 이야기했다면, 좀 더 넓은 생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면 아픔을 그토록 오래 간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그 사람이 내게 아픔을
주었다는 사실만 간직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 사람으로 인해 아픔을 겪은
것이 아니라, 나의 잘못된 판단과 이해하지 않았던 속 좁은 마음이 아픔을
갖게 한 것입니다.
주님께 대해서도 상처가 있는 분들이 있음을 종종 보게 됩니다. 자기가
정말로 어렵고 힘들었을 때 주님께서는 외면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주님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이해했을까요? 아닙니다. 자기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고 그래서 주님과 자기는 맞지 않는다며 멀리했던
것입니다. 결국 주님과의 관계를 멀게 한 것은 주님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요.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하늘 나라의 문은 게으르고 한눈파는 자들이 아니라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이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이 문은 기도로 청하고
바른 삶으로 찾고 한결같은 신앙으로 두드려야만 열리는 문인 것입니다.
내 자신에게 원인이 있었을 때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바로 내가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았고, 내가 더 넓고 깊은 마음을 간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넓고 깊은 마음을 본받아 문제의 원인들을
하나씩 지워나가야 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야 하늘나라의 문이
활짝 우리 앞에 열릴 것입니다.
먼저 꿈을 꾸지 않고선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칼 샌드버그).
선배신부님께서 맛있는 고기 사주셨어요.
하나에서 열까지
1. 천하보다 소중한 한 글자 : 나
2. 그 어떤 것도 이길 수 있는 두 글자 : 우리
3.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글자 : 사랑해
4. 평화를 가져오는 네 글자 : 내 탓이오.
5. 돈 안 드는 최고 동력 다섯 글자 : 정말 잘했어.
6.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드는 여섯 글자 : 우리 함께 해요
7. 뜻을 이룬 사람들의 일곱 글자 : 처음 그 마음으로
8. 인간을 돋보이게 하는 여덟 글자 : 그럼에도 불구하고
9. 다시 한 번 일어서게 하는 아홉 글자 : 지금도 늦지 않았단다.
10.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열 글자 : 내가 항상 네 곁에 있을게!
어떤 글자를 좋아하십니까? 어쩌면 모든 글자가 다 좋은 말이 될 수
있겠지요. 어떤 말을 쓰느냐에 따라서 말입니다. 좋은 말, 사랑이 가득한
말을 많이 하는 오늘이 되셨으면 합니다.
코스모스를 보니 가을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5년 나해 10월8일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루카 11,13)
여러분은 자녀에게 많은 것을 주셨지요?
생명을 주었고, 애정을 주었고, 돈을 주었고, 신앙을 주었고,
삶의 지혜도 주었을 겁니다.
그들이 청해서 준 것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들이 청하기도 전에 주고 싶어서 다 해 주었습니다.
사실 사랑하는 이에게는 뭐든지 좋다는 것은 다 주고싶어 하지요.
때론 가난해서 더 많은 재산을 못 물려주어서 때론 허약하고 건강치 못한
몸을 물려주어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요.
그런데 여러분은 자녀들이 무엇을 청할 때 가장 기쁘고
무엇을 청할 때 제일 슬프나요?
자녀가 부모에게 인생의 지혜를 청할 때 가장 기쁘고
없는 돈을 자꾸만 내놓아라 할 때 가장 슬프지 않을까요?
하느님께서도 우리가 청하는 모든 것을
사실 청하기도 전에 주시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정말 우리에게 주고싶어 하시는 것은
재물이나 명예가 아니라 성령이시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오늘 주님께 뭘 청하시고 싶나요? 성령을 주십사 청하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며
성령의 열매와 선물들을 풍성하게 베풀어 주실 겁니다.
돈이 중요합니까? 명예가 중요합니까?
아무리 돈과 명예를 얻어도
성령의 선물인 사랑, 기쁨, 평화, 온유, 절제, 인내, 친절, 선행, 진실같은
성령의 열매만 하겠습니까?
주님, 저에게 성령을 보내주소서. 아멘.
- 구속주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5년 나해 10월8일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루카 11,5-13)
우리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존재를 진심으로 믿습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하느님께서 청해야 할 것을 먼저 청하십니다.
기도는 이미 생명의 모든 것을 맡기는 사랑과 믿음입니다.
믿음의 진면목은 청하는 기도로 드러납니다.
사랑의 관계에 충실하게 하는 것은 기도입니다.
청하는 관계는 살아있는 관계이며 깊어가는 은총의 관계가 됩니다.
기도의 여정은 주고 받는 사랑의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마주치는 모든 것이 실상은 주고 받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 안에 계시면서 사랑과 믿음의 음성으로 하느님께 청하시는
하느님의 진정한 사랑을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됩니다.
기도는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하느님께서 청하시는
모든 것은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하느님께서 기도하실 수 있도록
하느님께 이모든 것을 맡겨드립시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하느님 자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어떻게 기도할까 - 기프란치스코 신부
2015년 나해 10월8일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루카 11,5-13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루카 11,9)
어떻게 기도할까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상호의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영성생활에 있어서도 신뢰심을 가지고 하느님께 의탁하며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영적으로 가난한 이의 기본적인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다양한 계기로 부탁이나 요청을 하고 때로는 거절도 하지만
문제는 어떤 마음으로 청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팔레스티나에서는 밤중에 손님이 찾아오더라도 기꺼이 환대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한밤중에 벗이 찾아와 대접하려 하는데 여분의
빵조차 없어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문을 닫아걸고 가족들이
잠자리에 든 친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합니다. 청을 거절하던 친구도
졸라대며 사정하면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입니다(11,8).
벗이라면 마땅히 곤경에 처한 벗의 청을 들어주고 심지어 악한 사람이라
해도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아는데(111,13), 하물며 선하신
하느님께서야 곤경에 처한 우리의 청을 안 들어주실 리가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관대함은 인간에 비길 수 없이 깊고 넓으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베풀어주시는 하느님은 그 누구보다
훨씬 고결하시고 너그러우십니다(아우구스티누스). 따라서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입니다.”(11,10) 곧 주님께서는 기도하는 이들의 기도를 언제나 반드시
들어주시며, ‘성령’의 선물마저도 더 잘 주실 것입니다(11,13).
하느님께 어떤 마음으로 청해야 할까요?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는다’
(11,10)는 말씀을 무엇이든 청해도 되는 것으로 잘못 알아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청해야 할 것은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나
현세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가 오시기를 청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가 오시도록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청해야 합니다. 이 기본을 망각할 때 우리는 입으로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얼핏 보면 선행을 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 하느님을 도구화하고
소유와 욕망의 노리개로 취급하는 망발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는 끈질기게 청하면서 모두가 행복하기 위한 정의
실현이나 공동선의 추구,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은 소홀히 하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기도한다면서 자기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간청하고, 죄를 고백하면서
남의 잘못만 들춰내 말하며, 하느님을 만나도록 주어진 시간을 온갖
잡담과 망상과 소음으로 채우고, 봉사한다면서 자기 이미지 관리에
여념이 없는 것. 이런 행동들이 얼마나 위선적이며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것인지!
주님께서는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십니다.”
(마태 6,8) 하지만 하느님의 선 안에서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하여 창조의
영, 생명의 영, 기쁨의 성령을 끈질기게 청해야겠습니다. 주님은
자비하시니 기도로 청하고 바른 삶으로 찾고 한결같은 신앙으로 두드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모두가 행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하늘나라가 ‘지금’
‘여기서’ 실현될 수 있도록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끈기 있게 청하는 ‘거룩한 청원’의 시간이 가져보았으면
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청주] 청하여라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10월8일 목요일 [(녹)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 루카 11,5-13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우는 아이에게 젖을 준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나 원하는
사람이 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얻을 수
있습니다. 기억 하실 것입니다. 월드컵 축구시합 응원에서 “꿈은
이루어진다”는 희망을 표현했고 그 희망이 기쁨을 주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여러분이 얻지 못하는 까닭은 하느님께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야고2,4). 그러므로 구하십시오! 주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루카11,9-10)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꼭
들어주신다는 보증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결코 의심하는 일 없이
믿음을 가지고 청해야 합니다. 의심을 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물결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주님에게서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야고1,6-7). 사실 “우리가 그분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1요한5,14-15).
그러나 청해도 응답 받지 못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시편66장 18절을 보면
“나 나쁜 뜻을 품었더라면 주께서는 아니 들어주셨으리라” 적고 있습니다.
잠언에도 “나는 대답하지 아니하리라. 또, 나를 애써 찾겠지만 만나지
못할 것이다. 야훼를 두려워하여 섬길 줄 모르고 지식을 멀리한 탓이다.
내 충고를 다르지 않고 온갖 훈계를 없니 여긴 탓이다”(11,27-30)
하였습니다. 완고한 자의 기도는 응답 받지 못합니다. “귀를 막고
하느님의 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마저 역겨워 하리라”(잠언28,9).
그리고 “구해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욕정을 채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야고4,3). 더더욱 악행을 저지른 자의 기도는 외면하십니다.
“두 손 모아 아무리 빌어 보아라. 빌고 또 빌어 보아라.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너희의 손은 피투성이, 몸을 씻어 정결케 하여라”
(이사1,15-16).
기도를 했는데 들어주시지 않는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첫째는 마음
없이 청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청해야 합니다. 또한 끈질기게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디안들이 가뭄에 기도하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합니다. 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도를 한답니다. 한편 내가
겸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나의 기도는 어느 쪽에 가까운지를! 또 다른 이유는 들어주면 오히려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과일을 까고 있는데 어린아이가 칼을 달라고
졸라대며 칭얼거린다고 칼을 줄 수는 없는 법입니다. 허락하면 교만해
지고 피해가 간다면 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청하되 합당한 마음으로 청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믿음으로 소원을 하느님께 말씀
드리기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 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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