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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나해 10월18일 연중 제29주일
[수도회] 모두가 행복해지는 날까지 함께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 제1독서 이사 2,1-5
○ 제2독서 로마 10,9-18
+ 복음 마태 28,16-20
오늘 전례
○ 전교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구원의 복음이 세상 끝까지 전파되어
모든 이가 하느님을 알게 되기를 기원하며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합니다. 복음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하느님께 간구하며, 아직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에게
믿음의 문이 열리기를 기도합시다.
◈ 오늘의 묵상
언젠가 오늘의 제2독서 말씀을 묵상하다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아름답다는 구절이 눈에 크게 들어왔습니다. 통상적으로 복음은
‘말과 입’으로 전한다고 생각하는데, 바오로 사도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발’이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전하려고 발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로마 신자들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을 때는 이미 세
차례의 선교 여행을 경험한 다음이었지요. 요즘처럼 교통수단이 발달한
시대도 아니었기에, 어쩌면 그는 사람들을 만나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보다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여행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수고는 아름다웠는데, 더욱이 복음을 위한 수고였기
때문이지요.
초창기 우리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던 분들은 대부분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들이었는데, 이 회에서는, 이 구절을 생각하며 선교지로 떠나는
이들의 발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고 합니다. 박해가 한창인 선교지를
향하여,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선교사들의 발에 입을 맞추던 이들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세상 곳곳에서 수많은 발들이 복음을 위해 온갖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 발들에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합시다.
아울러 인류 구원 역사는 파견의 역사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파견하셨고, 하느님 아버지와 아드님께서는 성령을 이
세상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 구원을 위하여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시면서 당신 제자들과 우리를 오늘
파견하십니다. 전해 받은 복음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우리의
‘발’도 아름답게 수고하기를 빕니다.
- 매일 미사 -
◈ [인천] 주님의 표시를 따를 수 있는 힘
2015년 나해 10월18일 주일[(녹) 연중 제29주일]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 마태오 28,16-20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서울에서 둘째로 잘하는 집”이라고 세워져
있는 간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왜 이 집
주인은 ‘둘째로 잘하는 집’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그렇다면 제일 맛있는
집은 어디인가?‘ 등등의 궁금증이 생긴 것입니다. 때마침 출출해서 이
사람은 이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가게는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이 집은
’둘째로 잘하는 집‘이 아니라, ‘둘째로 잘하는 집’의 간판을 만드는 간판
가게였던 것입니다.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고 해서 화를 낼 수 있을까요? 세워진 간판의
내용과 다르다고 해서 따질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간판 가게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간판만 보고서 들어간 사람이 잘못인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들은 세상의 표시만을 보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의 표시들은 부와 명예만이 행복으로 우리를
이끌어줄 것처럼 지시합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돈을
많이 벌고, 사람들을 밟고 올라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참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 표시가 과연 정말일까요? 마치
앞선 이야기처럼 간판 가게에서 다 만든 다른 가게의 간판만을 보고서 그
집이 맛집인 양 착각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 아닐까요?
세상의 표시보다는 주님께서 정확하게 제시하는 표시를 따라가야 제대로
행복의 길로 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것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가치들을 계속해서
말씀하시면서 우리들에게 표시를 남겨주셨습니다. 단 한 번도 돈 벌라고
하시지 않았으며, 단 한 번도 기를 쓰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사랑의 길을 향해 나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상의 표시를 무시할 수 없다면서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려 합니다. 어쩔 수 없다면서 너무 힘든 당신의 말씀이라고
원망의 기도를 바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세상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참 자녀가 될 수 있도록 힘쓸 것을 명하십니다. 그러나 이를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중요한 약속 한 가지를 해주시지요.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이 말씀에 큰 힘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의 표시만이 아니라, 주님의
표시를 따를 수 있는 힘도 얻게 됩니다. 비록 자주 넘어져서 주님의
표시를 따르지 못할 때도 있지만, 내 곁에 계시는 주님을 보면서 다시
힘을 내어 주님의 표시를 따르려고 시도를 하게 됩니다.
내가 따라가야 할 표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과연
우리가 따라가야 할 표시는 무엇일까요?
진정으로 발견하는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얻는 데 있다(마르셀 푸루스트).
서울에 있는 진짜로 둘째로 잘하는 집입니다.
체인지
한 남자가 직장일이 너무 힘들어 여자가 되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도 간절하게 기도해서 하느님께서는 그 소원을
이루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여자가 되니 너무 힘든 것입니다. 눈 뜨자마자
밥하고, 아이들 씻기고, 학교 보내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시장가고,
음식준비하고, 저녁먹이고, 또 애들 씻기고…….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이제 좀 편안히 잠 좀 자려고 하니까 남편이 찝쩍대는 것이었지요.
이러한 여자의 삶을 하루 지내고 보니 피곤하기만 하고 별 다른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 다시 열심히 그리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느님,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다시 남자로 돌아가게 해주세요.”
그런데 하느님께서 아주 곤란한 표정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 생각이 짧은 지를 이제 알겠니? 그런데 어떻게 하지? 너 어젯밤에
임신했다.”
지금의 자리가 제일 행복한 자리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순간을 살아보세요. 가장 좋은 순간들만 보이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5년 나해 10월18일 연중 제29주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로마 10,15)
여러분들의 발을 한번 보세요.
이쁘게 잘 생겼나요? 못 생겼나요?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을 보셨나요?
축구선수 박지성의 발을 보셨나요?
참 못 생겼지요. 그러나 정말 아름다운 발 아니던가요.
예쁜 발 못 생긴 발이 아니라 아름다운 발을 만들어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아름다운 발을 만드는 방법은
기쁜 소식을 열심히 전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복음(福音)은 말 그대로 '기쁜 소식'입니다.
죄인에게 죄사함 받았다고 하는 것이 기쁜 소식이고
병자에게 병이 나았다고 하는 것이 기쁜 소식입니다.
가난한 이가 배부르게 되고 눈 먼 이가 보게 되고 절름발이가 뛰게 되고
감옥에 갇힌 이가 풀려나게 되고 억울한 이들이 한을 풀게 되고
죽은 이들이 살아난다는 것이 기쁜 소식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바로 그런 기쁜 소식을 전하셨고
사도들이 그런 기쁜 소식을 만방에 전하라 하셨습니다.
전교주일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쁜 소식(good news)을 열심히 전하는 일입니다.
슬픈 소식, 나쁜 소식(bad news)을 퍼다 나르지 마십시오.
기쁜 소식을 전하는 곳마다 기쁨과 행복이 번져가고
나쁜 소식을 전하는 곳마다 어둠과 불행이 번져갑니다.
그래서 세상 끝까지 기쁜 소식을 전해야만 합니다.
오늘 기쁜 소식 많이 많이 전하시길 축원합니다.
- 구속주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5년 나해 10월18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 주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6-20)
기쁜 소식이 간절히 필요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또한 실천하는 것은
당연한 우리들의 선교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시작은 기쁨의 시작이며 새로워지는 생명의 시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이 가장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시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이 되어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의 길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제자들을 친히 뽑으시고 제자들과 함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우리의 기쁜 소식,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을 믿고 주님의
복음을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복음은 지극히 개별적이면서도 지극히 보편적인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이들을 향해 열려있는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은 참된 행복을 향해
모든 민족들을 향해 확장되어 나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었듯이 미력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는 전교주일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복음화는 복음의 힘을 믿는 신앙인들의 실천을 통해
변화되는 우리모두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모두가 행복해지는 날까지 함께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5년 나해 10월18일 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이사 2,1-5;로마 10,9-19;마태 28,16-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20)
모두가 행복해지는 날까지 함께
성경의 가르침과 그리스도교 전통은 구원의 보편성과 모두를 위한
사랑을 추구해왔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도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시고 교회가 기쁘게 선포하는 이 구원은 모든 이를 위한 것”
(복음의 기쁨, 113항)임을 선언하셨습니다. 오늘날처럼 복잡하고
혼란스러우며 무엇보다도 자본이 맹렬한 힘을 떨치고 있는 이때에 과연
교회와 신앙인은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체포되자 제자들은 달아나버렸습니다
(마태 26,47-56). 그런데 예수님의 무덤을 보러갔던 여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줍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28,10) 유다를 제외한 열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갈릴래아의
산으로 가서 그분을 뵙고 엎드려 경배드립니다(28,17).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28,18)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과 삶이 하늘과 땅, 곧 전
우주적으로 결정적이며 그분이야말로 모든 피조물의 주님이시며 우주의
주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소명을 주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28,19-20)
마태오복음에 따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은 성경
말씀을 알리고, 봉사활동을 하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루카24,47)와
같은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총체적이고 우주적인 소명입니다. 곧 모든
존재를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며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어주시는 주님의
‘모든 것’을 ‘모든 이’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소명을
사는 이들과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함께 계실 것’입니다(28,20). 이러한
소명은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 없는 의무이며 행복의 조건입니다
(1코린 9,16).
교회와 세상을 성(聖)과 속(俗)으로 엄격하게 구분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 구분 속에 교회와 세상은 소통하지 못한 채 속화된
세상을 단죄하고 배척하였습니다. 그런 교회는 결국 배타적이고
폐쇄적으로 변하기 마련이었고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민의식을
재현함으로서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 모두에게 햇빛을 내려주시는’
하느님의 그 사랑 앞에 편 가르기를 하면 착각에 빠졌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 신앙인들의 모습에서도 이런 모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눈 속의 티는 못보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은 책임 있게 하지
않으면서 남의 허물을 비판하고 부정적으로 말하길 즐기면서 어떻게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될 수 있겠습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에
불의가 판치고, 정치권력이 공동선을 지향하지 않고 사회 곳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려도 무관심한 채 교회의 외적 성장만을 추구한다면 어찌
예수님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건네는 교회라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명하는 모든 것을 가르치고 지키도록 하는 것은 곧 그분의
삶 전체인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돈으로 전해지거나
수치로 계산할 수 있는 효율성의 범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철저히 가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가난한 모습,
신앙인들의 오직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분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내야 할 근본소명입니다.
우리 모두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해 우리 자신이 먼저 회개함으로써
사랑의 존재가 되어야겠습니다. 하느님께로 되돌아가고 예수님의 말씀과
삶에 일치되지 않고서는 예수님처럼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느님이 의미가 되고 생명의 힘이 되지 못하는 세계
구석구석의 가난과 고통, 전쟁, 사회갈등, 이념 대립, 차별, 소외 등에
대한 사랑 깊은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왜냐하면 이해한 만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함으로써 행복하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 줄 때,
종교를 초월하여 모든 이가 복음이 참되며 기쁜소식임을 믿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면의 평화나 기도 안에서 체험하는 기쁨에
만족해서는 안 되며, 좀 더 능동적으로 세상을 바꿔나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소명은 하느님의 생명과 얼이 인간 삶의 전 영역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행복해지는
그날까지 멈추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청주] 믿고 감당하면 눈이 열린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10월18일 주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마태28,16-20)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 마태오 28,16-20
믿고 감당하면 눈이 열린다.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모두가
구원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당신께서 명령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이 시간 전교의 사명에 대해서 생각하는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주님께서 명한 것을 지키고 가르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또 하나의 그리스도이고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들음에서 오기 때문에 말씀은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듣게 되고 들음으로써 주님께 문을 두드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숨겨지지 않도록 우리 각자의
능력에 따라 구원의 진리를 전해야 합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영세 받은 지 몇 년이 되었든, 나를 통해서 성당을
찾아 영세를 받은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있다면 다행입니다. 그것은
열매를 맺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이 되었으면서도
나의 영향으로 하느님을 찾게 된 사람이 아직 없다면 나는 열매를 맺지
못한 것입니다. 주변을 보십시오. 많은 꽃들이 있습니다. 밤나무도 있고,
은행도 있습니다. 하찮게 여겨지는 들풀도 일 년에 한 번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 년에 한번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구원의 은혜를 이웃과
더불어 나누는 가운데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기를 희망합니다.
‘선교’를 하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나는 말주변이 없다. 아는 게 없다.
교리 지식이 없고 신앙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개신교 신자들의
전교열정과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 말 잘하는 것을 부러워합니다.
그런데 축구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늘 축구를 해야 합니다.
공을 가지고 놀아야하고 훈련이 필요합니다. 피아노를 잘 치려면 그만한
연습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를 잘 하려면 자꾸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기도를 배우게 됩니다. 성경도 자꾸 읽어야합니다.
읽음으로써 하느님을 더 잘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선교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선교할 수 없습니다. 선교는 성령의 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교를 잘 하려면 선교를 해야 합니다. 주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함으로써 더 전할 수 있는 용기, 잘 전할 수 있는 지혜도 얻게
됩니다. 사람을 안내하다 보면 안내하는 방법도 알게 되고 경험이 쌓이게
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신심이 깊어지고
교리지식도 풍부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수고 없이
잘하려고 하니 문제입니다.
솔직히 여러분이 말씀을 잘 못하십니까? 남 얘기하는 데는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게 없습니까?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에는
필요이상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쓸데없는 것으로 가득 채우면
꼭 필요한 것이 들어갈 데가 없습니다. 여러분, 삼척동자를 아세요? 잘난
척, 똑똑한 척, 있는 척입니다. 삼척동자는 전교의 걸림돌입니다. 이웃을
만날 때는 진심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 주님을 전하는 것은 머리나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리지식과
신심으로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6) 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13장 11절에서는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시다.”하고 선언하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1코린1,17). 결국 인간의 말재주로 전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뜻을 잃고 맙니다.
선교를 잘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풍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실행함으로써 더 큰 믿음을 얻게 됩니다. 믿음이
있어야 따를 수 있기도 하지만 따름으로써 믿음을 다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믿음이 강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말씀을 듣고 그분의 삶을 보면서 강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믿음의 영양을 섭취하기 위해서 미사참례를 기도의
첫 자리에 놓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생명의 빵을 먹으면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하신 주님의 약속을 새롭게
일깨우고 맡겨진 일을 성실히 감당할 때 이윽고 믿음의 눈이 더 크게
열리게 됩니다.
사도행전이 그것을 증언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다락방에 숨어 지내던
사도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1코린2장 4절에 보면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능력을 믿고 전교하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실패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패는 늦춰진 성공일 뿐입니다. 더 큰 결실을 위한
믿음의 단련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반응 여하에 실망하지 말고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하느님의 뜻을 전해야 합니다. 끝까지 인내롭게
해야 합니다. 한국 사람은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에 몇 번이고
반복해야합니다. 온 세상이 우리의 활동 무대 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선교사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주저하지 말고 나아가십시오. “주님, 저를
보내주십시오. 제가 있지 않습니까?”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가끔은 ‘여호와의 증인’이 방문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베드로 전서 3장 15절의 말씀을 보면 “여러분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히 모시십시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
그러나 바른 양심을 가지고 온유하고 공손하게 대답하십시오.” 라고 적고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주님의 말씀으로 무장 되어있어야 주님을 제대로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자주 읽고 또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주님을 깊이 만나시기 바랍니다.
한 때 개신교신자가 줄고 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사회봉사 및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데 인색하고, 전도활동이 지나쳐서
혐오감을 주며 헌금을 너무 강조한다. 진리 추구보다 교세 확장에
집착하고 너무 시끄럽고 요란하다. 물량 주의에 물들어 있다. 도덕적으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이원규. 감신대.종교사회학교수)
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러한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합니다.
천주교에서도 경계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천주교인들이 개인화 하고
있고, 부유해 지고 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점점 보수화, 권력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거리홍보나 공연, 작품 활동을
통한 문화 선교를 개신교에서 배우는 것은 긍정적인데 기존의 좋은 것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반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의 말씀을 통한 새 삶을 살아감으로써 주님을 증거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전교주일을 보내면서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하시길 빕니다.
하느님을 전하는 것은 이웃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의 실천입니다.
오늘만이라도 남편도 좋고, 아내도 좋고, 친구에게도 좋고 이웃도 좋고
누구에게든 주님을 알리고 하느님에 관해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상대방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나의 가치도
존중받기 때문입니다. 사랑 안에 기뻐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사랑합니다.
@@ 부모와 함께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네 살짜리 꼬마가
말했습니다. “엄마, 저는 나중에 신부가 되고 싶어요!” “그래? 좋지!
그런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했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성당에서
지루하게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는 서서 떠드는 것이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아요!” @@
강론준비는 참 어렵습니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 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서울] 연중 제29주일(전교주일)
2015년 나해 10월18일 주일[(녹) 연중 제29주일]
제1독서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산으로 밀려들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2,1-5
제2독서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0,9-18
복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8,16-20
저는 1999년 10월 1일 교구장님의 명에 의해서 적성성당의 본당신부로
갔었습니다. 성당 근처에 저수지가 있어서 취미활동으로 낚시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저는 고기를 잘 잡을 수 없었습니다. 옆에 있는
분들을 보니 쉽게 고기를 잡는 것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고기를 잘
잡는 분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방법과도
비슷한 것 같았습니다.
첫째는, 밑밥을 꾸준히 주어야 합니다. 밑밥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
고기들이 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교를 할 때도 비슷합니다.
상대방을 위해서 기도의 밑밥을 주어야 합니다. 나눔의 밑밥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닫혀있던 상대방의 마음이 열리게 됩니다. 예전에
체험사례를 발표하셨던 자매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매님은 아직
신앙을 갖지 않았던 새댁에게 자주 찾아가서 살림살이의 요령을
알려주고, 바쁘면 시장에 가서 장을 봐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꾸준하게 도움을 주니까, 결국 새댁은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둘째는, 같은 장소에 ‘찌’를 던져야 합니다. 밑밥이 쌓인 곳에 정확하게
찌를 던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손맛’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선교를 할 때도
비슷합니다. 선교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꾸준히 해야 합니다.
조금 선교를 하다가, 어려우면 포기해서는 선교를 잘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용산 성당에 있을 때의 기억입니다. 요셉 형제님은 냉담 하는 분들의
주소를 찾았습니다. 매 주일 주보를 보내고, 이사를 가신 분들은 이사 간
주소로 주보를 보냈습니다. 결국 그분의 노력으로 냉담 중인 많은 분들이
다시 신앙을 찾았습니다.
셋째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밤을 새워도 고기를 잡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도 그물을 던졌지만 밤새 한 마리도 못 잡았던 적이 있습니다.
찌를 바라보면서 끈기 있게 기다리면 찌가 높이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꾸준히 인내를 가지고 선교를 하면, 결코 마음을 열 것 같지
않았던 사람들도 성당에 나오는 것을 봅니다. 제가 알던 자매님은 결혼
생활 17년 동안 시부모님과 남편을 극진하게 섬겼다고 합니다. 신앙을
갖지 않았던 남편이 결혼 17주년 선물로 가져 온 것은 ‘예비자 교리
신청서’였다고 합니다. 남편은 극진한 마음으로 시부모님과 남편을
섬기고 자녀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아내가 고마웠고, 아내가 가장 좋아할
것 같은 선물로 ‘예비자 교리 신청서’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자매님은
남편의 말을 듣고 하느님께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천년도 주님의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다고 합니다. 우리가 충실하게 살면, 언젠가는
축복이 찾아 올 것입니다.
적성성당에 있으면서 가정방문을 하였습니다. 가정방문 중에 한 자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매님은 태권도 사범을 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자매님께 성당에 태권도장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자매님도 좋다고 하여서,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습니다. 도복을 주고, 간식도 주고,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도복에는
‘적성성당 태권도’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도복을 입고 학교에도
가고, 장터에도 가고, 강가에도 갔습니다. 아이들이 움직이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동네 친구들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성당에 오기
시작했습니다. 수녀님은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주었고, 아이들이
세례를 받게 되면 가족들이 성당에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7명이 시작한
태권도는 제가 떠날 무렵에는 120명이 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즐거웠던 추억입니다. 열악한 환경이라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즐거운 모습이, 오늘 우리들의 참된 나눔이, 오늘
우리들의 따뜻한 마음이 이웃에게 주님을 전하는 커다란 선교가 될
것입니다. 가을입니다. 풍성한 결실을 맺는 계절입니다. 우리들도 바로
주님께서 함께 했던 사람들과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민족들의 복음화입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엄청난 과제물 피해 도망 갈까봐
매일 출근하면서, 출장 가며, 여행 가며, 죽기 전에 하는 말이 다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 교육시키시고 하늘고향으로 가실 때는 특별했습니다.
인류를 하느님의 자녀 되게 하라고 온 누리 주권자로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누가 쓴 소설 속의 문장이 아니라는 것 생각하면서 늘 놀랍니다.
어마어마한 숙제를 제자들이 받았고 오늘도 교회를 통해 이어집니다.
엄청난 과제물 피해 도망 갈까봐 예수님이 ‘함께 있겠다.’하셨을까요?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오 28,19~20)”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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